누구나처럼 우리도 한국갑니다

어떤 여행이 될까요

by mindy

한국이 시끌벅적했겠다. 미국에 사는 동생과 캐나다에 사는 동생이 아이들을 데리고 한달 이상 한국에 갔다 돌아왔다. 그동안 한국 인구가 7명 늘어났었다. 우리집뿐이랴, 다른 해외 이민자나, 외국인들이 한국을 얼마나 찾았을 것인가? 한국이 매력이 넘치기 때문이다. 이태리는 외국인 여행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기사를 봤다. 사는 사람에게는 그들로 인해 일상이 침해받는 것이 못마땅하단다. 여행자로서 그런 말을 들으면 의기가 소침해질 것 같다. 한국에서 그런 말이 나오지 않기를 바래본다.


나는 너무 멀리 살아서 찾아오라고 말해도 많이 방문을 받아보지는 않았다. 가족들빼고는 크게 기억에 나지 않는다. 지난 여름 친구가 딸을 데리고 왔었다. 캐나다 뱅쿠버에 들렀다가 동부까지 와서 시간을 내서 우리집에 와준 친구가 고마왔다. 큰 관광지는 아니지만,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터버모리에 모녀를 데리고 함께 다녀왔다. 알고싶었던 한국의 친구들 소식, 그리고 기억창고 깊이에서 뒤집어내어야 알수 있는 친구들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나와 친구는 서로의 내밀한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었다. 누구나 드라마 한편 이상의 스토리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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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에는 둘째도 한국에 삼주간 다녀왔다. 제 언니집에 머물기도 했고, 캐나다에서 친구가 놀러와서 둘이 홍대를 가고 명동을 가고, 그렇게 즐겁게 보내다왔다. 둘째친구는 나도 만나봤는데, 친구들중에서 가장 실력(?)이 좋은 변호사란다. 그런데 그 친구가 공유를 좋아해서 공유 얼굴이 크게 들어간 베개를 샀다고 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한국의 문화콘텐즈가 여러 사람 마음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캐나다에 오면 크게 뵈줄게 없는 것 같은데, 한국은 무엇 하나 버릴 게 없다. 내가 2년전 한국에 가보고, 선진국이라고 느꼈듯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한 듯싶다.


이렇게 모두가 움직이고 있는데, 우리도 움직이려고 서두를 장황하게 읊었다. 남편과 나는 캐나다에서 결혼하고, 한국에 각자 한두번 갔다왔을뿐 함께 간 적이 없었다. 이제 그럴 수 있게 되었으니, 당연히 그래야 한다.


특별히 남편은 어머님이 돌아가셨을때 한국에 가지 못했다. 2년전인데, 그때는 서류를 준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렇게 아쉽게 어머니를 보내서 남편은 기일에 맞춰서 한국에 가야한다는 생각이 있긴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막내가 발동을 걸어줬다. 마음만 있었지, 결심을 못하고 있을때 막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집을 방문해서 며칠 보내다 갔다. 우리의 마음을 읽어내곤, 갈 생각이 있다면 항공권을 빨리 구매하는 게 좋다고 해서, 그애 있는데서 구매를 끝냈다. "한달 금방가"라고 협박해서 2달 있기로 결심했다. 9월, 10월 한국의 가을을 느끼고 올참이다.


다행이 큰애가 있어서 베이스 캠프는 있다. 두 동생은 집을 얻기도 했지만, 언니집에서 있어서 형부에게 많이 미안했다고 한다. 딸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전화 심카드 사는 법, PCR 테스트 예약등 한국에 오면 해야할 일을 큰애가 일일이 알려줘서 하나씩 해결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가도 되는지 모르겠다.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었지만.


캐나다에 있는 큰언니의 건강이 많이 안좋다. 언니와 5박6일 뒹굴면서 시간을 보내고 나니, 그럭저럭 떠날 마음은 섰다. 다시 돌아올 때까지 평안하기를 바랄뿐이다.


집을 이사하고, 집을 집답게 만드는데 많은 노력을 했다. 안해보던 목수일도 하고, 부실한 창문 커텐도 다 다시 달고. 손볼 곳이 계속 나왔다. 규격에 맞는 신발장을 오랜 동안 찾다가, 나무를 사다가 우리끼리 만들었는데, 그것이 그리 성취감이 크다. 우리집에 온 사람들은 반드시 신발장을 봐야하고, 잘했다고 칭찬을 해줘야 갈수 있다. 페이슬리에 살던 친구들을 부르지 못한 것과 몇몇 사람 기회를 찾지 못했지만, 거의 다 집들이를 했다. 남편의 한의원은 조금씩 환자가 오고있다. 그러나 또 2달간의 공백이 있게 되니, 갔다와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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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가려면 반드시 예뻐져야 한다. 날씬해져야 한다. 그것이 큰 숙제였다. 젊을때도 그렇지 못했는데, 이제와서 어쩐단 말인가? 한국이라는 나라에 가면, 저절로 그렇게 되겠지, 하면서 내가 할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냈다. 지난 3일간 금식을 했다. 좀 우습지만,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이뻐지기도 하면 좋지 않을까 하면서. 내가 그렇게 유치하다. 덕분에 그동안 긴 기도를 해보지를 못했는데, 하나하나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를 했다. 밖에 정원 의자에 앉아서 살살 부는 바람을 맞으며 기도하는데 행복했다. 내가 이름을 부르며 기도할 사람들이 있어서. 내가 기도해주겠다고 했던 사람들과, 내게 기도를 해달라고 했던 사람들, 그들이 있어서 감사하다.


당연히 한국여행을 위해서 기도한다. 이제는 내힘으로 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것만 같다. 바보가 되었는지, 아니면 도통했는지 나도 모르겠다.


어제는 금식 마지막날이었는데, 귀한 손님들이 오기로 했었다. 저녁식사부터 먹을 수 있었는데, 2시간전 조금 먹었다. 음식준비하는데, 마치 발레하듯이 살살 움직이면서 준비했다. 힘이 없어서 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재료가 있으면 음식으로 만들어낼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 음식은 잘 준비됐는데, 전날 저녁 잠을 못잔 것과, 3일간의 피로 때문인지 식탁 이야기 시간이 길어지면서 졸려왔다. 손님을 초대하고 조는 아줌마라니. 이해해주리라 믿어본다.


금식하는 동안 이 금식이 무사히 끝나기를 기도했다. 두째날 아침, 두번에 걸쳐 식은땀을 흘리고 늘어져, 더이상 할수 없을 것같은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한국여행전 왜 그러냐며, 조금 못마땅해해서, 더욱이 나의 땀흘림을 발설할 수 없었다. 위기의 순간을 몇번 넘기고, "그 청년 바보의사 안수현" 책을 읽으며, 한국행 짐을 싸며 조심조심 3일간을 보냈다.


그래서 이뻐졌을까? 본판 불변의 법칙은 어디에나 통한다. 그런데 조금 가벼워졌다. 그것으로 족하다.


한국가기전 두편의 브런치 글을 작성할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할 것 같지 않아, 이렇게 마무리를 한다. 그 하나는 우리가 이사와서 한 목수일등, 집안 가꾸기에 대한 글과, 지난주 있었던 캠핑이야기다.


캠핑은 완벽했다. 매번 무엇인가 부족하고, 힘들고 그랬는데, 이럴 수는 없을 정도로 훌륭했다. 이렇게 몇줄로 요약하기로 하자. 혹 나중에 다시 풀어서 설명할 기회가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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