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 도시 여수 순천

차고장의 악재속에서 보너스여행

by mindy

한국에서는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했다. 어쩌다 차를 얻어타게 되면, 갑자기 신분이 상승한듯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호기롭게 차타고 떠난 길에서 순조롭지만은 않았던 여행길을 소개한다.


"여수"로 갈까? 마침 그곳으로 출장을 가야할 일이 생겼다는 언니 말에, 두번 생각할 것도 없이 오케이였다. 60세 축하연은 누구도 해주지 않고, 하자고 할수도 없으니 우리가 챙겨먹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의기투합(?) 했다. 언니의 연하 남편과 나는 동갑내기였고, 2020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회갑연은 한국에서 함께 하죠"라며 말을 던져놓았는데, 열매가 맺히는 중이었다. 환갑이 지났지만 아직도 환갑이란 단어와는 친숙한 느낌이 없다. "환장"이란 말이 연이어 떠올라서 일까? 점잖게 "회갑"이라 할수도 있으나 이또한 너무 "노티"가 난다. 그래도 무언가 축하를 받고싶은 마음이 있으니, "60세 기념여행"이라 부르면 되겠다.


언니의 정보에 의하면 "향일암"을 가봐야 한다고 했다. 가는 길에 만난 "돌산 갓김치" 가게에선 한참 김치버무리기에 열심이다. 맛뵈기 시식코너에서 얻어먹은 몇줄기 갓김치는 코와 혀에 감기는 그 향과 맛이 거의 황홀하다. 언니는 갓김치를 샀다. 그걸 그냥 들고가는 게 아니라 택배로 부쳐준다고 한다. 그러니 가게들도 전국을 상대로 장사를 하게 되나 보다. 나중에 이 음식을 원하면 다시 주문하면 되니 말이다. 옆가게 주인아저씨 말로는 길거리 "갓김치" 가게들 주인은 보통 건물을 몇채씩 가지고 있는 재벌(?)급들이 많다고 한다. 무한히 제공하는 맛뵈기 김치인심이 그런데서 나오지 않았나 싶다. 일하는 사람들, 포스도 뭔가 달라보인다.


강정, 말린 과일, 말린 야채와 약과를 파는 가게를 만났는데, 자신도 서울에서 온지 2년밖에 안된 사람인데, 회사생할보다 이 장사가 훨씬 돈을 많이 번다고 자랑했다. 자신이 개발한 것이라며 야채 말린 것을 먹으라고 주는데, 이분의 입담이 보통이 아니다.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를 하다보니, 형부의 고등학교 후배로 등극했다. 옆에서 열심히 일하는 부인은 남편의 수다에 질려가는 표정이 보이기도 한다. 이집에서는 우리가 많이 샀다. 말린 야채봉지를 다섯개 사서 나중에 캐나다까지 가지고 왔다. 우리도 멋지게 딸네집으로 택배를 부탁했다.


향일암은 절묘하고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보며 자리해 있었다. 좁은 바위길도 있고, 천년을 살았음직한 큰 나무들도 보이고. 향일암을 갔다 내려오는 길에 들른 식당자리는 정말 전망을 보는 것만으로도 돈을 내고싶을 만큼 멋진 곳이었다. 이곳에서 열무 냉국수, 들깨 수제비를 먹었는데 그것이 그리 또 맛있었다.


여수밤바다(왼쪽)와 아침나절 펜션에서 보이는 여수바다 풍경, 그리고 잘려나간 누군가가 있는 여행팀.
여수 거북선 광장(왼쪽)과 향일암으로 가는 길에서 본 여수 바다 풍경


첫날 언니가 예약한 펜션은 꽤나 비쌌기에 기대를 하고갔는데, 펜션 매니저(?)의 냉담하고 사무적이고 계산적인 응대에 질려버렸다. 인간미가 싹 가신 건조한 말로 규칙을 이야기하는데, 정이 안갔다. 그날은 추석연휴이고 주말이어서 가격이 그리 비쌌던 것 같다. 자쿠지가 있다고 했는데, 그건 "사용할 생각을 마시오" 라는 듯, 정말 묘한 구석에 배치해놓아서 쓰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여행객을 그리 맞이한다는 것은 두번 받을 생각은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우리끼리 추론을 하기론, 그는 주인은 아니고 마당을 쓸던 늙수구레한 이가 주인인데, 매니저인듯 싶다고 평을 했다. 내 일을 그렇게 할 사람은 없을 것이 아니겠는가.


나중에 발견한 베란다가 없었다면, 불평만 하다 왔을 것같다. 유리창이 열리는 베란다에 의자와 테이블이 있어서 여수 밤바다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날 달이 휘영청 떴고, 지대가 높은 곳에 위치해 밖의 경치를 감상하려니, 포르투갈 포르투가 생각났다. 이 정도의 경치면 포르투 강가처럼 펜션들과 식당이 즐비하고, 사람들이 강가 광장에서 노래부르고 산책하고, 공연하고, 관광선도 있고, 그렇게 "자유로운 해변가"로 개발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60세 생일 충분히 축하받았고 자축했다"고 선언했다. 나이가 들어도 어린애다. 누군가가 축하해주길 이렇게 질기게 요구하게 될줄은 나도 잘몰랐다.


그다음날 방문한 여수 이순신 광장에서 내가 이야기했던 포르투같은 그런 광장이 조성되어 있어서 깜짝 놀랐다. 포르투의 그 강가는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 여수에게 바라는 것이 아마도 그런것인 것 같다. 광장 한편에 세워진 "소녀상"과 시비들, 정말 한국에 와서 "시"가 살아숨쉬고 있음을 곳곳에서 느낀다. 소녀들의 눈물과 한을 고스란히 뼈아프게 느끼게 하는 그 시들 앞에서 숙연해졌다.


사실 여수의 기억중 가장 큰 것은 자동차에 관한 것이다. 출발한 날 휴게소에서 시동이 한번 꺼졌었는데, 그 다음날 여수 복잡한 거리에서 아주 멈춰버린 것이다. 기어를 바꾸어 가장자리로 밀수도 없이 그냥 서버렸다. 요즘엔 밀 수도 없는 그런 차종이 있다고 한다. 독일제 고급차가 길을 막고 서있으니, 민폐가 대단했다.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어서 다른 차를 가져오라고 했다. 교통순경이 다가와 주변정리를 해줬다. 보험회사에서는 그 차를 BMW 딜러가 순천에 있다면서 그쪽으로 견인해놓고, 추석연휴였기에 일하는 사람도 없어서 화요일까지 기다려서 찾으라 했다. 1박2일 일정으로 내려온 형편인데 일이 자꾸 꼬여갔다.


보험회사 차를 타고 언니를 일단 약속장소에 데려다주고, 우리들은 그동안 여수를 구경하기로 했다. 그런데 형부의 표정이 좋지않다. 왜 안그렇겠는가? 시내는 복잡했고, 주차할 공간은 없고, 형부는 우리끼리 내려주고 시간을 보내라고 하고 나중에 만나자고 했다.


우리끼리 거북선이 있는 여수광장 주위를 돌다가, 오동도까지 가는 낭만버스라는 이름의 차가 돌고 있어서 그것을 탔다. 오동도에서 내려 잠시 땅을 밟아보는 정도로 갔다왔다.


언니의 추천으로 남편은 여수에서 특별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체형관리, 피부관리등 많은 자격증을 가진 원장님으로부터 남편이 치료를 받게 되었다. 남산 타워 다녀온 후로 남편은 허리부분과 다리에 불편을 느끼고 있었다. 언니의 컨설팅을 받은 그분이 그런쪽에 일가견이 있어서 시간을 내준 것이다. 남편은 이 치료를 시작으로 한국에서 유행하는 많은 대체의학을 치료차 방문하게 된다. 체형교정 치료사로부터 나중에 온열치료를 하는 분까지 만났다. 남편의 여행에 대체의료 여행 일정이 꽤 들어가게 됐다. 치료자에서 치료받는 자들의 마음을 알게 된것이 큰 수확일 것이다.


그렇게 여수의 시간들이 흘러가고 우리는 결정을 해야했다. 월요일날 일이 있는 언니부부는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고, 우리는 남아서 여수에서 하룻밤 더 자고, 그 다음날 순천으로 가서 또 하루를 보낸후 고쳐진 차를 타고 올라가기로 했다. 우리는 여행을 목적으로 온 사람이니, 우리에게는 어쩌면 더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역 근처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1차 여행을 마무리하는데, 맞은편으로 모텔이 보인다. 차는 이미 보험회사에 반납했고, 우리는 이 근처에서 머물다 내일 아침 순천행 버스를 타면 될 것이라, 그곳에서 하루 자기로 했다. 남편이 숙박결제를 하고오겠다고 나갔다가 왔는데, 주인이 없는 무인텔이었다면서, 어리벙벙하게 서있으니 아주머니가 나와서 도와줬다고 한다.


언니부부를 보내고, 모텔로 들어온 우리는 너무 놀랬다. 조금 달랐다. 말하자면 잠시 머물다갈수 있는 "대실"도 있는 곳이었던 것이다. 모텔이 그렇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우리가 선택한 곳이 그런 곳인줄이야. 아주머니가 도와줬기에 망정이지, 기계로 결재하다가 몇시간 있다가 나가야 하는 "대실"로 선택이 되었으면 어쩔뻔 하였겠는가? 많은 일회용품이 갖춰진 핑크빛 모텔에서 하루 머물렀다.


순천과 여수는 말하자면 자매 도시가 아닌가싶다. 이웃해 있어서 교류도 상당할 것이라 본다. 순천에서는 두가지가 좋았다. "순천만 국가정원"과 "순천만 포시즌 펜션"이 그것이다.


국가정원은 규모가 굉장했다. 흑과 풀과 나무 꽃 물을 이용해 인간이 조성한 인공자연의 공간. 여러 나라 국가의 특색을 살린 각나라 정원들까지, 광대한 터에 이 모든 것들을 조성해놓았다. 거대한 달팽이 모양의 높이 솟은 원형 초장이 몇개 세워져 있고, 그 길을 따라 올라가면 또 작은 정원이 있다. 이 국가정원은 2013년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를 개최하면서 조성되었다고 한다. 28만평에 달하는 곳이기에 하루 온종일 할애해야 곳곳을 다 볼수 있을 것같다. 좋았던 것은 어디서나 앉아 쉴수도, 그곳서 소풍을 할수도 또 누워잘 수도 있는 있는 햇빛가리개가 있는 평상들이었다. 그곳에 앉아있으면 나쁜 마음들은 다 휘발되어 나갈것같다.


어느 곳에 가니, 판소리, 사물놀이 공연이 한창이다. 이곳에 앉아서 한참동안 넋을 놓고 바라봤다. 공연장에 온 것인지, 정원에 온 것인지. 아마도 추석이라서 특별히 준비했던 것같다. 순천만 국가정원에는 야생동물원도 있고, 한방체험센터도 있고(이곳은 우리도 잠시 들렀다), 뻘체험장도 있다고 한다. 순천에 간다면 넉넉한 시간을 가지고 돌아보는 것이 좋으리라.


이곳에서 "스카이 큐브"라는 순천만 습지까지 달리는 소형경전철을 탔다. 순천만 습지는 2년전 방문때 나는 와봤기에 그다지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남편은 처음이었다. 이번에는 경천철을 타고 가서 순천만 습지를 잠시 돌아봤다. 습지에서 자라는 갈대도 멋지지만, 그 뻘에서 숨구멍을 만들며 살아가는 게들이 갈대를 타고 기어올라오는 모습들에서 생명을 느낀다. 습지만은 자연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가는 길에 한승원 작가 기념관이 있어서 들렀는데 그분의 절필과 다시 신앙으로 들어섰다는 기사를 보고, 그분의 책을 보고싶어졌다.





그날 저녁 묵기로 한곳은 "갈대숲펜션"이었다. 이곳서 이용하던 "북킹닷콤"을 통해 예약했는데, 그 주인께서 전화가 왔다. 자기집 대신 그 옆에 있는 같은 모양인 "포시즌펜션"에 이야기해놓았으니 그곳으로 가주십사 하는 말이었다.


이 주인은 북킹닷콤에 리스팅된 것을 모르는 듯싶었다. 내게서 연락이 가자 깜짝 놀라는 듯했다. 국가정원에서 버스를 타고 이곳으로 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버스 정거장에 앉아서 거의 1시간을 기다렸다. 대중교통이 서울같지 않다는 것을 감안했어야 했다. 나중에 택시회사에 전화했더니, 우리가 어딘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니, 오기 힘들다고 했다. 어쨋든 버스가 오긴 와서 그 차를 타고 가는데 또 지나쳐서, 캐리어를 끌고 한참을 걸어야했다. 주인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그나마 헛된 데로 가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몇시간이 걸려 숙소에 도착했는데, 이 집은 여수의 펜션보다 훨 쌌지만 더 알차고 아름다왔다. 주인 아저씨가 배고프겠다며 식당까지 데려다주는 수고도 마다않으셨다. 순천습지 근처의 한정식 식당에서 얼마나 맛있는 밥을 먹었는지. 꼬막이 나오고 조기가 나오고. 된장국까지, 정말 전라도 음식의 정수를 본듯했다.


이 포시즌펜션에도 선룸이 있었다. 바베큐할 수 있는 장비도 갖춰져있었다. 방 하나에 작은 부엌 시설까지 있는 아름다운 방에서 순천 마지막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서울 올라가는 과정만 적고 끝내자. 순천 딜러샵에 갔더니, 자신들은 차를 손보지 않았다고 한다. 다시 시동이 켜졌고, 당분간은 사용할수 있을 것같으니, 서울에 가서 고치란다. 그렇게 차를 끌고 올라오는 길, 오산쯤에서 차가 멈췄다. 그것이 경부 고속도로라고 했던가? 어쨋든 엄청나게 차가 많은 곳이었다. 갑자기 시동이 꺼져버려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서 형부에게 전화를 걸고 형부는 견인회사에 연락하고. 견인회사 담당자는 차에서 내리지 말고, 경찰에 연락하라고 말해준다. 차사고의 위험성이 있다면서. 우리는 한국에서 "112"에 전화했다. 그리고 사정을 말하니, 차에서 내리지 말고, 차 트렁크 뚜껑을 열고 있으라고 말했다. 교통경찰을 보내겠다면서.


우리차 뒤로 오던 차들이 차선을 변경하느라 난리인 것이 보인다. 정말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몇몇 차들은 크락션을 울리며 지나가기도 한다. 나중에 견인차가 와서, 간신히 차를 빼내었다. 견인회사 사장이라는 젊은 분과 한참을 이야기하면서 함께 강남으로 왔다. BMW 딜러가 강남에 있다니 어쩌겠는가? 퇴근시간 전에 차를 인계해야 하는데, 차는 정체되고 말이 아니었다. 견인차 사장은 이 일이 스트레스는 많지만, 시간이 없어서 일을 다 받을 수 없을 정도로 바삐 돌아가는 "돈이 되는 비지니스"인데, 젊은이들은 일이 없다고만 하지, 이런 일을 안하려고 한다고 뭐라 한다. 우리눈에는 사장도 젊어보이는데, 그가 말하는 젊은이는 자신밑에서 일배우는 이들인가 보다. "요즘 젊은이들" 하면서 아주 불만이 많다. 그 사장은 정말 수시로 전화통화를 했다. "형님, 그쪽으로 좀 가주세요" 등등. 여러 사람과 협력해서 일을 나누고 있다고 했다.


나중에 차에서 전화해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안되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견인당하는 사람들의 상태가 좋지 않을때가 많을테니 모두 성화여서 최대한 일을 빨리 처리해야 한단다. 최악의 상황의 차도 견인해야 하고, 여러가지 일들을 만난다 했다. 강남까지 간신히 차를 갔다줬다. 우리의 3박4일 일정이 강남에서 이렇게 끝났다.



이전 08화남산, 파주 찍고 선유도 공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