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했던 시간들
걸어서 1시간 32분, 4.5km.
걷기에 딱 좋다. 주말을 맞아 딸내미는 자전거를 타고간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걸어가면 되겠다고 길을 나섰다. 서울 도착 첫번째 주말, 9월초였다. 그 걷는 길은 차도로 이어지다가, 약간의 등산을 해야한다. 우리가 찾아가는 곳은 남산 타워. 호기롭게 둘이 길을 나섰다. 삼각지역으로 시작해서 이태원로로 들어섰을 때까지 잘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아무리 가도 남산 근처에 다다르는 느낌이 안들어서 지도를 다시 확인하니, 길을 건너야 했던 곳을 지나친 것 같았다. 되짚어 길을 찾았다. 그리고 이태원 중심가, 그 숨막히는 거리에 접어들었다. 그날이 토요일 새벽이었다. 그 현장은 "광란의 금요일밤"을 보여주듯, 거리가 형편없었다. 이런 이야기 하는 것도 조심스럽지만, 한국에 와서 단정하고 깨끗한 모든 것에 놀라고 있었던 한사람으로서, 외국인과 관광객이 많다는 이태원 거리에서 나름 큰 흠집을 발견한듯 충격이 왔다. 전날의 취기에서 깨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쓰레기통이 따로 필요없다는 듯이, 온 거리가 쓰레기가 넘쳤다. 거리에 누워있는 취한 외국인들까지 보고나니, 같은 외국인으로서 부끄럽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의 나들이가 마침 토요일 새벽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을것 같다. 미화원들이 일하는 시간 이전, 주인들이 다시 문을 열기 전, 전날밤의 무법천지가 아직 치워지지 않아서였을 수도. 관광특구라는 그곳은 관리가 안 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낯설고 어색한 마음으로 길을 걷는다. 길은 계속 언덕을 향해가고, 대사관들과 카페들도 종종 보인다. 언덕을 한참 오르니 소나무가 많은 걷기에 좋은 야트막한 등산로가 나타났다.
자주 남산 라이딩을 한다는 큰딸의 모습을 제대로 보고 싶어서 나온 길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새벽을 가르는 젊은이들이 많다. 몇 팀을 보내고, 드디어 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딸은 우리가 있는 동안 남산 100회 라이딩 기념을 했고, 자신의 기록을 계속 경신하고 있다. 주말에 다른 라이딩이 없으면, 남산과 북악산을 자주 오르내린다고 했다.
큰딸의 최근 취미로는 사이클링이다. 한국에 있는 자전거길을 다 달려보고 싶은 꿈이 있다고 한다. 밤에 라이딩 나간다는 소식을 캐나다에서 들었을 때는 그렇게 위험한 일을 왜 하는가, 했는데 이번에 와서 보니 그럴만해 보인다. 밤에도 안전한 몇 안 되는 나라에 속할 것이다. 며칠 전에는 "따릉이로 출퇴근" 하기로 결정했는데, 차비와 운동 등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는 것을 왜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따릉이는 1년에 40불밖에 들지 않는다고 하니, 이거야 말로 믿기 힘든 소식이다. 그동안 지하철 타고 다녔는데, 소요되는 시간도 비슷한 "따릉이"를 자주 타게 될 것 같다.
우리가 있을 때 그 애는 친구들과 서울-부산 자전거 종주를 계획했었는데, 가는 길에 컨디션이 저조하여, 대구까지밖에 가지 못했던 적이 있다. 그걸 다시 한번 할 생각을 하고 있다. 또 하나는 "프로 같은 아마추어 자전거 클럽"에 도전장을 냈는데, 고배를 마셨다. 낙오하지 않고 끝까지 종주한 것은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내지만, 자신의 자전거로는 결코 그 클럽에 입성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사진사가 사진기 탓을 하듯이 이 애도 "장비 탓"을 하기 시작했다. 중고차값보다 더 높을 수도 있는 자전거를 구입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는 듯하다. 그걸 위해 예금을 해야 한다고 벼르고 있다.
남산타워에는 새벽같이 올라온 사람들이 아침을 깨우고 있었다. 남산에서 바라보는 서울은 산맥들에 둘러싸여 편안해 보였다. 편의점에서 컵수제비를 사서 먹었다. 컵라면을 파는 곳에는 따뜻한 물과, 나무젓가락이 제공되니, 요기를 바로 때울 수 있었다. 스타박스 병커피가 온장고(?)에 보관되어 있어서 따듯한 스타박스 커피를 편의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그것조차도 신기했다.
딸의 취미의 현장을 보려고 남산까지 걸어서 갔지만, 이후로 남편은 발과 허리통증을 호소했다. 1시간 30분 걸리니 어렵지 않으리라 했는데, 길을 잃어서, 주춤해서, 평지가 아니라 등산로여서 그런지 올라가는 데만도 3시간이 걸렸고, 내려올 때는 결국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9월 세째주에는 딸과 함께 파주, 임진각에 갔다. 딸은 우리의 주말 스케줄이 없는 날은 함께 놀아주려고(?) 자신의 일정을 조정하곤 했다. 물론 쌍방(?)이 중요하게 생각한 일정이 있다면, 서로를 배려했다. 파주는 내가 가고싶은 곳이었고, 임진각은 남편이 더 좋아했던 것 같다.
파주 출판단지 근처 지하철에 내리고 나니, 땡볕에 어느곳으로 가야할지 망설여졌다. 햇빛을 피할 수 있는 곳을 찾다보니, 개천옆에 산책로가 보인다. 파주뿐 아니라, 청계천부터 시작한 천변 산책로는 어디를 가나, 눈에 띄었다. 도심내 밑에 흐르는 개천을 따라 산책로, 자전거길이 있고, 다리밑에는 계단식 의자를 만들어 땀을 식힐 수 있게 해놓았다. 그런 자연조성이 여행자눈에 좋게 보인다.
파주에 왔으니, 책냄새는 맡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택시를 타고 "지혜의 숲"을 찾아갔다. 그곳은 거대한 도서관이었다. 손이 닿지않는 곳까지 책이 있었고. 어디에서 어떤 책을 찾아읽느냐 하는 것은 그날의 독자와 책의 인연이라고 말할 수밖에. 지혜의 숲 인근을 중심으로 많은 출판사들이 그곳에 모여있다고 했다. 출판사뿐 아니라, 제본사, 디자인 회사, 인쇄소등 출판관련 사업체가 모여있어서 파주출판 단지라고 불린다고 한다. 한국에 계속 살았다면, 나도 이곳 한곳에 자리잡고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제는 너무 어렵게 생각되는 직업이다. 책만드는 일에는 교정보는일, 디자인하기, 작가 만나기등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런 것들에 대한 꿈이 한동안 있기도 했는데, 더이상 꿈꾸지 않는다. 세상은 빛의 속도로 달려가고, 나의 걸음은 갈수록 느려지니 감당할 수가 없다.
그러다가 이곳에서 임진각이 가깝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곳까지 가보기로 했다.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에서는 파주 포크송 페스티벌이라는 큰 음악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무료여서 솔깃했으나, 음악회를 목적으로 오지 않았기 때문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야외에서 열리고 있기에 그 주변을 걷다보니, 귀에 익은 아나운서 임백천씨의 진행소리가 들린다. 가족과 함께한 관람객은 뒤쪽 빈 공간에 작은 텐트를 치기도 했다.
평화누리공원은 드넓은 잔디밭에 한가운데 무대가 있어서 야외공연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뒤의 객석은 의자가 필요없이 개인들이 매트나 파라솔, 야외의자를 가지고 나와 있고,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부모는 작은 캠핑용 텐트까지 치고 공연을 즐길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무대는 아래에 있고, 뒤쪽으로 갈수록 지대가 높아져서 가능했다.
파주 임진각은 비무장지대(DMZ)와 가까워, 자연스레 통일, 평화 이런 단어가 떠올랐다. 비무장지대를 둘러볼 수 있는 곤돌라가 운행 중이었지만, 시간이 늦어 우리는 포기했다.
돌아오는 길에 마을버스를 탔다. 대부분 차로 오지만, 우리처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는법, 버스는 많지않고, 사람들은 많아서 팬데빅 이후 그렇게 비좁은 공간에 끼어서 있기는 처음있는 일이었던 것 같다. 마을버스는 아담해서 키큰 사람은 거의 기둥처럼 천장에 머리가 맞닿아 있다. 그 모든 일이 즐거운 경험이었다.
캐나다로 돌아오기 이틀전, 큰애랑 나갔던 마지막 데이트는 선유도공원이었다. "섬"에 가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것에 대한 마음의 보상도 받을겸 가까운 섬을 찾았더니, 서울의 선유도 공원이 나왔다. 한강변에 있었고, 버스에서 내려 걸어들어갈수 있었다. 입구에 청년 두명이 서서 서울시 지원으로 파일럿 행사를 한다고 안내한다. 선유도 공원을 빼놓지 않고 둘러보게끔 노선을 짜놓았고, 선유도에 어울리는 "요가"를 마지막 코스에 넣어놓았다. 가는 길에 카페나루란 커피숍에서는 공짜 음료수도 준다고 했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시는데 참여안할 이유가 있겠는가? 관심없어 하는 남편과 딸을 세워놓고, 세사람 이름을 올린다. 그 행사를 기획했을 사람과, 그 일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 요가선생등 많은 사람들이 관여되어 있을테니, 그 프로그램이 채택되는데 힘을 보태본다. 선유도공원은 예전에 정수처리장이었는데, 공원으로 재개장되었다고 한다. 정수처리 시설을 그대로 재사용한 것이 눈에 띄였다. 이곳엔 녹색기둥의 정원, 수생식물원, 시간의 정원등이 있었다. 단풍거리도 좋았고, 한강이 바라보이는 선유정에서 쉬어갈 수도 있었다. 데이트하기에 딱 좋은 곳이 아닐까싶었다. 요가는 큰 정자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집안의 대표로 요가에 참여한다. 선유도란 뜻이 신선이 놀던 곳이라니, 유유자적하자는 뜻으로 요가를 넣었다 싶다.
사실 선유도는 군산에 있는 유명한 섬이다. 군산까지 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날씨좋은날, 이곳에 와서 피크닉을 하면 좋을 것 같았다.
큰딸은 우리를 여의도 IFC( international Finance Centre) 빌딩으로 안내했다. 그동안 용산, 강남 빌딩만으로도 압도당했는데, 이곳은 그 이상이었다. 지하철내에서 볼수 있는 그냥 서있어도 움직이는 "무빙 워크"가 건물안에 설치되어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건물에 들어왔다가는 길을 잃기 십상이겠다.
우리가 그곳에 간 까닭은 컨베어벨트로 제공되는 "샤부샤부" 음식점이 있어서다(제일제면소). 그날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해산물, 고기, 야채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그런 곳이었고, 개인용 샤부샤부 냄비여서 각자의 취향에 맞게 배부른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큰딸은 "돈"을 많이 쓰지 않는편인데, 우리의 방문중에는 몇번이나 식사를 대접해주고, 식품점에 갈때마다 돈을 지불하려고 해서, 우리를 놀라게 했다. 자식 키운 보람(?)을 만끽했다.
큰딸은 이번에 우리가 2달 있었던 것을 비롯, 여름에는 동생이 2주 있었고, 우리가 간 다음에 캐나다 친구가 3주 놀러오기로 되어있었다. 게스트에 대한 배려가 대단해서, 모두에게 자신의 보금자리를 아낌없이 공유했다. 우리가 있는 동안에만도 이불과 베개닛 빨래는 두번이나 해줬던가? 괜찮다고 해도, 빨래방에 가서 깨끗이 빨아다 다시 씌워놓았었다. 키패드만 알면 들고날수 있으니, 주인이 없는 집을 내집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마지막날 저녁에는 언니 부부까지 초대해서 집밥을 나눴다. 큰딸은 한국 마니아가 되어서, 이곳에서 정착하려고 그러는지 한국사랑이 엷어지지 않는다.
큰애가 나에 대한 가장 큰 우려는 다른 사람들과 너무 쉽게 마음을 허문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선유도공원에서 프로그램 참석차 우리의 이름과 딸의 전화번호를 준 것도 그런 차원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임진각에서는 설문조사에 응했는데, 그들을 곧바로 믿고 개인정보를 준 것에 대해서 걱정했다. 나는 한국에서 방어태세를 갖긴 힘들었다. 모두 내 형제 자매 같았으니. 집문앞에 며칠간 택배상자가 와있어도 없어지지 않는 곳이 한국이지 않든가? 사람들의 정직성의 원인은 곳곳에 깔린 CCTV라는 말도 있지만, 어쨋든 내 나라에서 그런 내 믿음이 한번도 배반당하지 않아서 감사한 마음이다. 그런 면에서 조금 염려를 들었던 점을 뺀다면, 그 아이의 게스트를 향한 돌봄점수는 거의 만점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