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다

화담숲, 아산외암민속 마을에서

by mindy

엄마는 2명의 언니와 1명의 여동생, 1명의 남동생을 두셨다. 엄마의 형제자매중에 막내이모(엄마의 막내동생)만 남고 모두 떠나셨다. 이번 한국방문에서 막내이모를 만나고 온 것은, 엄마를 다시 보는 것과 같은 기쁨이었다.

막내이모의 "봉투"는 유명하다. 이모집을 방문하는 조카들은 모두 "봉투"를 하사받는다. 나도 "사랑하는 이질녀에게"라고 쓴 "봉투"를 받았다.


이모는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조카들을 그렇게 사랑했다. 이모집에만 가면, 아랫목 따뜻한 자리는 우리 차지였다. "공주"처럼 모셔놓고, 가마솥 밥하는 중에 쪄낸 계란찜을 상에 올려주셨다. 계란은 그당시 최상급 요리였다. 아마도 돈이 될수 있었던 계란을 이질녀들에게 아낌없이 내어주었을 것이다.


엄마가 돌아가실때 이모의 건강이 안좋아, 바로 전하지 못했었다 들었다. 나중에 전해듣고는 언니가 떠나는 소식도 제때 듣지못했다고, 슬퍼하셨단 소식을 들었다. 하루 시간내서 이모집에서 함께 뒹굴며 보냈던 시간은 내게 큰 기쁨이 된다. 햇빛이 환히 들어오는 이모방에는 항상 옆에 놓고 보는 성경책이 있었다.


이모의 큰딸 샛별언니와 형부가 한국 방문중인 우리 부부에게 일단 인천으로 오라고 했다. 언니는 "화담숲"으로 간다고 했다. 언니 집 근처 잠시 둘러보는 것으로 알았는데, 그렇게 먼곳,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정을 짜놓은 것을 알지못했다.


화담숲은 경기도 광주에 있었다. 꼬불꼬불 골목길을 돌때는 제대로 가는 것인지, 아무도 가본 사람이 없기에 설왕설래하면서 갔다. 화담숲은 산 하나를 통째로 손을 보아, 사람들이 즐길수 있는 공원으로 조성해놓았다. 엘지 상록재단에서 공익사업으로 조성한 생태공원이라 한다. 노약자등을 위해 모노레일도 탈 수 있게 해놓았다. 희귀종 나무들과 꽃들, 곳곳에 쉼터와 숲에서 먼산을 바라보면서 걷는 아름다운 산책로였다. 모노레일을 타지않았기에 찬찬히 보고, 음미할 수 있었다. "화담"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단다. 사촌언니 형부와의 동행이 그러했다.



엘지의 기업정신 같은 것은 잘 모르지만, 하나의 산이 가다듬어져서 공원으로 만들어져서 사람들에게 공개된 것은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싶었다. 이 공원은 예약하지 못하면 방문할 수 없다하니, 우리가 귀한 곳을 다녀왔음은 확실하다.


또하나 소나무에 꽂혀있었는데, 이곳에 소나무정원이 있었다. 기기묘묘한 소나무들이 각자의 위용을 뽐내고 있다. 소나무는 특이한 것이 모양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꺽이어 자라는 것도 있고. 비슷해도 각자 개성이 다른 사람들을 보는 느낌이다. 크고 작고, 휘어지고 뻗은 나무들이 주는 느낌이 모두 다르다. 어른이 팔을 둘러 안았을때의 나무의 둥치가 35년살쯤 된 소나무라 한다.




그런 다음 이천쌀밥을 먹어보자며, 멋진 한정식당으로 안내했다. 광주에서는 이름이 꽤 알려진 "거궁" 레스토랑이었다. 일일이 인터넷 검색해보고, 유명하다는 식당으로 안내해준 두분께 뭐라 할말이 없었다. 식당에서는 식후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공짜로 주었다. 앙징맞은 종이컵에 주는 자판기 커피, 요것도 좋았지만, 전망좋은 파라솔 테이블에서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아이들이 없는 여행자끼리는 절반은 아이가 된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이모집으로 돌아가서 사촌동생, 사촌오빠등 이모네 온가족을 만났다. 이모 요양돌봄이로 일하는 친언니까지 해서, 한바탕 북새통이 벌어졌다. 사촌오빠와는 거의 40여년만이 아니었을지. 남편을 처음보는 처가댁 식구들도 끼어있어서, 남편은 "귀한 사위" 대접을 받았다. 좀 늦은감이 있지만 뭐 어쩌겠는가? 사촌동생의 립서비스 "정말 잘생기셨다"는 말에 남편의 입이 귀에 걸렸었다.


다른 사람을 사랑으로 환대하는, 특별한 유전자를 가진 막내이모네 가족들과의 상봉식을 갖고 친언니네로 잠을 청하러 갔는데, 늦은밤이었는데 언니가 저녁을 먹으라고 차려준다. 건너뛰어도 될 것을. 언니는 하룻밤만 자고 간다고 내내 잔소리했다. 며칠은 있다 가야 하지 않느냐면서. 다음을 기약해야했다.


다음날 천안에 가기로 했다. 천안은 둘째이모의 딸 숙이언니가 사는 곳이다. 처음엔 우리끼리 천안으로 가기로 했는데, 샛별언니와 형부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샛별언니는 "빨강머리 앤"이 연상되는 사람이다. 어떻게 그 나이에(?) 소녀의 감성으로 살수 있는지 모르겠다. 육체는 늙어도 정신은 늙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샛별언니와 형부일 것이다. 천안언니를 놀라게 해주려고 전화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동행이 생겼다.


천안 터줏대감인 숙이언니네를 가니, 또 한가지 행사가 기다리고 있다. 아산 외암민속마을을 함께 가보면 좋을 것 같다는 것이다. 숙이언니는 양장일을 평생 하고 있다. 옷 수선에서부터 옷 만들기까지. 언니의 일터는 언니의 놀이터도 될것이다. 언니는 학구적이기도 해서, 늦은 나이에 방송통신대학을 졸업하기도 했다. 둘째이모네 가족들 소식을 천안언니를 통해서 듣는데, 단체복을 입고 가족나들이를 하는 소식을 들으면, 참으로 부럽기도 하다. 사촌의 연세가 많으신 분은 80에 가까와가니, 이제 우리들의 세대가 가고있음을 서로의 근황들을 들으며 실감한다.



외암민속마을은 빌려주고도 하고, 살기도 한단다. 그래서 세트장의 느낌이 없고, 친근한 동네에 들어선 느낌이다. 40년 50년전 시골의 모습이 보존되어 있다. 천안언니가 저녁을 쐈고, 비싼 전을 시켰다. 한국 음식가격이 모두 싼것처럼 느껴졌는데, 전을 시키면 돈이 아까왔다. 밀가루 혹은 메밀가루에 야채등을 넣어 부친 것인데, 한장에 2만원도 넘으니, 전은 먹지않으려 용을 썼다. 그런데 천안언니는 괜찮다며, 전도 시켜주고, 각자가 원하는 것 시켜서 모두 맛있게 먹었다.


그날 저녁은 천안언니네서 잤다. 언니는 홈쇼핑에서 샀는데 물건이 좋다며, 쓰지않은 것 내게 가지라고 주었다. 남편은 다리 아프다는 형부, 침을 놔주고. 60대 이상의 세 부부가 모여서 어린애들처럼 잘 놀고, 잘 먹고, 잘 잤다는 이야기.


이왕 나온 김에 조금 더 들어가보자.


서산언니네 이야기를 안할 수 없다. 고향을 지키며 사는 언니는, 자신의 세계를 시와 산문으로 담아내고 있다. 언니는 문학적으로 내가 따라갈수 없는 저 먼길에 서있는데, "국문과" 나왔다는 그 한가지 이유로 나를 의논상대로 끼어준다. 언니의 부탁으로 현재 필사본 책을 준비하고 있는 언니에게 도움이 되고자 달려갔다.


1982년도 여름, 그때 언니의 가족은 제주도에서 식당을 하고 있었다. 나와 친구들은 회비 15,000원을 갖고 제주도 배낭여행을 하던 터라, 비오는날 텐트에서 자다가 텐트가 거의 무너져서 화장실에서 자고, 먹을 것이 없어서 제대로 끼니도 못때우는 "거렁벵이" 같았는데, 그때 서귀포 언니네를 찾아갔을 때 우리에게 잠자리와 먹을 것을 주던 그 언니를 친구들은 못잊어한다. 그중 한명이 언니를 보겠다며 내가 서산에 있는 동안 내려왔다. 교사로 은퇴한 그 친구와 나는 언니의 필사본을 함께 보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는 "언니의 필체가 정말 곱고, 매력적"이라며 감탄했다. 언니의 이번책은 활자화하지 않고 손으로 쓴 글을 엮어 책을 만들려고 준비중이다. 참고서처럼 조금 큰 판형으로 태어날 것 같다. 언니는 자신과 비슷한 교육과정을 거친, 말하자면 만학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60세 즈음에 검정고시부터 시작해서 대학을 졸업한 자신처럼 나이에 상관없이 하고싶을 때 누구든 시도해볼 수 있게 용기를 주고싶단다. 언니가 공부한것, 시인이 된것, 남편을 봉양한것 등 자신의 아픔을 포함한 가정사까지 그런 일련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언니의 친구가 되어준 "글쓰기"에 대해서 언니만큼 하고싶은 말이 많은 사람이 있을까싶다.


친구까지 서산을 방문해서, 예전에 제주도 배낭이야기부터 해서 긴시간 이야기를 나누니, 언니는 다시 젊어진 듯이 보인다.


한국에 갈때, 그러니 손으로 꼽을 지경으로 방문하게 되는 운산의 사촌오빠네 이야기를 하고 정말 마치자. 오빠네가 농사를 짓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마늘, 고추, 고구마 때마다 들려오는 그런 싱싱한 이야기는 어디서 얻어들을 수 있단 말인가. 이번 방문에 오빠의 집에 사촌들이 많이 모였다. 고구마캐기 농사체험을 하고싶었지만, 마침 비가 와서 그건 미루고, 함께 식사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코흘리개 때 보고, 한국갈 때나 한번씩 보는, 있으나없으나 한 사촌 시누이인 내게 어떻게 그렇게 다정하게 해줄 수 있는지. 올케언니의 뜨거운 포옹은 지금까지 내 가슴을 덮힌다. 그때 따로 담아놨다가 준 고춧가루, 그 사랑은 어떻게 갚을지 모르겠다. 사촌오빠는 이제는 은퇴할 때가 넘어갔는데, 새로운 트랙터를 다시 샀다며, 그 빚을 갚으려면 또 한참은 농사를 지어야한다며 털털 웃는다. 고향을 지키는 사람들, 이렇게 떠돌이가 되고나니 그분들에 대한 고마움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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