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남자의 친구들

꼽사리로 얻은 행운

by mindy

맛집을 찾아다닌 적은 한번도 없는 소시민이자, 해외동포인데 이번 한국방문에서 갔던 모든 집들이 맛집이 아니었나 싶다. 만나는 사람들의 정성과 사랑이 들어가서 고른 음식점들이므로 아마도 맛집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어떤 곳에 갔을 때 우리를 데려간 친구가 "예전만 못하네" 하면서 아쉬워하기도 했지만, 정말 풍성했고 감동을 주는 음식들이었다. 그리고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맛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대하는 음식들도 많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의 이름은 "대구뽈찜"이었다. 수원 어느 곳이었는데, 친구부부가 우리를 데려갔다. 그남자(남편)의 절친이었고, 부인끼리는 처음 보는 사이였다. 얼마나 뜨겁게 환영해 주었는지, 꿈인가 생시인가 했다. 우리가 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식당에 가야할까 한참을 고민해서 결정했다는 부인의 이야기를 들을때, "꼽사리"로 얻어먹게 된 행운에 감사했다.


식사를 마치고 그분들의 삶의 터전에 갔다. 아담한 오피스텔 건물 한동을 얼마전 구입했다고 했다. 오피스텔 단지안에 한동이었는데, 맨위층에 보금자리가 있었다. 넓은 옥상에서는 바베큐를 할수 있게 시설이 준비되어 있었고, 앞뒤로 틔인 전망이 너무 시원했다.


이분들과는 그뒤로도 한번 더 만났다. 함께 수원화성의 성곽을 걸었다. 수원 화성은 조선 정조대왕이 남긴 유산인데 여러 재난으로 부서지고 무너진 것을 복원하여, 총 길이가 5.7km에 이르는 대규모 둘레길이 있고, 곳곳에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정자가 있었다. 그 정자에는 신을 벗고 올라가 등을 기대고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무릎이 아파 바닥에 앉기 힘들다는 친구의 부인은 난간에 걸쳐 앉고, 우리는 그 주위에 앉아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했다. 어쩌면 우리가 자주 못만날 것이기 때문에, 그동안 힘들었던 일, 지금도 겪고 있는 일등을 털어놓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수원화성과 화성행궁의 수려한 자태


수원화성 안에는 화성행궁이란 별도의 궁이 있었다. 행궁은 왕이 밖에서 일을 볼때 머물수 있는 건축물을 말한다고 한다. 왕이 한번 행차하려면, 수많은 인원이 함께 움직이므로 그 대단한 행차 규모를 그린 벽화를 이곳에서도 볼수 있었다. 성곽을 전부 돌진 않았지만, 남편의 친구가 자주 자전거타고 돌아본다는 작은 연못이 있는 그 뜰은 정말 아름다웠다. 수원화성을 돌고, 예전에 장사하던 곳이라며 먹자골목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그곳서 맥주 한잔과 함께 양념떡치킨과 추억의 먹거리 오징어눈깔을 만날 수 있었다. 외로운 서울 유학생활중 학교를 오고갈때 나의 길벗이 되어주었던 그 오징어눈깔(그때 이렇게 불렀다), 정말 반가웠다.


대구뽈찜, 양념떡 치킨과 오징어눈깔


그 남자의 친구들이 보여준 친절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 또다른 친구와는 꼼지락거리는 장어를 구워주는 장어집을 가기도 했다. 그분도 아내와 함께 나왔다. 캐나다에서 온 친구라며, 일하시는 분께 소개하니 "씩씩하고 능수능란한" 아주머니가 얼마나 멋지게 장어를 뒤집으며, 가위질을 하는지 한편의 쇼를 보는 것 같다. 한국에서 볼수 없었던 팁을 주는 모습도 포착했다. 우리가 떠날때까지 귀빈대우를 받으며, 한국문화의 이면을 보기도 했다. 그분들과는 호수가 바라보이는 아름다운 카페에 앉아 늦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한번 더 보고싶은 분이었는데, 다른 친구들과의 모임에 초대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할 뿐이다. 친구부인은 참기름을 고이 싸서 들고 오셨다. 참으로 갚을 수 없는 빚이 늘어간 간다.


군산친구는 정말 만나고 싶었다. 대학교 친구라는데,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고 말했었다. 1박2일 일정을 군산과 전주로 하기로 했다. 군산까지 가는데 익산까지 KTX를 타고 오라는 조언이다. 군산에서 차로 데리러 나온다고 했다. 그렇게 두사람을 만났다. 만나기전부터 기대했는데, 정말 기대이상이었다. 군산친구의 아내는 내 동생과 이름이 같았다. 그리고 하는 일도 비슷했다. 상담심리사로 일하고 있었고, 독실한 신자였다. 그래서 그녀에게는 "군산동생"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군산 동생과 나는 카페에 들러서 두사람이 회포를 푸는 동안 둘이 이야기를 나눴다. 인생사는 신앙으로 회귀하기 위한 험난한 과정이었다. 그녀는 나의 기도제목을 듣고는 곧바로 기도해 준다고 했다. 큰애가 영어교사로 일하고 있지만, 이직을 생각 중이라고 하니, 맞는 일이 있을 것이라면서 외국동포를 위한 맞춤한 직업알선 웹사이트를 알려주기도 했다.


두사람과는 김수미 생가를 들렀다. 군산에서는 김수미가 유명했다. 나중에 고향에 내려와 살 생각을 하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생가를 잘 꾸며서 사람들에게 개방하고 있었다. 장독대가 있고, 툇마루가 있는 시골집이었다.


군산 친구 부부가 우리를 데려갔던 곳은 상상 이상의 식당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군산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이 아니었을까? 별실로 만들어져서 조용히 이야기하기에 제격이었다. 상견례를 그런 데서 하면 좋을것같다. 그날 먹었던 음식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몇차례에 걸쳐서, 여러 종류의 음식과 회가 나왔다.


군산친구와 함께 했던 시간들. 입에서 완전 녹는 신선한 회와 몇번에 걸쳐 음식이 나와 놀라움을 줬다. 왼쪽 맨 아래 사진은 김수미 생가, 오른쪽은 군산 항구.


이번 한국방문에서는 나보다는 그남자가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캐나다에는 우리(처가)집 가족의 수가 많고, 그에 따라 일도 많아서, 나는 일만 생기면 출타를 하곤 했다. 엄마 언니를 위한 출타라면 나보다도 더 나를 채근했던 게 그남자였다. 그렇게 그를 홀로 남겨놓고 나는 "명분"을 가지고 내려간다. 그것이 나의 일상탈출이 되어서 나는 가게 경영을 정말 쉽다고 생각해왔다. 모든 것을 그가 해주고, 나는 시간날 때마다 가게를 보면 되니 말이다.


그래서 이번 한국방문에서는 그가 주목받기룰, 그가 기뻐하는 일이 많기를 기도했다. 그래서일까. 그를 환대해주고 덤으로 내게까지 정성을 보이는 친구들이 눈물나게 고마웠다.


그남자는 마침내 피어나는 것 같았다. 만나자고 하는 친구들의 전화에 일정을 만드느라 고심하는 그를 보는 게 즐거웠다. 과장되게 말하면 캐나다에서는 의무감으로 사는 것같았다면, 한국에서는 안에서 우러나오는 동력으로 그가 움직이고 있었다.


오래전 토론토 엄마의 집에서 함께 살때, 그 남자의 후배가 영어연수로 캐나다에 왔던 적이 있었다. 그는 신문에 난 사진에서 그녀를 알아보고 수소문하여 함께 토론토에서 만났었다. 그때 함께 연수왔던 전국에서 모인 30여명의 선생들을 집에 초청했던 적이 있었다. 캐나다 교민이 사는 집에, 한국음식을 주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었다. 엄마의 도움으로 마침 날씨가 좋을 때여서 뒷마당에서 잔치를 벌였던 적이 있었다. 그때 만났던 김선생이 전주에 오라고 했다.


“더 머뭄”이란 한옥민박으로 군산친구가 데려다줬다. 김선생이 잡아놓은 그 한옥민박집은 둘째가 한국에 와서 제 캐나다 친구와 머물렀던 곳이었다. 그런 인연도 신기했다. 바닥에 이불깔고 잘 잤고 아침에 떡과 과일이 있는 아침상을 받았다. 전주 한옥마을은 한동네를 관광지화해서 볼것이 많았다. 여러대를 이어 살고 있는 대가집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캐리커처 그림도 만들고 우리끼리 다른 관광객들처럼 한옥마을을 산책했다. 나중에 김선생과 남편의 다른 여자후배를 만나 전주의 한식당에서 함께 식사했다. 김선생은 친정부치 챙기듯 내게 선물을 한보따리 갖다줬다. 새로산 청바지 두벌까지.


내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않는다. 아무리 우리가 김선생을 대접했다지만 그건 이미 오래된 일인데. 김선생은 교장승진까지 끝내고 교직을 나올 생각이라고 했다. 수수한 아주머니같은 그분이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조그만 것도 잊지않고, 이렇게 되갚아주는 걸 보면, 그의 인간성을 짐작해볼수 있기도 하다. 아참 김선생은 한국에 돌아간후 멸치등 건어물이 가득든 상자를 선물로 보내왔던 적도 있었다. 그렇게 예전 빚은 넘치도록 갚았건만.. 나중에 전주역까지 데려다주러, 남편이 차를 끌고 나타나서 함께 인사하기도 했다. 은퇴후 캐나다에 꼭 놀러오기로 김선생과 그 남편과 약속했다.


강원도 여행을 계획해준 친구부부도 있었다. 눈코뜰새없이 바쁘게 사는 분인지라, 1박2일 우리를 데리고 다니는 계획을 세웠다는 게 우선 고마웠다. 그분은 남편의 학사장교 동기로 10여년전에 우리집에 왔었다 . 그때 3월쯤이었는데 캐나다에 눈폭풍이 와서 남편이 어렵게 공항에 데리고 갔는데, 내려갈때 좌우로 엎어진 차들을 보면서 식겁했던 이야기, 비행기가 뜨지 않아서 공항에서 수시간을 기다렸던 기억등이 자주 화제에 올랐다. 나는 남편의 친구이기에 우리집을 방문했을 때 당연히 할일을 했었는데, 그것 또한 미화되어 부인에게 전해졌었다.


우리는 가는 길에 영월에서 김삿갓처럼 사는 다른 친구에게도 들렀다. 그분의 독특한 이력과 삶의 방식에 놀라고, 영월 숲속, 동화책에 나올법한 아담한 전원주택의 풍광에 또한번 놀랐다. 김삿갓씨는 우리를 데리고 김삿갓 기념관에 데리고 갔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그런곳이 있는지도 몰랐으리라. 그런 다음에 근처에 있는 민화박물관까지 돌아보게 했다. 산자락에 있는 음식점에서 토종백숙을 먹고, 하루 자고 가라는 걸 사양하고 더 깊숙이 강원도 지역을 탐방했다.


맹방에는 송정콘도라는 곳이 있어서 그곳에서 하루 묵기로 했다. 그곳의 사장이 두사람의 후배라고 했다. 회냐, 샤부샤부냐 하는 질문에 샤부샤부라고 대답을 보내놨었는데, 영월 방문으로 우리가 조금 늦어졌는데, 좋은 식당에서 부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배고 고팠다면, 그날 온갖 것을 맛보았을 텐데, 토종닭이 소화가 되지 않은참에 참으로 아까운 저녁식사였다. 함께 갔던 친구는 미디어 아트 일을 하는지라, 그분의 회사에서 제작한 광고를 강릉 바닷가에서 같이 봤다. 새로운 시대의 광고였다. 아침 일찍 만나 솔숲길도 같이 걸었다.


아름다운 아파트로 최근에 이사했는데, 내부와 가구를 흰색톤으로 전부 리모델링해서, 밤에 자다가도 이게 우리집인가 궁금해서 방문을 열어본다는 쾌활한 친구의 부인은 내게 팔짱을 끼고 친언니대하듯 해줬다. 새벽에 청국장과 순두부로 유명하다는 전현희 청국장 순두부를 찾아가서 먹었다. 한국에서는 밥을 먹을 때 흰 셔츠에 튀지말라고 아이들 턱받이 같은 걸 구비해 놓는데, 이것이 거의 앞치마 수준이다. 그저 목에 걸게 되어있고, 다 먹고 나면 구석에 있는 옷걸이에 걸어놓는다. 이걸 하고 있으면 어른도 아이같아 보이고, 귀여웠다. 아마도 한국이 아니면 볼수 없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함께 다녔던, 낙산사, 영월, 김삿갓 기념관등을 함께 담았다. 왼쪽 아래가 친구회사에서 만들어놓은 미디어 아트, 강릉 바닷가에 있었다.


강원도에서 유명하다는 곳은 다 간것 같다. 낙산사에 가서 한바퀴 둘러봤고, 설악산은 너무 많은 차들로 밀리고 있어서 과연 그곳에서 주차할 공간을 찾을까 염려했었는데 그곳에 주차하고 신흥사까지 걸어갔다. 남편의 다리가 그때까지 그다지 좋지않아, 긴 거리를 걷는 것은 포기했다.


미디어일을 하는 그분은 간김에 도시미화 담당자와 연락이 되어, 상담까지 하기도 했다. 전국을 돌아다니는 것이 다반사인 그에게 이런 여행은 쉼보다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을텐데, 우리에게 좋은 것을 보여주고, 맛있는 것을 먹여주려고 애썼다. 속초시장에서 먹었던 물회가 그리 맛있었다. 정말 안먹어본 것 없는 풍성한 여행이었다.


그분의 부인은 우리가 떠나기 전에 한번 더 보고싶어했고,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아파트를 보여주고 싶어했는데, 우리가 정중히 사양했다. 시간도 부족했고, 우리를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썼기 때문에 그리 해야만 할 것 같았다.


남편의 여자후배 한분은 용산에 살아서 몇번인가 만났다. 도회적인 그녀는 "노들섬" 예찬론자이다. 자주 걸어서도 오고, 자전거로도 온다고 한다. 한강 아래에 붙어있는 노들섬에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자전거길도 있고, 트레일도 있고, 의자와 테이블이 있는 공원이기도 한 이곳은 서울시민들의 놀이터로 보였다. 그녀와 앉아서 짙어지는 한강의 노을을 함께 본다. 그녀와의 첫 만남에서 나는 둘이 이야기를 나누라고 자리를 비켜주는 센스를 발휘하기도 했는데, 그것을 눈치챘을지. 그녀는 고향의 선후배와도 소통을 하고 있어서 나중에 그남자는 고향모임에 참여하기도 했다.


후배의 딸과 우리 딸을 만나게 해서, 친구를 만들어주자는 우리의 원대한 계획 아래 노들섬 식당 모임도 가졌다. 하나 그날의 단순 행사로 끝나고 말았지만 어쩌겠는가? 아이들은 부모가 만들어준 멍석에 한번 자리해줌으로 효도를 다한 것이니.


노들섬에서 드라마보는 연인들(왼쪽)과 짙어지는 한강의 노을.


우리는 따로 혹은 같이 이렇게 한국나들이를 했다. "만나준다면 나갈거야" 이렇게 노래를 불러서인지, 꽤 많이 불려나가는 행운이 있었다.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준 그남자의 친구들과 부인들에게 나는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낀다. 한번 만남으로 끝나지 않을 것같은, 한국에 자주 와야 할 이유를 자꾸 쌓아놓는 나를 보게 되었다. 나와 인연이 있는 이들도 있었기에 그들의 환대를 설명할수 있다고 쳐도,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친구들의 이런 대접은 나그네를 잘 대접하는 한국의 고유전통, 아름다운 마음씨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언제나 받은 것은 밖으로 나가야 하는법, 고이지 않고 흘려보내야 할터인데, 다시 "정"이 없는 캐네디언이 되어가니, 적막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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