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친구들
지금은 조용히 살고있지만, 친구로 생각되어지는 이들을 마음속에 많이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 여행후 남은 가장 큰 선물이다. "친구"라고 뭉뚱그려 말하지만, 서로의 안부가 궁금하고, 또 만나고 싶은 모든 사람들을 지칭한다고 보면 되겠다.
모교 201 강의실로 기억한다. 빈 강의실에 10여명의 여학생들이 모여서 모임 이름을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하는데 결론이 나지 않았다. "푸른 장미"가 대세였는데, 나는 그 이름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데, 마땅한 대안도 생각나지 않았다. 어문계 여학생 10여명의 모임 이름은 나중에 "멍든 장미"라고 놀림을 받던 그 이름으로 정착하게 된다. 그 아이들중 한명이 서울대 근처에서 중국집을 경영하는데 그곳에 꼭 가고싶었다. 그래서 나혼자 친구 식당에 찾아갔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받았다. 친구들이 그 식당에서 가끔씩 모임을 갖는다는 것을 단체방에서 들어 알고 있었다. 사는 데 바빠 시간을 내지 못했던 친구들이 모임시간을 정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다가 그날 마음들을 모아 그 식당에서 만나자 약속을 했다.
첫번째 만남에 먼곳 광주에 있는 친구도 올라왔다. 1박2일을 꿈꿨으나, 모두의 시간들을 맞추기 쉽지 않았다. 일본에 사는 친구가 한국에 들어온다는 소식이 와서 그 친구가 온후 한번 더 회동하기로 했다. 일본, 캐나다, 영국 이렇게 해외와 제주도에도 한 친구가 있으니 우리 모두가 만나는 일이 이 생애에 이뤄질 수 있을까싶다.
두번째 만남은 모교에서 만나 한바퀴 돌고, 근처 식당으로 가기로 했다. 이날은 광주에서 헐레벌떡 뛰어온 친구가 쐈다. 지난 여름에 우리집을 딸과 방문했던 친구가 민디에게 대접을 잘받아서 기쁜 마음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 그 친구는 몇달 후면 헐릴 친정아버지가 지내시던 집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오랫동안 비어있던 집이어서 친구들이 하루 머물수 있게 청소를 했다는 것이다. 이제 이집은 부서지고 다시 지어질 것이어서 우리들이 마지막 손님이 되는 참이다. 태릉 근처에 있었다. 태릉하면, 또 내 추억이 깃든 곳이 아니겠는가? 고등학교를 묵동에서 청파동으로 통학했었다. 태릉은 사는곳과 가까운 곳이어서 자주 가봤다. 일본에서 온 친구까지 10여명이 모여서 태릉집으로 갔다. 시끌벅적 요란을 떨다가 나머지는 모두 가고, 결국 나와 광주친구와 또한명의 친구만 남았다. 10월의 쌀쌀한 날, 전기장판에 의지하여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광주친구는 그 다음날 결혼식에 간다 했고, 나는 강릉가는 버스를 타야했고 해서 모두 새벽에 길을 나섰다. 60에 들어서는 아줌마들이 가장 바쁘게 산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광주친구는 인생2막을 귀촌하여 농사짓고 사는 꿈을 꾸고 있었다. 도시농부 수업도 듣고, 자격증도 따고, 여러모로 애쓰는 중이다. 그녀의 남편은 식당의 꿈을 꾸고 있다 하니, 어느쪽으로 귀결될지 모르겠다. 우리들의 조언은 귀촌해서 식당도 하고, 농사도 짓고 그렇게 효부를 보라고 했다. 그렇게 살고 있는 "농부가"를 하고 있는 친구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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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과 친구들과 한번 더 만났다. 이번엔 문화행사로 연극관람을 하기로 했다. 세종문화회관앞에서 만나는데, 주선하는 친구가 자세히 설명해줬는데도 건물 자체가 거대하여 어느쪽에 있는지 한참 헤매야 했다. 우리가 함께 봤던 연극 "일의 기쁨과 슬픔"은 현대 한국인들을 잘 그린 작품이었다. 예전에 한번 봤던 내용인데, 그게 소설로 봤었는지 아니면 텔레비전 단막극으로 나와서 봤는지 모르겠다. 연극관람을 마치고 친구들과 호프집으로 갔다. 그 호프집은 30년전에도 그렇게 있었을 것 같은, 옆자리 사람들 때문에 고래고래 소리질러야 되는 곳이었다. 회사 회식 자리였는지, 이미 취한 여직원이 일장 연설을 하는 소리를 고스란히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가장 많이 여러번에 걸쳐 만난 친구들은 "같은 학과" 친구들이었다. 함께 청평사도 가고, 이렇게 연극도 보고, 식당에도 가고. 친구들이 내눈에는 아직도 20대로 보인다. 그때 우리들 사이에는 특별한 바람이 불었던 것 같다. 늦여름의 훈기와 가을의 서늘함이 우리 사이에 스며들어 한번이라도 더 보려고 애를 썼다. 10년, 20년전에는 모두가 각자가 처한 현실을 살아내느라 다른 곳을 쳐다볼 겨를이 없다가 이제 조금씩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하고 나를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할까. 친구들 모두 고맙다.
남편과 모교를 방문했었다. 서울에 있기에 명문대학 출신이라고 추켜주고 자신은 지방대 출신이라고 스스로 디스하는 남편은 나를 곳곳에 세워놓고 사진을 찍어줬다. 학생회관에 가서 식당밥을 먹었다. 예전에 엄청 커보였는데, 그때만큼 광활한 느낌은 없다. 어쨋든 저렴하게 한끼를 해결해본다.
나의 것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이 그다지 큰 편이 아니라서, 모교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해보진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에 친구들을 만나면서 내가 그 학교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이 친구들도 내게 없을 것이고, 그렇게 생각하니 엄청 소중하게 생각된다. 친구들을 만나게 된, 엄연하고 당연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삶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알게되니 말이다.
옛 인연에서 시작했으나 새로운 관계가 싹텄음을 느꼈다. 한 친구와 하루 데이트를 한후 그런 마음의 싹이 자라게 되었다고도 볼수 있다. 그녀가 모처럼 쉬는 날이라고 해서 만나기로 계획을 짰다. 요즘 주목을 받는 "헤어질 결심"이란 영화를 멋진 영화관에서 관람했는데, 생각만큼 감동스럽지 않았다. 나의 평에 친구도 동의해줬다. 나중에 다른 친구와 그 영화에 대해서 대화했는데, 그는 꽤 괜찮은 영화라고 말해서 놀랐다. 아마도 머리가 단순해져서, 깊이 들어가는 것은 "거부"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면 좋은 영화가 아니다, 이렇게 항변하면서. 아니면 영화에 몰두하지 못했던 그날의 컨디션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그날 안타깝게도 머리가 자꾸 아파왔었다. 남대문에서 값싸게 구입한 후들후들한 통넓은 바지를 입고 나갔었는데, 허리가 너무 조이는 느낌을 받았다. 바지 때문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유를 알수 없는 두통이 시작되어 신경이 쓰였던 기억이 난다. 늦게까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점심쯤 만나 저녁까지 함께 했으니, 그다지 아쉬울 건 없는데도, 내 컨디션 때문에 일찍 헤어졌던게 지금까지 아쉽다.
그 친구의 제안으로 남편들도 함께 1박2일 여행계획을 세웠다. 금강산에 버금가는 절경이라 그런 이름을 가졌다며 소금강산을 가자고 했다.
친구는 강릉에 작은 아파트를 갖고 있었다. 그곳에서 친구가 준비한 샤부샤부 음식을 먹은후 함께 소금강산으로 향했다. 약수터에서 물을 한바가지 들이키고 더 들어가니, 아늑한 곳에 자리잡은 야영장이 보였다. 가을이 저벅거리며 들어섰음을 본다. 친구가 예쁜 낙엽을 하나하나 따서 손에 드니, 가을이 소복하게 쌓인다. 계곡이 있고, 산으로 둘러싸인 그런 곳에서 캠핑을 며칠 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그날 저녁 우리가 함께 한다는 걸 안 경기도에 사는 친구로부터 좋은 식당에 이야기를 해놨다고 그곳에 가라는 연락을 받았다. 친구의 아들을 내가 토론토에서 만난 적이 있다. 친구가 아들을 좀 보살펴달라고 부탁해왔다. 오랫동안 토론토에서 살던 아들이 귀국하려고 집을 다 정리했는데 비행기표는 며칠후라서 묵을 곳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아들과 연락했는데, 나의 도움없이도 친구집에서 있다 가면 된다고 했는데, 내가 굳이 내려가서 만났다. 그애와 이야기를 나누고, 약간의 도움이 되었다면 되었는데 그걸 친구가 갚겠다고 나섰다. 그렇게 속초시에서 유명한 시장횟집에서 거나한 식사를 마쳤다.
집에 돌아오니, 친구 아파트 방바닥이 펄펄 끓었다. 온돌작동을 잘못해놔서 그렇다고 친구는 방방 떴는데, 나는 그게 은근히 좋았다. 살아온 날을 이야기하며, 서로의 세계에 들어가는 거대한 서막이 울리는 느낌을 받는다. 그 삶이 굴곡질수록 더욱 경건해진다. 그때의 심정이 되어서 가슴이 아프고, 그때의 영광을 보게 되어 존경이 일어나고, 우리의 삶이 어떻게 흘러갈까 궁금해진다.
다음날 눈을 뜨니 날이 흐리다. 안개가 끼고 비도 조금씩 올 기세다. 이런 날, 온천을 가면 어떻겠느냐는 귀가 번쩍 틔이는 제안을 한다. 내가 "수영복 사야 되는 것 아니야?" 했더니, 친구가 그런 것 필요없다고 말해서 깜짝 놀랐다. 하하, 그렇게 온천으로 갔다. 게르마늄이 나오는 천연 온천장인데 그 이름이 필례온천이란다. 필례온천은 인제군에 속한 산속에 있었다. 설악산의 한자락이 아니었을까? 가는 길이 아름다왔다. 온천이 있는 곳은 아름답게 정원이 조성되어 있고, 카페도 옆에 있었다. 그리고 더욱 관심이 갔던 건, 그곳에 캠핑장이 있었다. 주말을 보내고 정리하는 캠퍼들을 볼 수 있었다. 온천을 하고싶었던 나의 바램이 이렇게 또 이뤄지고 있었다. 친구는 게르마늄 물을 혀끝으로 음미해봤다고 했다. 맛이 "쏴" 하다며, 게르마늄이 맞다고 속삭인다. 남녀탕이 따로 있고, 노천탕도 있었다. 나와 친구는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또 특별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에서 또한군데를 들른다. 산속 멋진 곳에 전원주택을 짓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지인의 집에 꼽싸리로 끼게 된다. 작은 학교 운동장만한 마당 한편에 수영장이 있는 곳이었다. 주문형 낚시 릴을 만드는 일을 하는 주인장이 있었고, 소장하고 있는 오토바이가 몇대가 되는 꽤 특별한 삶을 사는 분이었다. 집은 인제에 있고, 별장으로 쓰는 이곳에서 일도 하고, 친구들과 시간을 보낸다고 하신다. 친구 남편의 인간관계가 범상치 않아보인다.
친구와의 피날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관광객이 많이 들른다는 식당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미리 주인에게 이야기해놨다고, 자신이 낚시해서 잡은 것들을 잘 키웠다가 오늘 준다고 하는데,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쨋든 그날 대접받은 음식은 거의 눈이 튀어나올 정도가 되었다. 그 비싸다는 대게를 다 먹지도 못할만큼 주고, 다른 회도 또 그만큼 나왔다. 버스시간이 임박하여, 그나마 다 먹지도 못하고 자리를 떠야했지만, 사진으로 봐도, 그날의 황홀했던 기억은 매번 새롭게 살아난다. 도대체 우리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수가 없다. 친구와 내가 믿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시간들을 허락해준 것이라고밖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친구,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