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라는 이름으로

찾아간 특별한 식당 이야기

by mindy

같은 과 같은 학번 단톡방에 가끔씩 사는 이야기를 올리는 친구가 있다. 과 성격이 그런지 "과묵"한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끊이지 않고 사진과 글을 올리는 그 친구의 삶이 궁금했다.


한국에 있는 동안 찾아가리라 막연히 생각하기도 했다. 꽤 먼 곳 원주에서도 한참 떨어진 곳에서 상경하여, 과 만남에 친구도 참석했다. 그리고 흔쾌히 식당에 오라고 했고 1박할 공간도 있다고 했다.


평일이 한가하다 하여 갈 사람을 모으니 몇 명을 빼고 시간을 내본다 하였다.


두대의 차에 나눠 타고 원주행을 하여 만난 그 친구의 공간은, 깊은 숲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때가 되어 식당을 찾는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숨은 보석이었다.


구불구불 돌아 식당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웬 청년(?)이 나와서 안내를 한다. 주차장 바로 위에도 한 채의 건물이 다소곳이 있었고, 위쪽에도 건물이 보였다.


이 청년은 "싸장니~~~~임" 하면서 목청껏 외쳤다. 친구들이 올 시간을 알고 있을 것 같은데 친구 모습은 보이지 않고, 묘한 남자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


"싸장님이 친구들이 왔는데 나와보지도 않고 왜 이러시나" 투덜거리면서 또 "싸장니~~~임" 외친다.


그 청년 말에 우선 커피숍에 가있으시라고 해서 들어간 곳은 아주 정갈하면서 고전적으로 생긴 카페였다. 같이 간 친구가 그곳에 있는 두 사람이 친구의 아들딸이라고 소개해준다. 두 사람은 친구를 닮은 아담한 체격,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친구를 보러 간다고 몇 명이 잠시 자리를 비우고 우리는 넋을 놓고 커피향과 공간이 주는 아늑함에 빠져들었다. 아빠가 친구들이 오면 맛있는 커피를 대접하라고 했다며, 아들은 커피를 내리는데 여념이 없다.


조금 후에 "직원"이라기엔 좀 건방져 보이는 그 청년과 주인장을 보러 갔던 이들이 돌아왔다. 지금도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얘가 준이야"


모두 고개를 들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던 그 청년을 바라본다. "뭐 준이라고?" 나도 한동안 멍해졌다. 그리고 그 친구를 기억해냈다. 수학여행 단체사진에서 삐딱하게 몸을 기울여 찍어서 기억에 남아있는 40년전의 그 친구인 것을.

준은 단톡방에서 한번도 입을 열지 않아서 어찌 지내는지, 어떤 단서도 없었는지라 더욱 놀랬다. 우리 과 친구들은 끼리끼리 그룹이 있어서 친한 사람들끼리만 어울렸기에 학교 다닐 때도 눈인사만 하던 사이가 많았다. 이번 원주행은 그래도 인사동 모임에서 서로 상봉했던 팀이었기에, 준을 만난 우리의 놀람은 컸다.


내가 "청년"이라고 얘기했거니와 "준"은 건장하고 훤칠하여 40대로 볼만했다. 우리는 "준"을 가장한 "미스터리 남자"일지도 모른다며, 퍼즐 맞추기를 하기도 했다.


"준"의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40년 만에 만났어도 괜찮을 수 있다는 걸 우리는 발견했고, 그만큼 모임이 특별해졌다.

아들이 내린 커피 6가지 종류, 이름과 성분을 외울 수 없으나 에티오피아,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등에서 직수입된 고급 커피를 대접받았다. 밤새 이야기하고 놀아야 했기에 음미하며 여러 종류 커피를 나눠마셨다.


식당에 준비가 되었다는 소식에 자리를 옮긴다. 산속에 조경을 하고 계단을 만들고 얼핏 보기에도 몇 군데에 설치된 야외 정자까지, 친구의 고단한 손길이 느껴졌다.


뒤쪽 테이블에 한 팀이 있고, 우리가 우르르 몰려가자, 친구는 만면에 웃음이다. 분위기가 비슷한 친구의 아내도 우리를 반겨준다.


원주 관찰사가 유람하면서 먹었음직한 음식들에서 착안을 하여 현대식으로 표현해 보았다고 했다. 음식이 나올 때마다 설명을 해줬는데 다 기억하지 못하겠다. 친구는 이 음식으로 요리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고 했다. ("농부가" 식당이름)


직접 만든 양갱과 차로 시작되는 음식은 끝이 없이 나왔다. 호박 꽃밥, 뽕잎밥과 소나무향이 가미된 수육까지. 가자미 요리, 밤 김치, 무엇 하나 소홀이 만들어진 음식이 없었다.


관찰사가 되어 원주의 한 시골에서 대접받은 폭이련가? 이제는 관찰사가 아니어도 이런 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솥밥에 나물비빔밥은 정말 조금밖에 먹을 수 없었다. 끝까지 정결하고 맞춤한 음식들이 나왔고 얇게 구워진 누룽지는 안주가 됐다.


친구는 교사, 학원강사, 학원 원장을 하다 죽을 만큼 피곤해져서 귀촌했다고 한다. 귀촌 후 농사를 짓다가 요리를 배운 것이 50대라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손님이 한 팀도 없는 날들을 지나,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지금도 인간다운 삶을 위해 일주일에 이틀 쉬고 예약제로만 운영하고 있다고.


아이들이 자신들의 꿈을 펼치겠다고 해서 카페를 다시 짓고, 딸은 빵을, 아들은 커피를 공부하면서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고 했다.


친구들과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아침에 일어나 집안팎을 둘러보았다. 농사터도 있고, 잡풀이 없는 너른 잔디밭에서는 야외 결혼식을 할만한 공간도 있었다. 작은 연꽃 연못과 개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여름에 이용할 것 같은 야외 데크 등 가족들의 손길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밤은 주체할 수 없이 떨어져아침에 한봉지 줍기도 했다. 아침에 본 식당 건물은 고급스럽거나 현대적인 그런 건물은 아니었다. 있는 공간을 최대한 갈고닦은 그런 곳, 식당 안에서 시낭송회도 하고, 출판기념회도 한다고 하는데 뒤쪽에 작은 무대가 있었다.


친구와 그리 친하지 않았다. 그는 국어학에 열심이었고, 나는 문학 쪽이어서, 내심 어학보다는 문학이 무겁지? 하면서 건방 떨었다. 그는 문학 동인지 활동도 했다고 나중에 들었다. 다른 사람 재단하는 버릇은 어릴 때부터 있어왔다.

그전에 얼마나 친했던 그것보다는 현재가 중요해진다. 친구를 발견하는 가쁨이 있다.


"준"이 나타나 우리들의 모임이 더 빛이 났던 것처럼, 경계에 있는 마음의 둑을 무너뜨리면 더 큰 세상이 열림을 친구들을 보면서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