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에 반하다

한국풍경의 완성

by mindy

도착한 다음날, 한국오면 꼭 연락해 했던 친구가 떠올라, 그 친구와 함께한 대학 동기들에게 카톡을 올렸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개인톡으로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방향감각이 어둡지만, 짬밥이 몇년이랴, 알려준 대로 전철을 타고 찾아갔다. 2020년에 왔을 때도 그 친구들과 처음으로 만나 1박을 했는데, 이렇게 다시 환영해주니, 사실 엄청 고맙고 뿌듯했다. 남편과 함께 나가도 될까, 했더니 상관없다고 했지만, 남편은 나의 "남자사람 친구"들을 보러갈 생각이 없다고 했다. 남편을 큰딸집에 버려(?)두고 나홀로 출타했다. 이렇게 따로 또 같이 여행이 시작되었다.


사진 한장과 기억으로 남은 우리의 "제주여행팀"이 또 뭉쳤다. 그중 인천에서 올라온 친구도 있었다. 요즘 건강검진중이라는데, 약간은 허약해 보여서 꽤 걱정이 되었다. 우리 나이 또래들이 이제 조금씩 건강에 이상이 오고있어서, 너도나도 조심들을 한다. 제주여행의 숨은 이야기가 펼쳐졌는데, 회비 2만원을 엄마에게 받지못해 싸웠던 일, 그 2만원마저 내지못했던 친구, 그리고 한라산에 올라갔는데, 사진기를 가진 친구가 없어서 신혼부부에게 부탁해서 그 사진을 우편으로 받았던 이야기들을 나눴다. 그때 제주도에 살던 둘째언니 식당에서 하루이틀 신세졌었는데, 친구들에게는 그것이 그리 고마웠단다. 이제는 40년이 된 이야기다. 여행은 이렇게 질기게 인연을 이어주기도 한다.


과 친구들과의 2차 모임이 인사동에서 있었다. 이번에는 "여자사람 친구들"이 많이 나왔다. 아줌마 파머를 한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지하철에서도 유심히 봤는데, 50-60대 여자들에게서 그 유명한 아줌마 파머를 한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연세가 드신분들은 그런분들이 있었지만, 상당히 세련된 중년 여성들이 많았다. 개그우먼들이 연기할때 뒤집어쓰는 그 가발을 이제는 바꿀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아직 일을 하는 친구들도 있고, 은퇴를 생각하는 친구, 은퇴한 친구등 다양했다. 이날의 모임은 공지했던 장소에 갔는데, 초입에서 몇사람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들이 일행인줄 잘 모르겠더라. 마스크를 벗고, 네가 너냐? 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맛집, 유명한 카페를 검색해서 만나기로 했는데, 그런 곳은 줄이 너무 길어 조금 한적한 다른곳으로 장소를 옮겼다. 친구중에는 제대로 장소를 찾아오지 못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모두들 네이버 지도를 켜고, 알려주는 대로 걸어오는데, 나도 해보지만 쉽지는 않은 일이다. 젊은이들이 주류고, 간혹 우리 또래들도 보였는데, 어느새 인생의 배경으로 밀려난 느낌을 확실히 받는다.


이야기가 무르익다보니, 딱히 나를 보러 나왔다기보다는 그동안 보고싶던 친구와 함께 하는 자리였기 때문에들 나왔음을 알게 된다. 멀리서 식당을 하는 친구가 우리를 초대해줘서 조만간 1박으로 놀러갈 계획을 세웠다. 캐나다를 염두에 두고 여행계를 들자는 말도 있었다. 미래는 알수 없지만, 친구들이 캐나다에 오면 너무 신날 것 같긴 하다.


일찍 은퇴한 친구가 잠시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은퇴후 하고싶은 대로 하고 살다가, 몸이 급격히 나빠져서 그걸 회복하느라 시간이 걸렸다면서, 노인학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한다. 뭐라던가 3개의 "ㄱ"과 한개의 "ㅊ"을 기억해야 된다며 퀴즈를 냈다. 그 해답은 경제, 건강, 관계 그리고 취미였다. 그의 은퇴 노하우가 우리들의 여행중 나올 것같아 기대가 된다. 이번 모임에도 적어도 인생 3모작 - 내가 생각할때 1모작은 30대까지 젊은시절, 2모작으로는 60대까지 일과 가족, 3모작은 그후가 아닐까 싶은데 - 중 지나간 것은 그만두고라도 마지막 3모작을 어떻게 경영해야 할지,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될것같다.


그 다음날은 시어머니, 시아버지의 기일을 보내기 위해 성남추모공원에 가기로 했다. 남편이 한국행 마음을 정하는데 이 일이 큰 계기가 됐다. 2년전 시어머님이 돌아가셨을때 오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의 짐이 있었다. 애들 고모가 제사상을 준비한다고 했다. 제사를 드려본 적은 아주 어렸을때 뿐이라서, 나에게는 낯선 부분이다. 게다가 맡며느리라는 신분이지만, 시댁은 남편처럼 내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다해도 내가 그걸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라도 하듯이.


애들고모와 시조카, 그리고 시동생과 딸 그렇게 나왔다. 추모원에서 각자 묵념을 하고, 제사를 드리는 방이 있었다. 그방은 예약이 안되어 앞사람이 끝날때까지 기다려야했다. 우리 차례가 왔을때 고모가 바리바리 싸온 것을 하나씩 펼쳐놨다. 간단히 준비했으면 좋으련만. 나는 옆에서 음식을 제기에 담는 일등을 도왔다. 시조카들도 이제 익숙한지, 준비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모두가 절을 할때 나는 뒤쪽에서 묵념을 했다. 그렇게 배려해준 가족들에게 감사드린다. 제사에 대해서 크게 생각한 적은 없지만, 돌아가신 분들이 음식을 먹을 것도 아니고, 추모의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면 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은 든다.


성남 추모원에서의 일을 마치고 남편과 용산으로 돌아오는데 버스를 내린 그 지점에 한국전쟁기념관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전쟁을 기념하는가? 하는 나의 질문에 "다른 적당한 대안이 없지 않았겠는가?"가 남편의 대답이었다. 그 이름을 짓는데, 많은 우여곡절이 있지 않았을까? 시설이 웅장했다. 공원처럼 만들어져 그 안에서 저녁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부에 무엇이 더 있는지 모르지만, 밖의 시설들만 보는 것만도 시간이 필요했다. 전쟁에 쓰였던 비행기, 전차등이 전시되어 있었고, 기록물이 새겨진 조형물도 있었다. 스러져간 장병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벽에 새겨져있기도 했다. 남편은 내가 뵙지못한 시아버님도 한국전에 참전해서 총알의 파편이 허벅지와 팔뚝에 있어서 손으로 만져진다며 어린 아들의 손을 붙잡고 그 만져지는 것을 쥐어주곤 하셨다고 한다.


남편은 자신이 군생활할때 탔던 낙하했던 비행기가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고 놀라워했다. 이제는 노후화되어 전쟁기념관 한편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IMG-1276.jpg
IMG-1305.jpg
IMG-1281.jpg
IMG-1291.jpg


그렇게 전쟁이 지나간지 70여년이 되어가는데, 한국은 이렇게 일어섰구나. 전쟁기념관 공원에 심어진 많은 소나무들, 한국땅에 자라난 소나무들은 특별히 더 우아했다. 외국에서 내가 소나무를 보고 반한 적이 없었기에 하는 말이다. 한국에 와서 최고로 좋은 것 중에 하나가 어디에 가든지, 잘생긴, 휘어진, 늘어진, 꼿꼿한 여러 종류의 소나무를 보는 일이었다. 새로 생겨난 아파트에는 소나무가 아름드리 자리를 잡고, 벤치가 놓여있고, 한두명은 벤치에 앉아서 책을 보고, 한두명은 운동복을 입고 그 길을 걷고 있다. 전쟁기념관에서도 그 소나무에 반해서 여러번 걸음을 멈췄다.




이전 04화T 카드, 네이버 맵 너 정말 수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