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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y Mar 07. 2023

큰 산을 넘어

듣기만 해도 떨리는 그 병 "암"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에 나와 딸은 병원에 있었다. 엄마와 아빠를 위해 보따리를 싸들고 집에 와준 딸이 고마웠다. 딸의 아빠, 나의 남편이 수술실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수술실로 가는 길도 좀은 엉성했다. 병원침대에 누워서 들어간 것이 아니고, 환자복을 입은 남편은 수액 장치를 끌고 걷고, 옆에서 간호사가 한명 붙어있다. 그녀는 이제 수술하러 들어간다고 말한다. 남편이 수술 준비를 마치고 나오면 남편과 손을 잡고 기도할 시간이 있겠지, 했었는데 적절치 않아보였다. 수술 잘하고 이따 만나, 정도를 말했을까? 그렇게 우리를 떠나갔다.


남편은 작년 말, 대장 내시경과 위 내시경을 받았다. 그때 대장에 용종이 있어서 떼어냈다는 내시경 의사의 소견을 들었었다. 문제없이 잘 떼어냈다고, 큰일 아니라고 해서 내시경중 받았던 수면마취제의 놀라운 효능에 대해서 후일담을 말하곤 했었다.


한달쯤 후 갑자기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떼어낸 용종에서 암세포가 발견됐다는 것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이 상황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침이 말랐다. 그에 더해서 위내시경 검사에서는 헬리코박터 박테리아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헬리코박터 박테리아는 위에서 기생하는 세균으로 흔한 질병중 하나라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됐다. 


남편에게 한꺼번에 불어닥친 바람에 우리 둘다 휘청였다. 우선 헬리코박터 항생제를 2주간 복용했다. 그러는 와중에 대장암 수술의사를 만나서 진행상황에 대한 소견을 들었다. 의사는 수술을 할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다고 애매하게 말하면서, 다시 한번 내시경 검사를 해서 자신이 직접 확인하고, 어느 부위인지 그곳에 "타투"를 해놓는다고 했다. 그런 다음에 수술을 할지 결정한다면서.


남편의 두번째 장세척이 시작되었고, 그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장내시경을 한번 더 받았고, 얼마후에 수술날짜가 잡혔다고 연락이 왔다. 수술 기다리다가 죽게 생겼다는 이야기도 속속 들리는 캐나다 의료환경에서 이렇게 재빠르게 수술날짜가 잡혔다는 것은, 상태가 심각하다는 이야기인가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행운에 속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대장암 진단을 받고 한달안에 수술까지 마치게 되었다. 그것도 집에서 5분 이면 가는 오웬사운드 병원에서 말이다. 


수술실에 들어간후 딸과 나는 1층 카페테리아로 왔다. 그곳에서 함께 아침을 먹는다. 딸은 회사에 말했고, 할수 있는 만큼 재택근무를 하겠지만, 수술날만은 엄마와 병원에 있겠다고 말했다. 수술실로 들어간지 2시간이 넘어설 때까지는 수술이 끝나면 연락오겠지 하면서 당연히 기다렸다. 


3시간이 지나고 4시간이 가까워오자 그때부터 속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카페테리아에서 올라와 대기실에 앉아있는데, 환자의 수술상태를 알려주는 스크린은 고장나 있고, 우리는 전화기가 울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술중 무슨 일이 생긴건 아닌가, 정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딸이 기다리다가 수술대기실에 가서 자원봉사자에게 물어봤다며 대답을 가지고 왔다. 수술이 끝나고 회복실에 있다는 이야기다. 묻지않으면 세상 중요한 일이라도 말해주지 않는 이곳 정서를 다시금 깨닫는다. 수술후 4시간쯤 될때에 어디에선가 내 이름을 부르는 가는 목소리가 들린다. 남편이 누운 침대가 병원 복도를 지나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남편과 조우했다. 


지금 생각하니, 간호사는 남편을 병실에 데려다놓고 나서 내게 전화하려고 했을지 모르겠다. 남편이 누운 침대에서 의자에 앉아있던 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내 이름을 불렀는지 모르겠다. 남편은 희미한 기억으로 그 순간을 간직하고 있기는 한데, 내 이름을 불렀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간호사들이 들어와서 수술에 대해서 물으니, 잘 모른단다. 의사한테 들은 바가 없단다. 그러면서 내일 아침에나 의사가 올 것이라고 말한다. 의사에게 큰 지시사항이 없다는 것은 수술이 잘끝났다는 이야기라고 안심을 시킨다. 병실은 햇빛이 잘들어오는 1인실이었다. 보호자 2명이 머물수 있다 하였다. 



몇시간 후에 만날 기대를 접었던 수술의사가 들어왔다. 그러면서 수술이 아주 잘되었다고 한다. 안전하게 장 30cm 정도를 잘라냈고, 깨끗하게 수술이 되었다고 했다. 복강경 수술이라 회복도 빠를 것이라고 말해준다. 내일 온다고 하더니 오늘 와서 너무 고맙다고 했더니, 오늘이 바로 "밸런타인데이"가 아니냐고 해서 함께 웃었다.


남편은 아파하지 않았다. 요즘 병원은 환자를 아프지 않게 하는 특별한 처방(하이드로 모르핀 등?)을 한다고 들었는데 딱 그런것 같았다. 남편은 몇번 환각을 봤다고 말했다. 눈을 감은지 몇분 지나지 않은 것같은데, 눈을 뜨고 주위를 휘둘러봤다. 꼭 생시처럼 아이들 게임에서 보이는 것처럼 무너진 건물들, 잔해등이 보였다고도 하고, 빨랫줄에 옷을 거는 중이었다고 하기도 했다. 꿈과 다른 어떤 것이었다. 나중에 조언을 받아서 하이드로 몰핀을 맞고싶지 않다고 말해서 다른 진통제로 바꾸기도 했다.


남편은 굉장히 빠른 회복을 보여줬다. 화요일에 수술했고 빠르면 금요일 아니면 토요일 퇴원이 될 것 같다고 했는데 수요일날 기다리던 "방귀"가 나오고 매달아놨던 소변줄도 제거하고, 혼자 화장실에 갈수 있게 됐다. 이번에 수술하면서 우리가 주로 했던 대화는 완전 생리에 대한 것들이었다. 방귀를 몇번 뀌었는지, 소변을 몇 ml 봤는지, 그런 것들 말이다. 아침에 딸과 함께 가서 남편과 아침을 같이 먹었다. 남편은 물 종류 음식만 먹었지만,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했는지. 


병원 복도를 걸으며 운동하라고 해서 함께 복도도 걸었다. 남편말을 들으니  혼자서도 복도를 걸어다녔다고 했다. 병원1주일 주차권을 샀는데, 목요일 점심경 내가 일하고 있을때 퇴원해도 된다는 소식을 받았다. 키치너에서 병문안오는 동생에게 부탁해 수술 이틀후 남편은 집에 올수 있었다. 퇴원하면서 처방받아온 진통제는 집에와서 먹지않았다. 남편은 멍한 상태를 호소하곤 했는데, 자신의 설명으로 한다면 수술시 투여된 마취제와 나중에 맞았던 하이드로 모르핀등이 아직 몸안에 남아서 그런게 아닌가 의심한다.


남편의 암소식을 우리 딸들을 빼고 처음 발설했던 곳이 북클럽 친구들이었다. 그날 마침 3달째 함께 했던 북클럽 마지막 모임이었는데, 한 멤버가 내게 "Are you okay?" 물어보는 바람에 말을 할수밖에 없었다. 마침 그방에는 내 동생 두명도 함께 있던지라, 자매들에게 알려야한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 모임에 함께 했던 분이 "내가 도와줄 것이 있을 것같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내일처럼 걱정해주는 멤버들에게 벌써 마음의 위로를 받기 시작했다. 그분은 퇴직 간호사일뿐 아니라, 위암 대장암 수술을 했고, 퇴직전에 암병동에서 일했던 분이라 그야말로 남편의 앞으로의 진행상황에 대해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북클럽 모임이 끝나고 바로 연락을 해주셔서 그간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분은 동생과 가까운 사이여서 동생과 그분 그리고 우리 부부 단톡방을 만들고 수술전부터 여러가지를 의논했고, 수술후에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남편의 퇴원날 동생과 함께 와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도해주셨다.


2월13일이었다.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쇼핑을 하고 있는 에블린을 만났다. 고객과 캐쉬어로 몇번 만났을 뿐인데, 왜 그녀의 이름을 불렀는지는 모르겠다. 나보고 "너는 조금 다르다. 호감이 간다"(내식으로 해석하자면) 하면서 물건을 사갈 때마다 관심을 보여주던 아줌마다. 그녀는 집에 가는 중이냐면서, 잠시 서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나는 비록 이혼했지만 아이들이 아름답게 자라줘서 감사하다. 딸의 작년 생일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서 특별하고 감사한 시간을 가졌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고 한다. 나도 진즉부터 애블린이 크리스천 같다는 생각은 했다. 사기꾼도 그렇게 친절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러면서 애블린이 내게 묻는다. 내일 밸런타인데이인데 무슨 계획이 있느냐고. 나는 그녀에게 남편 이야기를 했다. 바로 내일 수술받는다고. 그랬더니 애블린이 나를 저 구석으로 끌고 간다. 그러더니 손을 붙잡고 기도하기 시작한다. 남편의 수술이 잘 끝나기를 말이다. 그녀는 자신의 체험을 말하고, 자신을 위해서 매번 기도해 주는 친구가 있는데 나의 남편을 위해서 기도를 부탁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다음에 만나면 좋은 소식을 듣고 싶다고. 


북클럽에서 만난 친구들(이중엔 80대 할머니도 있다)의 기도와 가족들의 응원 기도 속에 남편의 회복은 빨리 이뤄졌다. 헬리코박터 때문인지 입맛이 없던 남편은 입맛까지 회복해, 많이 먹지 않으려 애쓰고 있는 중이다. 키치너의 사촌오빠와 언니는 자신의 가게에서 파는 것을 송두리째 가져온 것 같다. 우리가 특별히 주문한 청국장, 된장, 낫또를 비롯해서 시래기를 한솥 요리해 와 오랫동안 잘 먹었다. 


오빠네 부부가 감기를 오랫동안 앓았다고 하더니 가면서 하나 떨구고 간 것이 있다. 바로 내게 감기를 물려줬다. 본인들은 자신들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 감기로 나는 1주가 넘는 동안 거의 죽다 살아났다. 내 감기를 남편이 걸릴까 봐, 집에서 마스크 쓰고 밥 먹을 때 저 멀리서 먹으려 하고. 다행히도 남편은 잠시 스쳐갔을 뿐인데, 나는 목아픔, 발작적인 기침,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증까지, 나중에 우리 집의 환자는 누구인지 혼돈되는 사태에까지 왔다. 내가 아파보면서, 아픈 남편을 보면서 건강하다는 것의 찬란함, 그 힘에 또한번 놀란다. 남편의 내시경과 수술 때문에 자주 병원을 방문하면서, 보호자로 따라온 사람들이 튼튼해 보이면 너무 안심이 되었지만, 비척거리고 몸을 잘 추스르지 못하는 병자같은 보호자도 많이 눈에 띄어 안타까웠다. 늙어가는 부부는 서로 힘이 되어주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한계에 부딪치겠구나 느끼기도 했다.


드디어 마지막 선고를 들으러 며칠전 의사를 만나러 갔다. 복강경 수술후 스테이플로 찍은 것도 빼내는 날이었다. 의사는 림프절을 30개에서 40개 떼어냈고, 그 모든 부분의 조직검사를 했는데, 깨끗하게 나왔다고 했다. 더이상의 치료는 필요하지 않고, 1년마다 장내시경 검사를 하면 될 것이라고.


그는 수술후 이야기했듯, 이렇게 마주앉아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소식이라며 싱글거렸다. 나중에 남편은 수술한 환자의 수술 부위를 볼 생각도 안했다고, 어쩜 그럴 수 있냐고 불평은 했지만, 그건 대수는 아닐 것이다. 남편의 수술자리도 잘 아물고 있고, 우리들의 암담했던 마음도 치유가 되고 있다.


이렇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면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병은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는법,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않고 최선을 다해야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항암까지 염두에 두었던 남편은 한번 암환자는 영원한 암환자라며 재발이 되지않도록 최선을 다할 자세인것 같다. 나는 암 격퇴를 선언하고 싶다만.


이번 사건을 통해 하고싶은 메세지가 있다면 *대장암은 증세가 없어 내시경으로 조기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암이 걸렸다고 끝이 아니다 *가까운 사람들과 병에 대하여 소통하라, 이것이다. 주변의 관심과 위로가 큰 힘이 되었고, 지식과 경험이 있는 조언자를 만날 수 있었음에 감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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