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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y Mar 26. 2023

일이 쉬워졌다

대형식품점의 점원 적응중

어제 15분 휴식을 끝내고 내자리로 돌아가려는데, 스케줄 담당자가 15분 더 쉬고 오라고 한다. 내가 너무 빨리 왔다는 것이다. 더 안쉬어도 되는데, 그리 생각하다가 다시 가게 뒤쪽 스탁룸을 통과해서 2층 직원들 쉬는 곳으로 돌아갔다. 그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전날 청소하는 사람(부부로 보이는) 둘이 왔다간 것을 보았는데, 어느정도 깔끔했다. 청소부는 한달에 한번 오는지, 아니면 2주에 한번 오는지 잘 모르겠다. 2층 휴식공간과 화장실 등지를 청소한다.


휴식공간에는 3개의 테이블과 1개의 둥근 테이블 그리고 의자들이 있다. 테이블은 누군가 칼로 그은듯 줄이 그어져 있다. 사물함이 한편에 있고, 다른편 벽에는 사물함에 들어가지 못하는 큰 겉옷 그리고 가방들이 걸려있다. 나도 아직 사물함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필요하면 요청하면 될것이지만, 그냥 옷걸이에 가방을 걸고 그위에 코트를 걸쳐 놓는다.


부엌 싱크대와 선반이 있는 곳에 전자레인지 두대와 냉장고가 있다. 각자가 가져온 음식들을 데워먹을 수도 있고 보관할 수도 있다. 나는 스낵을 주로 싸간다. 요구르트, 계란, 치즈, 과일, oh henry 초콜릿, 떡, 찐빵 등이 주요 메뉴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스낵과 스마트폰을 보면서, 15분, 30분씩 각자 휴식을 취한다. 이 휴식시간을 통해서 15분의 위력을 매번 느낀다. 그 휴식을 가진후에 2시간 일할 힘을 확보하게 되므로.


이곳에서 한꺼번에 모였던 적이 한번 있었다. 신년 모임이라고 할까? 회사 문열기전에 해야하니, 아침 7시에 시간이 잡혔었다. 2그룹으로 나뉘어서 캐쉬어들이 사장과 함께하는 자리였다. 


초짜가 회사를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회사가 굴러가는 것을 보는 것이 즐겁다. 우선 일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이 명확하다. 끝날때는 초단위를 쳐다보다가 누구에게 말할 것도 없이 till에 sign off를 누르고 떠나면 된다. 손님과 일이 안끝나 몇분 더 할수도 있는데, 어제같은 경우는 준매니저가 자신이 마무리하겠다며, 떠나라고 했다. 


15분 더 쉬라는 말에 "대단한 시간"을 부여받은듯 잠시 뭘하나 고민했다. 어제 마침 핸드폰도 집에 두고 왔기에 말이다. 아무래도 어제는 내가 15분을 더 쉰것 같다. 1시 15분에 시작, 7시에 끝냈으니 1차 휴식 15분, 2차 휴식 15분이 맞다. 15분에 시작했던 적이 한번도 없었던 지라, 나도 스케줄보는 사람도 혼동되었던 것 같다.  어제 일한 시간은 5.75시간, 쉬는 시간 중 15분은 유급, 15분은 무급이어야 하는 것 같은데.


6시간 일할 때 15분, 30분 휴식을 갖는다. 그리고 첫 15분은 유급이다. 나중 30분은 일한 시간에서 빼야 한다. 이것이 너무 복잡한데, 나도 일하다보니 조금씩 터득하게 됐다.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매니저가 연장 근무해달라고 하기도 했고, 쉬는 날 올수 있느냐고 해서 나갔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돈이 너무 적게 들어온 것 같아서, 시간을 곰곰히 따졌더니 연장근무와 불려나간 날이 계산되지 않은 것 같아서 매니저에게 말했었다. 다음 페이에 4시간인가 더 받은 적이 있다. 그리고 그때 매니저가 내게 보여준 표가 있었다. 우선 흥미로왔던 것은 8시간 페이를 받으려면 회사에 9시간 가있어야 한다. 이때 1시간 점심시간을 주는데 그것은 일하는 것에서 빼고, 두번에 걸쳐 15분 휴식시간을 준다. 이것은 페이해준다. 4시간을 기본 단위로 해서 15분은 회사에서 쉬는 시간을 보장해주고, 나머지는 쉬게 해주기는 하지만 돈은 주지않는다. 그러니, 누군가의 쉬는 시간에 일을 맡길 수는 없다. 파트타임과 풀타임이 조금 다를 것이다. 나의 경우는 파트타임이므로. 


어쩌면 회사의 규모에 따라서 이런 규정들도 달라질 것 같기는 하다. 나는 두번 9시간 회사에 있어봤는데, 1시간 점심시간을 줘서 집에 와서 남편과 밥을 먹고 다시 돌아가기도 했다. 


어제 하루종일 힘들지 않았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일을 시작하고 처음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잘 굴러간 날들도 있었지만, 어제처럼 거의 초고속으로 시간이 갔고, 또 손님이 없는 시간일지라도 어색하지 않았으며, 힘겹지 않았다.


한동안 기침 때문에 고생했다. 감기에 걸려 이틀을 연속 쉰다고 전화했었다. 비번인 다음날 일할 수 있으면 나오라는 말에 그냥 무시했다. 그리고는 그 다음날 어쩔 수 없어서 덜 회복된 채로 나갔는데, 손님앞에서 기침이 나오기 시작했다. 마스크를 썼으나 그것으로 가려질 정도가 아니었다. 아무래도 다시 집으로 가야 할 것 같아서 매니저를 불렀다. "왜 그러냐?" 해서 손님앞에서 기침이 나와서 일을 못하겠다고 했더니, "너 자신은 어떠냐, 일을 할만은 하냐?"고 다시 물었다. "일하는 건 큰 무리가 없는데, 손님들에게 미안해서 힘들다"고 다시 말했더니 "네가 일할 수 있으면 괜찮다. 나도 감기 걸렸을 때 일했다. 저기 A도 B도 기침을 자주 한다"며 그들을  가리키니, A는 아니라며 고개를 흔든다. B는 자신이 자주 기침을 하는 것을 시인했다. 그래서 그날 일을 하는데, 정말 솟구치는 기침 때문에 일하는 내내 너무 힘들었다. 기침은 날이 갈수록 잦아들었지만, 그 시간들을 견뎌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예전에 엄마가 기침 때문에 교회 예배 참석하는 것이 힘들다고 했던 말씀이 떠올랐다. 그리고 엄마집에 가면 사탕이 항상 있었는데, 그것이 기침 방지용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중이기도 하다. 나도 마스크안에 사탕을 물고 기침을 다스리느라 너무 힘들었다.


아직도 잔기침도 나오고, 재치기도 나오는 중이지만, 그리고 어제도 그런 적도 있지만, 15분 더 쉬었기 때문인지, 이제는 적응이 되었는지, 아니면 최근에 섭생을 잘해서 체력이 올라갔는지 원인을 살피고 있다.


일하면서 아이들과 눈맞춤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부모가 물건을 올려놓느라 바쁠때 아이들은 이리저리 눈을 굴리다가 나랑 마주치면, 우리들의 "눈으로 말해요"가 시작된다. 

일하다보면 근방에 사는 한인들도 만나고, 몇몇 전에 알던 이들도 와서 아는체를 한다. 그분들중엔 은퇴하신 분도 있었는데, 무슨 일이든지 할수 있을때 하는 것이 좋다고 격려를 한다. "왜 이 일을 하냐?"고 묻는 이들에게 "돈이 필요해서"라고 말하면 100% 믿지 않는 것 같아서 그것도 고맙다. 돈이 필요해서 하는데, 아무래도 그동안 포장을 잘해왔나 싶다. 


아직도 페이지(사내방송) 할때 고생하기도 한다. 앞뒤 캐쉬어들이 나를 도와준다. 다시 방송해주기도 하고, 나도 페이지하다 안나타나면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뛰어가기도 한다. 방송에 바로 달려와주는 직원들이 고맙기도 하다. 김치와 참기름을 판매하기도 하고, 얼마전에는 김을 나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손님중에서 "미림"을 찾는 사람과 "새우젓"과 "멸치액젓" 같은 것을 찾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김치거리로 보이는 식품들을 사가는 사람들은 한번 더 보게 되지만, 아는체를 하지는 않는다. 둘째는 김치 비지니스를 해보라고 나를 권유하기도 한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 둘째네 회사에서 자선 옥션 행사가 열렸는데, 내가 만들어보낸 비건 김치가 1리터 병 하나에 300달러에 팔리는 쾌거를 이룬적이 있었다. 물론 자선으로 가는 돈이기 때문에 물건의 값어치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치렀지만, 여러 사람이 경합이 붙어서 그렇게 됐다는 이야기를 한다. 


잠시 내 자랑을 했고, 어쨌든 한식이 퍼져나가는 중이라는 말이다. 백인 위주인 캐나다 시골에서도 한국 정통음식을 찾는 이들이 있으니. 함께 일하는 C는 한국식당이 이 도시에 들어온다는 말이 있다면서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얼굴을 활짝 펴서 말한다. 


나보다 조금 일찍 들어온 고등학교 학생이 이번에 매니저급(?)으로 승진(?)했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도네이션을 손님들에게 요청해 많이 받았나 싶기도 하다. 우리가 over ride라고 불리는 상황을 만날때 이 꼬마매니저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나의 상사가 되었다. 나는 그걸 탐할 짬밥이 안되지만, 10년 이상 일한 나이든 분들에게도 그런 권한을 안주는 것에 대해서 잘 이해를 못하겠다. 조금 질투가 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책임이 없는 것도 또 속이 편하기도 하다. 오후 4시부터는 고등학생들이 아르바이트로 일하러 오는데 모두 얼마나 야무지게 일하는지, 감탄을 한다.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는 연대가 잘 형성된 편이라고 본다. 서로간 이름을 부르니 이건 참 다행이다. 꼬마 매니저에게 매니저님, 이것좀 해결해주세요 해야 한다면, 부를때마다 맘속에서 무언가가 돋아날것 같다. 내가 매니저니, 매니저급이니 이렇게 모호하게 글을 쓰는 이유도 그들을 부르는 다른 호칭이 없기 때문이다. 일할 때는 회사에서 감당해야 할 자신의 분량을 하는 것일뿐, 그것에 큰 의미를 두는 것같지는 않다. 조금 책임있는 일을 하게 되면, 돈을 더받고, 정규직이 되고 그런 것이겠지. 사장을 부를 때도 그의 이름을 부르게 되니, 사람대 사람으로 서게 되는 것같긴 하다. 


연세가 많아보이는 뒷일하는 아저씨는 친한듯이 부딪칠 때마다 내게 무슨 말인가 하는데, 그분의 말은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기가막힌다는 표정으로 봐서, "회사가 왜 이모양이야?" 그런 류의 이야기같은데, 나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다. 그와 일로 엮이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인지. 


아참 이곳을 좋아하는 중요한 이유가 몇개 더 있다. 복권, 담배, 매거진 술등이 없고 식품에 올인한 그 점을 나는 높이 산다. 요즘 그로서리 물가가 올랐다고, 그 원인을 식품운영 회사에 돌리려는 여론을 대하는데, 나는 이렇게 싸게 팔면 회사에서는 남는 게 있나, 회사를 걱정할 때도 있다. 어제 스페샬 품목으로는 귤 1장사에 2불 99전이었다. 노란 망고는 처음 한상자에 5.99였다가(그것도 싼데) 2.99로 내렸다가 99전에 팔았다. 박스안에는 12개쯤 들어있으리라. 빨라 팔아버리려고 그랬나싶다. 그 깊은 속을 알수 없지만, 어쨋든 사가면서 화색이 도는 싼 품목이 많은 그런 식품점에 다녀서 다행이다. 


내게 왔던 손님을 뒷줄 캐쉬어에게 돌려야했던 적이 있다. 나는 환불해줄 수 있는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손님과 캐쉬어가 언성을 높이는 일을 보기는 쉽지 않은데, 그날 뒷줄 캐쉬어 A와 손님 사이에 뭔가 일이 틀어지고 있었다. 매니저가 불려오고 난리가 났었다. A의 이야기로는 손님에게 물건에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했더니, 맛이 이상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손님이 가져온 애플쥬스는 오픈되지 않았기에 다시, 오픈되지 않았는데 맛이 이상하다는 것이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는데, 그 손님이 "돈내놔, 돈내놔, 돈내놔" 이 소리를 반복했다는 것이다.


환불 규정이 물건에 무슨 문제가 있느냐 적어놓는 란이 있어서 그것을 물은 것인데, 서로간 감정이 올라갔던가 보다. 그후로 그녀가 갖고있던 권한이 축소되었음을 알수 있었다. 내가 손님을 그녀에게 보내서 일이 시작된 것같아 미안하기도 하다. 그녀는 그후에도 한번인가 손님과 다툼이 있었다고 알고있는데, 나는 그 현장을 보지는 못했다. 회사 속속들이 돌아가는 것에서 나는 조금 비켜난 셈이어서 크게 신경쓰지 않는데, 그녀가 자꾸 눈에 들어온다. 그녀가 일을 그만두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잘 다니고 있다. 나는 그녀에게 "네가 일하는 것을 보는 것이 좋아"라고 어느날 뜬금없이 말해줬다. 몇주전에 일 끝나고 카트 가득 시장본 물건을 싣고, 오랫동안 떠나지 않고 기다리던 A의 모습을 본적이 있어서 다음날 물었더니, 시장을 본후 택시를 기다렸는데 오지 않아서 1시간 넘게 기다렸다고 했다. 무슨 그런 일이 있나 싶었는데, 엊그제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나더라. 나는 A의 곁에 다가가 내가 조금후 일을 마치니, 혹시 "라이드" 필요하면 말해달라고 했다. 그녀는 택시가 오고 있다면서 고맙다고 말한다. 결국 택시는 내가 떠나는 시간쯤에 와서 그녀를 보내고 올수 있었다. 조금 더 친해지면 찻집에서 차라도 마실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점원중에선 차가 없어서 걸어다니는 사람도 있는 것같다. 작은 도시라서 버스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내게 카랑카랑하게 대해서 무서워했던 점원 C에게 라이드를 제공했던 적이 있다. 너무 바람불고 눈이 오는 날, 라이드해주던 친구에게 사정이 생겼다고 해서 제안을 했는데, 그날일 때문인지 내게 매일 함박웃음을 지어준다.


이렇게 일이 많고 나름, 순발력이 있어야 하는 일을 하는데, 시급은 최저임금이니 조금 억울하기도 하다. 곁에 있는 점원들을 보면, "적성에 꼭맞는 일"을 하는 것도 같다. 매일 매일 "도와줄까요?"를 외치고, 서로간 "땡큐"를 외치는 직업, 아주 소소한 고마움이지만, 그런 인사를 받는 직업이 또 그리 많지는 않을 것 같긴하다. 물건사면서 캐쉬어를 신경쓰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단한명도 신경쓰지 않고 보낼 수 있는 손님은 없다. 까다로운 고객을 아직 만나지 못해서 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런 고객은 매니저에게 넘기면 되니, 이리 마음이 편할 수 있는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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