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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y Apr 20. 2023

3일간의 어떤 여행

부활절에 핀 크리스마스 선인장

새벽 2시가 조금 넘었다.

3일간 여행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 마침은 된장국과 흰밥, 그리고 무우생채였다. 그것도 새벽 12시가 넘어. 이제 조금 소화를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이번에는 완전 실패는 아니었다. 식은땀이 철철 흘러, 도중에 그만두고 싶었던 그 위기의 순간을 잘 이겨넘겼고, 한권의 책을 끝냈기도 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누가 샀는지, 누구로부터 받았는지 그 출처를 가늠할 수 없는 책 "사랑으로 세계를 품어라" 2005년에 개정된 책이다. 초판은 1998년이니 오래 되었다면 오래된 책이다.(옛책 읽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남편은 오래전에 자신이 산책같다고 말한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는 시작하고, 나는 발견하고 체험하고, 그런 일들이 우리 부부에겐 많이 일어나는 편인 것 같다.


"사랑으로 세계를 품어라"는 황성주 목사(의료인)의 신앙메세지이다. 그 책이 3일 여행에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새벽에 깨어서도 조명을 밝히고 읽었다. 젊은이가 된 느낌이다. 젊었을 때 읽었어야 했지만, 뭐 어떤가?  그의 삶의 궤적, 행복을 찾아나가는, 자신의 달란트를 아낌없이 쏟아붓는 그 삶의 열정에 함께 했다. 



이렇게 서두를 꺼내놓고도 며칠간의 시간이 흘렀다. 이어서 써보자. 3일간의 여행은 물과 커피만 마시고 음식을 끊었던 기간이었다. 이따금 생각날 때마다 하는데, 이번에도 어디론가 여행하는 느낌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고행이련가? 시간이 무진장 많아서 무슨 일이든 할것 같았다. 


우선 씨앗을 심었다. 꽃씨와 몇개의 채소씨앗을 사다놨었다. 아직 날이 풀리지 않아서 밭 정리를 하는 중인데, 씨앗심기는 하지 못하고 있다. 밭은 가까이 사는 언니에게 맡기기로 하고, 나는 꽃에 조금 더 집중하려고 한다. 루피너스와 코스모스 그리고 알리섬을 꽃씨 봉투에 있는 사진을 보고 골랐다. 옛날부터 있던 파피(양귀비) 꽃씨도 있지만, 기대는 하지않는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꽃씨들은 마당에 그저 뿌린다고 해서 싹이 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꽃이 자랄 공간도 만들어줘야 하고, 우선 뿌리를 내리기까지 세심히 돌봐주어야 하나보다.


지난 겨울에 사다놓은 종이컵에 흙을 채우고 꽃씨를 심었다. 그 작은 씨앗이 자라서 꽃이 되기까지 머나먼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루피너스는 하룻밤 물에 물려서 씨를 파종했다. 마음 한편에 "그 씨앗들이 죽어도 그만"이라는 포기가 있는 반면에, 살아내고, 제자리를 잡게 되어 하늘거리는 꽃을 보게 될 날에 대한 희미한 희망도 있다. 씨앗부터 시작한 것이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작년엔 이미 만들어진 멋들어진 화분을 보면서 기분을 냈었다. 그것을 키우느라고 애썼을 손길에 대해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작년에 이사오고, 많은 분들이 꽃과 화초들을 선물해주었다. 그것들이 잘 자라고 있는 것도 감사하다. 화초에 드디어 눈이 가게 된 사건이 된 것 같다. 그리고 나도 화원을 돌며 이름도 모르는 갖가지 꽃들이 디자인된 긴 화분, 큰 화분 몇개를 사서 새집 안팎을 장식했었다. 가을이 지나 꽃들이 시들해질 때, 화분을 치워버리는 작업도 쉬웠다. 내가 씨앗을 심고 키웠다면, 화분을 보낼때 조금 다른 마음이 들었으리라. 



너무 긴 겨울에 진력이 나고, 날씨만 따뜻해지면 정원에서 살리라 다짐했다. 잡초반, 잔디반인 마당의 잡풀도 뽑아야지. 마침 따뜻해져서 참나물로 뒤덮인 정원에서 삽질을 해서 뿌리를 솎아낸다. 꽃은 꽃인데, 너무 뿌리가 퍼져서 서로 부대껴 제대로 꽃도 못피는 난초과 흰꽃의 뿌리들도 뽑아낸다. 알뿌리가 얼마나 깊게 배겼는지, 삽질이 힘들었다. 그게 지난주에 했던 일이다. 이번주는 다시 추워져서 밖에 얼씬도 못한다. 온타리오의 겨울은 길고 길다.


작년 한국을 방문하고 온 다음, 우리 교회가 세워졌다. 10년을 함께했던 한 목사가 불미스러운 일로 떠나고, 그후에 8년을 함께 했던 두번째 목사가 있을 때, 나는 교회를 나왔었다. 그리고 그 목사는 사임했고, 교인은 거의 떠나 교회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 되었었다. 그렇게 팬데믹과 함께 자연사하게 되었을 때 사랑이 많은 한 교회의 형제교회로 우리 교인들이 소속되었고, 온라인 예배를 함께 드릴 수 있었다. 형제교회의 목사님은 임시당회장으로 몇 안되는 우리에게 힘이 되어주었다. 누구도 교회가 다시 세워질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지만, 노회 소속 한 목사님이 시골교회 목회를 하시겠다고 해서,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다.


이제 교회의 씨앗이 심어진 셈이다. 나는 우리집 씨앗과 이제 자라야 하는 교회를 이곳에 놓고, 한국에 간다. 작년에 한국방문때 시작한 임플란트 마지막 작업을 위해서 가는데, 사실 임플란트는 명분이지, 여행이나 다름없다. 남편이 아프고해서 나의 계획이 무산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나의 행복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련가? 그런 행복을 위해 떠나지만, 본질적인 행복을 찾는 여정이 되길 기도해본다. 황성주 목사는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최고의 행복임을 체험"했다고 말한다. 마음 한구석 빈듯했는데, 조금씩 해답을 찾아가고 있는 것같다. 서로의 행복을 위해 애쓸때 그것이 최고의 상태라는 것을. 


나의 삶이 보잘것없어 보여, 열매가 보이지 않아, 꽃이 피지 않아 많이 피폐했었다. 그러나 열심히 땅을 헤치고 싹을 내려고 애쓰고 있다고 하자. 


작년 11월 한국의 친구가 보내준 게발선인장 꽃사진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일하는 곳에 그 비슷한 화분이 있기에 사왔다. 빨간 봉우리가 잡혀있었다. 꽃이 피겠거니 하면서. 그런데 작은 봉우리가 시들시들 떨어져나갔다. 꽃이 피지않아 실망했지만, 물은 계속 줬다. 화분 자리가 조금씩 바뀌기도 했다. 그랬는데 요즘 꽃을 피기 시작한다. 나는 게발선인장인줄 알았지만, 다른 친구가 크리스마스 선인장이라고 정정해줬다.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이 선인장은 크리스마스 즈음에 피는 꽃이라고 한다. 그런데 잘 가꾸면 부활절 즈음해서 한번 더 핀다고도 한다. 




이 꽃은 내게 선물처럼 다가온다. 기다리다 보면 꽃이 피겠구나, 하는 것. 


브런치를 여행하다보면, 내가 구독하는 분들중에도 글을 자주 못쓰는 분들이 많은 것을 볼수 있다. 나는 그런분들에게 고맙다. 나만 그런 게 아니어서 안심이 된다. 나도 그렇지만, 그분들도 포기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늦게 피는 꽃이 있지만 한꺼번에 와장창 꽃망울이 터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마음으로 브런치를 접을 때도 많다. 좋은 글도 많고 나는 그렇지도 못한데, 굳이 더 보태야할 말이 있는가 하면서 말이다. 언제나 씨앗의 상태, 여린 새싹의 상태로 살아오는 것 같지만, 언젠가는 많은 씨앗을 터뜨리는 큰 꽃봉우리가 될날이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어느 한곳에선 이미 열매를 맺어 그 씨앗이 퍼져 자라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친구들과 위로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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