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dy May 28. 2023

유채색 마술의 세계 입성

다시 한국으로

무채색에서 유채색의 삶의 현장으로 날아가 꽂혔다. 캐나다가 무채색이라면 한국은 유채색이다. 굳이 봄이 되어 꽃이 피어서가 아니라, 샤방샤방한 한국의 아기자기함은 현실에 있어서도 이모티콘에서 하트모양이 생성되는 것같은 마술적인 공간이다.


이번 여행에서 미리 계획됐던 것은 베트남 다낭여행뿐이었다. 이 계획도 캐나다 미국 교포인 나와 동생은 베트남 비자가 필요하다고 해서, 포기될 뻔했다. 다행히 여행사에서 비자 수속대행을 해준다고 해서, 수속비가 좀 들었지만, 계획을 진행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1달간의 한국여행길에 올랐다.


시간상으로 짚어나가는 것이 가장 나을 것 같다. 매일 매일 가슴이 뜨거워지는 일이 일어났지만, 얼마나 재생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그래도 나의 의무는 함께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과의 시간들을 기록하는 것이란 생각으로 다시한번 마음을 다잡는다.


일단 비행기표를 샀던 이야기부터 하자. 한국행 팀이 꾸려지는 계기가 됐다. 미국동생 역시 나처럼 임플란트 기초공사를 작년에 해서, 한번 더 가야 했다. 함께 갈까 말까, 그런 이야기를 나눈 적은 있지만, 꼭 함께 가야할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신중함이 지나치고, 자꾸 일을 미루는 버릇이 있어서, 올 가을에 가보나, 이런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의사는 6개월 정도 지나서 마지막 작업을 하면 좋다고 했지만, 더 늦게 오면 안되겠느냐고 하니, 9개월 혹은 1년까지도 말미를 주는 발언을 해서, 맘속에서 긴 시간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동생과 통화를 한번 했는데, 언니는 중요한 일을 그렇게 마음대로 생각하느냐고, 충고를 해서 조금 더 일찍 가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기는 했다. 동생은 한국에 다시올 명분을 만들어준 치과의사에게 엎드려 절하고픈 심정이라고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6개월만에 다시 한국딸을 밟게 된건, 내 인생 사전에 다시 없을 행운이 아니겠는가?


내가 거래하는 여행사에서 한국 항공권 특가라며, 1월 초 안내메일이 왔다. 4월말까지 떠나는 조건으로 그동안 내가 본 항공권의 최저가였다. 문제는 결정을 며칠내로 해야했다. 작년에 엄마를 여읜 큰조카딸도 한국방문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엄마가 한국에 꼭 가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 내 둘째딸도 엄마와 함께 한국여행을 하고싶다고 말하곤 했다. 나는 사실 혼자 가면, 친구들과 더 많이 만날 수 있고 훨훨 날아다닐 수 있을 것 같다는 "검은 마음"이 속에 있었다. 그러나 딸도 동생도 조카도 함께 움직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나의 자유시간을 줄이고 같이 가보자,  약간은 내 욕심을 내려놓는 순한 마음을 먹기로 했다. 그리고 그렇게 싼 가격의 비행기표가 있는데, 말없이 사버릴 수는 없는 법 아니겠는가?


그래서 미국동생, 조카, 둘째딸에게 타전을 했다. 모두 생각지 않다가,  불이 타올랐다. 미국동생은 자신이 사는 곳 시카고에서는 그 정도로 싼 비행기가 없어서 캐나다로 와서 함께 가야 하나 생각했는데, 토론토 경유 비행기표를 싸게 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미국동생과 큰조카는 4월 16일에 떠나고 나와 둘째는 4월 24일에 떠나는 일정이 정해졌다. 돌아오는 시간은 모두가 떠나고 나 홀로 2주일후에 떠나게 된 일정이었다. 친구들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것 같았다. 일단 비행기표를 사놓으니, 한국행의 가닥이 잡혔다. 혹시 얼마에 샀느냐, 궁금하신 분을 위해 캐나다화 1399불에 샀음을 알려드린다. 이 금액은 나중에 아주 중요해진다.


그런 다음 내게는 남편의 수술이 있었고, 회복이 순조롭게 되지 않으면, 나의 한국행은 미뤄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일터에도 임플란트 시술겸 가족방문으로 간다고 허락을 받았다. 그런 모든 일이 잘 진행됐고, 4명의 한국팀이 짜였다. 우리들과는 별개로 시카고 셋째 언니와 형부도 모처럼만의 한국 나들이를 계획하고 있었으니, 한국 인구가 우리 가족들로 인해 더 늘어난 셈이 되었다.


셋째 언니 형부는 형부의 동생집으로 갔고, 나와 미국동생은 거여동 언니집으로, 둘째와 큰조카 곧 2세들은 큰딸이 살고 있는 용산 오피스텔로 가기로 거처가 정해졌다. 용산 큰딸은 자신 포함 3명 이상은 잘수 없는 공간이라고 선언해서, 나는 이모네로 가면 된다고 미리 말해줬다. 사실 딸들과의 시간도 좋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자매끼리 우리들은 이미 충분히 흥분되고 설레는 여행의 충분조건이 되는 셈이었다.


둘째와 공항에서 만나서, 남편의 배웅을 받고 탑승수속을 했다. 남편은 한국에서는 캐나다돈보다는 미국돈을 바꾸기가 쉽고, 누군가에게 용돈을 주더라도 미국돈을 주는 것이 여러모로 낫다면서 내게 미화를 바꿔다 주었다. 현금이 필요하면 이 돈을 인천공항에서 한화로 바꾸라고 하면서. 카드를 주로 쓰고, 현금이 필요할 때 쓰라고 은행에 몇번 가서 -왜냐면 시골은행이라 보유한 미화가 없다고 해서- 바꿔온 고마운 돈이었다. 어쨌든 이 돈을 배낭에 메고 둘째랑 게이트를 향해 들어오는데, 캐나다 공항에 환전소가 보였다. 작은 부스에 남자 하나가 컴퓨터를 켜고 앉아있는데, 갑자기 돈을 바꿔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들은 잘 모르겠지만, 내가 많이 현실감각이 뒤떨어지고, 숫자만 보면 머릿속이 엉켜버리는 묘한 병이 있기도 하다.


환전을 조금 해가면 어떨까? 한국에서도 하면 서로 비교할 수 있을것 같은데 혼잣말처럼 딸에게 말하고 부스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언제나처럼 딸은 왜 그러느냐, 지금 할 필요가 있느냐, 그런 말을 해주지 않는다. 그애도 나와 비슷한 성격인 셈이다. 그 사람에게 환율이 얼마냐고 물으니, 1068원이라고 한다. 미화니까 이 환율이면 엄청 나쁘게 주는 셈인데, 그당시에는 그걸  잘 모르겠더라. 1,000달러를 바꿨는데 1068000원을 받았다. 제대로 받았는지 돈을 헤아리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런 다음 게이트에 도착했는데, 무언가 이상했다. 캐나다돈이 원화와 1:1000 정도고 미화와는 1:1300 정도인데 아무래도 잘못 받은 것 같았다. 내가 둘째에게 아무래도 환전사기를 당한 것 같다고 하니, 그런걸 사기라고 하지 않는다고 약간 핀잔스러운 말을 한다. 나는 변호사인 딸에게 뭔가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했는데, 벌건 대낮에 자발적으로 내가 그리 한것이니, 사기라고는 할수 없다는 말이다. 어쩌면 멍청한 나를 보고, 제멋대로 환율을 조정해서 말했던 것인지 모른다. 캐나다 피어슨 공항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을 당한 것이 기가막혔다. 나는 사기는 아닐지언정, 그런 바가지를 씌웠냐고 고함이나 쳐봐야겠다며, 그 환전소를 찾아갔으나 금방 지나온 길인 것 같은데, 보이지 않았다. 결국 빙돌아 다시 게이트로 오고말았다.


이 사건은 남편말을 제대로 듣지 않아 생긴 일이었고, 여행초반에 가슴떨리는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나중에 한국에 와서 환전을 하니, 아주 최소한도로 계산해도 한국돈 30만원 이상을 그 환전소에서 떼어먹혔다. 내가 위에서 말하지 않았나? 값싸게 산 비행기표, 이렇게 되돌려줬다. 첫 출발이 좀 머쓱하고, 배가 아팠다.


둘째와 오랜시간 비행하게 되니, 많은 대화를 할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비행기내에서의 대화는 그리 쉽지 않았다. 서로 다른 채널의 스크린을 보게 되고, 눈을 감고 있는 시간도 다르고, 웅웅거리는 비행기 소음등으로 찻집같은 분위기는 아니므로, 말할 기분이 나지 않기도 했다. 둘째가 회사일로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데, 그 이야기를 나누기엔 장소가 좋지 않았다.


옆에서 딸을 보니, 안하던 손톱 물어뜯기도 하고, 다리를 조금씩 흔들거리기도 하고, 엄마 입장에서는 정서가 불안해보였다. 변호사만 되면 모든 것이 다 된 것 같았지만, 딸은 나름대로 또다른 성장통을 앓고 있는 것같다. 입사 초기라고 할 수 있는데, 올초에도 1주 휴가받아서 멕시코를 다녀왔고 해서 한국여행은 갈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여행에 나선 것을 보면,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구나 싶다.


한국에 도착했을 때 회사에서 쓰는 핸드폰과 충전기를 잃어버린 사실을 알게 됐다. 둘째는 일을 완전히 안할 수는 없어서 한국에 있는 이틀 동안 호텔에 머물면서 온라인 코트에도 참석하고 미팅도 하고 했다. 그 아이의 일의 성격이 어려울 것이라는 것뿐, 충분한 의논상대가 되어주지 못해서 미안할뿐이다.


나는 환전에 실패하고, 둘째는 회사의 기물을 잃어버렸고, 우리의 시작은 조금 휘청였지만, 그 모든 일은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할뿐, 우리들의 어드벤처가 시작됐다.



작가의 이전글 3일간의 어떤 여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