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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y Dec 23. 2022

비정규직이라고나 할까

아직은 먼 은퇴의 길

가게를 팔고, 준은퇴의 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준은퇴"라고 할때, 그 여유가 감미롭게 느껴졌다. 남편은 일을 하게 될것이고, 나는 뒤에서 조용히 살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필요하면 일을 하면 되겠지 쉽게 생각했다.


숫자에 둔감한 우리 부부가 우리 수준에서 빗장을 풀고 지출을 한 결과,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결론에 부딪쳤다. 해방감에 한껏 기분을 낸 다음, 그제서야 실체를 보게 되었다고 할까. 아직은 은퇴라는 단어를 읇조릴 만한 여건이 아니라는 말이다. 


또한가지는 한국맛을 보고 온 내게 캐나다의 생활은 너무 단조롭고 심지어 지루하게까지 느껴졌다. 무언가 시작해야 될때가 온것 같았다. 캐네디언 회사에서 일했으면 한다는 나의 바램에 노동강도 때문에 "당신같은 사람은 일하기 힘들다"고 겁을 주던 남편이 적극적으로 일해보라고 부추겼다. 


그나마 도시로 옮겨왔기에 일터를 찾기는 그리 어렵게 생각되지 않았다. 내가 할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그동안 갈고닦은 "캐쉬어"의 일이었다. "모집공고"를 창문에 붙인 그곳에 들어가 입사원서(?)를 받아왔다. 원서를 내고 온 그날, 전화가 왔는데, 묵음이어서 받지를 못했다. 다시 전화를 했지만, 이번에는 그쪽에서 받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구직기는 조금 더 스토리가 이어진다. 거의 몰아부치는 남편을 보면서 약간 서운하기도 했다. 어쨋든 이력서를 몇장 만들었다. 참으로 간단한 이력서다. 캐나다 이력은 한국계 신문사 근무, 그리고 편의점 23년간 운영이 다다. 


누구나 알만한 소매점 몇곳에 이력서를 갔다줬다. 이력서를 주는 것도 용기가 필요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붙잡고, 이력서를 내러 왔다고 말하는 것부터 말이다. 


처음에 전화가 왔던 곳에 어떤 사람이 받아서 메세지를 남겼는데, 며칠후 연락이 되었다. 다시 연락을 준다고 하더니 또 감감무소식이다. 내가 그 회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이 일해서, 내년 한국을 한번 더 방문해야 하는 나로서는 자리를 비우는게 상대적으로 더 나아보였다. 


그 회사의 담당자가 인터뷰하러 오라고 했다. 식품점 뒤쪽 물건들이 쌓인 곳을 지나 이층으로 올라갔다. 일대 일 인터뷰였는데, 왜 이곳에 취직하려고 하느냐, 당신의 장점은 무엇이고 단점은 무엇이냐 등을 물었다. 그리고 신문사에서 일했는데 왜 이런 곳에서 일하느냐고도 물어봤다. 나는 있는 그대로, 신문사는 한국말을 쓰는 곳이었고, 아무래도 영어가 딸리고, 또 힘쓰는 일을 잘하지 못해서 캐쉬어 일을 하고싶다고 했다. 이 회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물건값이 저렴하고, 물건이 좋다, 그리고 매장이 넓은 것도 장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캐나다에 산지 30년도 넘어가는데, 영어가 딸린다는 말을 할수밖에 없는 나자신이 한심하지만, 사실인 것을 어찌하랴. "영어"를 포기하지 않고, "한번 해보자" 마음먹었던 적이 있었고 나름대로 노력했기에 그나마 추진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기도 했다.


그렇게 파트타임 일을 시작하게 됐다. 그것이 벌써 한달이 되어간다. 


이제 우리(?) 회사를 소개하자. 대형 체인점 Loblaws 계열 식품회사중 하나이다.  싸고 품질은 적당히 괜찮은 물건들을 찾는다면 우리 식품점이 정답이다. 이 회사의 가장 특별한 점은 노란색으로 포장된 "No Name" 브랜드를 생산,판매한다는 것이다. 브랜드를 키우느라 모두들 피터지는 싸움을 벌이는 와중에 "노 네임"을 "네임"으로 한 그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노네임이란 브랜드는 가장 싸게 판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다른 브랜드보다 30% 정도 가격이 싸다. 디자인은 노란색 바탕에 검은 계열 글씨가 다다. 모든 포장이 그렇고, 디자인을 통일하니, 생산비 절감이 눈에 보인다. 예전에는 박스채 매장에 전시하고 물건을 팔았다고 나온다. 지금은 선반에 대부분 진열한다. 버터, 치즈, 빵, 통조림 종류, 화장지, 파스타, 밀가루, 칩스 등 없는 거 빼고는 거의 다 있다. 상대적으로 다른 브랜드보다 천시당하는 느낌도 있지만, 브랜드에 집착하지 않는 소비자에게는 좋은 선택이 된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남편 말에 따르면 같은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에 옷(브랜드)만 다르게 입혀서 내보내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노네임 베글빵. 심플이라고 쓴 것처럼 심플한 디자인이다.


최근에 식품가격이 올라 원성이 자자한 중에  "노네임 브랜드 가격 동결"을 선언하고 내년 1월말까지 같은 가격으로 팔고 있다. 이 회사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그냥 물건값이 싼 식품점으로만 알고있었지만 그에 더해서 잘 운영이 되고 있는 회사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


로얄티 카드를 물건살때마다 적립해주고, 몇몇 아이템은 회원들에게는 더 싼 가격에 물건이 나간다. 다른 회사들도 그렇게 한다고? 캐쉬어인 나는 로얄티 카드를 가져왔느냐고 꼭 물어보게 되어있다. 잊고 있던 사람도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꺼내서 포인트 적립을 한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니, 모인 포인트를 쓰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500달러가 모인 사람도 있고, 천차만별이다.  


또 하나 가격매치를 해준다는 점이다. 다른 식품점의 세일하는 품목에 대한 지면광고나 온라인 광고를 가져오면, 그 가격에 맞춰서 살 수 있다. 


이런 것들이 소비자에게는 장점이지만, 초보 캐쉬어로서 힘든 일이 많이 발생한다. 지금은 조금 적응이 되었지만, 광고지 가격, 날짜 확인은 필수이고, 어느 회사 것인지 그 모든 것들을 확인하고 순서대로 입력해야 한다. 물건 하나 스캔하는데 걸리는 시간의 세배쯤 들어간다. 가격 차이가 많이 나면, 매니저(급)를 불러야 한다. 기계가 멈춰서서, 매니저가 입력해야 그때서 넘어간다. 


공짜 쿠폰이나, 할인쿠폰도 모두 받고, 회원들은 자신의 백을 가져오면 백값을 돌려주기도 한다. 택스를 내지않는 인디지너스(indigenous, 캐나다원주민) 사람들은 조금 더 까다롭다. 택스를 받지않는 대신, 모든 인적사항을 기입해야 하고, 영수증까지 따로 모아놓아야 한다.


물건의 종류가 많은데, 스캔할 수 없는 야채, 과일등은 코드 번호를 입력해야 하는데, 이것도 또 캐쉬어의 할일이다. 많이 사가는 파, 브로콜리, 샐러리 등은 기억하는데, 모르는 것은 코드를 확인해야 한다. 경험많은 캐쉬어와 초보 캐쉬어와의 실력차이가 보이는 지점이다. 


고객과 분쟁이 될 소지가 될 요소들이 많이 있다. 그런 일이 발생하면, 줄이 길게 늘어서 있으면 땀이 난다. 내가 겪은 고충중에는 어느날은 무게를 재는 저울이 고장나고, 어느때는 프린터가 고장나고, 어느때는 서랍이 안열리고 그런 기계적인 문제들도 많았다. 그러면 이쪽 라인에서 저쪽 라인으로 옮기기도 한다.


최고 어려운 점을 꼽으라면, 사내 방송을 할때이다. 손님이 가져온 우유가 새서, 다른 우유를 갖다줘야 할 경우라든지, 안에서 일하는 사람을 불러야 할 경우가 있는데, 내가 방송하면 아무도 안나타나는 게다. 캐쉬어들이 대부분 초보 캐쉬어에게 친절한데, 한명 나이든 그분은 성격이 깔깔하여 조금 쎄한 면이 있었는데, 내게 "분명하고 크게 방송"하라고 역정 비슷한 것을 내서 좀 힘들었다.


그날은 여러모로 힘든 날이어서 이 일을 내가 계속할 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며칠후 준 매니저급이 되는 마틸다라는 직원이 김치를 좋아한다기에 조금 싸다 주었더니, 어려운 점이 없냐고 물어본다. 페이지할 때 힘들다고 했더니, 자신도 영어가 서툴러서 처음 일할 때 힘들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중국인인 것 같다. 남편이 캐네디언인데 한국에서 2년간 일했었기 때문에 한국음식을 좋아한다면서 호감을 보인다.


그말을 듣고보니 위로가 되었다. 페이지할 때 다른 사람들의 말도 잘 들리지 않는다. 수화기에 입을 대고, 쩌렁쩌렁 울리도록 해야 다른 사람의 귀에 들리는가 보다. 친구중 한명이 나보다 먼저 월마트에 취직한 이가 있는데 그녀 역시 페이지가 가장 힘들다고 했었다. 발음도 부정확하고, 페이지하는 법도 익혀야 한다.


각자 쉬는 시간이 다르다. 그러니 직원들과 옹기종기 대화를 나눌 시간이 거의 없다. 2시간 일하고 15분 쉬는 시간을 주는데, 그 시간에 화장실 한번 가고, 집에서 싸온 간식을 먹으면 후딱 지나간다. 전화기를 확인하는 것도 그 시간이다. 7시간 정도 일하면 중간에 30분 휴식시간을 주기도 했다.


현재 내가 얼마씩 받는지도 모르고 일하고 있다. 돈은 들어오는데 앱으로 들어가야 나의 주급 명세서를 확인할 수 있는데, 자꾸 에러가 난다. 그것을 봐달라고 해야 하는 시간을 찾지못하고 있다. 회계 매니저가 한번 봐줬는데, 그녀도 실패했다. 거의 100% 미니멈 페이(최저임금)를 받을 것이다. 시간당 15. 50달러이다. 가게를 운영할 때는 미니멈 페이가 높아서 사람쓰기 힘들다고 울상이었는데, 미니멈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 되고나니, 이정도 받는 것이 많은 것이 아니었다는 걸 실감한다.


이 일을 하면서, 하찮은 일은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는다. 하찮은 사람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정말 쉬지않고 일하게 하는 이 시스템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엊그제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기계도 멀쩡했고, 고객들과 소통도 하면서, 무리없이 일을 했다. 원래 7시까지였는데, 1시간 더 일해달라고 해서 1시간 더 일하고 왔다. 한번인가 페이지 할 일이 있었는데, 옆 라인 캐쉬어가 대신 해줬다. "마이 디어, 두유 니드 백스?" 등 쉬지 않고 고객에게 말을 던지는 캐쉬어를 등뒤에 두고 일하니 많이 배우게 된다. 죽었다 깨나도 고객에게 "마이 디어.."를 할수는 없게 될지라도 말이다.


크리스마스 시즌때라서 고객들에게 "food bank" 도네이션을 요청하라고 오더가 떨어졌었다. 2불, 도네이션 하겠느냐고 고객에게 물어야 한다. 몇번 하지 않았더니 매니저가 손님들에게 물어보라고 요구해왔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고 일일이 물어봤다. 한껏 아름다운 표정으로, 약간은 구걸하는 표정으로 "푸드뱅크에 2불 도네이션 하겠어요?" 하고 묻는다. 그렇게 해서 그날 꽤 많은 사람들에게 도네이션을 받았다. 지난번에 했는데, 하고 거절하는 이도 있고, 노땡쓰 하는 이도 있고, 즐겁게 도네이션 하는 사람도 있다. 거절을 받아야 할때, 거절해야 할때 그 마음의 작은 떨림이 있다. 나도 쇼핑할때 거절을 95%는 하니, 거절받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도네이션한 사람들, 그들에게 묻지않았다면, 그만큼 기부금이 줄어들었겠고, 착한 일할 기회를 내가 주지 않은 게 된다. 우리 회사에서는 이렇게 매년 아이들을 비롯 자선단체에 많은 기부를 하고있다고 한다.


식품점 출구 부근에 구세군 자선남비가 설치되어 있고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오는데, 어느날 한 청년이 왔다. 눈을 마추치기를 원하는 사람처럼 나하고도 눈이 마주쳤고, 내게만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렇게 모든 사람과 눈을 마추치면서  아름답게 미소짓던 청년은 캐롤송을 있는내내 불렀다. 그 청년의 목소리에 반해 나도 구세군에 도네이션 했는데, 요즘은 카드 도네이션이 됐다. 탭만 하면, 돈이 들어가게 개발되었다 한다. 구세군 남비도 있고, 며칠하고 나니 더이상 푸드뱅크 도네이션하겠느냐는 이야기는 안나온다. 매니저가 다시 한번 물어오면 또 시도해야지.


캐쉬어인 나도 고객으로 쇼핑을 하기도 한다. 내가 고객으로 대접받고 싶은 대로 그대로 하는 것이 내가 할일이다. 글을 쓰면서, 웹사이트를 뒤지다가 흥미로운 소비자의 댓글을 발견했다. 잘 차려입고 쇼핑도 해보고, 허름하게 차려입고 쇼핑도 해본, 실험자가 캐쉬어가 잘차려 입었을 때와 그렇지 않을때 차별하는 것을 느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 쇼핑을 위해 광고전단지를 열독하고, 전부 가져와서 그 품목만 싸게 사는 열혈 손님들, 어찌 보면 진상일 수도 있지만, 이 제도를 유지시켜주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나로서는 그런 문제소지가 많고 회사에 큰 이득이 없을 것같은 제도는 없애버렸으면 한다만서도.


물건을 엄청 사고, 카드를 긁었는데, 카드 한도초과로 나오는 어떤 할머니는, 신용카드를 포함 여러 카드를 시도하다가 결국, 지갑에 있는 돈 80달러를 내고 나머지를 카드로 하려고 했는데도 무슨 일인지 한도초과로 나온다. 이도저도 못하게 되어서 물건을 맡기고, 집에 가서 돈을 가져와서 물건을 찾기로 한다. 이런 고객이 생기면, 물건을 컨베어벨트에 올려놨던 손님이 다시 다 걷어들이고 다른 라인으로 가야한다. 이렇고 저런 일들이 매일같이 일어나는 곳에 나는 출근한다. 나보다 모두 경험이 오래된 사람들이 일하는 곳, 고등학생들도 당당히 일을 잘하는 곳에서 초짜 캐쉬어로 일한다. 나보다 늦게 들어온 한분은 내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분은 내가 초짜인줄 모르므로. 그분에게 하나 알려주며, 도움을 받는 것보다 도움을 주는 것이 훨씬 좋다는 것을 또 깨닫는다. 다른 캐쉬어들도 그런 과정을 거쳐서 경험자가 되었을 것이다. 도움을 청하는 나는 미안하지만, 나름대로 돕는 기쁨이 그들에게 있기를 바라며, 이해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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