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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y Jul 05. 2022

이제 아무데나 갈수 있다

함께 하는 기쁨 

그렇게 가게문을 나서고 우리가 한일은 무엇이었을까?  온갖 이사짐으로 가득 쌓여있는 집으로 가는 대신, 남쪽으로 차를 몰았다. 마음에 걸리는 일이 하나 있었다. 이사 기간 동안 한번도 오지 않았던 막내를 봐야했다. 부모가 자식의 도움과 관심을 필요로 할때 그애는 오지못했다. 큰 이유는 우리를 도우러 온 큰언니와 마주치기 어색하다는 이야기였고, 우리도 그점을 염려했기에 오라고 하지는 않았다. 


인벤토리 하는 날, 풀지못할 수수께끼가 있었다. 6시에 가게문을 잠그고, 인도계 청년들로 구성된 인벤토리팀이 도착했고, 그들이 열심히 해서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아 마감이 되었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메디슨이 옆건물 식당주인에게 받았다며 전화기를 건네주었다. 그 전화는 막내의 전화였다. 


부모의 마지막날을 걱정해서 왔다가, 문이 잠겨 들어오지 못했나, 어떻게 아이는 안오고 전화기만 왔는지, 마음이 심난하였다. 막내의 전화기는 우리손안에 있었고, 남자친구에게 전화해도 받지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일인지 확인해야 했다. 


그렇게 가게를 어깨에서 내려놓은 날, 막내딸집으로 가서 아파트문을 두드렸다. 그애는 무사했다. 그리고 천천히 자초지종을 들으니, 인벤토리하는날, 옆집 레스토랑에 들러서 커피를 사고는 전화기를 두고왔다는 것이다. 엄마 아빠를 볼 마음자세가 되어있기 않았기에 보지않고 돌아왔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묻지않는다.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아이이므로. 막내와 남자친구는 그날 갑자기 오웬사운드에 왔었다고 했다. 시청에서 결혼하는 친구가 증인으로 와줄 수 있느냐고 부탁을 해서 그들의 결혼식에 가서 증인서약을 했다며 사진을 보여준다. 인디언 여자인데 신랑은 서양청년이다. 남자쪽 부모가 반대해서 아이까지 낳고 사는데, 이제서야 결혼식을 했다고 알려준다. 아주 감동적인 시간이었다고. 


누구나 그럴싸하게 주위의 시선을 받으며 결혼식을 치르는 것은 아니다. 우리 막내처럼, 막내의 친구처럼 시작이 조금 다를 수 있다. 어쨋든 막내와 남자친구는 잘 있었다. 물론 방은 엄청 정신없었지만, 그리고 둘다 전화기를 잃어버리는 불상사가 있어서 소통이 불가했지만, 무사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전화 딜리버리를 마치고, 함께 밖으로 나와서 저녁을 먹었다. 가게를 판후 첫번째 남편과의 외출이었다. 그렇게 만남을 끝내고, 우리는 이밤을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했다. "호텔"을 좋아하는 남편은 근처에 있는 호텔에서 하루밤 자고 가자고 했다. 웬만하면 반대하지 말자, 마음속에 갈무리를 해두고 있는중이라, 그에게 맡겼다. 호텔에 혼자 갔다오더니, 너무 비싸서 안되겠다고 말한다. 하룻밤에 3백달러를 넘게 내라니. 그래서 조금 더 운전해서 가자고 했다. 키치너쪽으로 갈때까지 적당한 데를 못찾으면 사촌오빠네나 내 동생네에 쳐들어가면 되니, 그리 큰 돈을 쓸 필요가 없지 않겠나.


전화기로 호텔을 찾으며 내려가다 보니, 한 건물이 보였다. 이곳은 가격이 너무 괜찮았다. 하룻밤 자는데 수수하게 자면 되지, 하면서 올라갔는데, 처음엔 우리 방을 찾지못했다. 럭셔리라고 사인이 붙은 방이 있어서 그걸 건너뛰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방이 우리방이었다. 그다지 많은 돈을 지불하지 않았는데도 그 방이 얼나나 크고 좋던지.. 참으로 묘한 날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왼쪽 어깨쪽에 있던 통증을 느낄 수 없었다. 만세 자세로 자는데, 잠이 깨면서 손을 내릴 때마다 통증때문에 신음소리를 내곤 한다. 그런데 그날은 손이 저절로 내려왔다. 신기해서 몇번이나 올렸다 내렸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지만, 그때 웬 선물이 이리 한꺼번에 오나, 싶었다. 그날 하루 어깨통증이 없어졌었고, 슬며시 통증은 다시 내게로 찾아왔다.


헬퍼를 두지않고 장사한지 1년이 넘어가다보니, 둘이 함께 외출하는 것 자체가 큰 기쁨이었다. 


장기간의 계획을 짜지는 못했지만, 가게를 접고나서 하고싶었던 일이 있었다. 거의 허물어진 교회를 봉합하느라 토론토에 있는 목사님이 우리 교회 임시당회장으로 일하고 계신다. 그분이 섬기는 양문교회 예배를 온라인으로 드려왔다. 그 예배를 대면으로 참석하고 싶었다. 


첫번째 주일, 언니와 함께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교회로 향했다. 온라인에서만 보던 교회였는데, 사실 인간적으로는 많이 놀랐다. 교회 규모가 생각보다 훨씬 작았다. 그런데 양문교회 목사님은 우리 교회를 포함 우리 교회보다 더 먼곳에 있는 서드베리교회까지 임시당회장으로 수고하고 계신다. 이 두교회 교인들을 함께 보듬으며 나가는 그 교회, 아주 작은 숫자의 성도를 위해서 온라인 유튜브를 운영하고 계신 그 정성에 몸둘바를 모르겠더라. 물론 코로나를 거치면서 본교회 교인들을 위해 만들었겠지만, 예배시간에 기도해주고, 언급해주는 그 정성으로 말라죽어가는 우리 교회 교인들의 심령이 조금씩 은혜로 젖어가고 있음이 너무 감사했다. 


그날은 마침 어머니날이어서 "어머니들께 특별 식사 대접과 선물"이 있었다. 영어권 젊은이들이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다는 이야기를 목사님으로부터 들었는데, 그들이 국을 끓이고, 샐몬 회덮밥을 준비했다. 옹기종기 모여서 함께 식사를 했다. 그리고 아침에 나갈때 너무 쨍한 햇볕인데 썬크림을 바르지 않아 염려되는 날이었는데, 선물로 썬크림을 받았다. "썬크림까지 주시는 하나님"이라며 함께 웃었다.


이제 하고싶은 일을 하나씩 할 수 있는 시간들이 넓게 주어졌다. 



5월 7일의 기도


내일 양문교회 예배에 갑니다.

주님, 이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의 영혼에 단비를 내려주소서.

우리를 은혜로 덮어주소서.


주님 바로바로 일어나게 하소서.

누군가 도움이 필요할 때 알아채게 하소서.

뜸들이지 않고 그 고통에 동참하게 하소서


엄마, 그 다치신 팔, 혼자 골절된 부위 맞추는 병원에서 얼마나 고생하셨을지

병원에 막 달려가서 문을 두드리지 않았음을 회개합니다


나의 기쁨과 나의 안위만 찾지않게 하소서

자매들과의 시간에 빠져 그것으로

내 시간사용의 정당성을 인정받으려했던 저를 용서하소서


주도적으로

주님이 주시는 생각에 따라 일하게 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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