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dy Oct 05. 2023

단풍을 찾아서

딸들의 여행

여행의 시작

엄마는 캐나다에 오셔서 보험을 들었다. 당신의 생명보험이었는데, 그것을 언니에게 남기셨다. 요양원에 들어가실 때, 현금 한푼 가져가시지 않았고, 남아있는 값진 것들은 아무런 것도 없이, 당신의 마지막을 준비하셨다. 그러나 눈을 감아도 생각날 그녀, 미혼이면서 어릴때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한 언니는 엄마가 마지막까지 돌보고싶은 자식이었던 것같다.


근 30여년간 매달 꾸준히 보험을 들었고, 장수하셔서 들어간 돈이 얼추 받을만큼 된 것같다며 기뻐하시기도 했다. 그렇게 생긴 돈으로 언니는 작년에 차를 한대 샀다. 엄마가 남긴 귀중한 돈을 값있게 써야 한다면서 그전에 타던 차를 갖다 주고 새차를 구입했는데, 그차의 사양을 기본옵션으로 해서 사용하기가 불편하다고 했다. 특별히 트렁크문을 손으로 들어올려야 하는데, 언니의 작은 키와 힘의 한계로 트렁크 한번 열기가 힘들다고 했다. 작년 로드트립을 했던 언니는 차박하기에 좋은 SUV차를 골랐는데, 차체가 높아서 생긴 문제였다. 동생들은 언니의 고충을 직접 보면서, 차를 바꾸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해서 차 딜러샵을 찾고 함께 가고 하는 작업을 작년에 했었다. 우리가 한국에서 귀국한 날, 영문도 모르고 딜러샵에 따라갔다. 언니와 동생이 함께 마중나와 있었다. 언니차를 딜러샵에 주고 동생차를 타고 집에 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딜러샵에 갔더니, 새차  가격이 공지가 되지 않았단다. 그래서 그때는 차를 도로 가져왔다. 며칠후 차가격이 나와서 우리는 다시 한번 토론토 나들이를 했다. 언제 새차가 나올지는 모르나, 다음해 5월 정도면 될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이렇게 이 차는 시작부터 사연이 많았다. 미국에 사는 동생들이 토론토를 왔을 때 도와줬고, 나와 남편은 그 일을 인계받아 조금 도와줬는데, 차가 나올 시간이 되어서도 연락이 없어서 그 일은 또 "잘 따지는 지인"이 도와주어야 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중고차 가격 상승과 새차 주문의 전쟁통에 언니도 그 파편을 맞았다. 여러 사람의 도움과 언니의 인내심으로 드디어 전자동화된 새차를 언니가 받게 되었다. 우리는 이차를 타고 언제 여행을 떠나야지, 그렇게 이야기들을 했다. 


3일간 묵었던 우리의 아름다운 숙소앞에서. 6일간 우리의 발이 되어주었던 엄마의 선물, 언니의 차.


미국에 있던 동생이 아이들이 있는 토론토에 한동안 머물게 됐다. 이제 슬슬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하여 엄마의 딸들 4명의 여행계획이 세워지게 됐다. 



4박5일이 5박6일로


처음부터 단풍이야기가 나왔던 건 아니다. 나는 길어야 사흘 정도 짧은 여행을 생각했고, 모두 원하는 것과 가보고싶은 곳이 달랐다.


캐나다 동부해안 마을은 모두가 관심있지만, 시간을 충분히 들여야 하는 것이라서 쉽지 않아서 제외됐고, 그 다음에 퀘벡이 물망에 올랐다. 몇번 가보기도 했고, 도시여행이라 크게 당기지 않았다. 내가 가보고싶고 만만해보이는 곳이 있다면, 단풍기차가 있다는  아가와 캐년(agawa cayon)이었다. 여행사에서 매해 가을마다 사람들을 모집해 떠나는 여행패캐지가 있기도 하다. 그래서 그곳을 제안했더니, 모두가 좋다고 흔쾌히 말해줬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계획이 단풍이 들기 시작할 9월말쯤으로 생각했는데, 마침 동생네 시댁 조카의 결혼식이 있어서 시간을 앞당기기로 했다. 대범하게도 주일을 끼고 하는 여행을 계획하기로 했다. 파트타임잡이니, 두주에 걸쳐서 이틀 정도씩 빼면, 5일 정도 시간을 쓸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간내기가 가장 힘든 막내도 조정해보겠다 했다.


다음에 남는 문제는 숙박시설 예약과 기차예약등이었다. 나와 토론토 동생이 이 일을 맡았다. 숙박시설을 찾으면서 내안에 있는 "성급함"을 목격했다. 막 질러버리고 싶은 심정말이다. 인터넷 예약 사이트에 들어가면 다른 사람의 동의없이 바로 결제하고싶은 조급함에 빠진다. 지금 하지 못하면 그 자리가 없어질 것 같고. 어쨌든 최대한 억누르고 모두의 동의를 구한다고 했지만, 일을 빨리 마무리짓고 싶은 생각에 결제를 누르고 난 한 숙소에서는 본인들의 타월과 bed linen을 준비해오라는 안내문구가 있었다. 처음에는 이말이 이불이 없다는 이야긴줄 알고 식겁했다. 그렇지 않아도 작은 차에 모두의 짐을 실어야 하고, 언니의 전동차와 워커가 있어서 자리가 좁아 고민이었는데, 만약 이불까지 끌고 가야한다면 어쩐단 말인가. 다시 문의해보니, 이불속에 깔고 덮는 침대시트를 이르는 말이었다. 벼갯잇까지 말이다. 이런 것을 준비해가야 한다는 것이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나의 실수로 그런 집을 얻었으니 어쩌겠는가. 우리 동네에서 아가와 캐년으로 떠나는 기차가 있는 수센마리(Sault Ste.Marie) 도시까지는 육로로 가면 8시간 정도 걸린다. 너무 서둘러서 가지 말자는 의견에 중간 지점인 서드버리(Sudbury) 근처에 숙소를 잡아놨었다. 에스파놀라(Espanola)에 있는 이집이 문제의 그집이다.


여행준비중에 나의 큰 실수가 또한번 드러났다. 분명히 9월 넷째 주 금토와 그 다음주 월화에 "휴일(day off)"을 신청했다고 생각했는데, 그주 토요일에 내 스케줄이 있었다. 대신 목요일은 스케줄에 없고. 식은땀이 났다. 이미 예약이 되어있고, 여행중이어야 할날에 일을 해야 한다고 하니 말이다. 바로 "따지러" 사무실에 갔더니, 내게 노트를 보여준다. 내가 목, 금요일 오프를 신청해놓았던 선명한 글씨가 보인다. 그리고 그 다음주 월요일에는 오프해놓았는데 화요일은 적어놓지 않은 사실도. 참으로 지금까지도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를 일이다. 다른 사람을 찾아보라고 했다. 간신히 내 대신 일할 사람을 찾았고, 화요일도 휴일(day off)을 신청해 놓았다. 결국 나로 인하여 4박 5일이 5박 6일이 될수도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됐다. 막내도 어렵게 다시 시간을 빼고 해서 우리들의 5박6일 계획이 완성되었다. 하루가 저절로 얻어졌으니, 조금씩 수정에 들어갔다. 이미 얻어놓은 두 군데의 숙소에다 하룻밤은 매니토우린 섬(Manitoulin Island)에서 자면 어떻겠는가 하는 의견이 나왔다. 빙 둘러가는 것이 아니라, 물길을 통해 토버모리(Tobermory)에서 떠나는 치치만이란 배를 타면 사실은 질러 간다고 볼수 있다. 매니토우린 섬은 원주민(indegenous)들이 많은 지역이다. 온타리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원주민들이 널리 퍼져있다.


매니토우린 섬에서 


치치만을 타고 매니토우린섬에 잘 내렸다. 언니는 작년 서부 로드트립중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GPS가 안내하는 대로 오다보니, 배를 타고 토버모리로 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배안에 차를 정차해 놓은 곳을 찾지못해 내려야 할때 큰 곤란을 당했었단다. 혼자, 처음 하는 여행에서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싶다. 우리들처럼 재빨리 뛰어다니며 알아보기도 어려운 언니였으니. 언니를 위해 사방팔방 뛰어준, 천사같은 남자가 없었다면 모두의 차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언니는 식은땀을 흘리며 여러 사람들의 눈총을 받게 되었을 수도 있었겠다. 언니가 탄 배는 치치만은 아니었다고 했다. 어쨌거나 치치만배는 큰 큰 식당이 있고, 배 전경에는 해변가에서 볼만한 비치의자가 놓여있기도 하고, 삼삼오오 앉아서 대화할 수 있는 벤치와 테이블도 있고 시원했다.  운전하지 않고 편안히 잔잔한 물을 보면서 가는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매니토우린 섬은 아이들 어렸을 때 캠핑차 왔던 곳이기도 하다. 폭포 주변에서 아이들이 놀던 기억이 난다. 매니토우린에 잡아놓은 우리의 숙소는 아담한 모텔이었다. 작지만, 옹골차게 꾸며진 깨끗하고 편안한 곳이었다. 이곳에서 첫날을 묵게 된 것이 얼마나 좋던지. 그 어느곳보다 해지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사람들의 평에 이끌리어 해지는 곳을 찾아나섰다.


토버모리에서 매이토우린섬으로 떠나는 치치만 배. 

차가 거의 없는 곳, 작은 마을이 보일 뿐이고. 기름넣을 곳을 찾는 것도 어려워보이는 그런 한적한 섬이었다. 우리는 유명관광지를 찾아온 것이 아니라, 그저 예전부터 있었고, 앞으로도 한동안은 같은 모습을 지니고 있을 자연을 찾아온 것이 분명했다. 여러 사람이 추천하는 곳중에서 함께 갈수 있는 곳으로 제한하다보니, 면사포 폭포(bridal veil falls)는 볼수 있었다. 언니는 계단을 내려오지는 않고, 위에서 내려보고 우리는 마침 낚시를 끝내고 퇴장해주는 커플을 이어서 역시나 공간을 독차지하고 감상할 수 있었다. 그 뒤로 한팀이 더 왔던가?


아른아른거리는 신부의 면사포를 연상시키는 폭포. 이곳뿐 아니라 같은 이름의 폭포가 많다는 것을 발견한다.


도로를 달리다가 좋은 곳이 있으면 쉬어가자, 가 우리의 모토였다. 첫번째 잠시 쉬었던 곳이 호숫가였다. 피크닉 테이블이 있는 곳, 우리를 기다렸다는듯이 반월형 호숫가에는 아무도 없이 우리뿐이었다. 그렇게 조용하고 평화로운 관경은 많은 시간 우리와 함께 했다.


물로 둘러싸여있지만, 서쪽 호숫가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지도따라 가다가, 어느길인가로 접어들었는데, 분위기가 싸했다. 그리고 휙 지나쳤지만, 조금은 무례해보이는 사인판이 있었다. 바로 "사유지 private property" 사인이었다. 그 사인판에는 "너 이곳에서 어정거리지 마, 뒷일은 책임못져" 이렇게 해석할 수 있는 욕 비슷한 내용이 있었다. 우리는 깜짝 놀라서 차를 돌리지도 못하고 뒷걸음질쳐서 빠져나왔다. 이렇게 한번 사유지 경고를 받고보니, 의기양양함이 자취를 감추고, 해지는 곳에 도착하기전에 시간이 넘어버릴 것도 같아서 온길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구비진 길을 운전하는데 뒷좌석의 언니가 환성을 지른다. 너무도 큰 해가 등뒤에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장면을 발견하진 못했지만, 내옆 들판으로 떨어지는  해에 숨을 흡 들이켠다. 나무들에 막혀서, 볼만한 곳은 휙 지나쳐서 제대로 된 해는 구경하지 못했지만, 특별히 더 크게 보이는 섬에서의 해를 등뒤로 남기고 숙소로 돌아왔다.


우리의 일몰을 보고자 하는 갈망은 첫날밤부터 생겼다. 마지막날까지 해가 지는 시간이면 종종 거리며 볼만한 장소를 찾았고, 마지막날 아무도 없는 적당한 곳을 발견해서 그곳에 오래 놀면서 해가 호수 아래로 내려가길 기다리는데, 해넘이 몇분전, 내가 발견했다. "사유지" 사인을. 이렇게 좋은 호숫가에 왜 아무도 없는 거야, 하면서 노래도 하고, 자리를 깔고 눕기도 하고, 진흙처럼 고운 모래가 있는 해변을 바지를 걷고 걷기도 했고, 또 내 발에 모여드는 송사리떼의 간지러움에 숨죽이며 웃었던 그곳이 바로 사유지였던 것이다. 그 사유지는 아마도 주인이 근방에 없는지, 우리들의 침입을 눈치해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사인을 보지 못했기에 그곳에서 마음 편히 놀수 있었지, 또 해질 곳을 찾아다니다가 그 시간을 넘겨버렸을 수도 있다.


사유지에서 한바탕 놀고 있는 중^^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개인이 소유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지금은 물가쪽을 사유화 하는 것들이 더 까다로워지지 않았을까 싶지만 현실을 잘 아는 것은 아니다. 이번 여행에서 그 사인들은 우리의 발을 돌리게 하고, 기개를 떨어뜨리는 데 큰 기여를 했지만, 그건 아주 작은 일이었을 뿐임을.


매니토우린 섬에서 방문자센터를 찾아서 환호성을 세우며 차를 세웠지만, 이미 시즌이 지나서 문을 닫았더라. 관광객을 위한 어떤 것도 특별히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고 할까. 유럽의 마을들은 관광객이 너무 넘쳐 주민들이 아우성이라는데, 우리의 이 한적한 여행은 오히려 축복이 아닐까싶었다. 이곳도 유명한 트레일이 많으며 그 안에 들어가면, 더 많은 것을 만났으련만, 우리는 발동이 충분히 걸리지 않은 여행 초기였기에  쉬엄쉬엄 하기로 했다.


섬에서 사슴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무스의 사인도 보이고, 그들이 이곳의 주인이고 우리는 방문객임을 알수 있었다. 다음날 길을 가다가 바위가 널찍하고 작은 호수가 있는 곳에 차를 세웠다. 점심도 먹고 놀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차가 가끔씩 지나가는 길이고, 이름도 없는 길가 쉼터지만, 우리에게는 어떤 관광명소보다도 훌륭했다. 나중에 보니, 바위를 깎아낸 곳이었다. 숙소에서 밥만 해와서 집에서 가져온 밑반찬과 밥도 먹고, 동생은 비좁은 차에 기타를 싣고와서 연주를 하기 시작한다. 음악여행이 되어갈 예정이다. 저멀리 오래되어 떨어져 나간 "사유지" 사인판이 보이는 곳이었다. 우리가 앉아있는 곳은 아니지? 하면서 또한번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주인장"의 모습이 어른거리는 듯하다.


매니토우린 섬에서의 한나절. 노란꽃은 야생화처럼 하나님앞에 아름답게 피어있고 싶다는 동생을 닮아 촬영했다.











작가의 이전글 거제도와 통영 꼭 가고 싶었는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