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햄프셔 여행 3
이제는 여행의 시작과 끝을 말해야겠다.
짐작하겠지만, 하이킹 팀원 6명의 4박5일 일정의 여행이 계획되었다. 그동안 하이킹하면서 서로를 알아갔고, 하룻밤 자는 여행도 두번이나 함께 하면서 연습이 되었다. 2명이었다면 실행에 옮기기 힘들었을 여행이었고, 4명이라고 해도 어떨지 모르겠다. 그러나 6명이 되니 각자의 강점을 살리고, 부족한 것은 타인의 도움을 받는 그래서 자급자족이 가능한 여행이 되었으면 했다.
잘맞지 않아서,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등 여러가지 이유로 친구들과의 여행에서 뒷맛이 개운하지 않은 경험들이 우리들에게 있기에, 모두 쉽게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같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가지않느니만 못했던 그런 여행도 있었다. 물론 그 장소, 그 경험이 나를 가슴떨리게 하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그때 함께했던 그사람은 아직도 왜 그랬을까,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때 했던 여행은 포르투갈이었고 기록을 좋아하는 내가 여행기를 써야했건만, 서랍속으로 들어가고, 남아있는 건, 이런 뒷담화뿐이다. 자유로왔어야할 여행이 무언가에 짓눌린 기분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블마언니네가 가보지 않은 곳으로 함께 미국을 가자, 단풍이 좋다해서 정한 곳이 뉴햄프셔 화이트 산맥이었다. 우리 트럭이 6명이 탈수는 있지만, 앞좌석 운전사옆 좌석이 너무 불편하여, 장거리 여행에는 부적당하다는 의견이었다. 그렇게 해서 밴을 빌리기로 했다.
이렇게 공평한 시작이 되고 있었다. 숙소는 블마언니의 담당인데 나보고도 한번 검색해보라고 했다. 그래서 조금 찾아봤지만 조바심이 나고 힘들다. 언니는 여행을 많이 다녀 좋은 숙소를 잘 찾는데, 이번에는 딸의 도움까지 받아, 좋은 곳이 찾아진 것 같았다. 가는데까지 12시간이 걸릴 예정이라 운전은 세명의 남자가 번갈아가면서 하기로 했다. 음식은 당연히 세명의 여자가, 아니 두명의 언니들이 전적으로 책임을 져주었다. 귀엽지 않은 막내는 귀여운척 언니들의 도움을 응석으로 받아들인다. 그걸 생각하면 공평이 내게서 깨진 것같기도 하다.
우리집에서 떠나는날 새벽 5시에 출발했다. 집을 떠나기전 믹스커피를 컵에 담아 탔는데, 마시는 중에 차가 덜컹거려 커피를 흘렸다. 이건 무슨 징조지? 처음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 엄마가 남기고 간 갈색 스카프를 메고 있었기에 그 커피가 옷에까지 튀지 않은 것 같았다. 엄마는 멀리 떠나셨는데, 신새벽에 엄마의 도움을 받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블루마운틴에서 김선생님 내외를 만나서 차를 바꿔타고 다시 출발했다. 배리에서는 아침식사를 준비해놓고 계셨다. 짐을 싸기에도 힘들었을텐데, 그분들의 헌신은 도를 넘는 적이 많아서 이제는 그냥 받아들이게 된다.
차를 렌트해서 출발한 시간은 아침8시 30분, 몬트리올로 해서 국경을 넘어 가도가도 목적지가 나오지 않았다. 처음에 약속한 대로 2시간쯤 지나면 브레이크 타임을 가졌다. 기사도 바꾸고 잠시 숨을 돌렸다. 운전에서만큼은 "공정과 상식"이 지켜지고 있다,고 내가 말하고 나니 어디서 많이 듣던 대사다. 우리들은 정치색이 모두 비슷하여, 마음놓고 이야기해도 되니, 그것이 이팀의 또하나의 장점이기도 하다.
날이 어두워져서 초행길에 운전하는 것이 까다로워 보인다. 마지막 구간은 길이 꼬불꼬불했다. 깜깜했고, 비도 왔고, GPS가 1시간 남았다는 구간부터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쓸데없는 말을 많이 했는데도, 시간은 더디게 갔다. 왜 안그렇겠는가? 8시 30분 출발했다손 치더라도 12시간 이상을 달렸으니, 우리들의 인내심이 바닥이 나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운전하기를 좋아하고, 잘하는 김선생님이 핸들을 잡았는데, 블마언니는 맨 뒤에 앉아서 자신이 자주 브레이크를 밟았다고 해서 웃었다. 비가 오는 숲길 운전에 미끄러지기라도 할까봐 걱정이 되었다고 했다. GPS는 다 왔다고 신호를 주는데, 왼쪽집인지, 오른쪽집인지 모두가 나와서 주소를 확인하느라 분주했다. 이집인 것 같은데, 하면서 또 현관을 찾느라 뒤쪽으로도 가보고. 그렇게 간신히 알려준 키번호를 누르고 들어온 집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차고에는 탁구대가 있었는데, 그것을 한번도 치지 못하고 왔다. 방마다 화장실이 있었고, 주방과 거실이 넓고 천장이 높은 샬렛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2층이 있었는데, 이곳에는 발코니, 거실 그리고 큰 방까지 그 자체가 훌륭했다. 2층의 방에서는 6명이 잘수 있는 침대와 보조침대가 2개 더 있어서 8명의 합숙이 가능한 그런 구조였다. 게임기가 있고, 텔레비전이 있는 것을 보니, 젊은이들이 함께 모여 게임하면서 노는방 같아 보였다.
우리들은 1층에 각자의 방을 하나씩 차지했다. 2층은 쓸일이 없었으나 넓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둘째날 저녁 나는 잠이 오지 않아서 혼자 2층에 가봤다. 첫날엔 황량해보이던 그방이 아늑하고, 멋졌다. 모두 자는 시간이니 텔레비전을 틀 수는 없고, 휴대폰으로 넷플릭스를 검색해서 조금 들어본다. 아주 작은 소리도 다 들리는 듯하니, 조심해야 했다. 그렇게 헤매다가 새벽에 다시 내려와서 방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이집에서 3일을 묵었고, 마지막날은 오타와에서 일박했다. 그집은 좀 기막혔던 것이 제대로 식기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식탁 의자도 4개이고, 소파앞에는 테이블도 없었다. 이제 막 숙박업소를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대접도 4개, 국그릇할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컵 4개가 있어서 라면을 끓여서 대접에도 먹고, 컵에도 먹고 해야 했다.
가는 길에 하룻밤 묵어가는 것이니 하면서, 속을 다스렸다. 깨끗한 새집이었는데, 작은 공간에 3층으로 지어진 집으로 방하나가 있는 1층은 히팅이 작동을 안하는 것같았고, 2층은 거실겸 부엌, 3층에 방이 3개 있었다. 총 8인이 잘수 있는 집이 물끓이는 주전자도 없고, 뭐 어쩌랴. 그렇게 복병을 만나기도 했다.
아침 점식 저녁을 꼬박꼬박 챙겨먹었다. 언니들의 식단은 훌륭했고, 모두 든든히 매끼를 즐겁게 먹었다. 국과 밑반찬, 전과 장아찌 중에서 나도 하나 가져온 것은 장아찌 메들리(고추, 비트, 명이나물)였다. 월마트에서 고기를 사서 현지에서 구워먹고, 또 장조림까지 만들어서 먹기도 했다. 식사만드는 데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아서 좋았다. 나도 이번에 많이 배웠다. 식사를 밖에서 해결하는 것은 찾아다니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경제적이지 않고, 우리들의 입맛에도 맞지 않으니, 밥솥까지 가져가는 우리들의 여행법이 좀 과해보일지는 몰라도 지혜로운 일이다.
여자들은 협조안하는 남자들에게 식사협박을 하곤 했다. 물론 장난이었지만. 운전사를 잘 먹여야 된다는 구호도 있었다. 해서 모두 잘먹어야만 했다. 음식에 큰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 임선생님도 여행중에서는 할당량을 잘 해결했다. 블마언니가 만들어온 미역국, 뭇국, 우엉볶음 꽈리고추, 무청 볶음등과 배리언니의 갈비, 멸치볶음, 김치와 양념등 참으로 없는 것이 없는 귀한 식탁이었다.
마지막의 피날레는 배리 만다린 뷔페에서 했다. 그전에까지 쓴 경비는 모두 3분의 1을 내면 된다면서 경비계산을 맡았던 배리언니는 이 점심은 언니네서 내는 것이라 했다. 떠나는 날 아침, 오는 날 저녁까지, 그분들에게 블마언니는 가끔, 재벌이세요?라고 묻는다. 그분들의 이웃을 향한 사랑이 정도를 넘을 때가 많아서 묻는 것이다. 여행중에도 잘먹고, 마지막 점심겸 저녁 뷔페에서 너무 먹어서 집에와서 몸무게를 재니, 나와 남편은 3kg이 불어있었다.
어떤 날 저녁에는 군대 이야기가 나왔다. 한참을 들어주다가 군대이야기랑 축구이야기는 안해야 하지 않느냐고 블마언니가 딴지를 걸었는데, 잠시 끊어진줄 알았던 그 소재가 연이어 나와서 모두 헛웃음을 지었던 적이 있었다. 시간이 많이 있었기에 사실은 어떤 이야기도 허용이 되었다.
배리언니도 이번 여행에서만큼 많은 이야기를 한적이 없다고 했다. 우리는 배리언니의 발언에 무조건 호응했는데, 짧게 말하고, 용건만 간단히 하는 그 언니에게서 많은 스토리가 흘러나와 우리를 즐겁게 했다. 나와 남편의 티각태각을 언니들은 눈치챘고, 아직 누구도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고, 아직 젊은 것 같다고 했다.
우리들 모두 그랬다. 함께여서 너무 행복했고, 많이 배웠고, 즐거웠고, 여행이 가능했다고. 이런 여행이 앞으로 또 있게 될지 모르겠지만, 상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내게 주었다. 배려가 몸에 익어서 흘러넘쳤다고나 할까.
배리언니는 떠나기전, 이런 이야기를 했다. "어려운 일은 꼭 이야기하자"고. 남자들이 대부분 참는편인데, 그렇게 되면 여행이 힘들어진다고. "힘들다"는 이야기는 블마언니에게서 한번 나왔다. 가는 길에 짐이 많아서 뒷좌석 의자를 하나 접어서 짐을 넣고, 두번째 좌석에 세명이 앉아야했다. 그중 가운데 좌석이 좁고 불편하다. 언니는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있었는데, "나 이 자리 힘들어"해서 바꾸어주었다. 나는 사실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블마언니는 언젠가 허리를 삐끗한 적이 있던 후로 그런 자리에 오래 앉는 것이 힘들다고 했다. 그것 외에는 그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것같다.
돌아오는 길은 인간 내비게이터로 불리는 배리언니 주도로 경치가 좋은 곳으로 운전하자고 했다. 블마언니의 미국친구가 알려준 버몬트쪽 길로 오면 경치가 좋다고 해서, 약간의 시간을 더 들여서 그쪽으로 돌았는데, 사실 그것이 그것이었다. 생플랭 호수쪽이 멋있게 생각되어 그쪽 길로도 오면 어떨까 했지만, 나중에는 모두 가장 빠른 길, GPS가 알려주는 길로 가자고 약속이나 한듯이 일치했다. 오는 길은 목적지까지가 오타와여서 쉬울 것 같았으나, 아침에 출발 결국 어두워져서 오타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첫날 하루에 갔던 길을 이틀에 걸려서 돌아오는 계획을 세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배리에 2시까지는 차를 반납하기로 되어 있어서였다.
나중에 올때는 음식 짐을 줄이고 잘 단도리해서 뒷좌석 의자를 펴고 2번째 가운데 자리를 사용하지 않았다. 차가 우리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실내가 작은 SUV여서 불편했다. 벤이어야 했는데. 남자들에게만 맡기면 무언가 사단이 난다. 차 빌리는 것도 그랬던 것같다. 그러나 운전은 모두 100점이었다. 특별히 두사람보다 더 많이 운전한 김선생님께는 120점을 드려야 할것 같다. 나도 한번쯤 할수 있었는데, 오퍼를 해봤어야 했나.(아마도 퇴짜맞았을 것이다) 우리집이 가장 서쪽에 있는 고로 뷔페식당에서 거국적으로 헤어지고 집에 돌아온 시간은 밤 6시경이었다. 4박5일 대장정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