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햄프셔 여행 2
"큰바위 얼굴"이 기억나는가?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나왔다고 하는데, 나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다닐때는 그 작품이 없었던 것 같은데.. 하면서 말을 흐리지만, "큰바위 얼굴" 제목은 낯설지 않다. 이번 여행길에 조금 동화같은 느낌이 드는 그 바위를 찾아나섰다.
주홍글씨를 쓴 나다니엘 호손의 단편소설 "큰바위 얼굴"(Hawthon's Great Face)을 찾아 읽었다. 주인공 어니스트에게 영감을 주던 큰바위 얼굴, 그 마을에 내려오는 전설에 따라 그 바위와 닮은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돈이 많은 사람, 유명한 정치가, 군인, 시인등 출세한 그 마을 출신들이 마을에 금의환향할 때마다, 동네사람들은 그들이 큰바위 얼굴을 닮았다며 환호를 하지만, 소년은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큰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지막에 그 마을을 방문한 시인은 노인의 사상과 삶의 지혜등을 들으며, 바로 그 노인이 큰바위 얼굴이라고 소리지른다. 그러나 그 노인은 여전히 큰바위 얼굴을 닮은 위대한 사람이 나타나길 원하며 자리를 뜨는 그런 감동적인 이야기가 실려있다. (러시모어산에 있는 대통령 얼굴 조각상은 바위를 조각해 만들었는데, 이 바위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아닌가한다)
프랜코니아 노치(Franconia Notch) 주립공원 안내소에 도착하니, 맞은편에 큰 바위산이 보인다. 큰바위 얼굴은 2003년 새벽에 붕괴되어 없어졌다고 들었기에, 밋밋하지만 웅장한 저 산이 큰바위 얼굴이 있었던 그 산일 것이라고 일행중 몇명이 주장했다. 그러나 문의한 결과, 큰바위 얼굴을 보려면 걸어서 20여분, 차로 5분 정도 가라고 알려준다. 그렇게 해서 찾은 큰바위 얼굴은 그야말로 얼굴 형체는 찾아볼수 없었다. 캐논 산 바위옆에 돌출되어있던 그 형상은 오랜 세월 날씨와 싸우다가 무너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 바위는 예부터 미국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아이콘으로 있었기에, 다시 재건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자연적인 것을 그대로 보존하자는 의견이 있어서 가까이 볼수 있는 곳에 주차장을 만들어놓고, 관광객을 맞고있었다. 얼굴이 없는 큰바위 얼굴앞에서 우리들은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산의 모양으로 보면, 큰바위 얼굴의 방향이 오른쪽으로 향해 있을 것 같은데, 사진에서는 왼쪽에 있는 것이 우리의 궁금증이었다. 산이 거대하니 멀리서 볼때 그 형상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다.
무너지기 전의 사진을 보면, 소설에 나오는 "인자하고, 온화한 모든 것을 포용하고 사랑하는 얼굴"이 아니라 각진 군인같은(배리언니의 표현) 표정이었다. 그런 바위얼굴을 보고, 상상으로 소설을 쓴 작가가 감탄스럽다. 소설에도 썼지만, 조금 더 물러나서 구름속에 있는 바위얼굴이 더 온화하고, 자상해보이는지도 모르다. 예전에 찍힌 사진을 보면, 큰바위의 작은 돌출부분으로 그다지 눈에 띄이지 않는다는 것이 이번 방문으로 알게 되기도 했다.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그것에 숨을 불어넣는 것은 결국 인간의 일일 것이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대중이 찬사를 보내는 세상적인 성공은 참된 스승과는 거리가 멀며, 큰바위얼굴같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명상하고 끊임없이 성찰하며, 성실하게 살아온 노인이 바로 큰바위 얼굴가 비슷해졌음을 설득력있게 알려준다. 큰바위얼굴의 형체가 없어졌기에, 이곳이 언제까지 사람들의 관심을 끌수 있을지 의아스럽기는 하다.
이번 여행이 즐거웠던 것중의 하나는 예기치않은 것들을 봤다는 점이다.
둘째날 호기롭게 나섰던 기차여행이 약간의 실망으로 끝나고, 우리들에게는 가봐야 할곳이 있었다. 바로 전날 이야기중 나온 그 지역이 우리가 여행중인 곳과 가깝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경제학을 공부해온 임선생님은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 국제통화기금)가 결성된 곳이 브레튼 우즈라는 지역(Bretton Woods)인데, 이곳(우리의 숙소, North Conway)에서 가까운 것 같다는 설명을 하신다. 한번쯤은 가봤으면 했던 곳이었다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브레튼 우즈의 어떤 곳을 방문해야 하나, 감을 잡지 못했을 때에, 그 회의가 열렸던 워싱턴 호텔에 가보면 될것이라고 했다. 경제에 관한한 귀가 열려있지 않았지만, 임선생님이 "예기치 않았던 발견"에 얼굴에 홍조를 띠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곳에 갈 이유는 충분했다.
마침 기차내에서 워싱턴 호텔을 소개한다. 전쟁중이던 1944년 워싱턴 호텔에 모였던 각나라 대표들의 흔적도 만날 수 있고, 그안에 가면 쇼핑까지 할수 있으니, 꼭 가보라는 당부였다. 그 가이드는 워싱턴 호텔에서 세계적인 회의가 열렸던 이유는 산으로 둘러싸인 "가장 안전한 곳"이었기 때문이라고도 알려줬다.
브레튼 우즈의 워싱턴 호텔은 단순히 나그네들이 묵고 가는 그런 호텔은 아닌듯 싶었다. 수려한 경치와 호텔을 끼고 골프장도 있었고, 호텔앞으로도 뒤쪽으로도 탁 트인 전망까지, 흠잡을 데가 없었다. 브레튼 우즈의 IMF를 기념하는 작은 전시관도 있었다. 그리고, 회의가 이뤄졌던 콘퍼런스 룸도 개방해줬다. 호텔 뒤쪽으로 나가니 장엄하게 펼쳐진 산들과 그 산을 바라보며 긴 호흡을 할수 있게 만들어진 정원, 하늘과 산과, 사람이 건립한 건물까지 조화로와 그곳이 마음에 들어온다. 산위는 겨울이요, 봄빛깔 초록과 가을빛깔 낙엽, 그리고 여름을 생각나게 하는 흰색 야외의자까지. 이곳에서 20여일간 머물면서 회의를 했던 사람들은 종종 바깥에 나와 가족을 데리고 다시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으리라.
임선생님은 브레튼 우즈의 회의가 가진 부조리를 설파하셨다. IMF가 결성되기까지, 그리고 미국의 뜻대로 이뤄진 것은 각국 대표들에게 먹인 술이 한몫했다고 하셨다. 현재는 막강한 힘을 행사하는 그 IMF에 한국도 호되게 당한 것을 보면, 전체적인 맥락을 알것도 같지만, 현실적인 경제에도 취약한 내가 이해하기에는 좀 어려운 문제였다.
사실 단풍을 보러가자,는 대망의 꿈을 안고 갔지만, 도착 다음날에 눈과 마주쳤던 우리는 좋은 단풍에 대한 기대를 많이 접었었다. 길 가면서 뷰포인트에 내려서 깊은 숨쉬고, 조금 거닐고, 그런 정도로 만족했다. 그중에서 몇군데가 기억에 남는다.
숙소에서 가까왔던 "다이애나의 목욕탕(Diana's Bath)"은 조금 걸어올라가야 나왔다. 초입에 들어섰을 때 자연스럽지 않았고, 시멘트로 이어붙여 만든 곳도 있었다. 그대로 내려왔으면 기억에서조차 지워질뻔 했다. 조금 더 올라가니, 그래도 물이 고여있고, 작은 폭포가 흐른다. 오고가는 길, 가을이 한창이었고, 캐나다의 단풍잎도 눈길을 잡는다.
풍경을 향한 사냥꾼이 되어, 재빠르게 훑고, 주차가 가능한 곳은 가능한한 차를 세우려 노력해준 기사(?)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그중에 The Swift Water란 팻말이 있는 곳에서 조금 지체했는데, 그곳은 폭포로 유명한, 트레일이 시작되는 곳이라는 것을, 이글을 쓰면서 알게 됐다. 우리들은 트레일까지는 계획에 없었고, 경치가 좋은듯하여 잠시 머물렀는데, 이 물이 흘러서 대서양으로 간다고 팻말에는 써있었다. 물보다 더 빛나는 하얀돌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물가에 서있는 나무들은 단풍에 목마른 우리들에게 총천연의 색을 보여주었다.
플럼협곡(Flume Gorge)을 탐험하려고 했다. 날씨가 화창했고, 많은 차들이 멋진 산배경으로 주차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안내소에 우선 갔다. 프럼협곡은 거금 21달러씩을 받고 있었다. 그래도 갈것인가, 말것인가 잠시 혼돈이 왔지만 그돈을 절약하기로 했다. 사실 주차장 풍경과 방문자 센터에서도 기분을 낼만 했다. 협곡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분이 있어서 결정이 더 쉬웠다. 날씨가 쌀쌀하여 주차장 차내에서 숙소에서 싸가지온 샌드위치를 먹었다. 배리언니는 뜨거운 찻물을 보온통에 가져와서 우리들에게 나눠주었다. 날씨가 좋았으면 근방에 있는 피크닉 테이블에서 먹을 수 있었으련만 아쉬웠다.
잠시 세웠던 곳중에 라파예트산이 있었다. 그 근방이 아름다워 쉴만한 곳을 찾아 들어갔다. 다리가 있었고, 그곳에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차들이 들어올수 없었다. 곳곳에 이렇게 쉬면서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많아서 좋았다. 라파예트산을 기억하는 또하나의 이유는 그지방 기사가 떴는데, 홀로 떠난 여성 등산객이 조난을 당한 지역이 라파예트산이었다. 그녀는 다리를 다쳐서 걸을 수 없게 되었는데, 마침 전화기도 고장나서 쓸수가 없었다고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음식도 주고, 전화도 걸어주고 해서, 구조대원이 오기까지 몇시간 동안 산에 머물렀다고 했다. 혼자 등산한 그 여성은 참으로 용감하지만, 그러면 안되겠다는 당연한 생각이 든다. 한편으론 우리들의 여행은 깊이, 안으로 들어가서 보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 보는 정도였다는 그런 반성도 들기도 하나, 그것이 우리들 능력의 최고치였다고도 말할 수 있다. 무리하지 않으면서, 최선을 다했다는. 걸어서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맵이 있을 것이고, 우리는 뉴햄프셔의 화이트산맥을 조금씩 밟고, 차창밖으로 보고 그정도로도 충분한 여행이었다고. 모두 안전하게 갔다온 것으로도 성공한 여행이었다고 자족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