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햄프셔 여행 1
여행을 가기로 하면서 이건, 봐야해 하면서 미리감치 티켓을 끊어놓았다. 뉴햄프셔 화이트 산맥(White Mountains)의 가장 높은 봉우리 워싱턴산의 꼭대기를 올라가기로 했다. 1917m로 이 산맥의 대표봉우리였다. 이 길을 쉽게 오르는 방법이 있는데, 그건 기차로 오르는 것이다. 또 한가지는 차를 타고 오를 수도 있다고 했지만, 벼랑끝을 달리는 것이라, 누군가는 운전해야 하고 그렇다면 길의 장관을 보지 못할 것이니, 공평하게 기차를 타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그것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가는 길에 The Mount Cog Trail Station이 보이지 않는다. 가다가 되돌아가서 길을 묻는다. 데이터를 쓰지 않아서 길을 찾는데 애를 먹기도 한다. 렌트회사에서 준 GPS와 예전에 구입했다는 김선생님의 GPS가 잘 작동을 하지않는다. 한 청년이 길을 잘못든 것 같다고 해서, 모두 철렁했다. 그는 자신의 휴대폰으로 길을 찾겠다면서 한 5분 넘게 들여다보더니, 가던 길로 조금 더 가면 나올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해서 스테이션까지 시간안에 잘갔다. 그 청년 때문에 거의 다와서 우왕좌왕할뻔 했던 것을 면했다. 기차역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모두 들떠있었다. 그런데 그날 날씨 때문에 정상까지는 올라가지 못하고 중간에서 다시 내려온다는 것이다. 워싱톤산 근처를 가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며칠전 날씨 때문에 워싱턴산의 기차가 멈췄다는 기사도 보긴 했지만, 날씨가 풀리겠거니 했었다. 10월 중순에 눈 때문에 일이 망쳐질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땐 미처 몰랐다.
기차는 앙징맞았다. 안내원이 즐겁게 가이드를 한다. 그런데 가는 내내 제대로 된 풍경은 하나도 못봤다. 올라갈수록 구름낀 하늘에 가끔씩 눈이 오고, 흰색밖에는 본 것이 없었다. 중간 기착점에서도 기차밖으로는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한명씩 원하는 사람만 밖으로 고개를 빼고 1-2분 서있을 수 있었을 뿐이다. 밖에 나가서 내가 본것은 희미한 기찻길뿐. 그것이 워싱톤산에 깔린 정상을 향해가는 기찻길인지는 설명을 통해야만 알수 있다. 갔다 내려오는 길에는 기차안에서 조는 사람들을 많이 볼수 있었다. 거금을 들여서 기차를 탔건만, 보이는 건 흰색이요, 들리는 건 가이드의 워싱톤 산 소개와 기차의 역사등이니, 슬슬 졸음이 올만했다. 워싱턴산은 좋은 기후일 때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우리가 그런 날, 기차를 타게 될지는 몰랐다. 산의 정상은 그리 쉽게 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 간다면 9월전 좋은 날을 잡아서 운전으로 올라가면 좋을 것 같다. 산정상을 향한 기차여행은 이것으로 안녕이라 말하고싶다.(아가와캐년 기차여행에서 기차에 한번 실망했기에, 두번이면 족하지 않겠나)
기대했던 것에서는 실망이었지만, 다른 것에서 예기치않은 발견을 한 것도 많이 있었다.
그 산이 생생하다. GPS를 켜고 목적지로 가는 길, 작은 길로 들어서고 차 한대가 간신히 지나갈 정도의 좁은 산길을 달린다. 앞쪽에서 차가 오면 어떻게 피해야 하나, 걱정하는 즈음, 내가 앉은 오른쪽 작은 창으로 그 산이 들어왔다. 작은창은 그 산을 감당하기엔 너무 좁았다. 땅에 발을 딛고 제대로 올려다볼 생각을 하니, 떨린다.
우리는 로버트 프로스트가 머물렀던 농가를 찾아가는 중이었다. 작은 팻말을 지나, 주차장에 세우고 뒤쪽으로 걷는다. 어느새 산은 나무들로 가려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작은 오솔길을 따라가니, 프로스트의 집 뒤뜰이다. 뒷산쪽으로 작은 길이 나있다. 이 길을 가볼까, 하는 사이, 이쪽이 더 좋습니다, 우리를 향해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조금 더 올라가니 프로스트의 시의 길이란 팻말이 있고, 그럴싸한 산책로가 보인다. 우리는 그 길로 들어섰다.
프로스트의 가지않은 길의 번역을 놓고, 임선생님이 질문한다. 마지막 연에 나오는 "sigh"를 한숨으로 번역하는데 자신은 그것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신다면서. "한숨"이라고 하면 우리의 정서상, 문맥상 옛일을 후회하는 인상을 주는데, 그 한숨은 "안도의 한숨"으로 볼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연은 이렇게 주로 번역된다.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시인은 훗날에 일어날 일을 상상하면서 쓴것이기에, 시인 자신도 그것이 후회일지, 안도일지 모르는 상태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고 나는 덧말을 붙여본다.
"시의 길"에는 프로스트가 쓴 시가 군데군데 세워져 있었다. 우리들은 그 시를 해석을 하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너무 길어서 지나치기도 하면서 천천히 돌았다. 프로스트의 시들은 산책하면서 쓴글이 많다. 그의 뒷마당에도 그의 흔적이 있을 것이다. 처음에 들어가려고 했던 곳으로 다시 나오게 산책로는 설계되어 있었다. 두길이 있지만, 결국 같은 곳에서 만나게 되었다는 이야기. 산책이 끝나자마자 나는 집앞으로 뛰어가서 작은 길을 건넜다. 산을 조금 더 가까이서 보고싶었다. 눈이 온 정상의 두 봉우리는 계곡쪽으로 깊은 주름이 져있었다. 마치 그렇게 처음부터 생긴것처럼. 겨울이 아니었다면 봉우리와 봉우리로 보였을텐데, 눈이 오면서 그곳은 봉우리보다 봉우리 사이의 주름진 계곡이 더욱 눈을 끌었다. 나는 프로스트 집앞의 봉우리의 이름을 알고싶었다. 화이트 마운틴스(White Mountains), 그러니까 우리나라말로 한다면 화이트 산맥에는 여러 봉우리들이 있어, 그 이름을 찾는데 실패했다. 그 진정한 이름을 찾기까지, 눈에 덮여 올라가지 못한 워싱톤산 정상이라고 말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프로스트를 만난 것은 전연 예기치않은 일이었다. "시"를 떠나보낸 지도 어언 수십년이 되었기에, 다시 만나게 될지는 몰랐다. 마치 버려질 물건속에서 보석을 찾아낸 기분이었달까? 그렇다고 시를 쓴다거나 더 읽는다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그것은 쓸모없는 잡돌인양 내삶에서 치워버렸었는데, 그것이 귀한 보석인 것을 다시한번 깨달았다고 말하면 될것같다. 삶의 깊은 고뇌와 관찰, 그리고 그것을 치유해나가는 작가와 작품에 잠시 빠져보았다.
우리가 방문했던 뉴햄프셔 프랜코니아(Franconia) 집은 뉴햄프셔에 사랑에 빠진 프로스트가 지나가다가 발견한 집으로 집주인과 흥정해서 사들였다고 나온다. 이곳에서 그 가족은 5년을 살았고, 그후에도 여름마다 찾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로버트 프로스트가 살았던 Derry에 있는 집과 농장은 더욱 유명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 농장은 할아버지에게서 받은 것으로, 그의 선택과는 좀 무관해보이기도 하기에 우리가 방문한 이집에 애정이 간다. 이집의 앞 발코니에 앉아서 저 산을 보면서 하루를 보냈을 그를 상상하는 것이 즐겁다. 그는 작가로 학자로는 성공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의 병, 그로 인한 이별로 힘들었다고 나온다.
친한 친구들과 함께 떠났던 여행에서 나는 우리에게 주는 프로스트의 시를 하나 건져내었다.
대비하라, 대비하라
로버트 프로스트
물통과 걸레를 들고 계단청소를 하러 온 마귀할멈,
저 쭈그렁 할망구는 그래도 한때는 아비삭 같은 미녀요,
헐리우드 영화계의 자랑거리였다.
위대하고 훌륭한 자리에서 몰락한 자 너무 많아
당신도 그런 신세 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
일찍 죽어 그 같은 운명을 피하라.
혹시 팔자가 오래 살도록 되어 있다면
위엄 있게 죽을 마음의 준비를 하라.
증권시장을 아예 통째로 당신 것으로 하든지
필요하다면 제왕의 자리를 차지하라.
그러면 누가 당신을 쭈그렁 할망구라 부르리.
어떤 이들은 자기가 아는 것만 믿고
어떤 이들은 단순한 사실을 그대로 믿어
그들이 당한 일은 당신도 당할 수 있을 터.
왕년에 스타였던 시절이 있다 하여
그것이 말년의 멸시를 보상해 주거나
종말의 어려움을 면해 주지도 않는다.
돈으로 산 우정이라도 곁에 두어 위엄을 갖추고 몰락을 하는 편이
아무도 없는 것보다는 나으리니, 대비하라!
시 자체는 아름답지도 깊이있어 보이지도 않지만, 한때 화려했던 삶이 노년기의 처참한 말로가 될것이라고 예언한다. 무엇으로 우리의 종말을 준비하겠는가? "돈으로 산 우정"이라는 말도 참으로 세속적으로 보이지만, 그안에 깊은뜻이 있다고 추측해본다. 우리가 적지않은 돈을 들여, 함께 여행하는 와중에, 나는 최선을 향해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름 전해주는 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우리팀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좀 저속해보이는 시여서 그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