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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y Dec 28. 2020

나의 영어습득기

넷플릭스를 중심으로

앞으로 이렇게 해보자 하는 그것이 내가 꾸준히 해오고 있는 그것이다.

나는 이 말을 내게 해줄 필요가 있다. 지금 이 순간, 생각하고 있는 그것을 나는 마치 처음 생각하는 것처럼, 처음 행동하는 것처럼 느낄때가 많다는 것이다.


이전의 나를 없는듯 취급하고, 이제부터 잘할 거야, 하며 딱 뒤돌아봤더니, 그런 생각을 한지가 오래됐고, 나는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영어"가 그렇다. 몇번에 걸쳐서 "미숙한 영어사용"에 대한 고백을 늘어놓고 나서, 꽤 솔직한 내 모습에 부끄럼과 함께 그래도, "그런체 하지 않는 솔직함"에는 점수를 주고 있었다. 또는 글을 읽는 이들이 점수를 주겠지 하는 기대감을 품고 그런 이야기를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영어에 관해서 안했던 것은 아니다. 제대로 된 학교교육을 받지 않아서 그렇지, 내가 할수 있는 것들은 이렇게 저렇게 해왔다. 학교 교육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됐다. 엄마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다. 학교에 가지못해 한글을 못깨쳤는데 결혼 초기 학교 교사였던 아버지가 한글을 가려쳐준다고 했을 때, 극구 사양을 했던 그것이 가장 후회되는 일이라고. "학교에 가야지만, 공부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그때 공부를 시작했다면, 오랫동안 글을 몰라서 불안하고, 움추려들었던 마음을 접을 수 있었을 것이고, 삶이 많이 달라졌을 거라고 하셨다. 60이 넘어서, 혼자 성경을 읽으며 한글을 깨우치신 어머니에 비하면, 나의 영어 배움은 너무도 빠르고, 아직도 진보할 수 있는 탄탄대로가 펼쳐져있다고 볼수도 있다.



나같이 매일 손님들을 만나고, 아이들과 영어로 대화하는 영어권에 사는 사람이 영어를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이 좋은 환경을 흘려보내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 우선 넥플릭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보자.




한국 드라마광이지만, 몇달전부터 영어 드라마로 전향했다. 물론 영어 습득 때문이다. 그래서 만난 드라마가 "Breaking Bad"이다. 와~~~ 한마디로 말하자면, "충격적인 드라마"였다. 오래전 방영된, 전설적인 드라마라고 들었다. 넷플릭스에 있어서 우연히 보게 됐다. 그 어떤 정보도 없었는데, 그렇게 사람을 끄는 드라마는 보지못했다. 그러나 심장이 약하거나, 특별히 도덕적이거나, 범죄물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추천하지 않는다. 인간속에 숨겨진, 죄의 본성이 적나나하게 드러나고, 미국, 멕시코 사회에 만연한 마약 범죄의 민낯을 볼 수 있다. 다시 생각하고 싶지않은 장면은 사람을 염산에 넣어죽였던 초반의 장면, 그후로 진행되는 수많은 살상은 첫번 장면이 준 충격 때문에 받아들이는데 무리가 없었다. 범죄 드라마지만, 인간적인 연민, 웃음을 자아내는 개그적 요소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거짓말에 거짓말이 보태져서, 되돌릴 수 없게 되는 상황들. 아주 아름다운 중산층 가정이 온갖 위험에 처하게 되는 그 사건들과 두 자매 가정의 비극적 결말까지,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비극은 스스로 자초하는 것이라는 자각이 들기도 했다. 멈출때 멈추지 못하는 인간의 욕심, "내가 뭔갈 보여주겠어" 하면서 암흑의 세계로 더 깊게 들어가던 월터 화이트의 모습은 오랫동안 기억날 것이다.


시리즈물로 2008년 시작 2013년도까지 방영됐다. 60회가 넘는 에피소드를 다 봤다. 내가 이 드라마를 보게 된 것이 신기한 것이 아니라, 이 드라마에 대해서 전연 알지 못한 것이 더 신기한 일일 수도 있다. 우리집 애들도 이 시리즈를 봤다고 하는데, 부모들에겐 아무도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더랬다. 한국인 부모가 보기엔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쯤에선 다시 반성모드로 돌아가서, 나는 왜 그렇게 이곳 문화에 적응하지 못했을까, 푸념해야 하지만 그러지 말자. 그것조차 식상하다. 이제 때가 되어서 이런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고 말하자. 이제서 보았기 때문에 더 이해하게 됐다고.



영어 드라마를 브레이킹 드로 시작한 것은 잘한 일인 것 같다. 좀 센편이었으나, 하룻밤에 몇편을 볼때도 있을 만큼, 흡인력이 대단했다. 요즘엔 후속작인 "Better call Soul"을 보고 있다. 시기적으론 "Breaking Bad"가 나오기 전의 상황을 그린다. 같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 인물들이 다음편에선 죽음을 당하기도 한다. 형제 변호사의 치열한 싸움을 보는 것이 재미있다. 죽음까지 담보로 한 애증의 관계,  인정받지 못함에 대해서 그리고 있다. 그럴때 형제고 뭐고 비뚤어진다. 그리고 형이 가진, "내가 최고다"라는 오만함은 자신을 죽이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Breaking Bad" 만큼은 아니지만, 볼만하다. 자막을 보지 않고 들으려고 노력한다. 자막에 의존했던 태도에서 조금씩 벗어나려고 하고 있다. 변호사 지미 맥길이 범죄자들을 변호해주게 되는 배경에 대해서 담고 있다고 볼수 있다. 브레이킹 배드에서 마약제조자, 마약딜러 등을 변호해주고 뒤를 봐주는 변호사로 출연하는데, 그가 그렇게 되기까지 그 이유를 제공한다. 거대 마약상의 오른팔인 전직형사 마이크도 왜 이렇게 깊게 범죄에 휘말리게 되는지, 그런 것들에 대한 이해를 갖게 한다. 그래서 그런지, 약간은 짜맞추기식이 아닌가 그런 느낌도 들기도 했다. 브레이킹 배드와 연결해서 그 명성을 해치지 않아야 하니, 드라마 대본작업이 새로 만드는 것보다 어려웠을 수도 있다.


그리고 넷플릭스를 켜면 프론트 페이지에 뜨는 드라마 Queens Gambit도 봤다. 체스를 전연 모르는데도, 드라마에 빠져들었다. 그녀의 표정이 압권이다. 한국드라마만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미국의 드라마를 보면서 미국의 저력을 조금 느끼게 되더라. 트럼프가 미국의 자긍심을 심하게 훼손하긴 했지만, 그 사회의 든든한 줄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하나 "Hillbilly Elegy" 영화를 보기도 했다. 나중에 책으로도 읽었는데, 영화가 더 나았던 것 같기도 하다. 미국 백인 노동자 계층들이 어떻게 사는지, 무너져가는 그들속에서 변호사가 된 주인공이 들려주는 비가이다. 이곳에는 현재 확실히 존재하는 마약에 취한 미국사회가 나온다. 할머니가 없었다면 그자신도 친구들처럼 마약에서 삶의 낙을 찾는 생을 살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본인은 중독이 되지 않더라도 집안에 중독자가 있어서 그걸 끌고 나가야 하는 가족의 아픔을 세세히 그렸다. 엄마가 중독자인 주인공 J.D. 밴스는 "트럼프"라는 말을 글에서 한번도 말하지 않았지만, 백인 노동자가 왜 공화당 지지자이며, 미국사회가 왜 2분화 되었는지 잘 알려줬다고 평가받고 있다. 힐빌리 엘러지는 변호사인 J.D. 밴스 가정의 내용을 기반으로 한 실화이다.


넷플릭스에는 영어공부할만한 무궁무진한 소스들이 널려있다. 한국드라마도 영어자막이 나오니, 꼭 봐야할 드라마는 넷플릭스로 보면, 덤으로 영어문장 하나라도 건질 수 있다. 이건 캐나다 넷플릭스의 이야기인가? 어쨋든 한국 드라마 몇편도 넥플릭스를 통해서 봤다. 작동하지 않아도 다음편으로 자동연결시켜주고, 다음에 다시 켰을때 멈췄던 곳으로 데려가주니 몇편을 보고 끝났는지 찾아야 하는 다른 프로그램과 차별화가 된다.


한국에서 산다면 영어가 뭐 그리 필요하겠느냐마는, 이곳에서 살수록 영어를 어느정도 정복하지 않고서는 사람노릇 하기 힘들다는데 봉착한다. 어차피 "오락"으로 미디어를 사용하는 만큼, 내가 좋아하는 "1타 쌍피"를 노릴 수밖에 없다.




매년 1년에 한번 성경책을 읽는다. 하루에 5장씩 읽으면, 12월쯤 되면 한권을 마치게 된다. 무슨 일이 있을때 건너뛰어도 괜찮다. 어떤 분들은 평일엔 3장씩, 주일엔 5장씩 읽으면 1년 1독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나는 주일엔 성경을 읽지 않는다. 대신 교회를 가니 말이다. 그리고 집을 떠나거나 하면 읽지 않는다. 집에서도 급한 일이 있을 때는 저녁에 읽거나, 건너뛰거나 한다. 이렇게 하면, 넉넉하게 1년이면 1권을 읽을 수 있다.


올해 1독은 조금 다르게 해봤다. 소리내어 읽었다. 그리고 한글과 영어를 번갈아가며 읽었다. 시간이 더 많이 걸렸다. 한글과 영어를 오가는 방법이 좋지는 않은 것 같았다. 머리회전을 자꾸 달리해야 하니, 글자만 읽게 되기도 했다. 여러절로 이뤄진 긴 장일 경우에는 1시간이 훌쩍 넘어가기도 했다. 해야할 무엇이 있을 때는 마음이 급해졌고, 지루하기도 했다. 그래도 고집스럽게 그 원칙을 지켰다. 영어 성경 읽기는 3년쯤 된 것 같다. 영어만 읽기도 했었다. 내년에는 영어만 읽되, 제대로 읽기로 한다. 영어 자체로 그 뜻이 들어올 것도 같다.


짜투리 시간 즉 밥 지을때, 가게 볼때(손님이 없을때) 등 한국뉴스를 시청했는데, 요즘 그걸 듣지 않고, 영어 듣기연습을 하고 있다. 책 읽어주는 유튜브가 있는데, 아주 명료하게 읽어줘서 두권을 끝냈다. "The Last Kiss" "Princess Diary"를 들었다. 수많은 영어배우기 유튜브가 있어서 자주 켰더니, 스토리를 읽어주는 채널이 자연스레 떴다.  한권의 소설책을 읽어주는데(원작을 그대로 읽어주는 지는 의문이다) 거의 스토리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오늘은 들었다.  TED 강연을 비롯, 영어 유튜브 강연들을 이제는 자막을 보지않고 듣기를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잠이 안올때 잠오는 음악처럼 마냥 흘러나오는 그런 프로그램도 있어서 시도하기도 했다. 영어를 듣다보면 잠이 들게 마련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어떤 날은 잠은 안오고(거짓말 조금 보태면) 영어가 한국어처럼 들렸다.





영어로 말하기는 지난번 글에서 이야기한 "Book Club"이 많은 도움이 됐다. 우선 영어 울렁증을 없애준 것 같다. 내 발음을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도 조금 날려주었다. 그리고 최근에 우리 가게 손님이던 소피아(가명)와 관계를 갖기 시작했다. 독일에서 나와 비슷한 시기에 이민온 그녀와 매주 만나서 걷는다. 생각이 많은 눈동자를 지닌 그녀와 내가 친구 비슷한 사이가 되어간다. 그녀는 바이올린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첼로를 연주하고, 조금은 특별한 사람인 것같다. 그녀를 통해서 우리 동네를 배워간다. 동네 일에 나몰라라 했는데, 내년에는 함께 활동을 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년에 다시 열리는 북클럽에 나를 밀어서라도 참여해야하겠다. 책을 읽고, 관계를 확장하는 일이니 일타쌍피에다 광약까지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영어가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던, 환경이기도 했다. 일에서는 남편이 싸워주고, 막아주고 했다. 나는 단순하게 고객 상대만 하면 됐다. 그동안 편안한 생활을 했던 것에 감사해야 한다. 이제는 현실적으로 그렇게 낙낙하게 뒤로 쳐져있을 수 없는 환경이다. 누군가가 해주길 바라는 태도를 던져버려야 할때가 왔다. 언어장애를 주장하기전에, 재빨리 "습득모드"로 돌려야 한다.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다른 것들과 함께 나의 언어 실력이 내년에 꽃을 피우기 바란다. 그래서 따따부따 억울한 일을 당했을때 따질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요즘에는 "침튀기며 따졌다가는 큰일"나지만, 코로나가 잠잠해질때까지 영어실력을 일취월장 끌어올리겠다. 독자들은 나의 이런 각오를 처음 들어볼 것이다. 이런식의 다짐은 나와 어울리는 스타일은 아니다. 얌전하고(ㅎ), 겸손하고(ㅋ), 부끄럼이 많은 스타일이다. 술을 먹지않고도 취해보는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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