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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y Jan 07. 2021

가보지 않은 길을 걷다

연말 연시 슬기롭게 보내기

가보지 않은 길

을 가봤다.

때때로 가는 트레일이 있다.

3km를 걷고, 돌아오면 하루 6km를 걷게 된다.

몸을 돌려 돌아오는 그 길 저멀리로 길이 펼쳐져 있음을 매번 본다.

몇번은 그 너머 2~3 킬로미터 더 가보기도 했다. 

말을 키우는 농가 근처까지 갔을 때도 있는데, "이곳은 사유지이니 발을 들여놓지 마시오"란 사인이 붙은 걸 보면서, 발걸음을 돌리기도 했다.


마침 새해 첫날, 가게문을 닫고 한번 걸어보자, 마음먹었다.

Bruce County Rail Trail이다. 총 80km 길이의 트레일의 중간을 접수한다.

같이 사는 사람과 마음이 맞아서 다행이다.

이 길은 예전에 기찻길이었다. 이제는 기차는 간데없고, 버려진 길을 산책로, 스노우 모빌, 크로스 컨추리 스키 트레일등으로 이용하고 있다. 우리 동네에서 시작해서 다음 마을까지 걷기로 했다. 차로 20km 거리이니, 걸어서 꽤 가야할 것 같았다. 




중간에서 요기할 것으로 팥죽을 보온통에 넣었다. 과일을 잘라서 담고, 커피와 따뜻한 물 그리고 Oh Henry 초코렛을 넣었다. 따뜻한 물은 컵라면이 땡기면 먹자고 넣었다. 물 두병을 챙기고, 눈길에서 쓸 끝이 뾰족한 하이킹 스틱은 한쌍만 갖고 가서 나눠쓰기로 했다. 나는 오랜만에 사진가방을 챙겼다.


눈길을 걸을때 가장 중요한 장비가 발목까지 올라오는 하이킹 부츠와 각반이다. 각반은 재작년에 구매했는데, 그것처럼 요긴하게 쓴 물건이 없지 싶다. 눈이 발목으로 들어오는 것도 막아주고, 종아리 부분 방한 역할도 한다. 눈길이 미끄러울 때는 미끄럼방지 발판(아이젠)을 붙이는 것도 한 방법인데, 빙판길은 아니기 때문에 그걸 장착하진 않았다. 기찻길 트레일이어서 경사가 없고, 대체적으로 안전한 넓은 길이라, 큰 부담없이 길을 나섰다.


새해 첫날 동네는 조용히 가라앉아있었다. 갈때부터 올때까지 만난 사람이 거의 없다. 트레일에서 만난 것은 사람이 아닌, 야생 터키 가족. 우리들의 등장에 터키 가족들이 우왕좌왕 갈바를 모르고 헤매고 있었다. 큰 길을 만나 길을 건너야 할때, 밴에서 내린 한무리의 가족을 만났다. 그들은 스노우 슈즈를 신고 출행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지붕 가족 이외 아무도 만나지 말라는 코로나 3단계 시국이라, 연휴인데도 적막강산중에 우리처럼 가족단합대회를 나온 사람들로 보였다. 어떤 길에는 낡은 긴장화 부츠가 울타리에 줄지어 걸려있다. 오랜시간 걸려있어서 그런것인지, 이미 다 낡은 찢어진 장화를 걸어서인지(아마 둘다겠지), 굽이 다 헤어지고, 곰팡이가 폈다. 장화가 헤지도록 걸었다는 말일까? 아니면? 무슨 슬픈 사연이 깃든 장화들일까?



트레일에는 사람은 없었지만, 스노우 모빌러가 지나가면서 닦아놓아선지, 발에 빠질만큼 눈이 쌓여있진 않았다. 너른 들판이거나, 촘촘한 나무로 둘러싸인 길이거나, 우리 두사람의 말소리밖에는 들리는 소리는 없었다. 3시간 정도 걸었을 때였던가? 한쪽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조금은 끄는 듯이 걸어야 했다. 마음 한구석에선 중간까지 걷고, 되짚어갈까? 그러면 택시타고 돌아오지 않아도 되잖아, 하는 속삭임이 들려왔다. 그러나 가고싶었던 다음 마을까지는 못가게 된다. 그 속삭임을 무시하고 계속 걷기로 한다.


가다가 트레일 중간에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비닐봉지를 깔고 그 위에 도톰한 손수건 하나를 펴니, 눈밭에서의 식사가 가능해졌다. 현미찹쌀과 퀴노아를 넣고 만든 팥죽을 하나씩 나눠먹는다. 트레일 중간에 컵라면을 먹어도 맛있는데, 팥죽만으로도 요기가 충분했다. 


남편은 스페인 샌티아고 순례길을 자주 이야기하곤 했다. 이렇게 코로나로 모든 길이 막힐 줄 알았더라면, 그곳에 한번 가보자, 할때 바짝 당겨앉아서 그 일이 이뤄지도록 머리를 맞댔으련만. 그당시에는 뜬금없는 소리라고 생각했었다. 긴 시간 할애해야 하는 일이니, 모든 조건이 충족될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당연히 생각했다. 


오늘 걷는 길은 샌티애고 순례길 하루치는 될 거리이다.  점심을 먹고났더니, 꼬였던 다리가 힘을 받기 시작했다. 끌던 다리를 다시 바싹 올려 큰 걸음을 뗀다. 샌티애고였다면 이런 상태로 그 다음날 또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쉬운 일이 아닐거라는 짐작이 들었다. 마을 가까이에서 GPS를 켜니, 트레일이 아니라, 다른 길을 일러준다. 중간중간 가로지른 사이드 로드는 완전한 빙판길이다. 그런 길로 차가 다녔다가는 그야말로 사고가 날수밖에 없어보인다. 시골 겨울길은 차가 많이 다니는 길은 자주 눈을 치우고 소금을 뿌려서 다닐만 하지만, 길중에서도 하위 개념(?)인 컨세션(concession rd.), 사이드 로드 등의 길은 자주 치우지 않아 빙판이다. 



지피에스가 사이드로드를 따라가는 길을 가르쳐줘서 그쪽으로 내려갈 때는 상당히 길이 미끄러웠다. 한 구간을 지나니, 큰 길이 나온다. 차길을 따라 언덕을 두어차례 오르고 내렸더니, 마을 입구에 있는 사거리에서 반짝이는 빨간 신호등이 보인다. 드디어 마을을 만났다. 그 사거리에서 택시회사에 전화했다. 그러면서 확인해보니, 집을 떠나온지 7시간 20분이 지나있었다. 중간중간 사진도 찍고 했지만, 꾸준히 걸었다고 할만하다. 나중에 집에와서 확인해보니, 전체 24km, 35,000 걸음을 걸었단다. 새해 첫날 불려나온 택시기사에게는 두둑한 팁을 전해주었다. 50%의 팁을.


새해가 되기전 12월 31일에는 cross country ski를 탔다. 예년보다 적설량이 줄긴 했어도, 눈에 파묻힌 동네가 되었다. 소피아는 며칠전에 스키 부츠를 내게 줬다. 자신이 신던 것인데 맞나 보라면서. 크로스 컨추리 스키는 경사진 곳에서 타는 스키와 다르다. 어릴때 빙판 스케이트 추억이 있는 내게 아주 적당한 스포츠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츠가 맞았고, 몇주전에 소피아와 함께 걸으면서 잠시 들렀던 중고샵에서 스키 폴을 싼값에 구입할 수 있었다. 스키는 소피아가 쓰던 것이 있다고 해서 함께 나갔다. 


예상한 대로 그다지 위험하지 않았다. 소피아는 혼자 멀리 갔다가 다시 돌아오고 하면서, 내게 지도를 해줬다. 본인도 누구에게 코치를 받지 않았다면서도 차분히 내게 일러줬다. 컨추리 스키는 평행으로 타야 하는 점이 신기했다. 한쪽 다리가 나갈때 몸도 같이 실어보라고 했고, 무릎을 살짝씩 굽히라고 했는데 잘 안됐다. 결국 두번 넘어졌다. 좀 잘해보려고 하다보면, 꼭 다리가 꼬이면서 중심을 잃는다. 컨추리 스키를 배우면서 처음 스키장에 갔다가 된통 당한 그날이 떠오른다. 스키는 너무 쉬운 운동이라며, 자신이 잘 가르치겠다는 지인을 믿고 나섰는데 서지도 못하는 사람을 최고 높은 데로 끌고갔던 그 인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난다. 


스키와 결국 친해지지 않는 계기가 되었던 먼 옛날의 경험은, 순진한 나를 놀린게 아닌가 지금도 물어보고 싶을 정도의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그 까마득해 보이던 눈길 경사진 곳을 어떻게 내려왔는지, 그날의 참담한 심경만 기억에 있다. 


소피아와 걸으면서 대화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스키 탄 날은 온전히 운동만 했다고 보면 된다. 운동이 끝나고 스키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 스키를 내게 팔라고 하나 생각하며 걷고 있는데 혹 필요하면 스키를 가져도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도 이것을 사고싶다고 말하려고 했다고 하니, 자신이 사용하는 스키도 어떤 사람이 준것이라며, 돈을 받을 생각은 전혀 없다고 말한다. 아주 기쁘게 줄 수 있다고.



연말과 연초 몸을 조금 혹사시켰다. 친구와 남편과 각각 M.T.를 했다고 머리속에서 갈무리한다. 어떤 일을 도모하기 전에, 팀 훈련을 마치는 것을 엠티라고 하지 않는가? 코빅 사태로 대학생들의 엠티도 없어졌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엠티에 배인 상큼하고, 젊은 기운을 훔쳐와본다.


걸으면서, 스키를 타면서 아직은 이런 것을 할수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여기게 된다. 몇년전부터 걷기를 시작한 내가 대견하다. 격렬한 운동을 한적은 없지만, 몸이 삐걱거리는 신호를 보내기 시작하는 요즈음, 그 진행 속도를 늦춰야 한다. 어깨는 오십견인지, 통증이 조금씩 있고, 허리근육도 그다지 쾌청하지 않다. 그래도 이렇게 자극을 주면, 몸도 그에 맞춰 반응을 하리라 본다. 


"건강이 최고여" 하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이제는 나와 우리 또래들의 언어가 되어간다. 그러니깐두루 나도 그 "어른들" 중 한명이 되었단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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