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함 뒤에 숨어 있던 잔혹함을 보았을 때

착한 얼굴로 다가오는 파괴자들의 진짜 목적

by 시월해담


상냥함이라는 감정에는 원래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의 상냥함은
나를 위한 온기가 아니라
나를 통제하기 위한 예열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늦게 깨닫곤 한다.

그 사람과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나는 이상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그는 상냥한 얼굴로 가장 잔인한 말을 했다

겉으로는 모두와 잘 지내는 듯 보였다.
밝게 웃고,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타입처럼 보였다.

그러나 정작
나와 단둘이 있을 때면
그 얼굴은 전혀 다른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는 늘 남의 험담을 내게 했다.
그가 말하는 대상은
그와 매일같이 웃으며 인사하고
밥을 먹고
형식적인 예의를 다하는
동료들이었다.

그는 그들을 향해
입에 담기 힘든 욕을 쏟아냈다.
그의 말투는 너무 자연스러웠고
너무 일상적이어서
나는 이게 ‘이상하다’는 감정조차
처음엔 느끼지 못했다.


문제는 그가 나에게만 그들의 욕을 한다는 점이었다

욕을 듣는 건 내가 아니었지만
이유 없이 피곤해졌다.
그의 상냥함 뒤에서 흘러나오는
묘한 악의가 불편했다.

나는 처음엔 적당히 둘러대며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하려고 했다.

“아… 그런가요.”
“그래도 좋은 점도 있지 않나요?”
“뭐, 사람마다 다르니까요.”

하지만 그럴수록
그는 더욱 집요해졌다.

그는 내 눈을 똑바로 보며
확인하듯 물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솔직히 너도 그 사람 싫지?”
“너한테도 그 사람 이상하게 굴었잖아.”

그의 말은 질문이 아니라
동조 요구였다.

그는 내가 끄덕일 때까지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상냥함은 동조를 요구하는 집착이었다

그의 가장 불편한 특징은
욕을 해도 상대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
나의 반응을 탐색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가 욕을 하는 이유는
화를 표현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싫어해서도 아니었다.

그는
내가 그의 기준과 감정에 맞춰 움직이는지
그것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

나는 어느 순간
그 거짓 친밀감에 갇혀
그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내가 불편해한다는 징후를 보일수록
더 독하게, 더 천천히
나에게 험담을 강요했다.

그 말투에는
‘너는 내가 정한 방식대로 반응해야 한다’는
정서적 통제가 숨어 있었다.


그의 상냥함이 잔혹함으로 바뀌던 날

그날 그는
누군가의 실수 이야기를 하며
날카로운 웃음을 지었다.

“너도 알잖아. 그 사람 원래 그래. 너도 싫지?”

나는 잠시 침묵했다.
정말로 대답할 말이 없어서였다.

그런데 그 순간
그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그 미묘한 변화는
내가 그에게 ‘부정적인 반응’을 주었다는 신호였고,
그 신호에 그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날 이후로
그는 나를 더 자주 찾아와
더 날카로운 험담을 쏟아내며
내가 같은 감정을 느낄 때까지
집요하게 몰아붙였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그의 상냥함은
누구를 위로하거나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자신의 감정 세계에 묶어두기 위한 진흙 같은 끈이었다.


그는 나를 ‘동조자’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의 욕에는 목적이 있었다.
그는 나에게
그의 적을 공유하게 하고 싶어 했다.

왜냐하면
적을 공유한 사람끼리는 절대 헤어지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가 욕을 함으로써 지키고 싶었던 건
그 대상이 아니라
내가 그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않는 구조였다.

그리고 나는
그가 가장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였던 것이다.


이제는 안다. 상냥함만으로는 사람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겉으로는 따뜻하고 예의 바르지만
내 앞에서만 잔인한 말들을 쏟아내는 사람은
결코 ‘친절한 사람’이 아니다.

그의 상냥함은
‘나를 선택해줘’라는 요청이 아니라
‘너는 내 편이어야 한다’는
명령이었다.

나는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의 상냥한 얼굴은
가면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가면 뒤에서
그는
누군가의 평판이 아니라
나를 무너뜨릴 계획을 조금씩 실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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