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당신만 먹잇감으로 삼는가
어느 날 문득,
그 사람의 말에 끌려다니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 사람이 기분이 좋으면 나도 편안해지고,
그 사람이 무겁게 내려앉으면
나 역시 이유 없는 불안에 잠식되었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됐지?”
돌이켜보면
그는 어느 순간부터
내 감정과 생각을
마치 자기 집 서랍처럼 열어서 뒤적였다.
그리고 나는 그 서랍 위에 고이 놓인
감정 쓰레기통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나르시시스트와 소시오패스의 뿌리는
대부분 어린 시절의 정서적 박탈에서 시작된다.
부모의 과도한 기대
조건부 사랑
칭찬과 비난의 극단적 반복
“넌 특별해”와 “넌 부족해” 사이의 혼란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감정을 통해 사랑받지 못하고
성과를 통해서만 인정받게 된다.
결국 아이는 자신의 ‘진짜 감정’을 포기한 채
대신 가짜 자아(거대한 자존심)를 세운다.
문제는
그 가짜 자아는 스스로 유지되지 않기 때문에
평생 동안 남의 감정을
“배터리 충전기”처럼 사용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타인의 행복을 축하할 수 없고,
타인의 불행에서만 안도감을 얻는다.
누군가를 끌어내릴 때만
자신이 안전해졌다고 느낀다.
즉,
그들은 이미 어린 시절에 ‘감정의 기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소시오패스 성향이 짙은 사람은
감정 공감 능력 자체가 약하거나 결핍된 경우가 많다.
그들은 타인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타인을 분석”한다.
약점은 무엇인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어떤 말에 흔들리는지
어떤 표정에서 무너지는지
그들은 감정이 아닌 전략으로 관계를 구축한다.
친절과 상냥함도
도구일 뿐이다.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장식이자 포장지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는 종종
“이 사람은 나를 정말 이해한다”는
이상한 착각을 하게 된다.
그건 이해가 아니다.
해석이고, 조종을 위한 탐색이다.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탓한다.
“내가 당할 만해서 그런가?”
“내가 약하게 보였나?”
“내가 너무 착해서 그런가?”
그러나 심리학적으로 보면
나르시시스트나 소시오패스는
무작위로 공격 대상을 고르지 않는다.
그들은 거대한 장식 뒤에서
아주 조용히,
그러나 정확하게
먹잇감을 선택한다.
그 먹잇감은 대부분
‘에코이스트(Echoist)’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에코이스트는
관계를 위해 자신의 감정을 축소하는 사람들이다.
갈등을 싫어하고
상대가 불편해할까 걱정하고
싫다는 말을 잘하지 못하고
공감을 지나치게 많이 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지키려 애쓴다
에코이스트는
자기감정보다
상대의 감정을 먼저 고려한다.
이런 성향은 원래 ‘따뜻함’에서 출발했지만
나르시시스트와 만나면
치명적인 약점으로 변한다.
나르시시스트는 에코이스트를 보면
마치 오래 굶주린 동물이
순한 사슴을 보듯 반응한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이 사람은 나를 거부하지 않는다.”
“이 사람에게는 내가 마음대로 말할 수 있다.”
“이 사람은 내 감정을 받아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어느 날
그들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 있다.
그들의 험담 대상은 누구였던가?
항상 ‘겉으로는 잘 지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밝게 웃으며 인사하는 동료들에 대해
나에게만 독한 욕을 쏟아냈다.
그건 욕이 아니었다.
그건 테스트였다.
너는 내 감정을 받아줄 사람인지
너는 내 세계관에 동조하는지
너는 나에게 충성할 사람인지
너는 내가 정한 기준에 공감하는지
당신은 그 테스트에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거나
조심스럽게 웃어넘겼거나
상대의 감정을 헤아리려 노력했을 것이다.
그 순간
그는 확신했다.
“그래, 너다.
너는 내 말에 흔들리는 사람이다.”
그때부터
그는 당신을
감정 쓰레기통이자
균형추이자
대리 화풀이 창구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에코이스트의 따뜻함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자원이지만
나르시시스트와 소시오패스에게는
가장 쉽게 악용되는 성질이기도 하다.
당신은
‘당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
‘이용하기 쉬운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 하나.
나르시시스트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접근한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패턴에 반응한 것뿐이다.
당신 잘못이 아니다.
당신이 약해서도 아니다.
당신은 그냥
정서적 공감 능력을 가진
정상적인 사람이었을 뿐이다.
이 패턴을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자기 자신을 구할 수 있게 된다.
당신이 감정 쓰레기통이 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감정을 배운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
당신이 약해서 당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약한 사람만 찾는다는 것.
이 관계에서 잘못된 것은
당신의 공감이 아니라
그들의 결핍이었다는 것.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누군가의 먹잇감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