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척하지만 착취하는 자와 동조자들
‘나는 널 위해 말하는 거야.’
이 문장은 겉보기엔 배려 같지만
그 안에는 숨겨진 의도가 있다.
그 사람의 말은 늘 부드럽고 친절했지만,
듣고 나면 이유 없이 마음이 불편해졌다.
마치 내가 잘못하고 있는 사람처럼
조용히 몰아붙이는 느낌.
가스라이팅은 원래
고함을 치거나, 화를 내거나,
명확한 언어로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가스라이팅은
친절의 얼굴을 하고 온다.
그 사람은 늘 나를 걱정한다고 했다.
표정은 부드럽고, 말투는 따뜻했지만
그 걱정은 내 감정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 판단을 흔들기 위한 것이었다.
“너 요즘 너무 예민해졌어.”
“그건 너한테 안 좋은 선택일 수도 있어.”
“다들 너 때문에 걱정하더라.”
그 말들 속에는
‘네 감정보다 내 판단이 맞다’는 메시지가
아주 공손한 형태로 담겨 있었다.
그들은 절대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늘 부드럽게,
나를 위한 척하면서,
내 결정권을 하나씩 빼앗아간다.
이게 바로
착한 척하며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의 언어다.
3편에서 우리는
에코이스트가 먹잇감이 되는 구조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실제 관계망을 보면
나르시시스트 주변에는
항상 몇 명의 ‘정해진 동그라미’가 존재한다.
(겉으로는 그들의 “친구”처럼 보이는 이들)
(암묵적 승인자, Enablers)
(상황에 따라 입장을 바꾸는 방관자)
나르시시스트는
절대로 혼자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은 항상
자신을 대신해서 평판을 세워줄 사람을 곁에 두고
‘다음 타깃이 될까 두려운 사람들’을 옆에 둔다.
그들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두 가지 방식으로 길들인다.
나에게 동조하는 사람은 안전하다
나에게 반하는 사람은 내일의 표적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무언의 규칙을
본능적으로 감지한다.
사람은 누구나
집단에서 버려지는 것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가 있다.
동조자들은 사실
나르시시스트의 진짜 ‘편’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자신이 타깃이 되기 싫기 때문에
남을 해하는 말에 맞장구칠 뿐이다.
“아 맞아요, 그 사람 좀 이상하죠.”
“예전에 저한테도 그런 느낌 줬어요.”
“그 사람 원래 그래요.”
그 말들은 사실
진심이 아니다.
그저 안전권을 확보하기 위한 말일뿐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말들은 결국
나중에 자신에게 돌아오는 칼이 된다.
왜냐하면
나르시시스트에게 ‘동조자’란
언제든 교체 가능한 자원이고,
언제든 다음 먹잇감이 될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나르시시스트는
타인을 이용하는 데 죄책감이 없다.
그들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 역시
일시적으로 이득을 얻는 듯하지만
그 관계는 안정적이지 않다.
언제든 그들은
“새로운 표적”을 찾는다.
그리고 표적은 항상
그들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다.
나르시시스트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사실 특권층이 아니라
다음번 희생자 후보군이다.
돌아보면
나도 그 동조자들 중 한 명이었다.
그가 누군가를 험담할 때
나는 피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었고
침묵하거나, 애매하게 동조하거나,
혹은 분위기를 흐리며 넘어갔다.
그 선택들은
나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 전략이었지만
결국 그 사람에게
“이 사람은 내 기준에 맞게 반응한다”는
잘못된 신호를 준 셈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나는 그 사람의
비밀스럽고 독한 말들을
받아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맞춰 말하는 습관은
잠시 나를 보호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내가 스스로
‘타깃이 되는 길’을 넓히는 행동이다.
가스라이팅의 핵심은
상대가 내 감정 분석에 맞춰 움직이는지,
그 여부를 계속 확인하는 데 있다
그리고
내가 맞춰줄수록
그 사람은 더 깊이 파고든다.
동조는
관계에서 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더 공격하기 쉽게 만드는 행동이었다.
“나는 너를 위해 말하는 거야”라는 문장은
배려의 말이 아니라
권력의 말이라는 것을.
나르시시스트 주변의 동조자들은
진짜 편이 아니라
언제든 타깃이 될 사람들임을.
남을 해치는 말에
애매하게라도 동조하는 순간
나는 그 사람의 게임 규칙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람의 말투가
부드럽고 따뜻하다고 해서
그 말이 항상 나를 위한 말은 아니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