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e Jan 09. 2019

일상의 작은 배려를 엄마에게 배웠다

당연했던 습관이 배려로 다가온 날

2018. 12. 30(일)

느지막이 일어나 갑상선 약을 먹으려고 보니 식탁 위에 뚜껑 덮인 컵 하나가 있다. 찬물을 식혀 마실 수 있도록 물을 미리 따라둔 컵이었다.


2018. 12. 31(월)

자고 일어나니 식탁 위에 2리터짜리 생수병이 놓여있다. 냉장고에 있던 물을 다 마신 엄마가 실온에 있던 새 생수병을 올려둔 거다. 찬물이 식을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일어나자마자 바로 미지근한 물에 약을 먹으라는 의미였다. 엄마는 이미 한 시간 전에 출근했다.



당연했던 습관이 배려로 다가온 날


오빠가 결혼하기 전까지, 우리집 화장실에는 매일 아침이면 뽀송하게 잘 마른 수건 두 장이 걸려있었다. 1등으로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는 엄마가 뒤이어 일어나는 오빠와 내가 쓸 수건을 미리 꺼내 걸어놓은 거다. 엄마에게는 습관처럼 해오던 일이었고 우리 남매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하루는 긴 머리카락의 물기를 짜내며 늘 수건이 걸려있던 자리로 손을 뻗었다. ‘어라?’ 손에 걸리는 게 아무것도 없다. 엄마가 회사에서 연수를 가느라 집을 비운 첫날이었다. 먼저 씻고 출근 준비를 하던 오빠를 불렀다. “오빠, 수건 쓰고 나면 새로 꺼내서 걸어줘.”


다음날에는 오빠가 나를 불렀다. “야! 수건이 왜 없어!” 내가 먼저 씻으며 사용했던 수건이 수납장 안에 있던 마지막 수건이었다. 건조대로 달려가 제일 뽀송해 보이는 수건으로 골라 건네주었다. 당연했던 엄마의 습관들이 그제야 ‘배려’로 다가왔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절친했던 직장동료를 초대해 소소한 홈파티를 즐겼다. 근처 작은 동산에서 산책을 하고 돌아오니 '이면지활용' 도장이 찍힌 종이에 짤막한 손편지가 쓰여있다. 양파부터 베이컨까지 모두 손질해두었으니 냉장고에서 그대로 꺼내기만 하면 된다는 이야기였다. 동료에게 크림파스타를 만들어주기로 했는데, 엄마가 알고 미리 재료를 손질해둔 거다. 추운 날 초대한 손님이 오래 기다리지 않고 배를 채울 수 있도록, 칼질에 서툰 딸이 실수하지 않도록 배려한 행동이었다. 덤으로 사랑한다는 말까지. 코끝이 찡했다. 세심한 엄마를 통해 하나 배웠다.


이처럼 당연하게 느껴온 일상의 편의는 알고 보면 누군가의 배려로 탄생한 경우가 많다. 가족, 연인, 친구, 심지어 스쳐 지나가는 사람에게도 우리는 하루에 몇 번씩 크고 작은 배려를 받는다. 눈치채지 못할 만큼 익숙한 풍경에서 일어난 배려일 수도 있고, '고맙다'는 말이 나올 만큼 당연하지 않은 순간에서 나온 배려일 수도 있다.


그러니 하루에 한 번, 내가 받은 배려를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 또 반대로, 내가 나눈 배려를 떠올리며 씽긋 웃어보는 건 어떨까. 그냥 지나치기엔 아쉬운 순간들이니까.


단, 단조롭던 일상에 소소한 감동이 밀려올지 모르니 주의할 것.

크리스마스에 엄마가 남긴 편지. '사랑해용' 옆에 휘갈긴 자국은 펜이 잘 나오나 확인해본 흔적으로 보인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속도가 달라도 우리는 같은 순간을 공유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