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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e Mar 25. 2016

엄마의 마지막 출근일,
나는 키다리꼬맹이가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꽃을 엄마 품에 안기며


나는 꽃을 좋아한다. 당연히 꽃다발도 좋아한다. 거리 노점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이천 원, 삼천 원 하는 꽃을 한단씩 사곤 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꽃을 받아본 기억의 8할, 아니 9할에는 우리엄마가 있다.


 

꽃보다 더 예쁘다고들 말하는 이십 대 초반. 스물세 번째 여름을 맞이한 딸이 졸업할 때 빼고는 꽃 한번 받아본 적이 없다며 졸업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툴툴거렸던 어느 날. 그날로부터 며칠 뒤, 엄마는 커다랗고 붉은 장미다발을 품에 안고 현관문을 두드리셨다. 엄마는 늘 그랬다. 옷 한 벌 덜 사고, 화장품이 떨어져도 세일하는 날만을 기다리며 나만의 키다리아저씨가 되어주셨다. 


오늘은 엄마의 마지막 출근일이었다.

엄마의 마지막 출근날, 마지막 퇴근을 앞둔 엄마의 출근길을 따라가 보았다. 매일 아침을 엄마와 함께했던 파란버스는 내가 엄마한테 꽃다발을 받으며 졸업했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모두 지나쳤다. 한강다리를 건너고 얼마지 않아 버스에서 내려 낯선 길 위에 홀로 섰다. 종종 보이는 사람들 틈 어딘가에 남겨져있을 엄마의 발자취를 그려보며 익숙한 출근길인 마냥 걸어보았다. 그리고 익숙한 동네인 마냥 망설임 없이 꽃집을 찾아 들어갔다.


꽃집을 둘러보다가 만들어져 있던 드라이플라워의 가격을 물었다. 가격을 듣고는 흠칫 놀라 더 저렴한 미니다발을 부탁드렸다. 누구한테 주는 거냐는 질문에 오늘 마지막 출근을 한 엄마한테 드리는 작은 선물이라고 답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엄마의 꽃 취향을 묻던 남자 플로리스트분은 미니다발 가격에 커다란 다발을 만들어주셨다. 그리곤 "어머니께서 좋아하셨으면 좋겠네요."라는 따뜻한 말로 꽃에 온기를 더해주셨다. 어제 오후, 며칠 동안 먹고 싶었던 딸기타르트를 혼자 맛보며 미소 지었을 때보다 기분이 좋았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는 인사말을 남기고 가게를 나서서 엄마가 '네 취향'이라고 말하셨던 카페로 가 엄마를 기다렸다.



잠시 뒤 만난 엄마는 생각지도 못했다며 무척 좋아하셨다. 활짝 웃는 엄마의 얼굴에서 조금 아까 내 얼굴에 피어났던 미소를 보았다. 그리고 우리엄마만을 위한 오늘의 꽃다발을 만들어준 꽃집은, 놀랍게도, 지난해 5월 수습직원 최종평가를 마친 내가 회사 앞으로 찾아온 엄마한테 받았던 꽃다발을 만들어준 곳이었다. 퇴사를 하고 가장 잘한 일이 두 가지 있다면, 하나는 오늘 꽃을 사야겠다고 생각하고 이를 실행해 옮긴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꽃집에서 꽃을 산 일일 것이다.


‘그 엄마의 그 딸’이라고 했던가.

그동안 엄마가 받았던 꽃다발의 6할 역시 딸의 선물이었다. 엄마 품에서 엄마의 온기를 한껏 머금었던 꽃다발을 받았던 나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꽃을 품에 안으며 꽃에 온기를 담아 전하는 법을 배웠다. 딸보다 딱 1cm가 더 컸던 엄마가 딸보다 3cm나 작아져있던 어느 날, 딸은 그렇게 엄마의 키다리꼬맹이가 되었다.




50대 중반을 넘어 60을 바라보는 연세의 엄마는 '퇴직'이 아닌 딸과 같은 '퇴사'를 하셨다. '마지막 출근'이라고 표현했지만 또 언젠가 '첫 출근'이 다가올 것이다. 새 운동화로 갈아 신고 새로운 길을 달려 나가기 위해 잠시 가뿐 숨을 고르고 있는 우리엄마를 키다리꼬맹이가 응원한다. 이 봄이 끝나기 전에 시작을 축하하는 꽃다발에 오늘의 꽃다발이 오버랩되기를.


이 글은 지난 3월 15일 마지막 퇴근을 한 엄마와 데이트를 하고 돌아온 밤에 인스타그램과 카카오스토리에 끄적였던 글을 수정해서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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