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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e May 09. 2016

꼬꼬마가 떠올려준 우리삼대

여행길에 스친 삼대에 고마움을 전하며


지난 5일, 신경주역으로 가는 KTX 6호차 안.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이모, 그리고 꼬꼬마까지 웃음꽃이 만발한 삼대가 서로의 앞 뒤 옆 좌석에 모여 앉았다. 열차가 출발하고 얼마 뒤, 할아버지 할머니의 앞자리에 엄마와 함께 앉은 꼬꼬마가 가방에서 주섬주섬 어른 손바닥만 한 포장봉투를 여러 개 꺼내 든다.


할아버지 할머니, 간식 드세요!

   

꼬꼬마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손수 포장까지 해온 간식을 건네받은 할아버지는 앞좌석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어 보이며 꼬꼬마를 기특해하신다. 어떤 간식을 왜 골랐는지, 또 어떻게 포장했는지를 쫑알쫑알 이야기하는 꼬꼬마의 모습이 삐약삐약 거리는 노란 병아리 같다. 싱글벙글 들떠있던 꼬꼬마가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며 잠시 조용해진 사이, "얘야, 이것 좀 읽어봐라. 애가 얼마나 문장력이 뛰어나니~?"라며 할머니가 포장봉투에 적혀 있던 문장을 하나 읽어주신다.     


"맛있게 드시고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십 년도 더 전에 내가 외할머니랑 함께 살았던 짧은 기간 동안, 외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나 우리삼대가 함께 가까운 나들이를 다녀왔던 기억이 있었나 싶어서 외할머니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십여 년 전 내 모습도 함께 꺼내보지만 기억나는 장면이 단 한 장면도 없다.


외할머니께 '맛있게 드세요'라는 말을 건넨 적은 있었을까. 으음, 없다. 단 한 번도 없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와 같은 말은 (항상이 아닌) 종종 해왔지만 단 한 번도 할머니가 맛있게 드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말을 건넨 기억이 없다. 기억 속에 그런 장면 하나 없는 내가 부끄럽다. 우리할머니의 손녀이자 우리엄마의 딸로서 죄송한 마음이 든다.


내가 스무 살이던 해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종종 말해왔다. 엄마는, 엄마의 엄마와 함께 하지 못한 많은 시간들이 후회되고 따뜻하게 안아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그러니 너는, 엄마와 함께 하는 이 많은 시간 동안 후회하지 않는 시간을 보내라고.


잘 안다. 엄마가 힘들어했던 모습을 바로 옆에서 봐온 딸이라서, 그래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나 ‘그래야지’하는 마음을 먹기는 참 쉽지만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 어버이날이었던 어제에도 엄마를 ‘버럭’ 화나게 만든 딸이니까.




어버이날 하루 전이었던 토요일 밤. 카네이션 바구니를 싫어할 엄마를 잘 알기에 종로거리의 한 노점에서 밤늦은 시각에 꽃을 샀다. 외출하기 전 "딸링, 어버이날에 받기 싫은 선물 1순위가 뭔지 알아? 카네이션이래. 엄마는 카네이션 필요 없으니까 사오지 마라~"라고 말했던 우리 엄마지만 저렴한 가격에 흥정까지 해가며 사왔다는 걸 알면 좋아하시지 않을까 싶었다. 활짝 핀 카네이션 네 송이에 아직 피어나지 않은 카네이션 네 송이, 그리고 부스럭거리는 연보랏빛, 보랏빛 꽃이 가득한 노점표 저렴이 꽃다발을 하나 샀다.


등 뒤에 숨겨둔 꽃다발을 짠- 하고 보여주자 엄마는 인상을 쓰며 "사오지 말라니까. 지금이 제일 비싼 시기잖아"라며 잠깐 나무라셨다. 그리고, 시들기 전에 얼른 화병에 예쁘게 꽂아두란 말을 덧붙이셨다. 하룻밤 사이 피어나지 않았던 네 송이 중 한 송이가 활짝 피어나자 엄마는 집안이 환해졌다며 좋아하셨다. 집에 들어서자 마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화병을 옮겨둔 것을 보고 피식- 웃음이 났다.


어제로부터 또 하루가 지난 오늘은 다른 한 송이가 활짝 피어났다. 우리엄마에게도, 나에게도, 그리고 하늘에 계신 외할머니께도 오늘 하루만큼은 꽃처럼 환하게 피어나는 날이 되길 바라본다.


* 사진은 석굴암으로 올라가던 길에 보았던 밀짚모자 꼬꼬마. KTX에서 만난 꼬꼬마는 두 귀에 목소리만 담아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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