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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의 속마음]
괜찮아요 이야기하기는 너무 어려워

(1) 동물 환자의 상태를 파악한다는 것

by DW
최근 발간된 [의사의 속마음]이란 책을 보고 저도 수의사로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사이자 이 책의 작가인 나카야마 유지로씨는 '독자들께 전하는 말'에서 이 책이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이 작가로서 기쁘지만 의사로서 안타깝고 슬프기도 했다고 말합니다. 이 정도로 사람들이 '의사의 속마음'을 알고 싶었고 그만큼 의사와 소통하는 것이 어려웠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수의계 역시 이런 고민이 필요한 건 분명합니다. 동물병원에 대한 불신을 가진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보호자의 입장에서 '수의사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건 실례가 아닐까' 고민되는 질문도 많을 것입니다. 어쩌면 의사-환자라는 관계보다 수의사-보호자-환자(동물)라는 관계는 더 어려움이 많을지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보호자와 수의사가 신뢰를 바탕으로 최고의 팀플레이를 이뤄내야 동물 환자들에게 최선의 결과를 선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글을 통해 수의사와 보호자가 '동물을 사랑하는 인간'으로서 서로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희망합니다.





보호자 "선생님, 초코가 수술하고 나서 아직까지 밥을 잘 안 먹어요. 수술한 부위를 아파하는 것 같기도 하구요. 괜찮은 걸까요?"

수의사 "좀 볼까요?"

테이블 위에 올라온 초코를 수의사가 이곳저곳 진찰한다.

수의사 "수술 부위 감염도 없고 깨끗하게 아물고 있네요. 배 쪽을 촉진했을 때도 특별히 통증 반응을 보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다만 아직까지 수술부위 염증이나 통증이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초코는 지금 괜찮을 가능성이 높지만 걱정되시면 체온을 좀 체크해보고 피검사로 염증 수치를 한번 확인해보면 좋을 것 같네요."




이것은 제가 환자와 자주 나누는 대화 가운데 한 토막입니다. 진료를 하다 보면 보호자들은 수의사에게 환자의 상태가 어떤지 물어볼 때가 많이 있습니다. 대화에서처럼 수술 후 회복 중인 환자나 약을 먹으며 치료받고 있는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고 있는지 궁금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좀처럼 '괜찮습니다'라고 말해주지 않는 편입니다. 심지어 수의사가 괜찮다는 말을 쉽게 해선 안된다고까지 생각합니다.


수의사가 하는 괜찮다는 말은 상당한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환자 상태가 괜찮다는 말 한마디에 보호자의 걱정이 줄어들고 잠도 편하게 주무실 수 있게 됩니다. 가능하면 저도 보호자들을 안심시켜 드리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괜찮다는 말은 사실 하기가 매우 어려운 말입니다. 의학에서 100%로 괜찮고 틀림없이 완치한다고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자기 상태를 온전히 표현하기 힘든 동물 환자의 경우는 더욱 어렵습니다.


수술이 잘 끝난 후에 상처 부위가 지발성(수술한 지 수주 이상 지난 뒤)으로 감염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몸이 약하거나 나이가 많은 환자의 경우 특정 질환을 치료하는 도중에 다른 장기에 부전이 생겨 상태가 나빠지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렵게 수의사에게 괜찮다는 말을 듣더라도 그것은 사실 100%가 아닙니다.



- 선생님 괜찮을까요?


이런 예도 있습니다. 가벼운 기침 증상을 보였던 환자가 심장사상충이나 폐종양을 가지고 있어 순식간에 상태가 나빠지는 경우입니다. 또 단순히 요즘 들어 소변보는 양이 늘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당뇨병이 진행되어 그 증상으로 다음다뇨가 나타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평소 건강했던 환자가 구토나 설사를 한두 번 해서 찾아왔다면 대부분 소화불량이나 가벼운 장염이 보통이지만 간혹 이물질로 인한 폐색이나 췌장염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수의사가 괜찮다는 말을 할 때에는 언제나 고민과 망설임이 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 있게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보호자를 안심시키고 싶지만 쉽게 내뱉은 괜찮다는 말이 보호자가 오판하게 만들거나 환자의 위급한 시간을 헛되이 흘러가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앞의 대화에서 저는 환자가 괜찮을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몇 가지 검사를 권했습니다. 그나마 사람 환자들은 통증이나 불편감이 심해지면 의사를 붙잡고 어디가 얼마나 안 좋다고 호소라도 할 수 있습니다. 말 못 하는 아기나 동물 환자들은 울거나 끙끙거리거나 웅크리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고통을 표현하지만 이는 알아차리기 어려울 수도 있고 상당히 부정확합니다. 때문에 수의학에서는 환자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위한 다양한 검사를 활용합니다.


예를 들었던 것처럼 가벼운 이상 증상도 생각지 못한 심각한 질병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은 항상 존재합니다. 때문에 가능하면 할 수 있는 모든 검사를 하면 좋겠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수의사는 환자에게 나타난 증상과 신체검사를 바탕으로 가능성이 높은 질병들을 확인하는 검사를 우선적으로 진행하게 됩니다. 이때 환자의 병력, 나이, 성별, 살고 있는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또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더라도 환자에게 치명적인 위험한 질병이 있다면 그 유무를 빨리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고령환자의 경우 저는 가급적 전반적인 검사를 먼저 하도록 권장합니다. 증상에 무관하게 환자의 상태가 어떤지를 치료에 앞서 확인하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결국 진료의 성패는 수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평가하여 필요한 검사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중요도가 높은 검사를 먼저 진행해보고 특별한 이상이 없는 것이 확인되면 그제야 저는 겨우 '괜찮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 일단 안심하십시오'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전하기 어려운 이야기


겉으로 보기에 상태가 괜찮은 환자를 보고 괜찮다고 말하는 것도 어렵지만 환자의 상태가 확실히 안 좋을 때 그것을 전하는 과정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환자의 상태가 나아질 수 있는지를 물어보는 보호자를 대하는 것은 수의사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듭니다.


보호자가 낙담하면 환자들도 그 낌새를 금방 알아차립니다. 헛된 희망을 주어서도 안 되지만 보호자와 환자의 의지를 꺾어서는 안 됩니다. 완치가 불가능하더라도 적절한 치료를 통해 환자의 기대 여명을 늘리고 환자가 겪을 고통을 줄일 수 있는 경우는 많이 있습니다. 환자의 상태는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전달하되, 보호자에게 현시점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알려주고 의료진과 보호자가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서로 격려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고도서

- 의사의 속마음, 나카야마 유지로 지음, 반니/라이프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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