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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하수희 Nov 26. 2024

12 내가 누구게?

그런데 말입니다,

임가영의 어린 시절은 그야말로 누군가 꼭 알고 싶을 만한 그 채널에 나올 정도로
잔인하고 참혹했다. 부모도 모르고 보육원에서 15세까지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그녀에게 친어머니가 나타났다.
단 하루도 잊고 살아본 적이 없다는 절절한 편지와 함께.. 왜 눈앞에 딸을 두고 굳이 편지를 전했을까?

그녀의 어머니는 청각장애와 언어장애가 있으셨다.

사춘기 시절의 가영은 기다리고 꿈꿔왔던 어머니가 장애가 있다는 사실에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오히려 왜 이제 와 날 찾았냐며 원망이나 해댔다.

어머니는 눈물로 글을 써내려갔다.

<가진게 없었다. 배불리 먹일 자신도 없었다. 그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 이제는 너에게 모든 걸 해주고 싶다.>

진심이 담긴 절절한 편지에 가영은 겨우 처음 보는 엄마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어머니 뒤에 서있는 한 남자가 자기를 쳐다보며 웃는 표정이 스스로도 이상하리만큼 소름끼치게 느껴졌다. 절대 친아버지는 아니라는걸 확신할수 있었다.

가영의 모친은 정말 그 편지 내용처럼 장애가 있던 자신이 미혼모로 딸을 잘 키울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죽어라 일을 해왔다. 작은 식당을 차릴정도로 돈을 모으고 결국 식당은 영업이 꽤 잘되고 있었다. 전셋집이나마 딸을 데려올 집도 구했다.

그때 가영의 모친 앞에 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 사람은 그녀의 식당에서 매일같이 밥을 사먹으며 다정하게 그녀를 챙기기 시작했다.

장애가 있어 남자 한번 제대로 만나보지 못했던 그녀로서는 참으로 고맙고 든든한 사람이었다.

자신처럼 모자란 엄마 하나 있는 것 보다 딸처럼 키워주겠다는 이 든든한 새아버지라도 함께 있는 것이 딸에게 훨씬 도움이 될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취약계층의 이성들에게 이유 없이 친절을 베풀고 과도한 애정 공세를 퍼붓는다면 한번쯤 의심을 해봐야 한다.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의 어디를 이 사람이 사랑하는 걸까?

물어볼 것도 없이 이 남자는 백수 한량 놈팽이. 그저 장애가 있는 여자를 이용해 놀고먹으려던 심산으로 접근했었다. 거기에서 멈췄다면 좋았으련만….

그런데 말입니다,

이 놈은 식구가 되자마자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늘 술을 끼고 살았으며 게으르고 더러운 습성을 마음껏 내질렀다. 집에서 드러누워 꼼짝하지 않고 가영과 아내를 종부리듯 했다.

가영은 어느날 어머니가 맞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다. 언제나 당차고 누구에게도 기죽지 않을 눈을 반짝이던 가영도 어쩐일인지 그를 막아설수 없었다.

학습된 무기력.

심부름 해온 소주병을 바닥에 떨군채 엉엉 울기만 했다.

그런 가영에게도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가영에게 다가온 그놈의 폭력 접근 방식은 아내에게 했던것과는 달랐다. 훨씬 잔인하고 추악하고 더러운 욕망으로 가영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깊이 잠이들어있는 가영. 끌! 하는 입안에서 혀를 튕기는 소리에 순식간에 잠이 확 달아났다.

그 놈의 버릇. 뭔가 고약한 짓을 생각해 낼 때마다 그는 그 혀를 튕기며 하관을 비틀었다.

가영은 시커먼 방에서 자기를 내려다 보고 있는 양부를 발견하고 벌떡일어났다.

눈치가 빠르고 예민했던 가영은 교복 치마사이를 바라보며 그 혀를 튕기며 끌! 소리를 자주 내던 그 잿빛눈을 경계해왔다. 그 눈이 작고 컴컴한 방안에서 잠든 가영을 언제부터 바라보고 있었을까?

궁지에 몰린 생쥐처럼 바들바들 떨 수밖에 없었다.

가영은 그날 처음 그놈에게 몹쓸짓을 당한다.

청각장애 였던 어머니는 간밤에 무슨일이 있었는지 알수없었다. 여느날처럼 바지런하게 식당준비를 하러 나가는 엄마에게 사실을 쉽게 전할수가 없었다.

그때 가영의 생각엔 이런 쓰레기 같은 놈이라도 엄마에겐 필요한 사람이지 않을까? 나 때문에 엄마가 평생 만날 수 없는 소중한 인연을 놓치게 되면 어쩌나.

가영은 집을 나갈까도 생각해봤다. 그렇게 해도 엄마는 아실 것이다. 엄마가 그저 몰랐으면 했다.

그렇게 몇 번.. 몇십번을 참아냈다..

그러던 어느날 새벽에 잠이깬 엄마가 그 광경을 목격 하고야 말았다.

펑펑 울며 처음으로 남자에게 뛰어들어 주먹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얼마 남지 않은 그의 머리털을 쥐어뜯고 온몸으로 울분을 쏟아냈다.

그러나 그 놈은 당황하기는커녕 하찮은 벌레를 떼어놓듯 그녀를 바닥에 내팽겨 치고 오히려 자기의 유희를 방해한것에대한 화를 무자비한 폭력으로 표현했다. 머리를 질질 끌고 거실로 나가 울먹거리며 억억 소리만 내지르는 여자를 있는 힘껏 걷어차고 짓밟기 시작했다. 그러다 힘이부친 그놈은

결국 밥상을 들어 여자를 내리 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곧 죽을거 같이 처참하게 맞고있는 엄마를 보고 가영은 이성을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남자의 숨은 끊어져 있었고 피가 흥건 했으며 칼자루가 나뒹굴고 있었다.

그 죗값은 가영의 모친이 치뤘다.

가영이 아무리 엄마를 설득하고 말려봐도 엄마는 한톨의 망설임이 없었다. 짧게 써내려간 글은 가영의 가슴한켠에 평생도록 남을 만큼 강렬하고 아팠다.

<미안하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널 다시 데려와서. 다 내 죄다. 사랑한다. >

그런 아픈 경험이 있었던 가영. 그때 그녀의 트라우마 상담을 했던 강희정 교수. 그녀가 가영의 성장을 도왔던건 사실이다. 똑똑하고 야무진 아이였다. 그런아이가 또 어떤 시설에 들어가서 나쁜무리들과 섞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가영을 자신의 제자로 들여 상담심리학을 배우게 했다.

그런 강교수가 어느날 갑자기 가영에게 첫 상담을 맡겼다. 갑작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상담보다 공부에 더 매진하고 싶었던 가영은 상담경력이 부족했다.

그러나 강 교수는 자신도 부탁받은 일인데 나보다 네가 더 적임자일거 같다며 첫 상담사례로 이보다 좋은 케이스가 없다고 서둘러 가영을 상담자의 집으로 보냈다.

강교수가 적어준 쪽지를 받아들고 그집으로 향하는 가영.

“기록에도 남기지말고 상담자의 집까지 직접 찾아가서 상담을 하라고?.. 고3 여고생? 학업 스트레스?.”

그러다 가영은 강교가 자기를 보내며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은 굳이 꺼내줄 필요가 없겠지? 절대 그쪽으론 접근 하지마 절대! 무의식이니 뭐니 그딴 걸로 접근할 생각 하지 말란말이야! 프로이트 무의식 말고 칼 로저스의 현실치료 접근법으로 가. 절대 무의식은 안 돼! 명심해.”

‘절대가 세 번이나 반복되어 나왔다. 무의식이 세 번이나 나왔다. 해석해 볼 필요가 있어. 무의식에 접근하지 말라는 것. 성폭행 피해에 대해 접근하지 말라는 것은 거기에 해답이 있다는 거야. 나를 너무 바보로 아네. 이건 좀 너무 자존심 상하는데?.’

‘강교수가 쥐고 있는 나의 유일한 약점 나의 과거를 알고 있다는 것 그러나 직업윤리상 비밀유지를 깨뜨린다는 것은 같이 죽자는거지.’

‘입양된 아이? 매너리즘에 빠진 교수가 공감대 형성을 잘할 거라 생각해서 날 보내는 단순한 이유는 아니겠지? 설마…. 이 아버지도?’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가영의 심란한 미간이 단숨에 하나로 모였다.

<특이사항: 입양됨. 내담자 본인은 모르고있음.
어린 시절 폭행과. 성폭행으로 인해 단기 기억상실증이 있음.
주의사항: 사건당시 일을 기억하지 못하니 조심할 것.>


수련의 부모도 처음부터 가영이 맘에 들었던 건 아니다. 너무 어렸고 교수가 직접 올 줄 알았더니 대학원생을 보냈다.

그러나 문일은 알수 있었다. 가영의 눈빛만큼은 몇십년 형사 생활해 온 자신보다도 날카롭고 묵직했다.

딸방에서 나온 대학원생이라는 여자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어떤 훌륭한 의사도 판사도 다 처음 이라는게 있잖아요? 저는 대한민국 최고의 상담심리사로서 오늘 처음으로 따님을 상담하게 된 임가영 이라고 합니다.”  

그당시를 떠올리며 가영은 지금 수련의 메모와 개인상담기록지를 다시 꺼내어 비교해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수련…. 어디까지 기억하는 거고 어디까지 알고 있는거니? 너의 기억 상자가 거짓은 아니겠지?.’

수련과 지훈은 두 번째 침대에 함께 누웠다.

수련은 아직도 뉴스에서 본 아이의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내가 본 아이는 그 아이가 분명해. 살해 시기도 꿈을 꿨을때랑 같아.”

지훈은 수련의 말을 묵묵히 들어만 주고 있다.

“나는 그때 나가서 무슨 짓을 하고 들어온걸까? 내가 그 애를 해친 게 아니라면 왜 나는 말리지도 막지도 못했을까?.”

지훈이 조심스럽게 손가락으로 수련의 이마 위를 제멋대로 덮고 있는 머리칼을 정리해 주며 안쓰러운 표정으로 다정하게 말한다.

“너는 그냥 그 아이처럼 여리고 약한 인간이니까.
어쩔수 없는일도 있는거야. 네가 다시는 그것이랑 마주치지 않게 내가 지켜줄거야. 무슨 수를 쓰든 내가 널 지킬거야.”

“가끔 넌 알아들을수 없는 말을 한다니까 너는 무슨 F니? F에도 종족이 나눠지는걸까?근데 너희 할머니 왜 나한테 그렇게 귀한걸 주셨지?우리 첫인상이 서로 좋지않았는데. 너희할머니도 엄청 날 싫어하시고.”

지훈이 낮게 웃었다.

“네가 우리 할머니 첫인상이 기억이 난다고?.”

“응 당연하지 잊을수 없거든.”

‘아닐거야.. 그때가 처음이 아닐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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