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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하수희 Nov 26. 2024

11 내가 누구게?

난 또 너를 잃었다..

‘쳇! 고기 냄새, 술 냄새. 나겠지? 젠장…. 그때는 재떨이 냄새 오늘은 고기 냄새 나를 뭐로 생각하겠어? 어휴. 일단 씻자. 아 맞다 이 도깨비 같은 놈 또 무슨 괴상한 옷을 가져다줄지 몰라. 옷 챙겨가야지.’

소파에 앉아 목에서 홍실을 풀어 자기 손에 감고 있는 지훈을 보고 조금은 측은 한 마음이 들었다. 갈아입을 옷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기 전 삐죽 얼굴을 내밀고 묻는다.

“근데 오늘은…. 웬일로 먼저 전화했어?.”

“알았으니까.”

“응? 뭘?.”

“네가 날 불렀어.”

“뭔 소리야?.”

말은 그렇게 해놓고 수련은 술김에 톡 을 보냈나 잠시 고민했다.

“네가 날 찾았어. 지켜달라고.”

“에휴.. 뭐래 야 나 씻고 나올게.”

뜨거운 물줄기가 수련의 전신을 두드리자 갑자기 몸에 열이 오르면서 취기가 훅 올랐다.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면서도 뜨거운 바람이 두피를 데우니 갑자기 열이 나기 시작했다.

간신히 머리를 말리고 나온 침대 위에 올려둔 갈아입을 옷을 보고 짜증이 밀려왔다.

‘왜 하필 이렇게 거지 같은 걸 가져왔지?.’

수련의 눈이 방안의 속옷 서랍을 향했다.

‘원교가 미국에서 보내준 빅토리아의 비밀 잠옷이 하나 있긴 있지. 이 거지 같은 옷보다는 훨씬 나을 거야.’

그날과 같은 그림이 터졌다. 수련이 물을 마시고 있는 지훈 앞에 당당하게 등장했고 지훈은 또 무심결에 마시고 있던 물을 풉! 하고 뿜어버렸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지훈이 웃지 않는다는 것.

“나 샤워하고 나왔더니 열 올라, 목마르고 지훈아 나 맥주 한 캔만 갖다줘.”

“술 마시고 씻고 또 술 마신다고?.”

“너 있을 때 편하게 마시지 언제 마시니?.”

지훈은 그 말에 벌떡 일어나 맥주를 두 캔 꺼내왔다.

수련이 캔을 따 지훈에게 건네고 가볍게 캔맥주를 부딪친 후 꿀꺽꿀꺽 들이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저러나 아까부터 지훈은 눈 둘 곳을 못찾고 있었다. 불타오르는 얼굴과 어쩔 수 없이 반응 하는 신체의 변화를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는 항마진언(악귀를 쫓는 주문)으로 겨우겨우 막아내고 있었다.

수련은 빅토리아의 비밀 의 실크 원피스 한 장만 걸치고 지훈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

“지후나~ 이거이거 꺼주라. 형광등. 대신 저거 스탠드 조명 키면 돼.”

“아? 왜 굳이?.너무 어둡잖아. 졸리면 들어가서 자던지.”

무언가 딱딱해져 오는 자신의 신체 일부분처럼 말투도 딱딱해져 가고 있다.

“흥! 바보 형광등 불빛도 자외선있는거 몰라? 너는 내가 빨리 늙었으면 좋겠어?.”

“아 그래? 아.. 아..그그 그렇구나 아..알았어.”

지훈이 조명을 낮추고 다시 소파 위에 앉자 수련이 자기 두 다리를 지훈의 허벅지에 걸쳤다.

“수련이 다리아퐁. 지훈이 술 왜 안 마셔? 짠 빨리 마셔~.”

급기야 수련이 두 팔로 지훈의 목을 감싸며 맥주를 지훈의 입에 들이붓기 시작했다.

“풉.”

지훈이 그 캔을 내려놓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처럼 짧은 한숨과 함께 날카로운 한마디 를 낮게 깔았다.

“너구나!.”

“응? 뭐가?.”

“후~ 사실 처음부터 알았어. 수련이는 내가 술 냄새만 맡아도 취한다는 걸 아니까. 어쩌면 모른 척하고 싶었나?.”

지훈이의 혼잣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듯
수련이 더없이 다정한 표정으로 지훈의 달아오른 얼굴을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눈을 깜빡였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지훈의 눈동자가 정신없이 흔들렸다.

“아…. 어쩌지? 너를 날릴 수도, 소멸시킬 수도 있는데.
이런 너도 너무 사랑스럽거든. 널 없애버리면 다시는 수련이의 이런 모습은 못 보겠지?.”

수련의 커다란 두눈에 두려움이 파르르 떨렸다. 곧장 지훈의 몸에서 떨어졌다.

지훈은 진심으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수련이에게 오랫동안 붙어있던 귀신 중 하나가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망설임 없이 칼을 뽑아 들어야 했다.

그러나 지훈이도 남자인지라 크게 흔들렸다. 그러다 결심한 듯 검집에서 번쩍이는 은장검을 뽑아 들었다.

“방금 든 생각인데, 나한테만이 아니라 다른 남자한테도 이런다고 생각하니 너는 소멸이 답이다.”

말을 마친 지훈은 부적 한 장을 꺼냈다. 칼만 들이댄다면 귀신은 떨어졌다 다시 붙을 수 있다. 소멸시키기 위해선 부적과 주문이 필요하다.

“아! 갈게 갈게 싫어.”

지훈이 내려다본 수련의 모습은 꿈에서나 그리던 선녀같이 아름다웠다 긴 다리를 들어 올려 온몸을 막으려 하니 복숭아 같은 엉덩이까지 다 드러나 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 지훈은 눈을 질끈 감고 부적을 구겨 주머니에 다시 넣었다. 그리고 그저 서늘한 은장검을 수련의 목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마자 수련은 벌떡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다시 거실로 나온 수련은 편한 잠옷 차림이었다.

“이건. 쌍방과실이야!.”

또 당당하게 서서 소파에 앉아 있는 지훈을 내려다 보며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수련.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겨있던 지훈이 고개를 들어 수련을 멍하니 바라봤다.

“네 탓도 있다고 이 도깨비 같은 놈아. 어쨌든
가설은 증명됐네. 쫄보년이 사라졌어.”

“다시 붙을 수도 있어. 올려보내지도 가두지도 소멸시키도 않았으니 어딘가 떠돌다 다시 너에게 올 거야. 그래도 소멸이 길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  함부로 붙을순 없겠지.”

“그럼 그냥 소멸 시키지 그랬어?. 왜? 아직 거기까지는 능력이 안 되시나? 그것들이 들어올 때면 완벽하게 모든 게 기억이 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너한테 무슨 짓을 하려고 한지는 충분히 알고도 남아. 근데 걔 나같이 쫄보야.
아마도 진짜 귀신이라면 처녀 귀신이겠지?
남자를 더럽게 밝히지만 한 번도 잠자리는 해본 적이 없는 거지 그러니까 무서운 거야. 그래서 막상 남자랑 붙어먹고 그러지는 않아.”

“길잃은 혼 들은 다 가여워. 나도 함부로 소멸시키지는 않아.”

솔직한 마음이었지만 저 다른 한 구석에선 수련이의 그 부드러운 손길과 자신에게 감겨오던 그 촉감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다는 아주 인간적인 감정도 있었다.
 
수련이는 은장검을 앞에두고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이거 정말 대단한데? 그러나 말인즉슨 이게 있어도 너 아니면 무용지물이다? 너만 쓸 수 있다. 다른 무당도 아닌 온리 너?.”

“응! 맞아. 그건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를 만큼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집안 대대로 내려온 건데 우리집 사람이라고 다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야. 나도 내가 그걸 쓸 수 있다는 걸 안건 얼마 안됐어. 1년 전?.”

1년전- 수련이는 피투성이가 되어 병원에 실려갔다. 그러나 수련이의 외상은 거의 없었다.

범인이 반항하는 수련이의 후두부를 가격해 기절시켜 몹쓸 짓을 하는 중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범인의 얼굴과 목을 난장판으로 그어 버렸기 때문에 그 피가 수련에게 튄 것이다. 칼에는 범인의 지문 외는 다른 사람의 지문은 없었다.

이에 경찰은 의문을 품고 좀 더 조사하기로 했다. 범인을 공격했을 칼에는 피 한 방울 묻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흉기가 어딘가 숨어있을 거로 생각하고 수색 하였지만 전혀 찾을수 없었다.

그러나 병원으로 실려 온 수련의 상태는 심상치 않았다. 원교와 현정의 전화를 받은 수련의 어머니는 곧장 달려와 딸의 상태를 보고 병원에 오래 두면 안된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모두를 물리고 혜란은 딸을 집으로 데려갔다.

똑같았다. 10년 전 굿판에서처럼 딸이 여러 사람의 얼굴을 하고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혜란에게는 딱 한 사람 도움을 청할 곳이 있었다.

그것이 지훈이었다.

혜란의 연락을 받은 지훈은 그때 처음 은 장검을 집에서 들고 나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리라 다짐하고 수련 앞에 섰다.

속수무책으로 쏟아지는 눈물 때문에 주문하나 제대로 욀 수가 없었다.

“왜..왜..날 안불렀어? 난... 또 지키지 못했어..
또.. 또.. 세 번이나 너를... 잃었다.”

지훈은 진심을 다해 신령님께 빌며 은장검을 날뛰는 수련의 목에 겨눴다. 그러니 거짓말처럼 수련의 얼굴에 평온이 떠올랐다.

그리고 스르륵 잠에 빠진 듯했다.

혜란은 그 놀라운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하였으나. 지훈은 주저앉고 말았다.

“흑흑…. 어머니, 수련이 반지 어딨습니까?.”

그제야 혜란이 지훈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되물었다.

“무슨 반지? 너희 할머니가 주신 옥가락지 말이니?.”

“네..”

“내가 늘 갖고 다니라고 말 했는데.”

혜란이 딸의 몸을 뒤적거리자, 수련이 그 결에 머리를 지끈거리며 눈을 떴다.

“음.. 머리 아파.. 엄마.. 왜 여기 있어? 저 사람은 누구야?.”

막 몸을 일으킨 수련을 보고 지훈은 눈물을 훔치며 도망치듯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지훈은 수련이 듣고 기억한 부분에서부터만 이야기를 붙여 은장검에 대해 이야기 해줬다. 그때 처음 수련에게 사용한 것을.

수련이 뭔가 떠올랐다는 듯 가늘게 눈을 뜨며 물었다.

“아, 그럼 그때가 땡땡이? 분명 시뻘건 피가 땡땡이 무늬처럼 하얀 한복에 튄 너의 모습을 어렴풋이 기억한단 말이야.! 그때야?.”

지훈의 표정이 괴로움과 번민에 휩싸였다.

커다란 손으로 수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가봐.”

‘기억하지 마, 기억하려고 하지 마. 널 아프게 한 게 그걸 막지 못했던 나 때문이라는 죄책감 때문에 너무 괴로워 이렇게 나만 기억하고 나만 괴로워할게. 넌 그냥 잊고 살아줘 제발….’

잠시 깊은 심상에 빠져있던 지훈을 쨍한 수련의 목소리가 깨웠다.

“아! 여기 이거!.!!”

은장검을 한참 들여다보던 수련이 칼 손잡이 끝부분을 유심히 바라봤다. 그곳엔 마치 빈자리처럼 동그란 홈이 있었고, 그 안에 에메랄드빛의 옥 장식은 너무나도 익숙한 신비한 색이었다.

지훈은 담담하고 정돈된 말투로 수련에게 말했다.

“네 반지 어딨어? 지금? 가져와봐.”

수련도 곧장 떠올렸던 그 반지를 서랍에서 꺼내들고 총총 걸음으로 잽싸게 다가와 앉았다.

눈을 빛내며 신기해 하는 어린아이같은 수련을 보고 지훈이 아련하게 눈을 흐린다.

수련이 곧장 생각했던 것처럼 그 반지를 퍼즐맞추듯 끼워넣었다. 반지는 딱 맞아 들어갔다.

“우왕 놀랍지도 않아. 예상했었다고! 근데 반지가 들어가는 자리였구나! 이렇게 귀한걸 나를 주신거야? 너희 할머니가?.”

“수련아.. 이제 그거 빼지마 부탁할게. 어떤일이 있어도 오늘처럼 꼭 가지고 있어줘. 응?.”

“뭐 플라시보 효과도 있으니까. 여기서 떨어져 나온거면 무조건 좋겠지. 쫄보도 떨어져나갔는데.”

지훈이 망설임 끝에 작은숨을 내쉬고 말했다.

“그게 나를 불렀어. 네가 나를 찾고 있다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수련에게 지훈이 타들어 가는 눈빛으로 얼굴을 가져다 댔다,

움찔하는 수련의 작은 머리를 도망가지 못하게 커다란 손바닥으로 움켜쥐었다.

그리고 천천히 다가가며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수련이 꿀꺽 소리가 날정도로 긴장하고 침을 삼켰다.

그날 떠오른 달은 붉은 달이었다. 그처럼 붉게 물든 수련의 얼굴에 지훈의 목덜미가 곧 닿을 듯 했다. 수련이 숨도 집어 삼키고 있던 그때.

찰랑-

자기와 똑같은 옥가락지를 목에 걸고 있는 지훈이 그것을 수련의 눈앞에 떨어뜨려 보여주었다.

그리고 다시 일으켰던 몸을 앉히고 아무렇지 않게 칼을 뒤집어 다른쪽 병두를 보여줬다.

그곳에도 맞은편과 똑같은 홈이 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기류를 느낀 지훈. 몸을 동그랗게 말고 살쾡이 같은 눈을 뜨고 있는 수련을 어리둥절하게 바라본다.

“이.. 넌.. 씨..이... 진짜.. 나쁜놈이야!.”

벌떡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수련, 지훈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중얼거린다.

“왜? 반지 설명이 잘못됐나? 그냥 보여주면 알아들을 줄 알았는데. 뭐를, 어떤 부분에서 나쁜놈이 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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