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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하수희 Dec 01. 2024

13 내가 누구게?

그집!

“허! 지훈이? 십년전에 뺏겼어! 저 물건한테! 저 년 대신에 우리 지훈이가…. 그러니 애미한테 소금 바가지가 아니라 똥바가지를 안뒤집어 쓴걸 다행으로 알아!.”

분하다는 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온 얼굴로 다 담을 수도 없었는지 불길같은 분노가 그녀의 주름진 이마에서부터 앙다문 입술까지 흘러내려 갈라진 목소리를 타고 터져나왔다


“저희 수련이 대신에 지훈이 가요? 십년전에..무슨?”


혜란은 순간 십 년 전에 이 집 앞에서 문전박대당하며 끔찍한 저주를 남편에게 퍼붓던 성자가 떠올랐다.


‘그때 혹시 지훈이에게도 무슨 일이 생겼던 걸까?.’


“혹시.. 그럼, 그때 저희 아이 사건과 지훈이랑 무슨 관계가 있었나요? 저희 남편이 경찰인데 지훈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던데요.”


성자는 잠시 무엇을 떠올렸는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독기 어린 눈으로 혜란을 한번 째려보더니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에 물건들을 이것저것 구경하고 있는 수련을 향해 어이없어하며 호령하듯 불러 앉혔다.


“흥! 됐고! 저…. 저 저거 뭐 하는 물건이야?. 여기 가 어디라고 제 집 안방처럼 기어다니는 거야? 애기때랑 달라진 게 하나도 없어! 뭐 저런 게 다 있어? 빨리 이리 안 와!.”


수련은 냅다 자리에 앉으며 꾸벅꾸벅 죄송하다고 싹싹 빌었다. 실실 웃으면서.


그런 수련을 보고 성자가 한숨을 푹 쉬고 마른 입을 쩝 하고 벌리며 피곤하다는 듯 물었다.


“네가 얘기해 봐. 무슨 일이 있었어? 굿판에 뛰어든 건 알겠는데 멀쩡하던 네가 어쩌다 무당 놀이를 하게 된 거야? 잘 생각해 봐 언제부터야?.”


수련이 잠시 어벙한 표정으로 엄마와 성자를 번갈아 봤다.


혜란은 언제부터였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랑스럽던. 너무나 밝고 생기 있던 이 아이가 조금씩 이상해진 게. 언제부터였을까?


그러나 수련은 이 상황이 그저 재밌나 보다.


“굿판 뒤집은 건 어떻게 아셨어요? 저희 엄마가 미리 말해준 거죠? 깜~빡 속을뻔했네.

음…. 저는 귀신 같은 건 안 믿는데요. 아마도 제가 몽유병이 생긴 거 같아요. 그게 언제냐고 물으신다면 얼마 안 됐어요. 이사 간 지 얼마 안 됐는데, 아마도 그때쯤??.”


성자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묻는다.


“몽유병? 그거 말고 다른 건 없었고?.”


말끝에 수련이 겨드랑이를 펄럭거리며 신나는 얘깃거리를 찾아낸 사람처럼 떠들기 시작한다.


“있어요! 교회사건! 그때는 저 완전 미친년이었어요. 저희 엄만 저 때문에 신을 버렸어요. 아니지, 아버지를 버렸죠. 매주 이틀씩 십자가 앞에서 아버지! 그렇게 부르짖던 분이 크큭 정말 눈물 나는 모정이지 않아요?.”


혜란은 익숙한 딸의 모습이었지만 성자는 이 깜찍한 여고생이 킥킥대며 뭐라고 떠드는지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눈살을 찌푸리며 되게 한소리를 뱉었다.


“너 지금도 미친년 같아! 잡소리 할 거 같으면 냉큼 나가!.”


그제야 혜란이 낮지만 엄한 소리로 수련을 꾸짖었다.


“수련아. 엄마를 봐서라도 좀 예의를 갖춰!.”


수련이 또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뾰로통해서 대꾸한다.


“예의 없는 게 아니고 진짜예요. 지금 여기 온 것도 그렇고 그 이상한 무당을 집에 불러들인 것도 그렇고, 제가 교회에서 난동을 부려서 그러신 걸 거예요. 그래서 교회를 못 가시는 거예요.”


혜란은 흠칫 놀랐다. 수련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분명 이사온 집에서 밤만 되면 흉측한 것들이 돌아다녔고 문일도 보고 혜란도 보았다.


딸에게도 뭐가 보이지 않느냐고 묻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어린 딸에게까지 굳이 말해 공포심을 주고 싶지 않았다.


수련이 자기 때문에 굿을 벌였다고 생각했단 걸 지금 처음 알았고. 순식간에 밀려드는 죄책감 때문에 천진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수련의 맑은 눈을 피해버렸다.


“난동이라? 더 안 들어도 되겠네.”


의외의 대답이었다. 만신 성자는 교회에서 난동을 부렸다는 수련의 말에 손에 쥐고 있던 부채마저 내려놓았다.


수련의 얼굴이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


‘사기꾼 할망구 뭘 안 들어도 알아? 맞춰봐!.’


“제가 뭘 어쨌게요? 맞춰보세요!.”


삐죽 내민 주둥이는 얄밉게도 성자를 향해 뻐끔거리며 성자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 모습이 괘씸했던 성자가 평정심을 잃고 버럭하며 퍼붓기 시작했다.


“요년 봐라! 너 이년아! 가서 지랄 염병하고 왔지? 온몸이 배배 꼬이고 날뛰고 춤추고 싶어서 환장을 했을 거 아니야? 지금 하는 꼬라지 보니까 니년 말리는 사람 없으면 십자가 밑에서 널뛰다 왔을 거다 틀려?”


“어? 이것도 말했어? 엄마?.”

‘우쒸 엄마랑 할망구가 짰나? 이거 몰카 아니야?.’


그때를 떠올리고 화끈거리는 얼굴을 주저앉히며 옹알이하듯 낮게 성자에게 고하는 혜란.


“십자가 까지는 안갔고요. 그전에 거품 물고 쓰러졌어요. 혼자 중얼중얼 도와달라는 말만 계속 하더니...”


“어? 내가 그런 말을 했어?. 저는요 어디까지 기억나냐면요. 매주 엄마랑 가던 교회 걸랑요? 근데 할머니 교회 안 가보셨죠? 원래 교회 의자가 딱딱하고 간격도 좁고 겨우 엉덩이만 걸칠 수 있게 작고 엄청 불편해요. 아무리 신앙심이 깊어도 거기에 1시간 50분 이상 못 앉아있을걸요?

그래서 예배 시간이 다 그렇게 정해진 걸지도 몰라요.

어쨌든 매주 가던 교회, 매주 앉아있던 의자가 그날따라

불판인지, 강판인지, 따갑고, 뜨겁고, 불편하고 그래서 막 제가 이렇게, 이렇게요..”


 수련이 갑자기 엉덩이를 들고 무릎 꿇은 다리를 성자 앞에서 쩍 벌리기 시작했다. 성자는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고 혜란은 못 말리겠다는 표정이었다.


“지금 그 자세를 설명하자면 이렇게 막 미국 춤을 추고 있었나? 엄마가 막 창피해 죽겠다고 말리고 그랬는데도 아픈 걸 어떡해요. 엄마 말로는 엑소시스트에서 계단을 거꾸로 내려오는 여자애처럼 온몸을 비틀었다고 하셨는데 제가 누구 딸이겠어요. 우리 엄마도 과장을 섞지 않았겠어요?.”


그 말끝에 성자와 혜란의 두 눈이 마주쳤고 혜란은 가시방석일 수밖에 없었다. 딸은 자기가 입양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알리고 키우는 집안도 있지만 혜란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가슴으로 낳은 친딸이라 생각했다.


성자는 주름진 눈을 가늘게 뜨고 잦게 도리질 쳤다.

혜란에게 안심 하라는듯.


“끝났냐?.”


“아뇨. 거기서 끝났으면 좋겠죠. 근데 갑자기 막 웃음이 나오는 거예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그때 기분을 설명하자면 비웃고 싶었나? 형용사로 표현하면 같잖다? 웃기시네? 뭐 그런 나쁜 생각들이 막 머릿속에 떠오르는 거예요. 그리고 실제로 웃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엄마 얼굴을 봤는데 엄마 얼굴이 바둑이 같았어요. 하얀 얼굴에 점 세게.

그만큼 하얗게 질렸어요. 그다음은 기억이 안 나요.”


“웬만한 연속극 보다 낫구나.”


성자가 처음으로 웃음을 내비쳤다.


성자가 볼펜과 종이를 꺼내어 수련의 앞에 내민다.

멀뚱히 성자를 쳐다보고 있는 수련에게 최대한의 불친절함을 비치고 싶은 말투를 던진다.


“집 주소. 너, 그림은 좀 그릴 줄 알아?.”


“네? 그림요? 못 그리는데 네모랑 동그라미밖에 못 그려요.”


불친절한 할머니에게 자신도 예의를 갖추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수련도 반항심 한 스푼을 섞은 말투로 대꾸했다.


 “그거면 됐어, 집주소랑 너희 사는 집 방 거실 문 창문 그것만 그려봐.”


수련이 입을 삐죽 내밀면서도 나름 정성껏 집 모양을 그럴 듯 하게 그려냈다.

집주소까지 적어서 두 손으로 밀어냈다.


그것을 받아서 든 만신 성자는 침침한 눈을 찌푸려서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곧 그 눈이 또 등잔만큼 커다래졌다. 성자는 제일 먼저 궁금했던 것부터 물어야 했다.


“이 집 어떻게 들어가게 됐어?.”


혜란은 날이 선 성자의 질문에 발가벗겨진 것처럼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남편이 비밀로 하라고 했기 때문에.


말하자면 사소한 대가 같은 거라고 했다. 1년만 있으면 앞에 시장 골목에 대형 마트와 커피숍들이 생긴다고 정보를 들었다고 했다.


그렇다고 하기에도 너무 오른 땅값이었는데 그들의 돈으로 충분히 사고도 남을 3층 짜리 집이 그들손에 들어왔다.


귀신이 나와도 딸이 자다가 밖을 뛰쳐나가도 참아야 했다. 고개를 들수가 없는 혜란.


영 대답을 꾸물대는 혜란을 보고 뭔가 눈치챈 성자가 더 이상 묻지 않고 다시 한번 종이를 훑어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곧 빙글대기 시작했다.


“허! 대한민국 서울 땅에 이런 집이 있었어? 이거 사람 살라고 만든 집 아닌데?. 2층까지는 그럭저럭 살겠다. 3층은 사람 사는 집 아니야. 누군지 몰라도 고약 하구만. 꽤 공들여 만든 집 같은데? 죄 문이랑 창문까지 동쪽으로 뚫어놓고 가로막힌 건물 하나 없어. 귀 문이 열린 집일세. 귀신들이 드글드글 했겠어. 그래서 그 무당이 굿하면 이 귀신들 다 걷어간대?.”


성자는 웃고 있었다. 정말로 재밌는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웃고 있었다.


수련은 그들의 말은 듣는둥 마는둥 하다가 눈앞에 청포도처럼 탐스럽게 생긴 '무령'(무당방울)에 홀린듯 눈이갔다.


저도 모르게 손을 뻗쳐 만지려는 그 순간. 땔감 같은 손찌검이 매섭게 날아들었다.


“이년이 죽을려고 환장을했나?.”


늙은 만신의 눈이 예리하게 수련의 손 끝에 꽂혔다. 그토록 담대하던 성자도 헉! 하며 주저앉았다.


“너 이년! 무령을 잡았구나!.”


**

그 집은 최창근이 문일에게 찔러넣어 준 집이었다. 그 당시 문일은 굵직굵직한 사건을 연달아 해결해 나가며 금세 승진 가도에 올랐다.


아무도 풀어내지 못할 것 같은 미제 사건도 문일의 손에 들어오면 3개월 안에 무조건 해결된단 말이 정설처럼 떠돌고 있었다.


워낙에 냉철하고 수사 능력이 뛰어났던 문일이었지만 마치 각성이라도 한 듯 어느 순간부터 폭발적으로 발휘된 그 귀신같은 촉은 정말 동료 형사들 사이에서도 그야말로 귀신 그 자체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로 신기하고도 비범했다.


출발은 같았지만, 어느새 직급으로 멀찌감치 떨어진 둘도 없는 친구이자 동료 형사 최창근은 문일이 강력계 팀장으로 발령을 받을 때 슬쩍 자기를 끼워달라며 그 집을 억지로 쑤셔 넣어준 것이었다.


문일은 그 집이 아니었어도 팀원으로 함께 갈 생각이었으나 받은 게 있었으니, 그에 합당한 직책까지 내려줄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슬슬 그 바닥에서 문일의 안 좋은 소문들이 흘러 다니기 시작했다.


어쩌면 모두의 시기심과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수사 능력이 의심스러워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고 부풀리게 된 것일지도….


그러다 사생활에 대한 소문까지 돌기 시작했다. 오래된 내연녀가 있다는 둥 그사이에 자식도 있다는 둥.


늘 냉정을 잃지 않던 문일도 그런 이야기를 흘리는 이가 있다면 불같은 눈으로 쏘아보고 욕을 퍼붓기 일쑤였다.


그런 문일의 곁에 진정으로 어깨를 두드리며 함께 해주는 이는 친구 최창근뿐이었다.


가장 든든하게 믿는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친구였다.


귀신같은 수사 능력. 딸 사랑이 유난한 자상한 아버지. 아내에게도 결혼 후 눈물 한번 뽑아낸 적 없는 성실한 남편이었다.


그토록 완벽한 그도. 비밀이 있었다. 절대 아무도 알아서는 안 되는 자신의 치부이자 유일한 약점.


부풀려지고 허황된 그의 날조된 소문들 속에서도 진실은 있었다.


그에게 아내 말고 다른 여자가 있었다는 것.


그 여자의 존재가 알려진다면 문일의 인생은 바닥이 아니라 지옥에서 다시 시작될 것이다.


그가 그토록 철저히 봉인하고자 한 가련한 여자의 인생은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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