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시장 골목을 한 무리의 요란한 차림의 사람들이 비범하게 등장했다.
대여섯은 훌쩍 넘어 보이는 경객(강신후무당을돕기도함) 들이 바리바리 짊어진 것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저절로 두발이 따라붙게 할 만큼 낯설고 기이한 것들뿐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꿱꿱 대며 죽어라 발버둥 치는 새끼 돼지였다.
북과 꽹과리는 차라리 평범해 보일 정도였다. 창호지가 덕지덕지 붙어 너울대는 신장대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삼지창이 그들의 손에 들려있었다.
금빛 손잡이에 은빛 칼날이 번뜩이는 신장 칼을 하늘 높이 쳐들고 골목을 들어선다.
그들 앞에 선봉으로 선 누가 봐도 무당인 서천신당의 서천 무녀! 경객 들이 바리바리 짊어진 짐에 비해, 서천 무녀의 손에는 무령과 부채뿐이었다.
잠시 3층짜리 건물 앞에 서서 만족스럽다는 듯 하늘을 바라보며 섬뜩한 미소를 귀까지 찢어 올리는 서천 무녀.
창호지로 접은 신모는 소박해 보였으나 그에 비해 지나치게 요란스러운 화장이 천박해 보이기까지 했다.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이들의 등장에 따라붙은 구경꾼들은 자연스레 수련의 집으로 빨려 들어가, 어느 집 대감마님 마당만 한 옥상에 구석구석 빼곡히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수련은 교회 다니는 사람이 무슨 굿이냐, 귀신 따위가 어딨냐며 엄마를 뜯어말렸었다.
왜 굿을 해야 하는지 설명도 안 해주는 부모님께 화도 나 있었다. 새벽부터 실어 나르는 과일들 왔다 갔다 하는 낯선 이들. 모두 불쾌했다.
수련은 헤드폰 음량을 최대로 해두고 방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2014년도 대한민국 서울의 도심, 굿은커녕 무당을 처음 본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수련의 어머니 혜란도 마찬가지였었다.
천도니,진오귀굿이니, 생소했고 무지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수상한 굿이었으나 수련의 귀만이라도 열려있었다면….
이때 수련이 헤드폰을 쓰고 음악을 듣지 않았더라면, 단순한 돼지머리가 아닌 새끼 돼지의 꿱꿱 대는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들었다면!
모든 것은 그렇게 단 한 번의 선택, 단 한 걸음의 내딛음으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기도 하는 것이다.
경객의 북과 꽹과리 소리가 들려온다.
다음과 같은 경문을 외는 경객. 그옆에 조용히 눈을 감고 앉아있는 무당.
“태상일황 천생아 황지태상아 태상아 태월동아 별진영아...”
시간이 지날수록 잔잔했던 북과 꽹과리 소리가 높아지고
콩나물시루 같은 구경꾼들의 눈이 반짝이며 무당의 손짓과 눈빛만을 따르고 있던 그때.
그들을 한바퀴 솨! 훑어보던 서천 무녀가 목청 높여 ‘허이!’ 한마디와 함께 사람 허리춤까지 그 몸을 훌쩍 띄워 단숨에 좌중을 압도했다.
‘무대는 되었다.!’
무당의 시뻘겋고 가느다란 입술이 붉은 실처럼 귓가에 걸렸다.
소복 위에 빨간 치마와 검은 저고리를 덧입은 무당이 신장대를 흔들며 근엄하게 한바퀴 돌았다.
“우리 신장님이~ 살아서 명장이고, 죽어지니 신장이 되었소. 잡으라면 잡는 신장이고 쫓아내라면 쫓는 신장이고, 허니 우리 신장님은 떠도는 망자들도 붙였다~~떼었다~~.”
신장대에 두 손을 붙였다 떼었다 하며 모두를 쏘아보는 눈빛 끝자락에 걸린 섬뜩한 기운은 구름 뒤의 번개처럼 순간 스쳐 지나갔다.
참으로 희한한 굿이었다. 북도 꽹과리도 있었으나 춤도 노래도 없었다.
갑자기 하늘을 향해 높이 손을 치켜들던 무당이 주저앉듯 바닥을 쓸며 흐느끼기 시작한다.
구경꾼들은 이 광경에 완전히 몰입되기 시작했다. 소곤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침 삼키는 소리도 들릴 듯했다.
“아이고~아버지~~......”
그렇게 시작하는 무당의 빙의된 듯한 구슬픈 연기에 모두가 빠져들었다.
경객은 아버지 역할도 어머니 역할도 대신한다.
“그래 불쌍한 내 딸 어서 오너라.”
“아이고 어머니!!…!”
이제는 남자 목소리를 내며 어머니를 구슬프게 부르는 무당. 두 시간 동안, 이 연극은 질리지도 않게 지속되었다.
이것은 단순히 망자들을 천도하는 진오귀굿이 아니었다. 겉으로는 사혼굿의 형식을 띠고 있었으나, 그조차도 정확히 들어맞지 않는 기묘한 굿이었다.
사혼굿은 보통 미혼으로 죽은 처녀와 총각 귀신을 맺어주고, 떠도는 영혼들을 조상으로 모시는 의식이다.
그러나 이 무당은 모든 떠도는 망자들을 살아 있는 가족과 잠시 인사를 나누게 하고, 그들이 한을 풀고 떠나도록 하는 전형적인 진오귀굿까지 함께 행하고 있었다.
이토록 기괴한 굿판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광경이 펼쳐질 수 있을까?
그러나 굿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던 동네 사람들은 펼쳐지는 장면에 매료되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넋을 잃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수련이 헤드셋을 빼고 보니 징징징징.. 소리가 울려댄다.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헤드셋을 끼려던 찰나.
꽹과리와 북소리를 뚫고 낮고 뱀같이 서늘한 여자의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동으로는 청요리 장히 나오시면….”
그 소리를 듣자마자 수련이 벼락을 맞은 듯 경기하며 몸을 일으켰다.
신발도 꺾어 신을 만큼 허둥지둥 옥상으로 올라간다.
어느샌가 뒷짐을 지고 굿판에 들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당을 쳐다보고 있는 수련.
흥이 한참 고조되고 꽹과리와 북소리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을 무렵 무당은 마지막 경문을 외며 고개를 하늘로 꺾고 두 팔을 벌린다.
동서남북으로 나뉜 남자 둘 여자 둘이 무당의 허리춤에 감긴 무명 베를 칼로 죽 찢어 들어가고 무당은 천천히 한바퀴 돌며 감은 무명을 풀어준다.
“...옥황상제 문을 열어 십대왕의 염불 받아 가소서!!!”
이로써 꽹과리와 북도 무당의 춤사위도 모든 것이 멈췄다.
서늘하고 기묘한 바람이 우뚝 속은 네모난 옥상으로 가득하게 날아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구경꾼들조차 목덜미와 팔뚝을 쓸어내릴 정도였다.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아야. 니 지금 멋허냐?.”
수련이었다.
무당이 매섭게 쏘아보았으나 수련의 눈은 그보다 더 불같고 벼락같았다.
“써글! 선무당이 널뛰는 거나 보고 떡이나 주워먹으러 왔더만 이것이 뭔 해괴한 짓거리여! 여그가 어딘지 알고 이라는겨? 상주도 없는디 이 많은 망자들을 워처케 달랠라고 불렀냐? 그 돼지새끼는 뭐여? 너 그거 뭣할라고 그라냐? 뭣에 쓸라고 그라는겨?!.”
혜란은 난데없는 사투리를 쓰며 허리를 구부정하게 하고 호통을 치는 수련을 보고도 감히 다가갈 수도 없었다.
그만큼 수련이 지금 뿜어내는 기운이 심상치가 않았다.
그리고 누구 하나 자리를 뜨지는 않았지만, 수련의 말이 퍼지자, 사람들의 얼굴에도 서서히 두려움이 번졌다.
생각지도 못한 반응은 무당이었다.
“으히히히히 영감. 늦어도 한참 늦었네. 나도 신령님도 기다리다 지쳤어.”
겉보기엔 영락없는 가녀린 여고생을 영감이라 부르는 이 무당의 요란한 화장 끝에 시뻘겋고 가느다란 입술이 길쭉하게 찢어졌다.
꾸엑꾸엑 꾸엑꾸엑-
새끼돼지는 곧 다가올 슬픈 운명을 예감한 것인지 유난스럽게 발악하고 있었다.
“뭐하는것이여? 떠도는 망자들을 올려보내지는 못할망정 왜 거그다 가두는겨? 그라믄 원귀가 될것인디? 워짤라고 그러는겨? 원귀를 워따쓸라 그라는겨? ”
어느새 이 옥상에는 이 두 사람의 대화밖에 떠돌지 않게 되었다. 모두 숨죽여 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다.
“그랬다간 목숨이 열 개라도 남아나질 않겠지. 아무리 돈이 좋아도 내가 그렇게 멍청한 짓을 하겠어?.”
서천 무당의 행동엔 거침이 없었다. 방울과 부채를 손에서 내려놓고 신장칼을 뽑아 들었다. 칼끝이 혀를 긁어내자, 입꼬리가 기괴하게 올라갔다.
그러나 그 순간 내려놓은 무당의 방울은 순식간에 수련이 낚아채 들고 있었다.
-찰랑-
수련은 어느새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으로 방울을 흔들며 눈을 감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고운 여자의 목소리였다.
“무장신선이시여, 당신의 강철 같은 힘으로
악귀를 쫓고, 이 땅을 보호하소서….”
그러나 그런 수련을 보고 오히려 무당은 박장대소를 하였다.
“하하하!! 무장신선이라. 차라리 맥아더 장군님이 더 빨리 오시겠다. 하하.”
그리고 그녀는 마저 자기 할 일을 하려는 듯 마지막으로 섬뜩한 말을 쏟아부으며 잿빛 하늘에 번뜩이는 신장칼 을 치켜올렸다.
“망자는 산자의 그릇을 원하고 돼지가 뜻을 이뤄줬으나 돼지를 잡으면 망자는 돼지에게 갇혀 원귀가 될 것이니, 망자들은 어디로 갈 것이냐~~~?.”
신장칼을 두 손에 꼭 말아쥔 서천 무녀. 있는 힘껏 내리치며 소름 끼치는 말을 내질렀다.
“돼지 안에 사람이 있다!!! 허이!.”
숭덩-
무당은 있는 힘껏 신장칼을 휘둘러 단칼에 새끼 돼지의 목을 쳐냈다. 사람들의 비명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무릎꿇고 있던 수련은 다시 거친 말을 토해내며 사지를 비틀었다.
“이 육시럴년!.니가 감히 누구를 ..감히..”
옥상 안에 가득했던 불길하고 눅진한 바람들이 순식간에 수련에게 몰려들었다.
혜란이 수련에게 뛰어들어 살피려 해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러다 수련이 스스로 목을 움켜쥐고 핏대를 세우며 컥컥 대자 혜란은 핸드폰을 찾아 구급차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제 수련은 무엇인가에 막힌 듯 꼼짝을 할 수가 없게 돼버렸다. 두 눈알만 뒤룩뒤룩 굴리며
분하다는 표정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모여있던 사람들도 허둥대며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구급차를 부르는 사람들만 여럿이었다.
구급차를 부른 혜란은 다시 달려와 수련을 끌어안고, 모여든 사람들에게 살려달라는 소리만 내질렀다.
수련은 거품을 물며 온몸을 심하게 경련했고, 목에 핏대가 두둑 소리를 내며 터질 지경이었다.
흰자에서도 핏줄기가 모여들었다. 곧 숨이 막혀 죽을 거 같은 얼굴이었다.
몸부림치던 손끝이 서서히 늘어졌다. 혜란은 딸의 몸을 껴안고 울부짖었다.
“차라리 절 데려가세요. 제발요.. 우리딸은 아.안돼요..안돼 안돼 수련아 정신차려 수련아!!.”
잿빛 하늘도 어느새 검게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