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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하수희 Dec 03. 2024

16 내가 누구게?

근디,너 누구냐?

“네 이년 네가 무령을 잡았구나!!.”

마른 장작처럼 딱딱한 성자의 손바닥이 수련을 내리치는 소리가 잠시 방안을 울릴 정도였다..

그러나 수련의 손끝이 잠깐이라도 스쳤던 그 순간, 성자의 머릿속에 낯선 장면들이 들이닥치고 주름진 얼굴이 끔찍하리만큼 뒤틀렸다.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고 나서야 알아차렸다. 수련의 고통이 자신의 몸에 생생하게 내려앉은 것. 이것은 수련의 화경이었다.

동시에 우당탕 소리를 내며 요란스럽게 뒤로 나자빠지는 성자.

옹기종기 모여있던 세 여자.

늙은 무녀만이 지금 지옥에 와있다!

만신 성자도 칠십 평생 이토록 선명한 화경은 본적도 느껴본 적도 없다.

눈을 뜨자마자. 곧장 성자의 숨통이 조여오고 있었다. 눈은 뜨긴 떴으나 성자의 눈이 아니었다.

수련의 그 집! 그날! 그때! 수련의 눈꺼풀이 성자에게서 떠졌다.

‘헙’ 숨도 막히고 입도 막혔구나. 손가락 하나 까딱 내 맘대로 못 하는구나. 눈알은 굴러간다. 헉헉…. 이이..이힉! 동서남북 사방에서 모여드는 피떡이 된 망자들이 나에게 기어들어 온다.

발끝을 후비고 손톱 밑을 파고들며 모골을 찾아 기어들어 온다. 헉헉…끄어어억!

수십, 수백 개의 망자들이 몸을 차지하고 들어앉아 오장육부가 찢어지고 구멍이란 구멍은 다 틀어막혔다. 으아아아악!!!

몸뚱이도 하나요 목구멍도 하난데 셀 수도 없는 망자들이 울고 소리치고 웃는 통에 목구멍은 타들어 가고 뱃가죽은 찢어지고 실핏줄마저 제 것인 양 쥐어짠다.

헉헉..칠성신령이시여.이 고통에서 제발 꺼내주소….

이 것들이 내지르는 비명과 흐느끼는 소리, 웃는 소리가 온 몸통에서 울려댄다. 피를 빨고 살을 씹고 뼈를 조각조각 끊어댄다. 아아아악!!

“차라리 죽여주소!!”

성자의 절규가 방 안을 찢을 듯 터져 나옴과 동시에 죽고 싶을 만큼 끔찍했던 수련의 화경이 겨우 무너져 내렸다.

성자는 바닥에 드러누운 채로 천장을 멍하게 바라보며 한동안 숨을 몰아쉬었다.

피가 빠져나간 얼굴에는 깊은 피로가 스며들었고, 온몸은 쑤시는 듯 무거웠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도대체 무슨 일이세요?”

두 여자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그녀 얼굴 위로 떠오르자 그제야 마치 악몽에서 벗어난 사람처럼 겨우 몸을 일으켰다.

얼굴에는 방금 전의 고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지만, 어느새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자신을 추슬렀다.

성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마치 전과 다른 사람처럼 고요해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천진한 눈으로 자기가 뭘 그리 큰 잘못을 했는지 눈치만 보고있는 수련을 보자 성자는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쌩쌩한 찬바람만 불어오던 그녀가 갑자기 모녀앞에서 서글피 울어대니 모녀는 서로를 바라보며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가.. 얼마나 괴로웠냐.. 어찌 그것을 견뎠냐.. 워메.. 시상 그 숭한것들이 그리 달려들어도 그것을 어찌 참아냈냐... 오메 나였으면 벌써 뒤졌어. 아이고 불쌍한 것. 워메 으짤쓸꼬. 어떤 염병할것이 그런짓을 해부러쓸까?.”

그렇게 감정에 복받쳐 안쓰럽게 수련을 바라보던 그녀가 뭔가 퍼뜩 생각이 난 듯 수련을 매섭게 쏘아본다.

“근디 너 누구냐?.”

참으로 시기도 적절치 않았고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

현재.

비밀의 방 앞에선 두 남녀.

지훈은 차마 방에 들어서지 못하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자기 얼굴을 계속 내리 쓸었다.

반면 수련은 마치 견학 온 학생을 구경 시켜주는 것처럼 들 뜬 표정이었다.

지훈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절대 말하지 않으려고 했던 문일의 비밀. 잠시 들여다본 화경으로 지훈은 알고 있었다.

십 년 전 자신이 들여다봤던 수련의 아버지 화경을 수련에게 이야기 해줘야 하나?

그만큼 지금 이 방안의 펼쳐진 상황으로 미루어 봤을 때 수련은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깊어 보였다.

“그러니까 이게 다…. 너랑 아버지랑 지금까지 해왔던 거란 말이야?.”

수련의 표정은 말할 것도 없이 자랑스러웠고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가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기뻐 보였다.

벅찬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두 손을 모아 가슴에 그러쥐고 크게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나 지훈은 눈꺼풀이 천천히 내려앉으며 깊숙한 어딘가에서 고통이 번뜩였다.

“언제부터야?.”

“음.. 좀 오래된 거 같은데? 기억도 안날만큼. 그건 왜?.”

결국 주저앉을 것 같은 무릎을 겨우 한 손으로 지탱하고 다른 손은 머리를 짚었다.

“혹시…. 어렸을 때 사고가 난 후부터, 기억이 돌아오고 난 후부터?.”

“음…. 그럴걸?. 그런 거 같아. 어떻게 알았어? 그것보다 그게 왜 중요해?”

질문은 던졌지만, 대답은 굳이 들을 필요가 없었던지 통통거리며 방 안으로 들어가는 수련.

지훈이 이제 몸을 일으켜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 천천히 머리 뒤통수까지 넘겼다. 매우 피곤하고 고통스러운 표정이었다.

“천수를 못 누리고 가신 건 상관없지만, 내 여자를 이딴 식으로 이용한 건 돌아가셨다 해도 용서할 수 없지!.”

말을 마친 지훈은 평소답지 않게 싸늘하고 매서운 눈빛으로 거침없이 방안으로 들어섰다.

수련은 이미 지훈에게 보여줄 이것저것을 챙기느라 지훈의 말을 흘려듣고 방안에 살풍경한 것들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이거, 이거 봐봐 이거는 경찰도 안 가지고 있는 거야.”

작은 나비가 달린 똑딱 핀.

“이건 내가 찾은 건데, 아빠가 증거로 쓸 수 없다 그래서 그냥 가지고 있는 거야. 근데 이게 없었으면 죽은 아이 시체는 못 찾았어.”

수련은 잔뜩 신나있고 어깨가 솟아있다.

지훈은 만지고 싶지도 않았다. 녹슬고 유행이 한참 지난 촌스러운 핀 이었지만, 누군가의 서러움과 길을 잃은 두려움, 공포가 고스란히 남겨져 있었다.

“그런걸. 왜 갖고 있어? 주인이 다행히도 네 덕분인지 잘 올라가셔서 망정이지 원귀나 악귀들은 그런 사소한 물건이라도 붙잡고 산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어. 죽은 사람 물건 함부로 주워 오지 말라고. 이게 대체 다 뭐야!.”

그제야 지훈은 자기가 왜 이 방에 그토록 들어오고 싶지 않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죽은 이들의 한이 담겨있는 물건들. 그들이 죽기 전에 남기고 간 끔찍한 마지막 순간이 박제된 사진,증거,흉기,범행장소...

온 방 안을 끔찍하고 혈흔이 낭자한 사진들로 도배가 되어있었다 작은 틈 하나 없이 빼곡히.

그 와중에, 눈에 띄었던 것은 형체를 알아볼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조각나있는 시체들의 사진.

시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그것은 그저 토막 난 누군가의 일부분 들이었다.

그 사이를 연결 지은 빨간 줄, 곳곳에 노란 포스트잇으로 메모가 되어있다.

죽은 수련의 아버지의 글씨.

방안 가득 토막 난 시체의 사진들이 빨간 줄을 긋고 물음표가 가득했던 포스트잇을 따라가다 의문의 사진 한 장 위에서 지훈의 두 눈이 얼어붙은 듯 멈췄다.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수련의 귀에도 들릴 정도였다.

사진 속에 토막 난 시체, 누군가의 손목으로 보이는 그곳에는 희미하지만 작은 뱀이 휘감겨 있었다!

그의 맑고 깊은 두 눈에 고통과 분노가 교차하는 불길이 일렁였다.

그것과는 별개로 당연히 떠오르는 궁금증.

강력계 형사가 아무도 몰래 자기 어린 딸과 단둘이 이 끔찍한 살인 사건들을 같이 해결해 왔다고?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절대 이해할 수 없었겠지만. 지훈은 알고 있었다. 그 남자는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수련에게는 문일도 가지지 못한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신지훈. 그만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수련의 모든 것을. 수련도 알지 못하는 기억하지 못하는 모든 것을 지훈은 알고 있다.


**
신지훈.
그집!그날!그때! 지훈은 늘 그랬던것처럼 수련의집을 둘러보러 온다.

그러나 지훈의 말처럼 1분이라도 빨리 왔더라면. 그도 새끼돼지의 발악이나 하늘의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더라면. 그 참극은 막을수 있었을 것이다.

수련이 그 순간 겪었을 상상할수도 없는 고통.
지훈은 그것을 또 막아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결국 10년동안이나 불교의 수행을 하며 불자의 길을 걸으려 했던 모든 것을 접고.

내림굿을 받기로 결정한다.

대스님께 인사를 올리고 굳은 표정으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지훈.

“안녕하세요 이모할머님. 저 지훈입니다. 신지훈이라고 합니다.”

세습무의 대를 끊겠다며 하나밖에 없는 자기 여동생과도 연을 끊고 서울로 올라온 성자.

그녀에게는 그 대를 이어가며 여전히 무업에 종사하고 있던 종숙 이 있었다.

그녀 역시 만신의 호칭을 얻고 내림굿까지 받아 강신으로 여럿의 제자를 두고 청렴하게 무업을 이어가고 있었으나 자식은 없었다.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조카이건만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도 종숙은 울컥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언니에게 후에 무슨 소리를 들을지라도 상관없었다. 제자가 아닌 자식처럼 손주처럼 지훈을 받아들여 내림굿을 받게 하고 모든 걸 알려줬다.

종숙은 신당 문지방을 넘어서는 처음 보는 지훈의 웅장한 기운에 저절로 넙죽 엎드려 절부터 올렸다.

지훈이 급히 손을 내밀어 이모할머니를 일으키려 했지만, 그녀의 태도는 단호하기까지 했다.

당혹스러워하는 지훈을 자리에 앉히고 제일 먼저 한 말은 이것이었다.

“여기는 내가 모시는 신령님이 계시는 내 신당이다. 인간은 남의 집에 들어갈 때 집주인 허락을 받고 들어가야 하지만, 신은 다르다. 네가 줄줄이 모시고 온 신령님들은 그럴 필요가 없으시니, 오히려 내가 절을 올려야 했다.”

기대와 설렘이 담긴 미소가 가득 차 막 봉우리가 터진 꽃처럼 화사하고 붉게 그녀의 얼굴을 물들였다.

‘아이야. 너는 대체 어떤 줄을 잡고 살 것이냐? 사람을 구하러 이 땅에 온 것이냐? 떠도는 망자들을 위해 살 것이냐?.’

종숙의 속마음이었다. 그만큼 이 아이는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것처럼 신비롭다 못해 경이로웠다.

 
만신 성자도 자기 동생이 하나밖에 없는 손주에게 내림굿한다는 것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성자도 수련의 화경을 들여다본 후였고 오히려 동생에게 고마운 마음까지 들 정도였다.

성자는 집을 나서는 모녀를 붙잡고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 은장검의 장식 중 하나인 옥가락지를 하나 떼어 수련에게 쥐여주었다.

그 옥가락지는 마치 남녀 한 쌍인 것처럼 칼손잡이 끝부분에 양쪽으로 나란히 하나씩 박혀있었다.

마른 장작 같던 그녀의 손에도 어느새 온기가 가득했다. 그 두 손으로 수련에게 꼭 쥐여주었다. 늘 지니고 있으라면서.

성자는 지훈이가 만들어줬다는 부적을 한참이나 매만지더니 또 한 번 눈물을 투둑하고 터뜨렸다.

“나보다 낫구나. 잘 컸어.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그렇게 보내지 않는 건데. 부모 자식 간에 생이별까지 시키면서…. 내가 모질고 모자랐구나. 다 내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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