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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하수희 Dec 08. 2024

내가 누구게?

심장의 조각

지훈은 그렇게 19살 나이에 내림굿을 받는다.

신령님의 말씀이라도 듣고 예지라도 엿볼 수 있었더라면 수련에게 닥칠 일을 미리 알았을 수도, 막았을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했다.


십 년 전에도 같은 생각으로 9살밖에 되지 않았던 지훈은 곡기마저 끊고 울며불며 할머니에게 내림굿을 받게 해달라 매달렸다.


 아무리 강신 체질이라 해도 신병이 있는 것도 아닌 아홉 살짜리 아이에게 내림굿을 해준다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지탄받을 만한 일이다.


그보다도 만신성자는 벌전 마저 달게 받겠다 하며 절대 무업을 대물림 하지 않겠다 하였는데. 이제 와서 어린 손주에게 내림굿을 해줄 이유가 당연히 없었다.


그러는 동안 지훈은 병들어 갔다. 억지로 밥을 쑤셔 넣어주면 토악질을 해대기 일쑤였다.


꼬챙이처럼 말라가던 지훈은 학교도 가지 않고 병원에서 깨어나지 않는 수련을 위해 온종일 기도만 해대다 기력을 잃고 쓰러지기를 반복했다.


도저히 두고 볼 수만 없었던 그의 부모는 자기 어머니를 설득 해보기도 했지만. 성자는 요지부동이었다.


이러다가 정말 하나밖에 없는 손주가 죽을 것처럼 보이자, 성자는 연이 있었던 한 주지스님이 계신 암자로 지훈을 출가시키게 된다.


하필 지훈이 머문 암자의 주지스님은 오래전부터 밀교 수행에 심취해 있었다.


주지는 티베트 불교와 한국 진언종의 가르침을 접목하여 수행했으며, 부적과 호마 의식을 통해 지훈에게 많은 것을 전수해 주었다.


그러나 지훈은 밀교의 부적으로도 수련에게 붙은 귀신을 다 털어내 주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에 결국 신의 제자로서의 길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내림굿을 받고 지훈은 부모님과 할머님이 계신 서울로 돌아온다.


10년 만의 상봉이었다.


갑작스레 장성해 버린 손주가 낯설기도 하였지만 성자는 어차피 이렇게 될 운명 10년이나 부모와 생이별을 시킨 것에 대해 죄책감이 몰려왔다.


성자가 어른이 되어 돌아온 손주에게 은장검의 장식중 하나인 하나 남은 옥가락지를 떼어 건넸다.


“그 아이가 얼마 전에 다녀갔다.”


수련이 이 집에 다녀갔다는 소리에 지훈이 깜짝 놀라 고개를 쳐들었다.


지훈은 사실 굿판 이후로 수련이 어떻게 지내는지는 다른 경로를 통해 들어 왔었다.


수련의 심리 상담을 한다는 대학원생을 직접 찾아갔었다. 지훈은 수련을 위한 부탁을 한가지 했고 그 조건으로 지훈은 가영의 논문 실험 대상자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집에 다시 찾아왔다는 것은 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싶은 그의 걱정이 그대로 얼굴에 떠올랐나 보다.


성자가 그 얼굴을 읽었는지 안심시키듯 말한다.


“놀랄 거 없다. 걱정할 것도 없어. 나도 처음엔 귀신인가 사람인가 싶었지. 그 아이의 화경을 들여다봤거든. 지옥에 떨어진다면 그 어떤 벌이 그토록 끔찍할까?.”


성자가 그 순간을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같은 생각으로 수련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그것을 막아주지 못했던 지훈은 슬프고 괴로웠다.


“수련이는... 수련이 였죠?.”


별말이 없던 지훈이 겨우 입을 떼서 물었다.


“그 많은 것들이 다 들어앉았다면 정작 주인은 길을 잃고 그릇을 비워줘야겠지. 다행히 네가 부적을 제때 잘 썼더구나. 그 영감탱이가 언제부터 밀교를 접했는지 영 쓸모없지는 않았어.”


대견하다는 말 한마디가 참 어려운 그녀였다.


“그 옥가락지는 원래 한 쌍이야. 전설에 의하면 그 은장검의 주인은 하늘도 두렵지 않은 신들 위의 신 이었다. 한낱 인간 여자를 사랑하게 된 신은 험난한 인간 세상에서 위태롭게 살아가는 연인을 지키려고 자기 심장의 한 조각을 떼어 여자에게 주었고 그걸 쥔 그녀가 부르는 순간마다 신의 심장이 고통스럽게 울려 언제든 여자의 곁으로 오게 되는 힘이 생긴 거지. 인간 여자가 죽고 그 심장 조각을 이렇게 비취옥으로 만들어 자기 칼에 심어두고 언제든 다시 환생하여 나타나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전설이야.”


지훈은 이야기를 다 듣고 신비한 빛을 띠고 있는 옥가락지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너희들의 인연도 그들 못지않게 깊고 질길듯하니 이번 생에 그 가락지의 주인은 너희들이 맞다 싶어 그 아이에게 하나, 너에게 하나 주는 것이다. 혹시 아니? 전설처럼 그 아이가 부르면 너의 옥가락지도 너를 아프게 할지.”


손주가 앞으로 감내해야 할 고통과 고행의 길을 짐작하는 바였지만, 이제는 성자도 더 이상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들이 서로의 운명 줄을 서로 엮어주고 묶어주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때부터..


**

현재 비밀의 방


벽에 붙은 사진 한 장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지훈을 보고 수련이 묻는다.


“왜? 너도 저 사진에서 뭔가 느껴지니? 아빠는 왜 저기에 꽂혔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저 뱀 문신이 뭔가 낯설지 않다고 해야 하나?.”


지훈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빠르게 굴러가는 이런저런 생각들이 실타래처럼 얽혀서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수련이 이것을 더 이상 떠올려서는 안 된다는 것.


조급해진 마음처럼 떨어지는 말도 바쁘고 정신없이 쏟아졌다.


“수련아. 아버지도 돌아가셨고 더 이상 이런 거 필요 없잖아. 이거 싹 다 치우자, 너한테 좋을 거 하나도 없어.”


당연한 말임에도 수련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었고 대답은 단호하기 까지했다.


“아니, 아빠가 끝내지 못한 거 나라도 끝내야겠어. 이 붉은 실들을 따라가 보면 분명 아빠가 남겨둔 힌트도 찾을 수 있을 거야. 아빠는 돌아가시기 전에 거의 다 잡았다고 하셨어. 놈을 잡기만 하면 된다고 분명 그렇게 말씀하셨어. 난 아빠가 그놈에게 살해당했다고 생각해.”


지훈은 이미 붉은 실들과 뱀을 연결해 놓은 것 메모를 보고 수련의 아버지가 누굴 쫓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지훈은 알고 있다.


그러나 수련이 지워버린 기억에 다가가고 결국 그 기억을 찾아낸다면 그때와 같은 잔인한 고통이 한 번 더 반복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 다시 천진한 수련의 맑은 미소는 찾아볼수 없을지도 모를일이다.


잊고 사는 게, 잊고 살아주는 게 소원이었다. 지훈은 매일 초를 켜고 빌었다. 수련이 아팠던 기억을 잊게 해달라고.


그 순간을 지우게 해달라고, 없었던 일로, 없었던 것처럼 잘살게 해달라고

19년 동안 매일매일 빌었다.


“제발 수련아, 그냥 잊고 살면 안 돼? 평범하게 그냥 행복하게 살아주면 안 되니?.”

 

지훈이 수련의 어깨를 붙잡고 절절하게 애원하듯 말한다. 그러나 수련은 그 눈을 피하고 한숨을 쉬며 못다 한 이야기를 전한다.


“사실 한동안 아빠가 꿈에 나왔어. 난 꿈을 꾸고 나면 항상 메모를 해둬. 잊지 않으려고….”


 (수련의 꿈.)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비가 쏟아지는데도 코를 찌르는 시궁창 냄새가 난다. 여기가 맞다!


나는 달린다.

쫓기는 건 나인가? 아니다 내가 쫓고 있다.


머리가 금발인 남자를 쫓아서 여기까지 달려왔다.


총. 총을 들고 있어.

총을 들고 있는 건 나인가?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른다. 더 이상 놈 도 도망치지 않는다.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잡았다. 그놈이 뒤를 돌아본다.

그러나 왠지 여유로운 모습, 웃고 있다.


빗물이 모든 것을 쓸고 간 얼굴을 미친 듯이 긁기 시작한다. 그러자 얼굴 가득 처참하게 부어오른 붉은 바늘 자국들을 수도 없이 띄워 올렸다.


괴물!! 방아쇠를 당겨야 한다.


그리고 다음 장면.. 총은 내 것이 아니었다.


달리던 것도 내가 아니었다. 나는 지금 그놈의 발밑에 떨어진 내 아버지의 머리를 보고 있다….


몸통에서 떨어져 나온 아버지의 머리에서 마치 살아있는 듯 부릅뜬 두 눈이 한곳을 응시하고 있다.



탄피가 두개.


**

수련이 메모장을 꺼내어 지훈에게 들이밀었다.

지훈의 이마에 주름이 일렁였고, 눈동자는 작은 파동을 그리며 망설임 속에 떠돌았다.


그런 지훈의 표정을 읽은 것인지 수련이 답답하다는 듯 재차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두 번도 아니고 같은 꿈을 계속 꿨다니까! 아빠는 자기가 억울하게 죽은 것을 내가 밝혀주길 원하시는 거야. 그리고 그 범인을 잡아주기를 바라시는 거야!. 아빠가 쫓던 범인이니까 분명 저 안에 힌트가 있을 거라고.”


또박또박 잘도 정리한 수련의 말을 듣고 지훈이 겨우 할말을 찾아냈다. 해야 할말을.


“그러니까 더 말이 안 되잖아!. 본인도 그 놈을 잡다가 처참하게 살해당했으면서 자기 딸을 그런 위험한 놈한테 접근시킨다는 게 말이 돼? 세상에 그런 부모가 어딨어?. 내가 너희 아버지라면 꿈에 나타나서라도 네가 이런 짓 못 하게 어떻게든 막을 거야. 그게 당연한 거 아니야? 어떻게 아버지란 사람이 딸을 그렇게 이용해?.”


‘너희 아버지라면 그러고도 남지. 그러니까 용서할 수 없어! 나는.’


알아듣게 수련에게 말하고선 속으로는 수련의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이 커지고 있는 지훈이었다.


“네가 그렇게 말하면 우리 아빠가 정말 나쁜 사람 같잖아. 정말 네 말이 맞다고 해도. 나는 아빠가 억울하게 돌아가셔서 죽어서도 편히 못 계신다면, 그래서 나에게 자꾸 이런 일을 시킨다고 해도 나는! 할 거야. 아빠잖아…. 아빠니까.”


수련의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놈이 있는 곳을 알아야 해. 그곳에서 아빠는 살해됐어. 그곳에서 아빠는 총을 쐈고 탄피는 거기서 떨어졌어. 아빠의 시신은 그놈의 아지트에서 옮겨진 거야. 시궁창 냄새가 지독하게 났어. 분명 억울하다고 그놈을 잡아달라고 그놈의 위치를 알려주는 걸 거야”


“아니야 수련아. 정말 아빠라면 그 악마 같은 놈한테 소중한 딸을 안내하지 않을 거야. 그냥 꿈일 뿐이야 수련아.”


수련의 두 손을 꼭 잡고 절절하게 설득하는 지훈이었지만 그럴수록 수련의 의지는 더 다져지는 듯했다.


“그냥 꿈이 아니야. 탄피에 대해서 내가 알아봤거든.”


수련의 아버지 김문일은 범인을 쫓다가 범인에게 살해당했다. 시체는 무참히 훼손되어 발견되었다.


현직 경찰 그것도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었던 살인마킬러 라는 별명의 경감이 끔찍하게 살해당했다.


많은 것이 덮이고 묻혔다. 보도에도 그저 범인을 잡다 살해당했으며 그 범인은 잡지 못하였다는 것 정도만 나갔다.


그러나 수련은 알아야 했다. 꿈에서 선명하게 나타난 탄피 두 개.. 꼭 이걸 보라는 듯 매일 밤 꿈에 나타난 아버지는 두 눈을 부릅뜨고 탄피를 가리킨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난다.


아빠가 총을 썼나? 꿈을 꾸자마자 수련은 아버지와 가장 친했던 최창근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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