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제주민속오일장, 오일장은 효용 없는 구시대의 유물처럼 이미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니었나, 아니었다. 그것도 제주 도심에 버젓이, 곳곳에, 규모도 작지 않게 여전히 남아 있다. 아직 동심으로 가득하던 시절에 몸을 비비며 놀던 친구를 수십년 만에 만난 것처럼, 그 존재 자체가 신기하고 반가웠다.
좌측 깜빡이를 똑딱거리며 제일 왼쪽 차선에 늘어선 차들만 해도 그 줄이 길다. 교차로를 넘어 꿈틀거리며 앞으로 기어가는 차들이 오일장이 멀지 않음에도 가까워지지 않음을 알려준다. 인생의 적절한 순간이란, 오일장 장보기에도 해당하는 것인가? 일찍 일어나야 벌레를 (많이) 잡을 수 있다는 새처럼 시작을 알릴 때 서둘러 날아오든가, 사람이고 물건이고 우수수 빠져나간 어스름 저녁녘에 오든가, 그래야 했나?그럼에도 인내의 끈을 놓지 않고 기다리면 결국, 들어섬의 자격이 주어지긴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도로 위에 늘어섰던 차들에 비해 오일장 안은 부산스럽지 않게, 곳곳에 눈길 줄 틈이 있다. 동굴 입구는 좁고 어두워도 그 안으로 들어설수록 시야가 트이는, 갈림길이 많이 난 거대한 동굴 안처럼. 오가는 사람과 부딪치지 않고 자신의 노선을 잘 찾아갈 수 있도록 그들만의 장소가 잘 나뉘어 있다. 뭐가 많다. 과일가게, 채소가게, 생선, 반찬, 신발, 화초가게 등등. 식당도 많다. 아, 동그란 눈을 뜨고 입을 오물거리며 지나는 이를 구경하는 토끼도 닭도 있다. 토끼랑 눈을 맞춰보려 했지만 잠시, 나를 향하는가 했던 눈길은 이내 다른 곳으로 돌려졌다.
한 바퀴 눈도장을 찍고 이미 사람들이 제법 앉아 있는 식당에 들어서 보말칼국수를 먹었다. 푸른 국물이 따뜻한데 시원한 맛을 남긴다. 보말이 간과 눈에 좋다는데, 어둑어둑해지는 내 눈을 밝혀주면 좋겠다. 바닷가를 지날 때면, 보말이 있나 살피며 검은 돌 틈을 한참 들여다보곤 했다. 내게는 먹는 재미보다 수확의 재미가 크다. 마을 어장이 아닌 곳에서 보말 따기를 언젠가 해보리라. 실은 아직 보말의 생김을 잘 알지 못한다. 보말의 종류가 많단다. 일단 미역국에 넣어보려 손질한 보말을 한 팩 샀다.
내가 자라온 동네에는 보말 대신 다슬기가 살았다. 산으로 둘러싸인 동네에는 출렁이는 바다 대신 잔잔한 강이 흘렀고, 여름이 오면 구멍이 송송 뚫린 플라스틱 소쿠리를 들고 허리를 구부려 다슬기를 주웠다.
첫 아이를 가졌던 해, 친정에 가면 엄마는 다슬기를 한 솥 삶아 바늘 같은 침으로 일일이 까서 내 앞으로 한 무더기 밀어 놓았다. ‘이거 먹으면 아기 눈이 반질반질 예뻐진대’라는 말에, ‘에이 그럼 안 예쁜 눈이 없게’ 고시랑 거리며 쓸데없이 예민하게 굴었다. 다슬기를 삶은 푸른 국물에 부추를 더해 더 깊어진 국물도 비리다며 밀어냈었다.
원래가 입이 짧은 데다 지금은 알겠는 맛이고 없어서 못 먹는데, 그땐 몰랐다. 요즘 어쩌다가 다슬기를 마주하면 가끔 혼자 중얼거린다. ‘엄마가 먹으랄 때 많이 먹어둘걸’. 유독 눈이 까맣고 반짝반짝 별빛 같은 사람들이 간혹 있다. 그 눈을 큰아이에게 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이미 한참 늦어버린 그리운 후회를 하면서 말이다. 적절한 순간을 놓친 셈이다.
보말의 생김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갑자기, 다슬기와 보말은 그 뿌리가 같을까 궁금해진다. 다만 자란 곳이 달라 생김이 달라진 것인가, 뜬금없는 생각을 한다. 인종의 다름처럼, 지역색의 차이보다 조금은 더 먼 사이일까, 같은 이야기인가? 혼자 더 나가지 못할 생각을 하다 이내 길을 잃는다.
이리저리 눈길을 돌리다 제주의 상징 같은, 귤나무를 키워볼까 싶어 화초가게를 기웃했다. 귤과 금귤을 번갈아 보다 식물가게 사장님의 말씀에 로즈마리 하나만 데려왔다. 따뜻한 제주에서 귤과 금귤이 잘 재배된단다. 하지만 제주라고 다 따뜻한 건 아니다. 우리 집은 걸으면 한 시간 거리의 먼바다를 향해 난 북향집이다. 볕과 바람이 잘 통해야 잘 자라는 나무들이라 우린 귤나무를 돌보고 싶었지만, 나무의 생존을 위해 마음을 접어야 했다.
귤나무 대신 민속장에서 데려온 로즈마리, 그마저도 마르고 있다. 북향집으로 찾아드는 바람과 볕의 길을 따라 나름 잘 옮겨줬다고 여겼는데. 로즈마리를 쓰다듬으면 손바닥에 묻어나는 향에 숨이 트여와 오가며 쓸어줬는데 ‘내 손의 열기가 널 마르게 했나’ 싶기도 하다. 내 몸을 가만히 쓸어봤다, 괜한 짓을 했다.
공기가 데일 듯 뜨겁거나 말거나 보이는 풍경은 온통 푸릇푸릇하다. 그 푸름은 수년의 시간을 지나며 견디는 법을 배웠으리라. 번잡한 손길을 피해 뿌리내리는 법을 알고 있으리라.
나의 로즈마리에게도 그들의 비법을 알려줬으면 좋았으련만, 나무의 말을 알지 못한다. 그들이 한쪽 곁을 내어준다면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싶다. 한곳에 오래오래 뿌리내리는 법과 한곳에 있어도 지루해 말라버리지 않는 법을 전해 듣고 싶다. 뿌리의 이야기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