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분과 4인분

시간을 비우고 마음을 넣어

by 반점

방학 준비, 진작에 학교와는 거리를 두었기에 내게 방학은 아이들의 시간이다. 기숙사에서, 학교 동네에서 생활하느라 학기 중에는 연휴에 잠시, 방학 중에만 집에 장기 투숙하러 두 아이가 온다. 기껏해야 꼭 채워진 한 달이 되겠지만, 반복되는 일상에 약간의 어그러짐이 생긴다. 2인분과 4인분의 차이이다.

하나로 마트에 들러 평소와는 다르게 장을 본다. 2인분의 장이란, 제주막걸리와 라거맥주, 진로소주 그밖에 아침 주스를 위한 사과, 당근, 양배추와 채소 두어 가지, 혹은 그날그날 먹거리이다. 4인분의 장이란, 일단 주종이 달큰해진다. 땅콩막걸리나 감귤막걸리, 향이 첨가된 에일맥주, 하이볼을 위한 도수가 살짝 높은 증류주와 토닉워터, 과일의 종류도 늘어난다. 달콤 짭짜름한 과자도 두어 가지 주워 담는다. 반 이상 비어 있던 냉장고를 반을 훌쩍 넘게 채워둔다. 시간을 내어 제주샘주에 들러 상큼한 제주 약주 니모메를 두어 병 사다 둔다. 시원하게 마시는 것이 좋다니 냉장고에 넣어둔다. 술장고를 겸한 김치냉장고에 빈틈이 없어진다.

2인분의 식단이란 심심하다. 4인분을 위해 밑반찬을 두어 가지 만들어둔다. 표고버섯에 달걀물을 섞어 고소하게 볶아내고, 도라지와 오이의 물기를 꼭 짜 새콤달콤하게 무쳐내고, 보말이 잔뜩 들어간 미역국을 뭉근히 끓여두고, 고기가 들어간 메뉴를 고민하다 등갈비 김치찜을 폭 끓여낸다.

장롱의 묵은내를 벗기려 이불 세탁을 해두고 냉동실 얼음 틀에 얼음을 넉넉히 얼려둔다. 2인분의 커피 메뉴엔 아이스가 없다. 뜨거운 볕 아래 땀을 줄줄 흘리지 않는 이상, 2인은 따끈한 커피를 마신다. 집에선 얼음이 필요 없는 셈이다. 4인분의 커피에는 당연히 아이스 메뉴가 추가된다. 아이스아메리카노와 하이볼을 위한 얼음을 여분의 밀폐용기를 두어 넉넉히 얼려둔다.

동네 디저트 맛집에 들러, 쌀가루와 보리가루와 쑥을 섞어 만든, 쫀득한 반죽에 팥소가 들어간 납작한 찐빵을 넉넉히 사다 둔다. 짙은 초록의 집 모양이 가던 길을 멈추게 했던 치즈 라이브러리, 바스크 케이크 질감의 꾸덕꾸덕한 치즈케이크 6개들이 한 상자를 사 와 냉동실에 넣어둔다. 얼려 먹어도 좋다니 일단 냉동실 행이다.


온라인으로 탄산수 한 박스를 주문하고 여분의 칫솔도 꺼내둔다. 잠드는 시간이 다른 4인분을 위해 집구석구석 숨어있는 무선 조명등의 충전 안부를 묻는다. 책상 위에, 거실 바닥에 편안하게 누워있는 책들을 제자리에 넣고, 4인분의 전자기기 사용을 위해 책상 위가 비교적 멀끔해 보이도록 자리를 비워둔다.

도서관에 들러, 평소 2인의 취향과는 다른 책을(두 아이의 관심사를 넘겨짚어) 두어 권 빌려온다. 읽든 안 읽든 오가는 시야에 걸리도록 적당한 자리에 놓아둔다. 물론 헛일이 되리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일단, 시도해 본다. 공항에 픽업 가기 전에 습관적인 5만 원 주유 버튼 대신 가득 주유를 선택한다.

날씨도 준비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제주의 자연을 충분히 흡수할 수 있도록, 지내는 동안 최적의 온도를 준비해 두고 싶지만 지나친 욕심임을 안다. 맑은 하늘을 보며 나섰다가 반반구름(먹구름 반 흰구름 반)을 만나고 갑자기 똑똑 떨어지는 빗방울과 마주하다 어느 순간, 쨍한 볕에 머리 꼭대기가 따가워지기도 하는 게 여름 제주지.

2인의 촘촘하게 걷던 시간을 널찍하게 비워두고, 4인의 지나는 순간을 남기려, 비워둔 시간에 마음을 넣어둔다.

걷는 세상과는 다른 세상을 한동안 만나게 되겠지.

얼마간 곁을 맴도는 음악이 훌쩍 어려지겠지.

심드렁한 저녁 시간에 약간의 소란이 더해지겠지.

얼마간 말이 흘러넘치겠지.

그 사이사이 내 말이 간간이 얹어지겠지.

있는 마음 그대로 말에 온기를 올려두는 연습을 해둬야겠다.

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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