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주말 아침 메뉴는 해장국이 제격이다. 이른 아침 문을 열고 오후 서너 시쯤 닫아버리는 해장국집이 제주에는 많다. 깜깜한 밤에 해장국집 간판에만 불을 켜고 사진을 찍어 본다면, 도시의 밤에 빨간 십자가가 동동 떠다니듯 그 엇비슷한 그림이 나올 것만 같다. 제주는 술을 사랑하는, 아니 술꾼들의 속을 아껴주는 다정한 동네인가 싶어 슬그머니 정이 한술 더해진다.
집에서 가까운 해장국집을 찾아갔다. 흔히 말하는 밥때가 지났는데도 웨이팅이 있다. 웨이팅이 있다는 건 어느 정도 검증된 맛이려니, 내 속을 위해 기꺼이 그 시간을 기다려 들어갔다. 고기와 비법 재료를 폭 삶아 낸 국물에, 고기와 우거지와 콩나물과 선지가 듬뿍 들어간 해장국을 떠 넣으니 헛헛했던 속이 금세 안정을 찾는다.
여유로워진 속으로 식당을 둘러봤다. 옆 테이블에서 막걸리 병을 살살 돌리며 천천히 뒤집었다 바로 세우기를 하고 있다. 아래로 내려앉은 진국을 위로 불러오는 작업이다. 그냥 흔들면 잘 섞이기야 하겠지만 무턱대고 흔들었다간 뚜껑을 여는 순간, 사방으로 튀어 나가는 막걸리를 그냥 두고 봐야 한다. 되돌릴 수 없는 순간이다. 그들의 해장 막걸리가 나의 눈길을 잡아끌었지만, 그저 눈길만 줬다. 말끔한 정신으로 찾아갈 곳이 있다.
올레길을 걸을 때면, 시작점에 주차를 해두고 대여섯 시간을 걸은 후 버스를 타고 시작점으로 다시 이동한다. 버스를 기다리며 찜해둔 곳이 있다. 목욕탕 간판을 얼핏 본 듯했고 카페 내부가 살짝 보여 목욕탕을 개조한 카페인가 했는데 아니다. 목욕탕이 아니라 여관이었고, 카페는 그 건물 1층에 있을 뿐이었다. 대충 보는 사람이 잘못 생각했다.
입구 쪽 의자에 묵직한 존재감으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바랜 은회색과 먹빛이 섞인 소니 카세트 라디오. 레트로풍 소품인 줄만 알았는데 오, 제대로 작동 중이다. 우주를 향해 뻗은 것만 같은, 사선으로 쭉 뽑아 올려진 안테나의 기세가 믿음직스럽다. 그 옆자리엔 라디오의 짝꿍 같은 카세트테이프들이 등을 돌리고 질서 있게 누워있다. 가지런한 그 등의 행렬에서 공일오비, 산울림의 카세트테이프를 뽑아내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사장님이 틀어주신단다. 흐뭇함이 잠시 오글거리는가 싶더니 선을 훌쩍 뛰어넘는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라디오를 옆에 끼고 살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옛날 사람, 팝송의 가사를 한글로 옮겨 적고 라디오에 사연을 지어 보내 우체국에서 상품권인가를 받았던 그 시절. 우리 집은 막걸리 양조장을 하고 있었다. 잊고 있었다. 양조장 집 딸이었던 것을.
우리 남매는 속이 채워진 막걸리 병에 비닐 뚜껑을 하나씩 씌우고, 드라이기 비슷한 기계로 뚜껑에 열을 가해 병을 밀봉하는 작업을 간혹, 담당했다. 우리들의 용돈벌이였다. 한 박스당 얼마였는데, 내 기억력에 정확을 기대하진 말자. 아무튼, 그렇게 용돈을 모아 카세트테이프를 샀었다. 그때 샀던 산울림 테이프가 집 어딘가에 있다. 반가움에 살짝 애틋한 마음 같은 것이 지나갔는지도.
잠깐새 내 마음을 읽은 듯, 어깨 길이의 웨이브 머리를 한 사장님의 중저음이 말을 건넨다.
“산울림 노래 틀어드릴게요”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레트로한 음률이 카페 안을 왕왕 울린다. 콧김이 먼저 나오고 입꼬리가 슬몃슬몃 연이어 올라간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1978년도 발매된, 한국의 록밴드 산울림 2집의 타이틀 곡.(내게 있는 건 80년대 발매된 그레이티스트 히트 앨범이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그대 위해 노래 부르리
그대는 아는가 이 마음
주단을 깔아논 내 마음
사뿐히 밟으며 와 주오
70대인 채 여전히 현역 공연을 이어가는 노년의 삶이라니, 멋스러움 그 이상이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그 세계를 감히 모셔 오고 싶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내 어린 동네를 잠시 다녀왔지
노란 상자에 몸을 기댄 희뿌연 병들
골드스타가 새겨진 빨간 라디오
얇고 긴 테이프에 돌돌 말려진 노래들
밤마다 전해지는 저마다의 사연에
내 사소한 이야기를 더했었지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잠시 내 어린 동네를 다녀왔다. 모셔 오고 싶은 세계를 만나 속을 제대로 채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