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와 키링

딸들의 여행, 또 갈까?

by 반점

8년 아니 7년 전이었나? 숫자는 내게 항상 이렇다. 흐리게 다가온다. 내 나이를 쉽게 계산한답시고 딸의 나이에 30을 더하고 어쩌고, 이 무슨 어리석은 계산법인가. 뇌 CT라도 찍어봐야 하나 한 번씩 그런 생각을 한다.


7년 전, 여동생 둘과 각자의 딸들만 챙겨 3박 4일 제주 여행을 했다. 중학생 딸, 그 아래로 5학년, 3학년, 7살, 4살 조카들과 함께. 이후로 이 조합의 여행은 아직, 없다. 그때 구입한 제주 굿즈, 한라산 일러스트가 귀엽게 양각된 말랑 쫀득한 질감의 짙은 초록색 키링, 길쭉한 육각형 모양이다. 그동안 어딘가에 모셔져 있다 요즘 제주에서, 어수룩한 초보운전자의 차 키에 잘 매달려 지내는 중이다.


돌담 골목길을 돌아 돌아 찾아갔던 기억이 있다. 옛날 제주집을 그대로 살린 책방. 책방 밖으로 팽나무였던 듯, 큰 나무 아래로 아이들을 몰아두고 엄마들만 책방에 들어갔었지. 그때 중학생이었던 딸은 조카들의 돌보미 역할을 했다. 딸은 아이를 귀여워했고 조카들도 딸을 잘 따르긴 했다. 사진으로 남은 아이들 속 딸은 멋쩍게 웃고 있지만 고단했으리라. 그 아이들이 해를 먹고 자라 대학생, 고등학생, 중학생, 초등학생이 되었다. 아이들의 엄마들은 삼십 대와 갓 사십 대였던 시간을 넘어 각각 사십 대 초, 중반과 오십 대 초반이 되었다. 각자의 시간을 잘 지내 왔으리라. 엄마들은 엄마들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이주민이 되어 집을 구하고 이사를 하고 동네를 알아가고, 알아가고를 계속하는 중이다. 새로운 것이 주는 간질간질한 설렘과 낯선 것이 주는 자글대는 불편함이 아직, 채 섞이지 않은 반죽처럼 엉길 듯 말 듯 버석거리고 있다. 겉을 보는 여행자에서 속을 사는 이로 남고자 골목골목을 부러 걸어 다니고 있다. 걷다가 한 번씩 마주한다. 기억 속의 작은 아이들과 아직 좀 더 앳되었던 엄마들의 얼굴을. 그때의 아이들은 지금보다 말이 오십 배는 많고 웃음이 잣고 몸짓이 날래다. 엄마들은 아이 뒤를 쫓느라 분주하다. 나의 딸은 양쪽으로 붙어 오는 아이들을 끌어주는 다정한 언니이다.


지금의 아이들은 일 년에 네댓 번 겨우 볼까 해 만나는 자리에선 얼마간 서로 서먹서먹하고들 있지만, 조금의 시간이 흐르면 금세 언니를 찾는다. 딸에겐 딸을 보고 싶어 하는 동생들이 있다. 나의 자매들은 글쎄, 가끔 생사 여부를 물어오긴 한다. 우리 자매는 서로에게 곰살맞지 않다. 자주 만나지 않고 필요할 때 찾을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가 멀지 않음을 안(다고 생각한)다.


딸은 나보다 언니스럽다. 초등학생 때부터 나보다 긴 다리를 가졌던 딸은 곧잘 내 어깨에 팔을 두른다. 나를 내려다보며 내게 꼭 맞는 웃음을 준다. 유일하게 나를 귀여워해 주는(내게 귀엽다고 말해주는) 다정한 언니, 우린 요즘 무릎의 멍이 서로를 닮았다. 오른쪽 무릎에 붉고 푸른 멍이 두어 개 비슷한 자리에 작고 크게 들어있다. 그 모습이 비슷하다.


대롱거리는 초록 키링이 눈에 들어온다. 딸에게 슬쩍 물어볼까 싶다. ‘동생들이랑 여행 또 갈까?’

작가의 이전글각자의 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