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의 공유, 잘 적어두렴
햇살과 바람과 바다를 끼고 걷다 보면 양식장 옆을 종종 지나게 된다. 대개가 광어양식장이다. 걷는 길에 어울리지 않는 몸집과 소음을 가지고 무겁게 버티고 있는, 반갑진 않지만 어쩌겠나. 회 맛을 잘 알지 못하는 나도 초장 듬뿍 찍어 가장 무난하게 먹는 회가 광어이니. 나의 마뜩잖은 표정과는 다르게 양식장을 반기는 이가 있다.
양식장의 배수구가 이어지는 검은 돌 틈 바닷가에 그이들이 죽 늘어서 있다. 배수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나란히, 나름의 간격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긴 목을 더 길게 빼고 배수로의 윗 줄기를 향해 고개를 내밀고 있는 왜가리 떼. 그 수가 제법 많다. 난생처음이다. 왜가리를 그리 가까이 본 것은. 광어를 사이에 두고 왜가리와 가까이 첫 대면을 했다.
배수구에서 물이 쏟아지는 시간을, 왜가리는 밥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왜가리의 식사 시간이 궁금한 이들은 제주 해안가, 양식장 근처를 서성거리면 되겠다. 원래는 여름철에 오는 철새였다는데, 환경에 잘 적응해 온 계절을 머물며 지내는 텃새가 되었다 한다. 점점 종잡을 수 없이 변해가는 기후 탓이 크겠지만, 왜가리의 적응력은 인정해 줘야겠다.
어딜 가나 무리가 있다. 사람들 틈과 자연 속 곳곳에 모여 앉은 무리들. 혼자는 쓸쓸해서 그런가, 음 ‘함께해요’라는 말이 따듯하긴 하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 주인공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그의 친구, ‘윌슨’의 역할이 크다. 손을 다쳐 그 손자국이 고스란히 찍힌 배구공에 눈코입을 그려 윌슨을 만들었던 주인공. 혼자가 아니어서, 그것이 무엇이었든 함께하는 존재가 있어 버텨낸 무인도에서의 시간.
내내 혼자라면, 어떨까 싶기는 하다. 어쩌다 혼자는 좋다.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 되는 때를, 밥때를 기다리는 왜가리처럼 간혹, 짧은 목을 늘려 기다리기도 한다. 늘 혼자가 아니라 기다려지는 것이려니. 혼자에게 넘겨주는 뿌듯한 시간을 위해 함께하는 시간엔 좀 더 충실하고 다정해지는 것도 좋으리라.
다정을 태생적으로 몸에 지닌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선 온기가 전해진다. 그들과 함께할 때면 절로 살짝 그 다정에 감염되기도 한다. 눈을 더 작게 만들며 웃게 되고 입꼬리가 어떤 기준선 위로 올라간다. 목소리의 톤도 한 옥타브 이상 높게, 억지로 솔 톤을 향해간다. 그들 옆에 서면 그렇게 된다. 그 다정이 학습이 된다면 배워볼까 싶기도 하다. 수족냉증에 몸의 온도가 대체적으로 낮은 나는 몸의 온도를 올리려 다정을 학습해 보려 한다.
학습된 다정을 몸에 지니고 무리 속에 뛰어든다면, 그곳에 잘 머무를 수 있으려나.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몸에 고단을 더하지 않고, 내내 정착해 맘이든 몸이든 안전히, 지낼 수 있으려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지 않나. 일단 배울 수 있다면 접수해 두는 걸로.
작고 동그란 눈을 배수구 물살에 두고 먹이를 기다리는 왜가리, 철새였을 때보다 지금, 사계절 내내 한 곳에 머무르며 사는 삶이 어떤지, 물어보면 답을 해주려나. 걷던 흐름을 잠시 멈추고 왜가리를 바라보며 답을 얻어낼 궁리를 해본다.
왜가리의 몸짓을 지켜보다 보면 어이가 없어지기도 한단다. 통으로 먹이를 목 넘김 하는 왜가리. 큰 물고기를 잡아 삼키려다, 무리다 싶으면 물에 적셔서 먹는단다. 물고기의 한가운데를 입에 꼭 물고 물에 담가 적신 다음, 고개를 하늘 향해 꺽어들고 목으로 꿀꺽, 밀어 넣는 모습이라니. 목이 깔깔해 밥 넘김이 쉽지 않은 날, 물에 말아 후루룩 넘겨 본 날이 있듯이, 왜가리도 물말이 식사를 한단다. 바로 서면 크기가 거의 1미터 정도 되고 날개를 펼치면 그 배가 되는, 왜가리는 가늘고 긴 다리와 뾰족한 주둥이를 가진 흥미로운 녀석이다.
가끔 귀찮음이 증폭해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그럼에도 밥이 주는 에너지가 필요할 때, 전기주전자에 물을 끓여 찬밥을 불려 먹을 때가 있다. 시간이 조금 흐르면 따듯한 물이 밥을 불려 조금 구수해진다. 구수한 밥 국물과 김치를 곁들여 먹을 때가 어쩌다, 있다.
겨우 밀어 넣은 밥의 에너지는 얼마나 갈까, 태생이 다정한 사람과 학습된 다정은 다른 것일까, 이동하는 삶과 머무르는 삶은 다른가. 왜가리와 광어만 공유할 줄 알았더니, 물말이 식사와 함께 잡다한 생각들이 여기저기서 푸드덕거린다. 어떤 옛날이야기에선 왜가리를 보내 좋은 전조를 알리기도 했다는데, 왜가리와의 마주침은 좋은 징조인가. 너무 나가진 말자. 일단, 이동하고 보자.
왜가리, 일찍이 다윈 선생님이 말씀하신 적자생존은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잘 적응하는 이가 살아남는 것이란다. 왜가리 떼, 너희도 잘 적어두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느냐로 평가해야 함을.
그것이 우리 종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숨은 비결이다.
- 브라이언 헤어, 바네사 우즈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