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태생이 다정한 사람들
선생님들, 궁금하시죠, 여기 왜 모여 계시는지. 간단히 말씀드릴게요. 저희는 지역별로 돌아가며 무작위로 선정된 어떤 분에게 주변의 다정인을 추천받습니다. 이달엔 제주분이 추천해 주셨네요. 여러분들은 이달의, 태생이 다정한 사람으로 선정되었어요. 간단한 인터뷰 진행할게요. 긴장하실 건 없어요. 평소 생활하시는 대로 이야기해 주시면 됩니다.
지인분이 적어주신 닉네임으로 이름표 달아 드렸습니다. 이름표 한번 살펴볼게요.
긴꼬리딱새님
초승달눈님
음그래그래님
부산샘님
눈썹에힘님
긴꼬리딱새님 이야기부터 들어볼게요.
네 저는 그냥 괜찮다고 얘기했어요. 그분이 시간에 늦어 급히 주차하다, 제 차를 콩 박았대요. 근데 음 발이 미끄러져 쿵 하고 한 번 더 박았대요. 전 전화를 받았죠. 아이들이랑 걷기를 막 시작한 터라 다시 돌아가기도 뭐해서 그냥 보험 처리하시라 하고 마저 걷고 돌아갔죠. 주차장에서 그분을 만났어요. 거듭 미안해하시길래, 저는 그냥 아이들이 차에 안 타고 있어 너무 다행이라고, 제 심정을 그대로 얘기했죠. 좀 걱정스럽긴 하더라고요. 사람이 차에 탄 채로 사고가 나면 너무 놀라잖아요. 그분이 사고 트라우마가 생길까 걱정스럽기도 하고 그냥 그랬어요. 우리 아이들은 ‘엄마 차 아야’라고 걱정했지만 제가 잘 말해줬죠. 아, 그리고 저희 큰 애가 새를 좋아해요. 그날 긴꼬리딱새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어요. 제가 새 보기를 좋아하는데 그래선지 아이도 좋아하더라고요. 그날도 아이가 그분에게 자기는 새 박사라고 얘기하더라고요. 후후.
초승달눈님 이야기해 주세요.
앗, 저요? 푸히힛, 저는 잘 웃어요.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져 있는 게 일상이에요. 강아지랑 같이 살고 있는데, 제가 강아지 반려인이죠. 아침에 눈 뜨자마자 모자 눌러쓰고 강아지랑 산책하러 나가요. 덕분에 이른 아침 제주의 산뜻한 공기를 매일 마시고 좋은 풍경을 마음에 잘 담고 살아요. 음 저는 감정이 잘 전해지는 사람인 거 같긴 해요. 눈은 거의 늘 웃고 있는 형인데, 누군가 울면 저도 금세 눈가가 촉촉해져요. 그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서요. 그리고 제게 좋은 거 제가 알고 있는 거 나누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그 무리가 점점 늘어나는 걸 보면 너무 흐뭇하고 좋아요. 같이 읽고 쓰고 나누는 거. 요즘 제 생활이에요. 좋은 거 같이 하면 좋잖아요. 늘 몸이 먼저 움직여지긴 해요. 마음이 간다 싶으면 이미 몸이 움직이고 있는 편이에요. 몸 아끼지 않는다고 혼나기도 해요. 어떤 일에 재미가 느껴지면 푹 빠져서 몸 안 돌보고 일한다고 혼나는 거죠. 그것도 어딘가로 향하는 마음 같네요. 헤헤.
음그래그래님, 이야기 들려주세요.
저는 듣는 걸 좋아해요. 그것도 잘하는 거에 속하는 거죠? 다른 사람이 이야기할 때 잘 듣고 있는 거 그거 잘하고, 그때그때 호응을 잘해줘요. 음 그래그래 하고요. 듣고 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하죠. 일단 일이 생기면 해결해야 해요. 그게 내 일이든 남의 일 이든요. 내가 아는 사람 일이면 남의 일이 아니지, 맞죠? 연락이 오면 일단 움직여요. 제가 가만히 들어앉아 있지를 못해서 잘 나가요. 나가서 보고 듣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하죠. 제시간이 되면 일단 움직입니다. 제주 친구 이사하는 날도 다녀왔어요. 일하시는 분들 드시라고 음료수며 간식거리 챙겨가서 배웅해 줬죠. 음 저는 밖으로 향하는 에너지가 조금 넘친다고 할까요? 암튼 안보다는 밖을 좋아해요. 무언가를 늘 궁리하고 적절한 곳에 어울리는 것을 잘 찾는 편이에요. 무엇을 보면, 아 이건 누구, 어디에 어울리겠다, 이런 생각. 고르고 결정하는 일을 함께하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주변에서 의논 상대, 쇼핑메이트로 절 찾나 봐요. 촉이 좋은 편이라 그런 부분도 도움이 되긴 하죠. 그렇답니다.
부산샘님 이야기 들어볼게요.
하하 저요? 넉넉한 걸 좋아해요. 특히 먹는 거, 주변 사람들이 잘 먹는 게 좋아요. 가방에 먹을거리가 항상 있죠. 맛있는 걸 먹으면 아는 얼굴들이 떠올라 챙기게 돼요. 손이 좀 빨라서 일을 후딱 해치우고 옆 사람을 돕는 편이에요. 막내인데 언니 같다는 소릴 잘 들어요. 친화력이 좋은 편이라 나이랑 직위 상관없이 쉽게 말을 건네긴 해요. 인사도 잘하고요. 저보다 나이 많은 분들한텐 특히 인사를 잘해요. 멀리서도 손 높이 흔들고 아는척해서 웃긴다고들 해요. 어디선가 돈 자루가 뚝딱, 하고 나와준다면 맛있는 음식 만들어 사람들 모아 먹이는 공간을 꾸려보고 싶어요. 저는 부산태생이에요. 제주로 이사 오려고 큰 짐들 다 나누고 작은 SUV 한 대에 옷가지랑 기본적인 것만 챙겨 바다 건너왔어요. 제주 오일장 가서 휘둘러보는 거 좋아하고, 요즘 제주어를 조금씩 주워 들어 배우고 있는데 재미있어요. 여러분 오늘도 폭삭 속았수다.
마지막으로 눈썹에힘님, 이야기 들려주세요.
아 저는 음 아기들을 좋아해요. 작은 아기들 보면 너무 예뻐요. 막 볼 꼬집어 주고 싶고 몰랑한 발 만져보고 싶고, 쓰담쓰담해주고 싶고 막 그래요. 그거 말고는 딱히, 잘 모르겠어요. 굳이 따지자면 우리 가족 중에서는 제가 제일 다정한 사람인가, 싶기는 해요. 일단 표현을 많이 하니까 그렇게 보이는 거 같기도 하고, 암튼 가족 중에 대놓고 챙기고 말하고 하는 사람이 저이기는 해요. 말해놓고 보니 잔소리쟁이 같기도 하네요. 음 근데 전 가만히 있으면 다정한 인상과는 거리가 멀긴 해요. 무언가에 집중하면 자꾸 눈썹에 힘이 들어가요. 그래서 친구들이 눈썹에 힘 좀 풀라고, 처음에는 말 붙이기 좀 어려웠다고 그랬어요.
아, 눈썹에 힘님은 아직 학생이죠? 이 중에 제일 어리기도 하고, 아직 더 다정할 시간이 많기는 하네요. 아이 좋아하는 분들은 대개가 마음이 따듯하긴 하죠. 뭐, 일반화의 오류 따위는 오늘 생각하지 말기로 하죠. 아무튼, 눈썹에힘님은 아직 다정할 시간이 많으니 모이신 분 중에서는 덜 태생 다정인 걸로 하겠습니다. 괜찮으시죠? 아 그리고 아기들 이야기할 때는 눈썹에 힘이 풀리네요. 아가들 예쁜 얼굴 생각하시며 눈썹에 힘 풀고 지내면 좋겠어요.
여러분들이 오늘 말씀해 주신 내용은 타임캡슐에 저장될 거예요. 언젠가 다정함이라곤 없는 세상이 오면, 이 다정 캡슐들을 하나씩 풀어서 세상에 다정을 나눌 때 쓰이게 될 거예요. 오늘 이야기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따듯함 나눠주셔 감사합니다. 늘 ‘안녕’하시길 바랄게요.
왈종미술관, 이왈종 선생님의 '제주생활의 중도' 여럿 중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