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 이야기

겨울이면 생각나는

by 반점

옛날이야기다. 그날은 저녁밥을 막 먹고 난 뒤 갑자기, 붕어빵이 먹고 싶어졌다.


- 나, 붕어빵 먹고 싶은데

- 그래? 나는 안 먹고 싶은데, 배불러

- ......


나도 배가 불렀다. 저녁밥을 막 먹은 참이었고 출산일이 다가와 정말 배가 불러 있었다. 큰아이는 12월 중순이 생일이다. 그날도 아마 12월 중 하루였겠지. 이제 막 결혼 1주년을 넘어선, 어린 부부의 이야기다. 5층 주공아파트를 나서면 바로 도로변에 슈퍼가 있고 그 앞에 붕어빵을 파는 포장마차가 있었다. 그렇다. 슬리퍼 신고 느린 걸음으로 나서도 바로 구할 수 있는. 천 원 지폐 한 장을 건네면 봉투 가득 담아주던, 따끈한 팥이 들어간 통통하고 바삭한 붕어빵이 그 밤에, 먹고 싶었다. 나의 바람은 그저 바람으로 남았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가야 만나지는, 계절을 거스르는 험한 것을 원한 게 아니었지만, 그랬다. 옛날이야기다.


요즘 같았으면, 불룩한 배를 안고 일어나 그냥 사러 나갔을 터인데, 아니 그냥은 아니고, 일단 한번 내지르고 나서 말이다.


- 내가 먹고 싶은 게 아니라 봄이(봄에 우리에게 온 아이의 태명) 먹고 싶어 하는 거라고. 너 먹고 싶냐고 물 어본 게 아니라고. 바보 같으니. 내가 나가서 사 온다. 너는 먹지 마. 내가 다 먹을 거야.


그땐 (지금보다) 한참 어렸고 구구절절 설명하기 싫었고, 전혀 예상 못 한 반응에 어이없어하다 아마도, 등을 돌리고 모로 누워 잠을 청했지 싶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들 하던가. 그 말이 영 틀린 말은 아니지만 꼭 맞는 말도 아닌 듯. 사람이란 모 아니면 도 같은, 그리 단순한 사물이 아니지 않나. 살면서 알게 되고 변해가기도 하는 것이 사람이지 않던가.


그래. 몰라서 안 하던 것을 타고난 성향이라 여겼던 적이 있다. 저 사람은 원래 저렇더라, 이런 단정. 그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이럴 땐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일러줄 줄 나도 몰랐다. 내 속에 부글거리는 감정만 앞세웠었지. 자기 생각이 그저 옳다고 믿었던 시간이 흐르고 그마저 경험치로 쌓여간다. 나쁜 경험은 없다는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끄덕해 본다.


“우주의 만물이 그러하고, 내가 그러했듯, 그럴듯한 이유 없이도 인간은 얼마든지 변하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오히려 변화보다 더 어려운 것은 변화하지 않는 것이니 이 자연스러운 결과에 굳이 '도발적 사건'을 갖다 붙여 설명할 필요는 없다.”
김영하 <단 한 번의 삶> 중


시간이 흐르면, 도발적이라 여겼던 사건들도 그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아무 데나 척 걸쳐져 내려앉는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그저 피식 웃으며 지나는 이야기로 넘길 수도 있게 된다.




저녁 퇴근길에 (그 옛날 붕어빵을 안 사 왔던) 그분이 붕어빵을 사 들고 왔다. 심지어 매일 퇴근길에 만나는 나의 입사 동기 두 사람의 붕어빵까지 챙겨서 말이다. 우린 평일 퇴근을 늘 같이한다. 어쩔 수가 없다.


제주는 밤이 되면 대체로 어둠 속에 빠져든다. 자연의 빛을 따라가느라 그런 것인지, 차가 제법 지나는 큰 도로에도 빛이 밝지 않다. 그러니 꼬불꼬불한 길이 이어지는 우리 동네는 당연히 어두울 수밖에. 해가 지면 인적과 함께 가로등도 뜸한 동네라 막차도 일찍 끊어진다. 우린 차도 한 대라 매일 퇴근길을 함께 한다. 어쩔 수가 없다.


영화 ‘어쩔 수가 없다’에선 주인공이 자신의 취업-생계와 가정의 평화, 온갖 이유가 포함된 최후의 선택-을 위해 경쟁자라 생각되는 사람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간다. 그의 선택에 온전히 공감할 순 없지만,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 순간들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불청객처럼. 상황의 무게와 깊이야 저마다 다르겠지만 누구에게나 자기의 고민이 가장 절실하고 시급한 법이다. 그러니 그도 타인의 생명쯤, 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 입이 큰, 목소리는 들어줄 만한 그가 한 행동 말이다.


자기 생각이 온전하다고 믿고 누군가 알아차리기 전에, 혼자 말끔히 어떤 일인가를 해치운다는 것은 버거운 일이다. 너를 내가 잘 알기에 너 불편하지 않게 내가 모든 걸 해결해 놓을게, 이런 생각. 정말 구덩이를 파고 묻어버려야 할 것은 이런 것일지도. 목소리는 들어줄 만하다지 않았나. 소리를 내어 눈이 동그란 부인과 의논했어야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나로서만 존재하지 않는다고.


”천 개의 강에 비치는 천 개의 달처럼, 나라고 하는 것은 수많은 타인의 마음에 비친 감각들의 총합이었고, 스스로에 대해 안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은 말 그대로 믿음에 불과했다.”
김영하 <단 한 번의 삶> 중


달이 둥실 떠오른 제주의 밤, 퇴근길에 사 들고 온 아직 따끈한 온기가 있는 붕어빵. 사람이 변해간다. 달이 차오르듯 어느새 서서히, 저도 모르게 그렇게 된 것이려니. 해가 더해가면서 조금씩 변해온 것이려니. 어떤 여유로움이 파고든 것일까.


버스럭거리는 봉투를 찢어 붕어빵을 꺼내본다. 천 원에 봉투 가득이던 붕어빵이 이젠 한 마리에 800원이란다. 붕어빵의 가격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훌쩍 성장했다. 팥만 오동통했던 속이 노란 크림으로 채워지기도, 납작한 팥으로 채워지기도 한다. 어둑한 동네의 북향집에서 아직 온기가 남은 붕어빵을 나눠 먹는다.


아 그런데, 팥이 든 붕어빵을 그가 홀랑 먹어버렸다. 내게 선택지를 준다면 팥붕어만 봉투에 담아왔을 터인데. 저 먹자고 담아 온 크림붕어가 아니었던가. 한집살이한 지 25년을 훌쩍 넘어서고 있지만 아직 그걸(팥붕어를 좋아하는지 크림붕어를 좋아하는지) 모른다. 알고 싶지 않은 것인가, 목소리를 꺼내어 봐야겠다. 우린 백년해로를 약속한 사이가 아니던가. 백 년이라니 아직 사용기한이 한참이나 남아있다. 올바른 사용법을 아직도 서로 익혀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