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가는 생각을 좀 잡아 두지 그래
제주에 와서 기미를 얻었다. 내 나이 오십인지 오십 하나인지 잘 모르겠는 시점, 40대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몸의 느낌이 그러하다. 만 나이가 등장하던 해, 혜택을 받는 년생에 속했던 거 같기도 한데 아무튼, 수에 많이 약한 사람이 나다. 숫자 계산을 할 때면 손가락과 발가락이 모두 해서 10개밖에 안 되는 것이 아쉬운 사람이다. 과장이 아니다.
내 인생의 40대와 50대를 가르는 기준을 기미의 유무로 삼아야 하나 싶게, 얼룩이 진하게 얼굴을 덮어오고 있다. 턱 주변부를 기점으로 입 옆에서 광대까지 부채꼴 모양으로 점점이 퍼져가고 있다. 아래로부터의 공격, 지켜보는 중이다. 홍조는 기미의 밥이라고 했던가? 홍조가 무럭무럭 올라올 때 알아봐야 했던 것을, 후회막심이다. 이젠 붉음을 넘어 갈색인지 회색인지가 되어 하루하루 칙칙한 사람으로 자리매김 중이다.
볕이 쨍한 시간에 잘도 걸어 다녔다. 만 보쯤 우습게, 이만 보는 거뜬히, 삼만 보라는 어이없는 숫자가 찍힌 날도 있었다. 정말 부지런히 걸었나 보다. 할 줄 아는 거의 유일한 운동, 걷기를 좋아한다. 게다가 제주는 걷기에 좋은 올레길도 있다지. 오르기 좋은 오름도 많다지. 스탬프 찍기 좋아하는 사람과 잘도 걸어 다녔다. 스탬프가 착실히 채워지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사람과 그걸 무심히 함께하는 작은 사람, 기미에 그 발목을 잡히긴 싫다.
요즘 부쩍 눈앞이 어른거리고 읽는 것들이 흩어져간다. 집중이 안 되는 건 당연, 정신에도 해무가 낀 듯 자주 멍해진다. 애써 모른 척하고 싶은데 그걸 종종 일깨워주는 이가 있다. 스탬프 찍기 좋아하는 사람, 내가 도어록 뚜껑을 자꾸 열어둔단다. ‘어서 와, 아무나 얼른 누르고 들어오시오’ 하는 것도 아니고, 참으로 당혹스럽다.
“아, 전에 살던 집은 도어록 뚜껑이 없었잖아”
“이 사람아, 뚜껑을 올렸으면 내려야지, 여긴 없는 게 아니잖아”
그렇군, 그것도 한 번이 아니다. 낭패다. 비슷한 일이 원의 둘레를 타고 이어져 나온다.
며칠 전 일이다. 대정리에 가려고 버스에 올라 카드를 찍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띠 처리되었습니다’ 이런 비슷한 소리가 울려야 하는 거 아닌가, 해서 내려다봤다. 순간 부끄러움이 파도가 되어 나를 쳤다. 어디 꺼내놓기 민망해 숨기고 다니는 사진이 나를 올려다본다. 급하게 재발급받느라 면허시험장 즉석 사진 부스에서 찍은 사진이, 저도 부끄러운지 홍조를 띤 채 나를 보고 있었다. 운전면허증을 왜, 버스카드 단말기에 들이대고 있는 건지. 도민 여부를 확인할 때나 꺼내던 것을 왜.(제주도엔 도민 할인이 되는 곳이 많다)
“아 죄송합니다”
‘제주도민이 아니어도 버스를 탈 수 있고, 대중교통은 절대 제주도민과 관광객을 선별해 요금 부담하지 않는데, 너 왜 그러니?’ 기사님의 속마음을 읽어버렸다.
스탬프 찍기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 얘길 해줬다. 세상에 그렇게 유쾌하게 웃는 사람인 줄 여태 모르고 살았다. 그래 우습냐? 하긴 나도 내가 우습긴 하다.
놓아지는 정신이 잡아질까 싶어 기록에 관심을 가져본다. 일단 기록에 관한 책을 찾아 읽는다. 그리고 에디팅, 내 정신세계를 재배열해야 하나 싶어 편집에 관한 책도 찾아 읽는다. 편집자들의 기록 이야기가 재미있다. 다만 아직은 그뿐, 기록은 여전히 딴 세상 이야기다.
‘50대의 걷는 사람아, 기미와의 공생을 기록할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