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림자,

너의 장소는

by 반점

유월의 해가 등줄기를 타고 내려가 찝찔한 물방울이 된다. 그 시큼 찝찔함이 몸을 아래로 끌어내리고 있다. 오늘 해가 넘어가야 칠월이 오거늘 어찌 이리 해가 따가운지. 이른 장마라더니 유월의 해에 말라버린 것이 틀림없다.


앞선 이의 발꿈치에 붙은 납작한 그림자를 보니 뜨거운 해가 아직 머리 꼭대기에 있겠다. 올레길 18-2코스, 올레길을 걸을 때면 주위를 잘 살펴보며 걷는다. 새로운 풍경을 눈에 잘 담으며 잘 걷는데, 오늘은 영 그럴 수가 없다. 챙이 넓은 모자 위에 자외선 차단이 된다는 우양산, 그늘을 두 겹으로 쌓아 올렸지만 소용이 없다.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발아래에 눈길을 주며 걷게 한다. 앞선 그림자를 쫓아가야 하는데 발이 점점 느려지고 있다. ‘그림자를 주저앉힐 쉼터야 얼른 나와라’라고 중얼거리며 땅에 붙으려는 내 그림자를 애써 옮겨본다.

책꽂이를 아무리 뒤져봐도 없다. 누가 들고 갔나 싶어 동생과 아들에게(딸은 책을 거의 읽지 않으니!) 물어봤으나 둘 다 아니란다. 실은 200페이지 분량의 이 환상 동화 같은 이야기를 딸에게 읽혀볼 요량으로 찾고 있는데, 사라졌다. 그림자도 없다.

인류학자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 한참 전에 읽은 듯한 데, 아닌 거 같기도 하다. 두루 인용되는 글을 살펴보면 ‘사람은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하며, 환대에 의해 사회에 들어가게 되고 비로소 사람은 장소를 갖게 된다.’라고 한다. 이 책을 시간을 두고 천천히 꼭꼭 씹어 읽어봐야겠다고 생각만, 했나 싶기도 하다. 아직 기회는 있겠지.


『사람, 장소, 환대』, 이 책의 프롤로그에 『그림자를 판 사나이』가 인용된다. 작가 이름이 입에 잘 붙지 않는, 프랑스 출신의 독일 작가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가 쓴 환상 문학, 동화 같은 이야기이다.


‘돈이 무한정 나오는 자루를 받고 낯선 사내(악마)에게 자신의 그림자를 팔아버린 페터 슐레밀. 부유함으로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풀고 인정을 받으려 하지만 그의 그림자가 없음을 아는 순간, 사람들은 그를 떠나버린다. 페터 슐레밀은 어디에도 속할 수가 없게 된다.’ 그림자가 사회에 속할 수 있는 ‘정상성?’이라고 했던가, 뒤늦게 그림자를 되찾으려 하지만 낯선 사내는 그에게 더 큰 것을 요구한다. 결국 그림자가 없는 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돌게 되는 페터 슐레밀. 『그림자를 판 사나이』를 흥미롭게 읽었다.

이사할 때 나오려나 했는데 없다. 분명히 있었다. 제 자리에 잘 있을 때는 없는 듯 지내다 없으니 찾는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도 그랬던가? 있을 때는 그 존재를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했다지. 뒤늦은 깨달음은 역시나 늦게 마련이다. 후회라는 질척거림을 남길뿐.


온라인서점을 검색해 보니 열림원에서 새로이 세계문학 시리즈로 엮어 개정판을 출간했다. 내가 읽은 것은 환상 문학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예전 판본이 더 좋았는데 싶기도 하지만, 뭐 그럼 보관을 잘했어야지 싶다.


땅을 보고 걷자니 생각이 둥실 거리며 구름처럼 걸린다. 쉼터가 보인다. 이 또한 나쁘지 않군,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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