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에필로그 : 다시 일터로, 그러나 달라진 마음
‘육아휴직을 끝내고 다시 돌아가야 할 곳‘
육아휴직을 끝내고 다시 돌아가야 할 곳
그 말이 이제는 더 이상 먼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헌혈을 꾸준히 하고 있는데, 어느 날 헌혈을 도와주던 선생님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 말씀을 하셨다.
“통장 잔고가 일을 하라고 내보내더라고요.”
그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요즘 그 말이 자꾸 떠오른다.
내게도 이제 복직을 고민하고 결정해야 할 시간이 찾아왔다.
아내와 함께 쓰는 달력 앱에는 그녀의 복직일이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동료들에게서 “언제 복직해요?” 하는 연락이 하나둘 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연스레, 아내와 나도 내 복직 시기를 두고 대화를 나누게 됐다.
이제는 손에 잡힐 만큼 가까워졌다.
요즘 아침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눈을 뜨자마자 아이들의 인기척이 들리고, 내가 일부러 침대에 누워 안 일어나면 아들이 씩 웃으며 달려오며 외친다. “아빠!”
그 웃음과 목소리, 그 하루의 시작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었는지를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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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을 결심했던 날이 떠오른다.
처음에는 ‘이게 맞는 걸까?’라는 질문이 마음속에서 수없이 맴돌았다.
회사는 괜찮을까?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이 선택이 정말 옳은 걸까?
불안과 두려움, 미지의 시간에 대한 막연한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질문이 조금 달라졌다.
‘이 선택이 잘한 결정이었을까?’보다는
‘다시 일터로 돌아가도 이 시간을 잊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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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보낸 시간은 내 안의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았다.
아이를 안아주고, 함께 뒹굴며 놀고, 목이 아프도록 책을 읽어주고,
어설픈 훈육을 하겠다며 소리를 질러놓고는 밤이 되면 스스로에게
“바보야, 그러지 말았어야지”라고 수없이 되뇌는 날들.
그 모든 순간들이 쌓여 나를 바꿔놓았다.
이제 아빠라는 이름은 더 이상 ‘가장의 무게’, ‘책임감’으로만 다가오지 않는다.
이제는 ‘함께 성장하는 존재’, 서로의 거울처럼 살아가는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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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곧 다시 일터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주변에서는 “이제 자유다, 홀가분하겠네요?”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내 마음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불안함이 더 크다.
그동안 내가 떠나 있는 동안 바뀌었을 직장의 분위기,
복귀 후 다시 빠르게 적응해야 하는 부담,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과 지금처럼 하루 종일 함께하지 못할까 봐 드는 아쉬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짐한다.
이제는 ‘일하는 아빠’이자 ‘함께하는 아빠’로 살아가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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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긴 시간 속에서 보면, 육아휴직의 1~2년은 참 짧은 시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는 인생에서 가장 크고 귀한 선물이었다.
그 시간 속에서 아이들의 웃음과 울음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아내와 더 깊이 대화하고, 부부라는 팀워크를 다져가며,
무엇보다도 내 안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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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로 돌아간다고 해서 모든 것이 예전으로 돌아가는 건 아니다.
나는 이미 달라졌고, 이 변화는 되돌릴 수 없다.
그리고 이 변화는 내 삶 전체를 단단하게 흔들어놓았다.
최근 가족과 함께 봄나들이를 나갔다.
산책길에 꽃을 찍는 어르신들이 많았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식을 다 키우고 난 뒤,
비바람 부는 여름 같은 세월을 지나고,
가을 낙엽처럼 젊은 날이 지고,
겨울처럼 하얀 머리가 되어
비로소 인생의 봄을 맞이하는 걸까?
그래서 지금 이 꽃들이 그렇게도 찬란하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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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나도 그렇다.
아빠가 된 후, 단순히 ‘나이 들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계절’을 온전히 보내보니
시간의 흐름 속에 담긴 진짜 의미를 조금은 알게 되었다.
“육아휴직은 내 삶을 잠시 멈춰 세운 시간이었지만, 그 멈춤 덕분에 나는 진짜 중요한 것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
나는 이제 조금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조금 더 천천히, 그리고 함께.
그렇게, 아빠로서의 나,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나를 다시 만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