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에필로그 : 다시 일터로, 그러나 달라진 마음
이제는 아빠라는 정체성을 품고 살아가는 삶
육아휴직을 시작한 지 1년이 넘었다. 처음 결심할 때는 용기보다 걱정이 더 컸다. 이 선택이 과연 옳은 걸까? 회사는 어떻게 바라볼까? 나는 괜찮을까? 머릿속엔 온통 질문뿐이었다. 막상 시작하니 하루하루가 낯설었고, 시간이 잘 가지 않는 것 같아 초조하기까지 했다. ‘오늘은 아이들과 뭘 해줘야 하지?’ ‘휴직 중인데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딸이 이유 없이 울고, 아들이 밥을 거부하고, 낮잠을 안 자서 하루 종일 예민해진 날들. 그 속에서 나는 ‘아빠’로서의 나 자신이 얼마나 서툰 존재인지를, 얼마나 부족한지를 여실히 깨달았다. 아이 앞에서 무기력해지는 경험은 때로 나를 참작 없이 드러내는 거울 같았다. 하지만 아이들도 나도, 그 시간 속에서 함께 성장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른다는 말처럼, 정말로 시간이 흘렀다.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새 나는 이 낯선 일상에 조금씩 적응하고 있었다. 아이가 나를 향해 웃는 얼굴로 다가오고, 책을 읽어달라고 조르고, 옹알이 같은 말들로 이야기를 건네는 순간순간들이 어느새 내 하루의 중심이 되었다.
육아는 매일이 똑같아 보이지만, 그 안엔 분명 아주 작은 변화들이 있었다. 처음엔 놓치던 그 미세한 차이들이 점점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나는 그 흐름 속에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처음엔 아이를 위해 ‘무언가를 해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육아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 시간을 쓰는 것과 시간을 함께 살아가는 것은 다르다는 걸 느낀 것이다. 아직도 이 두 개념 사이에서 흔들리기도 하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무엇을 했는가’에만 스스로를 평가하지는 않게 됐다.
아빠는 늘 무언가를 가르치고, 권위 있고, 든든한 존재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나는 그저 곁에 있는 사람으로, 실수해도 괜찮고, 때로는 서툴러도 괜찮은 모습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다. 아이도, 나도, 완벽하지 않은 존재라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다.
휴직 전의 나는 늘 긴장 상태였다. 대화에서 실수할까 봐, 상사의 눈치를 살피느라, 모든 변수를 예측하고 대비하려 애쓰느라, 몸과 마음이 늘 굳어 있었다. 실수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나를 철저하게 회사의 톱니바퀴 안에 맞춰놓았고,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육아휴직을 시작한 후에는 콧노래를 부르고, 동요에 맞춰 엉뚱한 율동을 하며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열 번 넘게 읽어주고, 밥을 먹다 흘리는 걸 닦아주며 화도 낼 때도 웃을 때도 있다. 아내는 “책에서 보면 사랑꾼 아빠 같다”라고 말하지만, 그 뒤편에서 아내가 얼마나 묵묵히 감당하고 있었는지를 이제야 알아차린다.
감사함과 미안함, 사랑과 다짐이 뒤엉킨 이 시간들은 내가 그동안 잊고 있던 삶의 본질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게 해 주었다. 이전엔 삶이란 그저 버티는 것이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사는 법’ 말고도 또 다른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더 느리게, 더 따뜻하게, 더 가까이에서 사람을 바라보는 삶 말이다.
어느덧 복직을 준비할 시간이 다가왔다. 그 시점을 앞두고 마음을 다잡아보려 애쓰지만, 솔직히 말해 여전히 불안하다. 교회에서 알게 된 형님이 육아휴직 2년을 마치고 복직할 때의 무거운 마음을 털어놓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나 역시 그 막막함에서 자유롭지 않다. 다시 일터에 적응할 수 있을까? 그동안 놓았던 것들을 잘 따라잡을 수 있을까? 남들보다 뒤처진 건 아닐까? 조급한 마음이 밀려온다.
하지만 그런 불안함 속에서도 더 크게 마음을 흔드는 건, ‘놓지 않았던 것들’이다. 아이와 함께한 시간, 아침 등원길의 선선한 공기, 아이와 함께 웃고 울며 보내던 하루하루. 그 모든 순간이 내 삶의 중심에 깊이 새겨져 있다.
아이들이 내 귀에 속삭이듯 부르던 ‘아빠’라는 말이 이제는 내 마음에 깊이 각인되었다. 그 한마디가 내 존재의 무게를 바꾸어 놓았다. 이제 나는 예전처럼 일에만 모든 걸 걸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아이의 작은 기침에도 마음이 덜컥 내려앉고, 아내가 지쳐 보이면 내가 먼저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복직 후에도 나는 퇴근하자마자 가능한 한 빨리 집으로 향하고 싶을 것이다. 회식도 좋지만, 아이와 함께 밥을 먹고 목욕시키며 책을 읽어주는 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질 것이다. 아빠가 된다는 것은, 나의 시간과 에너지의 우선순위가 달라졌다는 뜻이다.
이제는 그 새로운 우선순위를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 자랑스럽게 여긴다. 누군가는 남자들이 육아휴직 다녀오면 회사에서 적응하기 힘들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회사가 전부였던 삶에서, 삶 전체 안에서 회사를 바라보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그 중심에는 아이, 가족, 그리고 다시 바라보게 된 ‘나’라는 존재가 있다.
육아휴직은 나를 회사 바깥으로 끌어냈지만, 동시에 내 안에서 오랫동안 필요한 것들을 일깨워주었다. 인내심, 공감, 유연함,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삶의 태도. 이건 단지 육아에만 필요한 자질이 아니다. 어떤 조직에서든, 어떤 관계에서도 필요한 본질적인 역량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아빠’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이 경험을 내 삶의 한 챕터로 자랑스럽게 꺼내어 말할 수 있다. 앞으로도 이 시간을 품고 살아가고 싶다. 복직 후에도 나는 ‘육아휴직을 해본 아빠’로서 동료와 대화하고, 후배들에게 육아휴직을 권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언젠가 아이들이 커서 물어볼지도 모른다.
“아빠는 왜 우리 아기 때 집에 있었어?”
그 질문에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아빠는 너희와 함께하고 싶었어. 그 시간은 아빠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줬단다.”
육아의 끝은 결국 ‘내가 임종하는 날’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처럼,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나도 자란다. 육아휴직은 언젠가 끝나지만, 아빠로서의 삶은 끝나지 않는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배우고, 흔들리고, 성장해갈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지금 육아휴직을 고민하고 있다면, 혹은 그 길을 지나고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선택은 결코 작지 않았고, 그 시간은 분명 당신을 더 단단하고 따뜻하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당신도, 나도, 우리는 그렇게 좋은 ‘아빠’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