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내가 배운 것들 : 육아휴직이 남긴 흔적
‘아빠가 집에서 일궈낸 소소한 기쁨과 행복의 순간’
육아휴직은 아이를 낳아봐야만 비로소 꺼내쓸 수 있는, 일생에 단 몇 번밖에 오지 않는 기회였다. 그리고 나는 그 기회를 선택했다. 선택하자 비로소 ‘가정’이라는 공간에 온전히 머물 수 있었고, ‘가족’이라는 이름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얻게 되었다.
회사에서처럼 시간 단위로 쪼개진 삶이 아니라, 밥 냄새에 따라 하루가 흐르고, 아이의 기분에 따라 리듬이 달라지는 느릿한 시간. 어느새 그 안에서 화도, 눈물도, 기쁨도, 그 모든 감정이 오롯이 내 것이 되었다.
⸻
첫째 때와는 또 다른, 둘째와의 시간
첫 아이 떼는 교대근무 덕분에 육아에 참여할 수 있었고, 그만큼 아빠로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둘째가 태어나고, 내가 주양육자가 되어 하루를 함께 보내며 느낀 감정들은 또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조리원에서 퇴소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산후도우미 없이 집으로 돌아와 아기와 아내를 돌보는 그 모든 시간이 내겐 전쟁 같으면서도 축복이었다.
“내가 다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도 있었지만, 어느새 내 품에서 새근새근 잠든 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이 따뜻함, 이 조용한 숨결, 이 신생아 특유의 향기를 다음 날 출근 걱정 없이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건 회사에서의 성과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내가 직접 안고 맞이한 기적 같은 순간이었다.
⸻
아이들과의 ‘루틴’이 생겼다
일을 할 때의 루틴은 철저히 외부 지향적이다. 출근 시간에 맞춰 일어나고, 도착 시간을 계산하고, 내비게이션에 찍히는 예상도착 시간에 따라 하루를 움직인다.
하지만 육아휴직을 하면서 나와 가족에게 맞는 루틴이 생겼다.
이 시간엔 딸이 낮잠을 자고, 아들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고, 늦은 오후엔 어디를 갈지 함께 고민한다. 아내가 추천한 곳을 검색하고, 날씨를 확인하고, 가끔은 둘 중 하나와 단둘이, 혹은 네 식구가 함께 산책을 나간다.
단순하고 비슷비슷한 일상 같지만, 어디에 갈지를 고민하고, 그날의 컨디션에 맞게 조율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고민마저도 ‘우리’를 위한 시간이라는 게 좋았다.
예전 같았으면 “나 혼자만의 시간”이 중요했지만, 이제는 “같이 만들어가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몸으로 깨달았다.
최재호 작가의 『좋은 사람과 낭비한 시간』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고 한다.
“좋은 사람들과 낭비한 시간이 바로 행복이에요.”
그 말처럼, 나는 지금 좋은 사람들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은 결국 ‘가족의 행복’으로 되돌아온다.
⸻
아이의 언어가 열리던 순간
아들의 언어 발달이 느린 편이어서 걱정을 많이 했다.
“우와”, “무~(물)” 정도밖에 하지 못하던 아들에게, 나는 조용히 기도하곤 했다.
“침대에서 옹알거리며 시끄럽게 떠들다가 내가 ‘조용히 하고 자!’라고 말할 날이 오게 해 주세요.”
그리고 그날이 정말 왔다.
어느 순간부터 아들은 문장을 말하기 시작했다. “아빠랑 잘래”, “아빠랑 놀래”, “아빠 좋아.”
그 말들을 들을 때마다, 나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벅찬 감정이 올라왔다.
그건 단순한 언어 발달의 증거가 아니었다. 나라는 존재가 아이의 언어 안에 들어온, 아이의 마음이 내게로 열린 순간이었다.
“이 시간을 함께 해서 가능했던 일이다.”
그 생각이 나를 울컥하게 했다.
⸻
아내와, 진짜 ‘같이’ 걷게 되다
아내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내와 정말 가까워졌다고 느낀다.
이전에도 가사를 나름 잘 챙긴다고 생각했지만, 육아의 무게를 함께 나누고부터는 ‘육아동지’라는 말이 실감 났다.
예전엔 시간 쪼개서 도와주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온전히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아, 이건 아내가 이런 마음으로 했던 거구나.”
이해의 폭이 넓어지면서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순간들이 생겼다.
그 변화가 아이들에게도 전달되는 게 느껴졌다.
부부가 화목해지자 아이들이 더 안정적이고 밝아졌다.
‘가화만사성’이라는 말, 그저 옛 어른들의 말 같았던 그 표현이 이제는 마음 깊이 체감되는 말이 되었다.
⸻
경력 단절? 아니다, 삶의 단단함이다
가끔 어머니는 걱정하신다.
“그래도 너무 오래 쉬면 나중에 힘들지 않겠니?”
“경력 단절 되면 어쩌니?”
이해한다. 나를 걱정하셔서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나는 이 시간을 절대 ‘단절’이라 부르고 싶지 않다. 오히려 ‘연결’이고, ‘성장’이었다.
1~2년의 육아휴직은 어쩌면 내 인생 전체에서 보면 아주 작은 조각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조각에서, 가장 본질적인 ‘삶’과 ‘가족’을 만났고, 내가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 깨달았다.
나는 지금, 아빠로서 성장하는 중이다.
이 시간은 경력의 공백이 아니라, 인생의 밀도 있는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