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눈을 뜬다

5장. 눈앞의 일상이 무너질 때

by 풍경소리



새벽에 눈을 뜨는 일은 이제 두려움의 시작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오늘 하루가 어떤 하루가 될지 판가름 났다. 밤새 각막이 말라 눈꺼풀에 붙어 있었다면, 눈을 여는 순간 송곳 같은 통증이 몰려왔다. 눈물은 저절로 쏟아지고, 눈꺼풀을 뜰 수도 감을 수도 없는 고통 속에서 ‘정말 이렇게는 살 수 없겠다’는 절망감이 찾아오곤 했다.


출근해야 하는 날이면 두려움은 더 깊어졌다. 진통제를 삼키고 안약을 챙겨 집을 나섰지만, 출근길 차나 지하철에서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는 내 모습은 한없이 초라했다. 회사에 도착해 모니터 앞에 앉으면 시야가 흐릿해져 글자들이 춤추듯 흔들렸고, 한쪽 눈으로만 버티면 금세 피로가 몰려왔다. 직장이라는 공간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생각에, 더더욱 이를 악물고 버텼다. 하지만 이 고통은 가까운 동료에게조차 설명하기 어려웠고, 이해받을 수 없다는 외로움이 마음 깊숙이 자리 잡았다.


가정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이가 장난감을 들고 와 “아빠 같이 놀자”라고 보채도, 눈이 아픈 날엔 제대로 바라봐주지 못했다. 아이는 아빠와 눈을 맞추며 웃고 싶었겠지만, 나는 한쪽 눈을 감은 채 “조금만 기다려”라는 말을 되뇌었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저렸다. 아내는 이해하려고 애썼지만, 나는 점점 미안해졌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약을 챙겨주는 아내의 손길이 고마우면서도 ‘다른 병원이라도 알아보자’는 한마디에 더 큰 미안함이 몰려왔다.


통증은 단순한 육체적 고통이 아니었다. 내 삶과 정신을 갉아먹고, 평범한 일상을 파괴했다. 평범하게 회사에 다니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눈을 뜨는 일이 이렇게 힘든 일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사람들은 보통 시력을 ‘잘 보인다, 안 보인다’로만 생각하지만, 나에게는 ‘오늘 하루 눈을 뜰 수 있는가’가 삶을 결정짓는 기준이 되어버렸다.


주말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가족과 약속을 잡았다가도 통증이 시작되면 그대로 취소해야 했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거리를 두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 혼자만의 공간을 만들어 갇혀 지냈다. 병으로 인한 신체적 고통보다도, 관계가 끊기고 세상과 멀어지는 느낌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


어느 날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던 길이었다. 날씨는 봄처럼 화창했지만, 그 빛조차 내겐 고통이었다. 눈물이 흘러내리자 옆에 있던 아이가 물었다.

“아빠, 울어?”

그 짧은 한마디가 내 마음을 후벼 팠다. 고통 때문에 울고 있었지만, 동시에 아빠로서도, 남편으로서도, 직장인으로서도 무너진 나 자신 때문에 더 눈물이 났다.


일상은 더 이상 일상이 아니었다. 눈앞의 작은 상처 하나가 삶 전체를 뒤흔들 수 있다는 사실은 내게 충격이었다. 그전까지는 ‘내일도 오늘과 같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이 병은 내일이 오늘과 같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오늘 괜찮더라도 내일은 다시 통증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매일 일깨웠다.


그렇게 나는 ‘통증을 견디는 나’와 ‘평범한 척하는 나’ 사이에서 갈라져 살았다. 병은 단순히 각막의 문제가 아니라, 내 삶 전체를 잠식하는 파도였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