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발성각막상피미란과 함께 살아가는 기록
6장. 내가 배운 것들
이 병은 어느새 내 인생의 반려자가 되었다. 한 해가 지나 두 해가 되면서 나는 이 병을 ‘반려병’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처음엔 그저 ‘나을 수 있는 병’이라 믿었다. 며칠 쉬면 괜찮아지고, 젊으니까 금방 회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믿음은 몇 번의 재발 앞에서 무너졌다. 눈을 뜨는 순간마다 찾아오는 통증과 공포, 다시는 이전처럼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무너지는 자존감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건강’이라는 단어를 진지하게 마주했다.
이전까지 나는 내 몸을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 공부하고 일하고 밥 먹고, 조금 아프면 병원 가고 약 먹으면 된다고 여겼다. 하지만 눈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그 생각이 얼마나 자만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몸은 내가 끌고 가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였다. 고통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재앙이 아니라, 오랫동안 보내온 경고였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리고 나는 ‘멈춤’을 배웠다.
눈이 다시 아파오면 그날의 계획은 무너진다. 예전의 나였으면 멈추는 것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멈춤은 패배가 아니라 회복이라는 것을. 쉬어야만 다시 볼 수 있고, 멈춰야만 내면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것을.
한동안 시야가 뿌옇게 흐려질 때가 있었다. 각막의 상처 때문에 세상이 번져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때 내 안은 오히려 선명해졌다. 사물이 보이지 않을 때 가족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렸고, 바람의 온도와 자연의 소리를 더 깊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제야 ‘본다’의 의미를 다시 정의했다.
이 병과 함께 살아가면서 나는 ‘나를 돌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처음에는 병을 없애는 것만이 목표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병은 내가 싸워 이겨야 할 적이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하는 손님임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부터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 오늘은 눈을 떠서 아프지 않았으니 다행이야. 이 정도면 충분해.”
그 한마디의 감사가 나를 하루하루 살리고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 있다는 것은 큰 위로였다.
그렇게 작은 위로들이 모여 내 삶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눈이 덜 아픈 날에는 책을 읽고, 육아휴직 중이라 아내와 아이들에게 집중하며, 산책이나 집안일을 하며 삶의 기본을 느낀다. 예전에는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이제는 당연하지 않음을 안다. 그래서 더 고맙다. 그 고마움이야말로 내가 이 병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선물이다.
나는 아직 완전히 낫지 않았다. 매주 보호렌즈를 교체하고, 안구건조증 치료를 받으며 재발 가능성을 안고 산다. 여전히 두려움도 있다. 하지만 예전만큼 두렵지는 않다. 고통 속에서도 삶은 계속되고, 아픔과 함께도 충분히 괜찮은 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병이 내 삶을 무너뜨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아픈 삶 속에서 내가 배운 것은 결국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