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발성각막상피미란과 함께 살아가는 기록
7장. 다시 나를 세우며
처음엔 이 병이 나를 부숴버렸다고 생각했다.
눈을 뜨는 것이 두려웠고, 하루의 시작이 곧 고통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나는 ‘견디는 사람’으로 살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대로는 내가 사라질 것 같았다.
고통보다 더 무서운 건 ‘나 자신을 잃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조금씩 나를 다시 세우기로 했다.
큰 결심보다는 아주 작은 일부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괜찮을 수도 있어” 하고 나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
통증이 심한 날엔 “괜찮다, 오늘은 쉬는 날이야” 하며 죄책감 대신 쉼을 허락했다.
그건 단순한 긍정의 주문이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한 생존의 언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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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병을 앓으며 가장 크게 배운 건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법’이었다.
통증이 언제 찾아올지, 언제 괜찮아질지 알 수 없었다.
처음엔 그 불확실함이 두려움과 공포로 나를 휩쓸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오늘의 나’를 기준으로 살아보기로 했다.
눈이 아픈 날엔 그만큼 천천히, 괜찮은 날엔 그만큼 더 열심히.
그 단순한 리듬이 내 삶을 다시 움직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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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직 중이던 어느 날, 아이가 내게 물었다.
“아빠, 오늘은 눈 안 아파?”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을 울렸다.
아이의 눈빛 속에는 걱정과 사랑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회복’은 혼자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무너질 때 함께 흔들리는 사람들이 있었고,
내가 일어설 때 함께 웃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나를 세운다는 것은, 곧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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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는 여러 병원을 찾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술을 받았다.
시술 전 설명에서는 건조증과 유전적인 요인, 외부 환경이 원인이라고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 말을 듣고 두려움에 떨었겠지만, 지금은 담담했다.
시술을 받았지만 여전히 완전하지는 않다.
눈은 여전히 건조하고, 때때로 예기치 않은 불편함이 찾아온다.
하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두렵지 않다.
이 고통도 삶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 안에서도 여전히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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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나는 ‘아프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
‘아픔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고통은 내 약점을 드러냈지만, 동시에 나의 강함을 일깨워주었다.
이제 나는 다시 눈을 뜬다.
조심스럽지만, 단단하게.
오늘도 아픔과 함께 살아가는 나를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