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눈을 뜬다.

4장. 병원을 다니며

by 풍경소리


발병 이전에도 나는 잦은 눈 알레르기와 잔병치레로 여러 동네 병원을 들락거리는 편이었다. 그러다가 재발성각막상피미란이 찾아오자 가장 먼저 의지한 곳도 익숙한 동네 의원이었다. 익숙한 의사, 익숙한 대기실, 익숙한 진료 방식. 그 안정감이 처음엔 위안이 됐다. 그러나 통증이 반복될수록 ‘혹시 더 큰 병원을 가봐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대학병원에 한 번 가보시죠. 더 전문적으로 여러 의사가 보시면 다르게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동네 병원 의사 선생님은 흔쾌히 소견서를 써주었고, 나는 마치 마지막 희망을 쥔 사람처럼 대학병원 문을 밀었다. 그날의 몸과 마음에는 긴장과 절박이 뒤섞여 있었다. 더 많은 장비, 더 많은 전문가가 해줄 수 있는 다른 해답을 기대했다.


검사실에서의 시간은 길고 차가웠다. 빛나는 기계들과 무심한 모니터,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작아졌다. 의사들은 친절했지만, 그 친절 속에는 ‘지금 당장 해결해 주겠다’는 약속은 없었다. 여러 검사를 거쳐 각막의 상처가 아물 무렵 들은 말은 한마디로 나를 무너뜨렸다.

“특별히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천자술도 고려할 수 있지만, 지금 환자 상태로는 보존적 치료가 더 낫겠습니다. 자기 전 연고와 인공눈물 잘 쓰시고, 거주지 근처 안과에서 주기적으로 회송 진료를 받으세요.”


그 한마디는 차갑게 가슴에 박혔다. ‘치료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 머릿속을 하얗게 만들었다. 더 묻고 싶었지만,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집으로 오는 길, 대학병원 건물은 공장처럼 거대하고 무심하게 보였고, 집에 오는 버스 속에서는 나 혼자만 고립된 섬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후 ‘보존적 치료’라는 단어가 내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보호렌즈를 끼우고, 인공눈물을 수시로 넣고, 밤마다 연고를 바르는 일상. 증상이 가라앉으면 며칠 혹은 몇 주 동안은 평온하다 싶다가도, 각막이 다시 벗겨지면 통증이 몰려왔다. 치료라기보다 임시방편 같은 속성이 점점 더 뚜렷해졌다.


의사들의 위안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나이가 들면 각막이 조금 더 단단해져 증상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 말은 차라리 독설처럼 들렸다. 언젠가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말은 ‘지금 당장의 고통을 수십 년 견뎌야 한다’는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때까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질문에 갇혔다.


병원을 다니는 것은 치료의 과정이자 마음의 소모였다. 반복된 방문은 곧 이 싸움이 길고도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증거처럼 보였다. 때때로 의사의 설명을 끄덕이다가도 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 나는 작아졌다. 평생 관리라는 말, 반복되는 각막 상처와 통증, 끝없이 이어지는 진료와 처방 — 이 모든 것이 내면의 결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그렇다고 병원에 등을 돌릴 수도 없었다. 당장의 통증을 막아주는 것은 오직 지금 받고 있는 것들뿐이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으며, 작은 완화와 반복되는 좌절 사이에서 하루하루를 이어갔다. 그리고 어느새, 병원을 오가는 발걸음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내 삶의 한 부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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