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책으로 할 수 있는 일들
내가 책모임을 시작한 것은 6년 전쯤이다. 일요일 아침 도서관에서 시인이 진행하는 책모임이었다. 그다음은 회사에서 동료들과 함께했다. 한 달에 한 번 점심시간에 모여 책을 읽은 소감을 간단히 나누었다. 문학, 예술, 역사, 인문, 코믹, 철학, 과학 중에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골라 책도 선정하고 그날의 모임도 직접 이끌었다. 시간이 부족해 책에 깊이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업무 외에 다른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흡족했다.
퇴사를 하여 첫 멤버들과는 헤어졌지만, 지금도 몇몇과 한 달에 한 권 같은 책을 읽고 있다. 덕분에 과학, 건축, 예술 등 혼자서는 잘 읽지 않는 분야를 사람들에게 기대어 읽어 내고 있다. ‘기대어 읽고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지금부터 말하려고 하는 ‘책모임이 내게 준 것들’과 같은 맥락일 것 같다.
책은 철저히 혼자서 긴 시간을 묵묵히 인내할 때라야 제가 가진 기쁨을 잠깐씩 내어 준다. 후루룩 우동 먹듯 읽기, 좋은 정보만 쏙쏙 빼먹는 읽기, 앞부분만 읽기, 꾸역꾸역 읽기에서도 독서의 기쁨은 분명 찾을 수 있다. 긴 시간을 묵묵히 한 권에 푹 빠져보는 읽기 속도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저자가 쓴 문장들을 놓치지 않고 읽으려고 노력할 때 그 책이 그 사람에게만 주는 특별함이 있다. 그건 저자가 주는 것이라기보다 독자가 저자의 문장과 충돌하여 뿜어져 나오는 고유한 에너지, 마음에 담고 싶은 열망, 그리고 순수하고 깨끗한 내면과의 만남이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독서가 주는 이 ‘열렬한 희열’을 잊지 못해 책을 덮고 나서 곧 다른 책을 다시 편다. 이것이 독서의 첫 번째 기쁨이다. 두 번째 기쁨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나는 책모임에서 이뤄지는 ‘좋은 대화’에서 찾는다. 이것은 독서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해주는 큰 힘이기도 하다.
내가 하고 있는 책모임
나는 정기적인 두 개의 책모임과 비정기적인 일대일 독서 번개를 하고 있다. 책모임은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A모임’과 매주 모이는 ‘B모임’이다. A모임은 과학 등 이공계쪽 책을 잘 읽지 않는 독서 편식을 보완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직업을 가진 30~50대 여성들이 각자 자신이 선택한 분야의 책을 선정해 그날의 모임을 이끈다. 분야는 겹치지 않도록 잘 배분하는 편이다. B모임은 숙련된 독서 전문가이자 성직자인 수녀님께서 선정한 책을 읽고 서너 가지 질문에 돌아가며 이야기한다. 이 모임도 여성 중심이고 연령대는 40~60대이다.
비정기적인 일대일 독서 번개는 친구나 지인과 함께한다. 둘만의 관심 주제나 솔루션이 필요한 고민에 어울리는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눈다. 이런 만남에서 책은 주인공이라기보다 특별출연이나 카메오로 자기 역할을 충분히 해낸다. 일대일 독서 번개는 평소에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이나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사람에게 권유하는 건 좋지 않다. 종종 만나면서 책에 관심이 있고 공통의 관심사나 고민거리가 있을 때 효과가 있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책모임과 형태]
1. 정기적인 모임
1) 이름 없는 책모임(개인 모임)
-문학, 역사, 철학, 과학, 예술 등 분야별 읽기
-한 달 1회, 30~50대 여성, 6명, 토론 중심, 돌아가면서 진행
2) 행복한 책읽기(성바오로딸에서 운영하는 종교 서적 읽기)
-신앙, 철학, 환경, 문학, 그림책, 영화 읽기
-주 1회, 40~60대 여성, 10명, 자아성찰 중심, 숙련된 전문가의 진행
2. 비정기적인 모임
1) 일대일 독서 번개
-둘의 관심 분야나 고민과 관련된 책 읽기
-비정기적, 친구 또는 지인, 관심 분야나 고민 나눔, 대화 중심
이렇게 써 놓으니 책 읽느라 무척 바쁠 것 같지만, 하루 8~10시간 정도 일하고 집안일도 하면서 일주일에 두세 번 사람들을 만나는 일정 속에서 충분히 가능하다. 나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더 바쁜 사람들이 저 모임에는 많다. 이제 막 아기를 낳은 엄마, 손주를 봐주는 할머니,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강사들, 일도 하고 자녀도 키우면서 봉사도 하는 분들이다. 더 대단한 것은 은퇴한 뒤 편안하게 누릴 것이 많은데도 책을 읽으며 끊임없이 자기 성찰에 열중하는 사람들이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함께 책을 읽게 만드는 것일까? 다른 좋고 재미있는 것들 대신에 왜 ‘책’과 ‘모임’을 선택한 것일까?
책모임은 좋은 대화의 집이다
얼마 전 책모임에서 『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을 함께 읽었다. 이 책은 이진아기념도서관,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 봉하마을 묘역, 창덕궁 정자 등 건축물에 얽힌 희로애락을 담은 책이다. 그중에 약 300년 전에 지어진 강릉 선교장 안에 있는 ‘열화당’을 소개한 부분이 있다.
선교장에 가면 열화당이란 이름을 한 번씩 곱씹어 보게 된다. 뜻 맞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큼 즐거운 것이 또 있을까? 문화란 결국 ‘즐거운 이야기’ 속에서 꽃 피우는 것이 아닐까.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속에서 문화와 전통이 생겨날 테니 말이다. 정담과 교분이 좋아 ‘즐거운 이야기 집’을 지은 것, 그 집 선교장이 일군 아우라는 그래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_구본준, 『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서해문집) 중에서
이 책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열화(悅話)’라는 말은 중국 진나라 때 시인 도연명이 쓴 <귀거래사>에 나오는 ‘친척과 정이 오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기뻐하다.’라는 글에서 따왔다고 한다.
悅親戚之情話, 樂琴書以消憂
친척들의 정다운 이야기를 즐겨 듣고, 거문고와 책을 즐기며 우수(憂憩)를 쓸어 버리리라.
나는 열화당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 현대인들에게 ‘열화당’은 어디일까, 라는 질문을 해 보았다. 좋은 대화가 오가는 공간이나 시간이 일상에서 얼마큼 확보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곤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실을 살아내기 위한 일상어가 대부분인 집도 열화당이 될 수 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대화도 열화가 된다. 이제는 떠들면 도리어 민폐가 되는 카페지만 그곳도 한때는 열화당이었다. 일 년에 한두 번 찾는 고향집과 여행을 떠나는 길도 열화당으로 변한다. 나 혼자 있는 자동차 안, 명상이나 기도하는 장소, 출퇴근 오가는 시간도 나 자신과 대화하는 열화당이다.
그리고 책모임이 열화당이다. 책모임에는 늘 ‘좋은 대화’가 오간다. 책을 읽은 뒤, 지식과 정보를 나누고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하는 것도 필요한 작업이다. 그런데 그것들에만 너무 집중하다 보면 책읽기에 쉬 피로를 느끼고 숙제나 업무처럼 무거워진다. 책 읽기의 즐거움에서 멀어질 확률도 높다. 책모임에서 오가는 좋은 대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줄까?
첫째, 자기 자신과 대면하도록 하는 자가 치유제를 준다. 책에서 아무리 거대한 이론과 사상을 설파해도 그것을 읽은 독자는 결국 자신의 문제와 언어에 머물게 된다. 책을 읽은 뒤에 ‘나’로 돌아오는 것은 지극히 마땅한 일이고.
내가 참여하는 ‘행복한 책읽기’라는 책모임의 운영 방식은 간단하다. 매주 다른 책을 읽고 수녀님이 주는 서너 가지 질문에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약 3시간 동안 진행된다. 그런데 여기에는 3가지가 없다. 토론, 조언, 말 자름이 없다. 자신의 생각과 이야기를 충분히 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으면 된다. 진행자인 수녀님조차 개입이 꼭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는 이야기하는 당사자를 주인공으로 세워 준다. 간단해 보이지만 여기에는 진행자의 큰 내공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사람은 주어진 질문에 답하면서 스스로를 치유하고 돌본다. 처음에는 자신이 펼치는 이야기 집으로 들어가 부족한 나, 비뚤어진 나, 완벽하지 않은 나를 발견한다. 그러다가 점점 ‘이미 나에게 있는 좋은 것’을 찾게 된다. 이미 가지고 있는 좋은 것을 발견하면서 그것을 덮고 있던 가면이나 거짓된 욕망을 드러내고 자기 손으로 그것들을 하나씩 허문다. 그런 다음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으며 이번에는 그 사람을 주인공으로 세워 준다. 좋은 대화의 집을 또 하나 짓는 것이다.
책을 읽은 뒤에 나의 이야기를 충분히 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조용히 들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나와 타인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면서 나와 타인한테 끊임없이 매겨대던 점수와 기준, 욕망을 차츰 줄이기 시작한다. 완벽히 없어지지는 않는다. 없어지지 않기에 다음 책을 펼 수 있다.
둘째, 책모임에는 좋은 대화를 위한 어휘와 질문이 늘 풍성하다. 일상생활 속에서는 만나려야 만날 수 없는 좋은 어휘들이 모임 내내 눈에 머물고 입에서 나오고 귀로 흘러들어 가며 살갗에 와 닿는다. 인기 강사 김창옥 씨는 “어떤 배우자를 만나야 하나요?”라는 젊은 관객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모국어가 좋은 사람을 만나세요.”
배우자를 만날 때 그 사람이 2-30년간 썼음 직한 언어 환경을 잘 살피라는 뜻이다. 그의 부모나 가정 내에서 오가는 말과 그 자신의 언어 세계가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보면 배우자를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퍽 일리 있는 말이었다.
가정을 비롯해 학교, 회사, 단체를 통해 만나는 사람들과 쓰는 어휘는 조금씩 다르다. 말투나 말버릇은 비슷하지만 만나는 사람, 하는 일에 따라 쓰는 어휘에 차이가 난다.
책모임을 하는 동안 우리는 약 300여 쪽에 나오는 어휘와 그것들로 잘 짜인 문장을 만난다. 책을 소리 내 읽으면서 그 어휘를 그대로 느껴 보기도 하고, 익숙하진 않지만 그것을 넣어 말을 만들고 이야기를 하면서 그 어휘들과 가까워진다. 새 어휘와 가까워진다는 것은 가 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에 한 발을 들여놓는 행위이다.
그다음은 진행자가 준비한 질문을 충분히 음미할 차례이다. 숙련된 전문가가 준비한 질문은 밀도가 깊어서 질문만으로도 독서 수준이 한껏 높아져서 좋고, 멤버들이 준비한 질문은 본인이 말하고 싶은 핵심이나 개인의 취향과 사고방식이 드러나 꽤 흥미롭다. 그래서 두 가지 방식 모두 좋은데, 가능하다면 책을 읽고 두세 가지 정도 질문을 만들어 보는 것이 좋다. 그 질문에는 책에 대한 단상이나 소감은 물론이고 나만의 영감이 담겨 있으므로 나를 둘러싼 세계를 확장시켜 준다. 질문은 자신과의 내면 대화이자, 타자와의 소통이며, 이 사회와 세상을 향한 길을 내준다.
셋째, 책으로 나눈 좋은 대화는 가족이나 친구, 동료 등 매일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지탱케 하는 에너지를 준다. 나는 최근에 만나는 사람마다 이런 질문을 던져 보았다.
“요즘 누구와 대화하는 게 가장 좋으세요?”
이 질문에 가까운 사람, 특히 가족을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들은 가정생활에 별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럼 가족과는 좋은 대화를 할 수 없을까? 그렇지 않다. 다만 가족은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어휘로 대화를 해야 하는 일이 더 많다. 그래서 우리가 좋다고 느끼는 대화(또는 속시원한 대화)보다는 조금 불편하고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대화 상황에 더 자주 놓인다.
갑자기 가족들에게 “가족 간에 대화가 부족하니 책을 읽고 대화 좀 하자.”라고 하면 그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이 갈 것이다. 좋은 관계는 꼭 좋은 대화를 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친하다고 생각하는 지인이나 친구들을 10명쯤 써 넣고, 그 가운에 그 사람과 대화하는 게 좋아서 유지된다고 생각하는 관계에 동그라미를 쳐 보자. 아마 반정도 될 것이다. 그들과 당신을 연결해 주는 것은 대화 외에도 무수히 많다는 증거이다.
좋은 대화는 가까운 인간관계가 아니어도 뜻있는 소재와 주제로 충분히 가능하다. 책을 읽고 거기서 발견한 것들로 대화를 나누면 우리 안에 좋은 기운이 생긴다. 좋은 기운은 어떤 사람에게는 자존감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감으로 나타난다. 또는 용기, 열망, 안도, 치유, 위로, 충만, 만족 등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책이나 책모임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라 해결책을 준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 같다. 다만 이 기운은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대화를 잘 나누게 하고, 그 관계 속에서 생기는 갈등과 괴로움 앞에서 적어도 덜 휘둘리게 해준다.
네 번째, 책에서 배운 좋은 점을 내 삶에 적용하도록 해 준다. 책은 혼자 읽으면 지식과 정보로 그치지만 같이 읽으면 사람들의 지혜로 다시 태어나 내 삶으로 들어온다. 당장 드러나지 않아도 차차 내면의 밑바닥이 채워지고 그것이 어느 정도 차오르면 말과 표정이 바뀌고 그뒤로 몸(행동)이 바뀐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삶이 나아지는 데 그것만큼 빠른 방법도 없다. <호모 큐라스>의 저자 고미숙은 이렇게 말한다.
독서란 큰 소리로 책을 읽는 것을 뜻한다. 독서라는 한자를 한번 써 보라. 讀. 보다시피 말씀 언이 들어 있다. '소리 내어 읽는다는 의미다. 그냥 눈으로만 보는 것은 간서(看書)라고 했다. …… 그런 점에서 묵독은 일종의 '음소거'이다. 이미 말했다시피, 소리가 사라지면 책은 오직 정보의 창고가 되어 버린다. 창고의 물건들은 하나씩 개별적으로 쌓인다. 서로 연결되기보다 각각 따로 존재한다. …… 아무리 많은 것은 왼다 해도, 그 지식과 정보를 자신의 삶에 절대 활용할 수 없다. 더욱 치명적인 건 앎의 즐거움을 조금도 향유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_고미숙,『호모 큐라스』(북드라망) 중에서
독서의 본래 의미가 '큰 소리로 책을 읽는 것'이라면 책모임은 '큰 소리로 같이 읽는 것'이다. 독서가 머리의 행위라면, 책모임은 가슴의 행위이다. 마음으로 내려가 행동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혼자 읽으며 희열을 얻는 것도 좋지만, 함께 읽은 사람들이 얻은 희열에 공감하고 이를 내 삶에 가져오는 것이야말로 책모임이 주는 두 번째 희열이 아닐까.
나의 직업은 책을 만드는 일이다. 무슨 책을 만들까 고민하고 저자와 소통하며 글을 책으로 만들기 위해 편집을 한다. 나와 같이 출판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책 읽기는 특별할 게 없다.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책을 아예 안 읽거나 조금 읽거나 아주 많이 읽는다. 나는 책모임을 하기 전에 일과 관련된 책만 읽었다. 콘텐츠와 출판에 관련된 책, 내가 편집하는 책의 경쟁 도서, 읽고 싶지 않아도 잘 나가면 분석을 위해 베스트셀러를 들여다보는 것이 내 책읽기의 전부였다. 편집 10년 차를 막 넘겼을 때 10대와 20대 때 누렸던 책읽기의 즐거움은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나는 지금 책모임을 하며 되찾은 책읽기의 즐거움으로 불안한 40대를 통과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좋은 대화’가 있다. 자가 치유제로, 대화의 좋은 소재로, 일상을 잘 살게 해주는 힘찬 에너지, 나아지는 마음으로 책읽기의 두 번째 희열을 온몸으로 만끽하는 중이다.